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14
생각하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689초. 690초…….
691초가 되는 순간 이사칼은 폭탄을 쥐었다. 그리고 692초에 내뱉었다.
“이동.”
성음의 눈앞에 나타난 폭탄이 693초부터 카운트를 늘려 가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린 이사칼이 다시 입을 놀렸다.
“자, 과연 누구에게서 터질까? 친구를 살리고 싶으면 네가 자폭해야 할걸.”
말없이 카운트를 확인하는 성음을 보며 이사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친구를 위한 희생? 아니면 어떤 인간이든 죽음을 앞두면 나올 수밖에 없는…….’
생존 욕구일까?
성음은 폭탄을 쥐고 기다렸다.
10초 룰이 끝나는 순간 그녀는 선택했다.
“이동.”
“푸하하하!”
이사칼이 폭소를 터트렸다.
“뭐야, 결국 살고 싶었던 거잖아? 고고한 척하더니, 결국 네 손으로 친구를…….”
틱.
초침 소리가 들렸다.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웃음기가 사라진 이사칼은 자신의 정면을 보았다.
폭탄이 떠 있었다.
“…….”
특별한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이 순간을 이해할 만한 어떤 맥락도 없었기에 화조차 나지 않았다.
‘왜?’
폭탄이 여기 있지?
‘나, 진성음, 에이미 순이 아니었나?’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뒤에야 이사칼은 고개를 돌려 에이미를 보았다.
벽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푹 숙인 자세로 미동조차 없는 그녀가 보였다.
‘죽었잖아.’
아직도 모르겠다, 무슨 상황인지.
온통 붉은 공간이라 그녀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사타구니를 조이고 있던 끈이 어느새 풀어져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언제? 왜?’
아니, 이제 와 무슨 소용일까?
이사칼은 고개를 되돌렸다. 눈앞에 떠 있는 폭탄의 카운트가 비현실적이었다.
틱. 틱.
폭발까지 남은 시간.
5초. 4초…….
아직 남아 있는 것 (5)
이사칼은 알게 되었다.
‘아.’
죽는 거구나.
받아들이자 모든 게 명확해졌다.
대퇴부를 파열시켜 대량 출혈을 일으키고, 기폭 시점을 단정 지어 초조하게 만들고, 실수를 상기시켜 의식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든 다음.
‘본인은 죽는다.’
1명이 남을 때까지 폭탄은 돌아가고, 따라서 여지없는 이사칼의 차례였다.
그럼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틱. 틱.
3초. 2초.
이사칼은 생각을 멈췄다. 여태까지 텅 빈 정신에 엄청난 분노가 차올랐다.
“으.”
1초.
폭탄은 그녀의 복부에 장착되었다. 사실 어디라도 상관없을 위력이었다.
“으아아아! 개 같은……!”
펑.
사람의 몸통만 한 폭발이 일어나자 이사칼의 몸이 쭉 하고 뒤로 날아갔다.
성음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끄, 끄륵.”
이사칼의 배는 훵 하니 열려 있었고 갈기갈기 찢어진 장기들이 꿈틀거렸다.
폭발이 목까지 닿아 아래턱이 사라졌고, 혀가 뱀처럼 길게 빠져나와 있었다.
성음이 말했다.
“우리의 승리다.”
“컥, 커억.”
이사칼의 시선이 성음에게 돌아갔다.
“애(왜)?”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나 그녀는 폐에 남은 마지막 공기로 물었다.
성음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에이미라고 확신했지?
만약 이사칼이 성음을 노렸다면 그들의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다.
자살과 폭발로 동시 사망했을 테니까.
“에이미가…….”
성음이 말했다.
“타이머만 계산했을 리가 없잖아.”
마치 퀴즈의 정답을 찾으려는 듯 이사칼은 천장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아, 그렇구나.
‘내 반응, 내 표정, 내 눈빛.’
에이미를 노릴 때와 성음을 노릴 때의 미묘한 감정 차이를 홍안이 잡아냈던 것.
‘이런 씨.’
이사칼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너무 즐겼…….’
붉은 생물질로 이루어져 있던 사탄의 놀이터가 불에 타듯 걷히기 시작했다.
허름한 고아원 시설 안에서, 벽에 기댄 채 죽어 있는 에이미가 보였다.
성음은 목 밖으로 튀어나오는 소리를 짓눌렀다.
“끅.”
이제는 보였다.
에이미의 끊어진 다리에서 얼마나 많은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는지, 똑똑히.
‘왜 나야, 라는 생각도 없었겠지.’
성음도 안다.
‘함께 싸웠으니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니까, 기꺼이 목숨을 버린 거겠지.’
그렇지, 에이미?
“끅.”
울지 말자.
그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필사의 각오에 흠집을 내는 것이니까.
성음은 남은 팔로 에이미의 등을 받쳤다.
“강하구나, 에이미. 정말 용감하다.”
어째서 시로네가 에이미를 사랑하는지, 왜 이 여자였을지 알 것 같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가장 좋은 차를 나누어 마시며 하루 종일 담소를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편히 쉬렴, 나의 0보. 아니…….”
나의 친구.
에이미를 편한 자세로 눕힌 성음은 아픈 팔을 붙잡고 다시 일어섰다.
그녀의 부상도 만만치 않지만 제르비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임무였다.
‘어떤 인간인지 봐 주마.’
절뚝이며 건물을 나선 성음은 부지의 깊숙한 곳에 있는 낡은 건물을 찾았다.
에테르 파동을 시전하자 건물의 벽이 사라지면서 반지하의 풍경이 드러났다.
그곳에 제르비스가 있었다.
“…….”
성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이나 자리에 머문 그녀는 결국 마법을 해제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시로네.’
오직 야훼만이.
***
리안은 상황을 파악했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전부 걷어 내면 된다는 거지?”
최후의 전쟁에서 리안은 끝없이 분열하는 안티셀을 제거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데아의 복구 능력이 없기에 육체가 완전히 소멸된다는 것.
테스가 끼어들었다.
“잠, 잠깐! 이거 괜찮은 거야? 준동경계가 사라지면 원상태로 돌아오는 거지?”
“장담할 수 없어.”
시로네가 말했다.
“7기의 괴형태를 재생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하면 준동경계도 사라질 거야. 하지만 그 이상은 추측의 영역이야. 전례가 없으니까.”
페르미가 덧붙였다.
“내 전략이 통했다면 앙케 라의 연산은 현실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거야. 그렇다고 여기가 현실인가는 다른 문제지. 그게 공겁이니까.”
세리엘이 테스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럼 조금 더 생각을 해 보자. 당장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씽이 말했다.
“여유로운 편도 아니지. 제르비스가 의식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 전략도 유효한 거야. 놈이 다시 깨어나서 준동경계를 복구하면 답이 없어.”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빨리 하는 게 좋겠군. 내가 준동경계를 파괴하면 되는 거 아냐?”
테스가 짜증을 냈다.
“너는 여태까지 들은 게 없니? 그러다가 만약 또 다른 공겁이 있으면……!”
“상관없잖아.”
리안이 말을 끊었다.
“그때는 살아 있는 자들끼리 또 싸우면 돼. 그게 전부야. 그렇지, 시로네?”
시로네는 리안의 눈을 바라보았다.
‘리안은 강하다.’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실현시킬 것이다.
“아니.”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리안.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난 확률에 기댈 생각은 추호도 없어.”
테스는 안도했다. 비겁하다고 욕해도, 그녀의 마음은 역시나 이쪽이었다.
그때 리안이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고압적인 태도는 아니었지만 무심한 눈빛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알고 있잖아, 시로네.”
“응?”
“확률이 아니지?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래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걸어야 하는 게 내 생명이기 때문이겠지. 네 생명이 아니라.”
리안은 달변가가 아니지만 가끔 본질을 꿰뚫는 말을 할 때가 있다.
“달라질 것은 없어. 마지막이든 아니든, 나는 누군가의 생명을 걸고 싸우지 않아.”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미안해, 시로네.’
테스도 알고 있다.
시로네는 언제나 그랬다. 그럼에도 모든 걸 감당해 주었다.
리안이 말했다.
“네가 책임져야 할 일은 네가 책임져라.”
시로네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라고 했던가?”
“리안.”
“설령 죽는다고 해도 친구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도 했었지. 알고 있냐, 시로네? 나는 그 순간 너에게 기사 서약을 한 거야.”
리안은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는 잘 몰랐어. 그냥 뜨겁다는 느낌뿐이었지. 하지만 세월이 지나 보니 알겠더군. 네 말은 차갑지 않았어. 오히려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누구도 나 때문에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하하. 마치 온 세상을 혼자 다 짊어질 태세였지. 그래서 아마도 나는…… 너에게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던 것 같아.”
리안은 시로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같이 책임지자.”
“…….”
심장에 불이 붙은 듯했다.
가슴속이 너무 뜨거워져서, 시로네는 눈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너의 기사잖아.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