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3
바위가 자갈 크기로 분쇄되자 시로네는 마지막으로 장막을 크게 펼쳤다.
펑 소리를 내며 수만 개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련의 과정에 걸린 시간은 대략 2초 정도.
그사이에 일어난 수천 개의 사건들을 포착하지 못한 자들은 마치 바위가 폭발한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정적 속에서 굴러다니는 자갈 소리가 선명했다.
“……”
앵무 용병단은 자신들이 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빛이 폭발하자 바위가 먼지처럼 부수어졌다. 그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젠장! 뭐야, 저 꼬맹이는?”
3조장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10년 넘게 전장을 누볐지만 약관의 나이도 되지 않은 마법사에게 실전에서 압도된 적은 처음이었다.
“조장, 이제 어떡하죠?”
“마정탄 준비! 갈겨 버려!”
투석기에 있던 부하들까지 합세하면서 성에는 대략 40명의 대원이 모였다.
부하들이 신속하게 화살의 촉을 분리하고 마정탄을 결합시키는 그때 시로네가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정면에 광자의 구체가 펑 하고 탄생하더니 주위의 빛을 빨아들이듯 강력하게 진동했다.
이미 시로네의 마법을 경험한 대원이 포톤 캐논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조장님! 저건 위험합니다!”
과연 3조장이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무엇보다 빛에 파괴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번쩍거리는 것만 봐도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서둘러! 어차피 화력은 우리가 위다!”
그 말에 반응하듯 포톤 캐논이 무서운 속도로 튀어 나가 철문에 처박혔다.
꽝 소리에 놀란 대원들이 한 걸음 물러섰다.
성벽 위에서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뭐야? 뚫린 거야? 빨리 확인해!”
몇몇 대원이 지상으로 내려가 철문을 살폈다.
두꺼운 철판에 흔적이 남기는 했지만 뚫린 것은 아니었다.
“성문은 무사합니다!”
“좋아! 이번에는 우리가 공격할 차례다.”
그러는 사이에 테스와 리안이 전장에 도착했다.
상황을 파악한 테스가 말했다.
“마법으로도 철문을 뚫기는 힘들어. 리안과 내가 우회해서 성을 장악할게.”
그녀의 말에 동의한 리안이 대직도를 등에 장착하는데 에이미가 말렸다.
“아니, 잠깐 기다려 봐.”
“지체할 시간이 없어. 적들이 정비하기 전에 쳐야 돼. 지금이 기회라고.”
테스의 생각은 옳았지만 에이미는 선두에 있는 시로네의 등을 바라볼 뿐이었다.
“뚫을 수 있을 거야.”
이해하지 못한 테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로네를 돌아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시로네의 몸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저건 뭐야? 위험한 거 아냐?”
인간이 붉은색을 불안하게 느끼는 것은 아마도 출혈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테스조차 섬뜩한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시로네를 상대해야 하는 적들의 경계심은 한계를 모르고 치솟았다.
“조장, 저건 뭐죠?”
“…….”
베테랑이기에 한 가지 짐작이 가는 건 있었다.
하지만 인지 부조화.
저 붉은빛이 그가 아는 마법이 맞다면 시로네의 나이가 이렇게 어려서는 안 됐다.
대답을 못 하는 사이 한 줄기의 레이저가 찰나라고 부를 만큼 빠르게 철문에 도달했다.
포톤 캐논의 위력을 아는 부하들이 지레 겁을 먹었으나 예상과 달리 충격파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쳇, 별것도 아니었잖아?”
부하들이 안심하는 것과 달리 3조장은 화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뭣들 하고 있어! 빨리 쏴!”
40명의 궁수가 쏘는 마정탄이라면 시로네 주변을 초토화시킬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철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하들이 아래를 살폈으나 투시를 할 수는 없는 일.
다만 발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진동은 숫제 철문이 성을 잡고 흔드는 격이었다.
대원 하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성벽 쪽으로 가 철문의 상태를 확인했다.
“저, 저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용암처럼 달구어진 철문이었다.
이어서 철이 들끓더니 마치 공기 방울처럼 불룩불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대원은 확신했다.
“조장님! 성문이 뚫립니다!”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철문이 폭발했다.
달구어진 파편들이 튀는 것을 보면서도 조장은 믿을 수 없었다.
공성 병기로 박아도 뚫리지 않던 문이 완전히 박살이 나다니.
“젠장! 갈겨! 전부 쏟아부어!”
궁수들은 화살을 직사로 쏘았다.
이미 성문이 뚫렸기에 여기서 차단하지 못하면 전쟁의 판도는 마법사를 보유한 쪽으로 급격히 기울 터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 쏜 마흔 발의 마정탄이 시로네를 향해 날아들었다.
자연계의 속성을 담은 위력이 폭발하는 순간 대기를 가르는 마찰음이 터졌다.
테스와 리안은 눈치채지 못했으나 에이미의 시선은 곧바로 하늘로 향했다.
섬광의 잔상이 포물선을 그리며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추락하고 있었다.
‘공간 이동.’
제3자에게는 빛이 휘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오히려 공간이 휘는 것이다.
따라서 마정탄의 궤적을 완전히 무시한 채 원하는 장소로 이동했고, 시로네가 선택한 좌표는 레이저로 날아가 버린 성문의 중심부였다.
에이미가 말했다.
“시로네는 무사해. 우리도 들어가자.”
포연을 가르고 들어가자 성문 아래 아치에서 광폭을 준비하는 시로네가 보였다.
그 사실을 모르는지 성 위의 대원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끝났다! 완전히 날아갔어!”
“좋았어! 저 녀석만 없으면 나머지는 우리 밥이야. 얘들아, 돌격 준비!”
앵무 용병단이 활을 내려놓고 병장기를 챙기는 모습에 테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도 그녀의 눈에는 마법을 준비하는 시로네가 똑똑히 보였다.
“뭐야? 쟤들 왜 저래?”
“공간 이동의 소음을 못 들은 거야. 시로네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본래 공간 이동은 인간의 기준으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마법이지만 시로네는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에 속하는 좌표로 공간을 왜곡시켰다.
제3자의 관점에서 섬광은 거의 수직으로 솟구쳤다가 추락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법사라면 찰나의 굉음을 듣고 간파했겠지만 마법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적들에게는 그저 시로네가 사라진 것과 다르지 않았다.
광폭을 시전하려던 시로네는 무언가 고민을 하더니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사각에서 벗어난 시로네의 모습을 본 앵무 용병단이 귀신을 본 듯 놀랐다.
“조장님! 저, 저기……!”
조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폭격에 맞아 사지가 이탈했어야 할 인간이 보란 듯이 턱을 치켜들고 성벽을 올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시로네가 말했다.
“마지막 기회야. 지스의 여동생을 풀어 줘. 그러면 우리는 이쯤에서 돌아가겠다.”
“허허.”
조장은 조롱을 당한 기분이었다.
“돌아가? 이 난리를 치고? 너, 여기가 어딘 줄 아냐? 앵무 용병단은 덤비는 놈들을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아. 여기가 네 무덤이 될 것이다.”
시로네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야.’
실력의 차이는 적들도 느끼고 있을 터.
싸움을 피하지 않는 호전성이야말로 앵무 용병단의 진짜 힘이었다.
만약 정치적 술수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느 정도 규모로 성장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의미 없는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 애초에 너희가 잘못한 일이잖아. 이쯤에서 끝냈으면 좋겠어.”
“의미라.”
3조장이 검을 뽑았다.
“그런 게 아니잖아. 누군가를 이긴다는 건. 지는 쪽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건 말이야.”
욕망이자 본능이다.
“전원 돌격.”
조장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모든 대원들이 무기를 들고 뛰어내렸다.
“가자! 죽이자!”
적들을 설득시킬 수 없음을 깨달은 시로네는 다시 성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멍청아! 도망칠 곳은 없어!”
40명의 대원들이 성문의 앞뒤를 포위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다.
시로네가 주먹을 지면으로 향한 채 매섭게 눈을 치켜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
3조장의 뇌리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바위를 순식간에 부수어 버린 마법. 과연 이곳의 성벽이 바위보다 단단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어, 어이, 잠깐만…….”
시로네의 눈빛을 본 3조장은 진심을 깨달았다.
정말로 성을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야! 하지 마! 이게 얼마짜리 성인지 알아? 어이!”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시로네가 다시 시선을 내리자, 조장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피해! 모두 물러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로네를 중심으로 직경 20미터짜리의 광폭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질량을 담은 광자가 미친 듯이 성벽을 흔들자 아치에서 후두두 파편이 쏟아져 내렸다.
거대 구조물인 만큼 꽤나 버티는 듯했으나 어차피 물질의 내구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시로네는 더욱 빠르게 광폭을 시전했고, 마침내 성을 지탱하는 주요 부위부터 하나둘씩 붕괴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3조장은 정신이 아찔했다.
앵무 용병단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수도 있지만, 그런 만큼 조직의 엄청난 자금이 들어간 요지가 사라지는 것도 끔찍했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강행 돌파(8)
광폭은 끝없이 성을 두드려 댔다.
무언가를 하려면 지금 해야 하지만 조장의 머릿속은 창백해졌다.
빛의 장막을 뚫고 육탄 공격이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성공한다고 해도 금방이라도 성이 무너질 듯했다.
“이…….”
눈에 핏발이 선 조장이 부하에게서 활을 빼앗아 들고 마정탄을 장착했다.
그 시점에서 성의 기둥이 끊어졌다.
왼쪽이 살짝 주저앉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오른쪽이 균형을 맞추듯 내려앉았다.
“개자식아!”
조장이 쏜 화살이 광폭의 장막에 파묻히는 것과 동시에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성의 중심부가 아래로 꺼지듯이 무너져 내렸다.
산사태가 일어나는 듯한 소리에 앵무 용병단과 에이미 일행은 더욱 거리를 벌렸다.
그 중심에 암벽을 분쇄시킨 시로네가 오롯이 자리하고 있었다.
테스가 중얼거렸다.
“뚫었다.”
앵무 용병단이 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세운 난공불락의 성이 무너진 것이다.
엄청난 손실 앞에 앵무 용병단은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허탈감은 끝없는 분노가 되어 시로네 일행을 향했다.
조장이 활을 던지고 칼을 꺼내 들었다.
“끝까지 해보자는 거냐?”
“지스의 여동생을 데려와. 다음에는 성이 아니라 너희들이 될 테니까.”
어느새 시로네의 뒤로 에이미와 리안, 테스가 자리했다.
그들 4명의 모습을 무섭게 노려보던 조장이 칼날을 뒤틀며 튀어 나갈 준비를 했다.
“죽여.”
용병단이 함성을 내지르며 돌격했다.
검과 검이 부딪치고 마법과 마정탄이 폭발했다.
사선의 전투 속에서 계곡의 바람에 피 냄새가 스며들고 있었다.
***
“흐읍.”
마르샤는 공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전장에서 불어오는 전투의 냄새가 코를 찌를 듯이 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애송이들이 꽤 하네.”
바닥에 손수건을 깔아 두고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소풍을 나온 듯 한가로웠다.
물론 부하들이 당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 슬픔 또한 안고 살아가는 게 용병이 아니던가.
용병단을 창설한 이후로 수많은 동료와 함께 웃었고 또한 그들을 안식의 어둠 속에 묻어야 했다.
마르샤의 시선이 시로네를 향했다.
전장의 중심에서 쏘아 대는 섬광에 부하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2명의 검사도, 붉은 머리의 소녀도 발군의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역시나 눈길을 사로잡는 건 포톤 캐논이었다.
“언로커라.”
마르샤는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