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5
솔직한 심정으로는 흙으로 범벅이 된 루프를 다시 주워서 당장이라도 입에 넣고 싶을 뿐이었다.
팔코아는 자신의 손목 위쪽을 덥석 깨물었다.
이빨로 게걸스럽게 살을 찢어발긴 그가 쪽쪽 소리를 내며 피를 빨기 시작하자 목젖이 껄떡껄떡 움직이고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점차 그의 눈에 초점이 잡히더니 비로소 온전한 생기를 되찾았다.
뿌리치듯 팔을 내린 그가 피 칠갑이 된 입가를 맹수처럼 길게 찢으며 포효했다.
“크으으으으!”
***
테스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전장에 남겨 두고 온 에이미가 여전히 눈에 아른거렸다.
‘이 작전, 정말 괜찮을까?’
거너의 화력이 마법사에 비해 떨어진다고 해도 검사에 버금가는 육체 능력을 가진 자였다.
‘마법사는 고급 인력이지. 하지만…….’
스키마 유저들이 일반인처럼 마법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마법은 특정 현상에 집중하지만 스키마는 신체 활동성 전부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근력 하나만 증가해도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의 종류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무거운 장비를 휘두르고, 수백 미터의 높은 암벽을 기어오르며, 말처럼 빠르게 달리거나 건물 사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런 자들에게 마법이란 상대하기 까다로운 현상일 뿐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에이미도 스키마 유저지만, 그들은 차원이 달라. 실전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야.’
시로네가 나란히 달리며 말했다.
“테스, 너무 걱정하지 마. 에이미가 잘할 거야.”
“혼자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려. 적어도 나까지는 남는 게 좋았을 텐데…….”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앵무 용병단에 아직 팔코아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안은 스키마에 준하는 근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의 대응력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테스가 있어야 했다.
‘하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에이미를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시로네일 터였다.
불안한 눈빛조차도 팀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테스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미안해. 생각이 짧았어.”
“괜찮아. 에이미는 희생한 게 아니야. 정말로 자신이 있으니까 우리를 보낸 거지. 모든 변수에 대응하는 게 마법사의 기본이지만, 원거리에서 에이미는 정말로 강하니까.”
때로는 생사의 문제보다 동료의 안위가 더 마음을 흐트러트리지만 시로네는 여전히 의심이 없었다.
이 또한 시로네의 잔심인지, 마법사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사고방식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정말 좋은 친구들인데…….’
세간의 평가에 마법사가 냉혈한으로 표현되는 이유를 조금은 알 듯했다.
리안이 전방을 가리켰다.
“시로네, 도착했다.”
지형이 평탄해지면서 저 멀리 절벽 너머로 바다가 넘실거리는 게 보였다.
시로네는 절벽보다 높은 숲에 머리를 드러내고 있는 벽돌집을 발견했다.
‘저기에 유나가…….’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숲의 외길을 점유하고 있었다.
“팔코아.”
테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분위기가 달라졌어.’
입가에 묻은 핏물 때문은 아니었다.
주점 왕궁에서의 그가 미쳐 날뛰는 들개였다면 지금은 광견병이 치료된 한 마리의 투견을 보는 듯했다.
‘똑같은 개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어쨌든 지금 보는 팔코아가 앵무 용병단이 번성했던 시절의 모습일 터였다.
팔코아가 입가를 찢었다.
“크크, 올 줄 알았지. 프리먼은 원래 그런 놈이니까. 단장의 말이 맞았어. 너희가 찾는 여자는 저쪽 건물에 있다. 들어가서 데리고 나와 보든가.”
팔코아가 길을 열어 주는 척 몸을 돌렸으나 시로네 일행은 움직이지 못했다.
테스가 깨달은 사실은 혼자 싸우겠다는 에이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교란시킬 생각이야. 여기는 나랑 리안이 맡을게. 시로네, 너는 인질을 구출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시로네의 모습에 테스는 에이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차갑지 않아.’
냉철한 판단만큼이나 마법사의 내면에는 깊은 유대감이 자리하는 것이었다.
“갔다 올게.”
짧은 말을 남겨 두고 시로네는 순간 이동을 시전해 숲으로 들어갔다.
팔코아는 뒤쫓지 않았다.
쫓아갈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애송아, 널 기다리는 건 지옥이다.’
마르샤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쨌든 단장이 내린 지시를 완수했기에 팔코아는 비로소 본색을 드러냈다.
“크크, 간만에 피 좀 먹겠어.”
살기를 느낀 테스가 리안에게 설명했다.
“스키마 유저야. 어떤 변칙이 나올지 모르니 내가 막을게. 기회를 봐서 놈을 공격해.”
“아니. 내가 막을 테니 네가 공격해.”
“바보야, 어떻게 막아? 너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스키마에 대한 이해도가 없으면 당한다고.”
“그래서 하겠다는 거야.”
“뭐?”
“목숨이나 건사하려고 싸우는 게 아니니까. 이기기 위해 싸우는 거지. 네가 막으면 시간은 벌겠지만 결국 이길 수 없어. 내가 막는다. 네가 놈을 죽여.”
“…….”
테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리안의 말이 옳아.’
아무리 강한 방패를 가지고 있더라도 칼이 약하면 이길 수 없는 게 전쟁이다.
팔 한쪽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적을 찔러야 하는 것이다.
테스가 말했다.
“저 녀석의 스키마는 생도 수준이 아닐 거야. 정말로 버틸 수 있겠어?”
“할 수 없으면 지는 거지.”
리안이 대직도를 세우고 전진하자 테스는 팔코아의 시선 밖으로 벗어나듯 옆으로 이동했다.
2인 합격의 교과서적인 움직임을 본 팔코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디서 본 건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애송아, 너 따위가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냐?”
리안이 우직하게 대직도를 내밀며 말했다.
“덤벼라. 받아 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튀어 나간 팔코아가 리안의 정수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정신이 아찔한 속도였다.
“크하하하!”
리안은 황급히 검을 틀었다.
수직의 검을 방어한 순간 뼈마디가 저릴 정도의 충격이 느껴졌다. 검이 아닌 숫제 해머로 내리치는 수준이었다.
“왜? 벌써 죽겠냐?”
리안이 다음 동작을 할 겨를도 없이 팔코아의 검이 대검 위를 후려갈겼다.
“크윽!”
그 상태에서 리안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팔을 들어 검을 떠받치는 것뿐이었다.
팔코아가 괴성을 내지르며 풀스윙을 했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쾅! 쾅! 쾅!
계속 찍어 누르는 힘에 리안의 무릎이 바닥에 닿는 순간 팔코아가 명치를 걷어찼다.
“리안!”
테스가 전열을 이탈하지 못한 채 소리쳤다. 이미 상황은 끝난 듯했다.
하지만 팔코아의 예상을 깨고 바닥을 구른 리안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후우.”
팔코아의 눈썹이 꿈틀했다.
회심의 일격, 그것도 급소를 맞았다면 정상적으로 일어나지 못한다.
신체적 능력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리안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대충 알았어. 이 정도란 말이지?”
팔코아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을 본 그가 대검을 똑바로 겨누며 도발했다.
“좋아, 얼마든지 덤벼 봐.”
“크크, 죽여 주마.”
팔코아의 입가가 귀밑까지 찢어졌다.
전장의 악귀라 불리던 당시의 모습이었다.
***
시로네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벽돌집의 문 앞에 섰다.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긴장되었다.
문을 열자 좋은 향기가 났다. 정갈한 거실이 펼쳐졌고 창문 아래 화분이 장식되어 있었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간 시로네는 침대에 앉아 있는 여성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마르샤.’
얼굴은 익숙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마르샤가 웃으며 말했다.
“왔구나, 시로네. 잘 지냈어?”
“…….”
상당한 인지 부조화였다.
앵무 용병단의 단장이자 유나를 데리고 있는 장본인.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한 미소는, 처음 만났을 당시의 느낌 그대로였다.
“표정이 왜 그렇게 굳어 있어? 그날 집에 잘 들어갔어? 친구랑은 화해했니?”
시로네는 목구멍까지 나왔던 대답을 삼켰다.
분명 그녀는 여태까지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도 유나를 넘기지 않은 이유는 명백했다.
“이미 알고 있잖아요? 다 들었을 거 아니에요?”
“뭐가 그렇게 심각해? 누나 무섭잖아. 설마 화난 거야? 그때 속인 건 미안해.”
마르샤가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오자 시로네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후우, 정말 화났나 보네? 어떻게 하면 용서해 줄 거야? 무릎이라도 꿇을까?”
“……지스의 여동생을 돌려주세요. 우리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에요.”
“여동생? 아하.”
마르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이 탄 흔적이 있는 낡은 목걸이였다.
“어떡하지? 남은 유품은 이것뿐인데.”
시로네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두 번째 만남(3)
‘유나가…….’
믿을 수 없었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모순과 배신감, 분노와 허탈감이 뱃속에서 뒤엉켜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죽이는 건 너무 심했나? 너무 열 받아서 나도 모르게 손을 썼지 뭐야. 그래도 너는 날 이해해 줄 거지? 착한 사람이니까. 그렇지 않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어머, 진짜 화났나 보네? 하지만 이건 전부 네 탓이야. 자꾸 재수 없게 구니까 나도 심술이 나잖아.”
“…….”
“어때? 세상이 아직도 아름다워 보여? 힘든 사람을 보면 막 도와주고 싶고 그래?”
시로네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마르샤는 환자라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중증이기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것이다.
아프다면 치료를 받아야 할 테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시로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궁금해?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뭐?”
“잘못 판단했다는 것은 인정할게. 당신의 승리야. 하지만 그렇다고 내 생각이 바뀌는 건 아니야. 어떤 1명이 저지른 정신 나간 짓 때문에 세상을 다르게 보지는 않는다고. 말해 줄까, 내가 지금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
마르샤는 시로네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나는…….”
“닥쳐!”
마르샤의 인상이 표독스럽게 일그러졌다.
여태까지 남의 시선에 흔들린 적이 없었건만, 시로네가 자신에 대해 말하려는 게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재수 없어!”
시로네는 공감각으로 느껴지는 가시처럼 날카로운 스피릿 존을 느꼈다.
‘마법사.’
순간 이동으로 움직이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사실 시가지 전투는 마법사에게 꽤나 까다로운 환경이다.
검사로 표현하자면 창을 쓰는 자가 나무가 울창한 숲에서 싸우는 격이었다.
‘어떤 계열이지?’
시로네는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광자화 마법을 걸어 둔 상태로 대기했다.
과연 어떤 마법이 올 것인가.
파이어볼? 윈드 커터? 라이트닝 볼트?
수많은 마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그때 마르샤가 눈을 부릅뜨며 비명을 질렀다.
“큭!”
엄청난 굉음이 고막을 파고들자 시로네의 스피릿 존이 부르르 떨렸다.
마치 바늘이 귀를 뚫고 들어가 반대쪽 귀로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음향 대포. 소리 마법사였구나. 이건 위험하다.’
음향 계열의 마법사는 음파를 연구하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