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40
마르샤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맞아. 보다시피 아무런 탈 없이 여기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지. 어때, 시로네? 이제 화가 좀 풀려?”
“…….”
시로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왜 그런 악질적인 거짓말을 했을까?
“아직도 모르겠어? 그냥 장난이야, 장난. 네 반응이 하도 궁금해서 그런 거라고. 이제 날 용서할 수 있겠지?”
유나가 2층에서 소리쳤다.
“언니는 아무 잘못 없어요! 나쁜 사람들이 절 납치했는데, 언니가 저를 구해 줬어요!”
시로네 일행은 입을 다물었다.
명백한 조롱이다. 그것은 분명했다.
문제는 동기였다.
마르샤는 어떤 의도로 이런 짓을 꾸민 것일까?
앵무 용병단은 궤멸했고 심지어 간부인 팔코아는 사망했다.
그 사실을 전부 알면서도 장난으로 치부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었다.
시로네가 말했다.
“정말로 그렇다면…… 유나를 이쪽으로 보내 줘.”
어쨌거나 지스의 여동생을 구출하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마르샤는 장난스럽게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유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고마워, 유나야. 이따 오빠에게 데려다줄게.”
마르샤를 철석같이 믿는 유나가 창문을 닫고 들어가자 시로네는 약이 바짝 올랐다.
“무슨 짓이야?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
“뭐가 그렇게 심각해? 유나는 무사하잖아. 그럼 된 거 아냐? 아니면 뭐야, 정의의 사도처럼 네가 직접 구출이라도 하고 싶었던 거야?”
“그건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전부 알 수 있다고 생각해?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흘러가지 않아. 그래서 유나를 보내지 않은 거야. 넌 위선자니까.”
마르샤의 스피릿 존이 칼날처럼 찌르고 들어오자 시로네도 즉각 반응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싸워야 하는 핵심 동기가 사라진 것이다.
‘침착하자. 나에게 적의를 보내고 있어. 싸울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해.’
그 생각마저 읽은 것일까, 마르샤의 스피릿 존이 사라졌다.
그리고 마치 항복을 선언하듯 두 팔을 벌리며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날 죽여도 좋아.”
시로네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 말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샤.’
대체 누구일까, 이 여자는.
***
마법협회 조사실.
공인 5급 마법사이자 조사관인 사키리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고 상의 단추는 절반이 풀린 상태였다.
“후우.”
분명 지친 자의 몰골이지만, 쇠몽둥이를 쥐고 있는 팔뚝은 여전히 불끈 갈라져 있었다.
“좀 쉬었으니 다시 시작해 볼까?”
“끄으으으.”
바닥에 쓰러진 루카스가 신음 소리를 냈다.
아케인의 도움으로 인페르노를 탈옥하고 마법협회를 급습했던 앵무 용병단의 부단장이었으나, 지금은 시이나의 빙결 마법에 당해 두 다리가 없는 불구 신세였다.
“그만해. 제발…….”
몇 시간을 얻어맞았는지 모른다. 스키마로 몸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미 사망했을 터였다.
사키리가 두 손으로 쇠몽둥이를 붙잡았다.
“간다. 이 악물어라.”
“으아아아!”
쏟아지는 매찜질에 루카스는 두 팔로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갔다.
그러다가 팔을 흔들 기력조차 없어지자 제풀에 지쳐 몸을 꿈틀댔다.
“그만하라고! 대체 뭐라도 물어보고 때리란 말이야! 내가 다 말한다고 했잖아!”
“기다려. 천 대는 채워야지.”
“미친 자식아!”
사키리는 마음속으로 카운트를 세며 몽둥이를 후렸다.
다섯 대가 남았다. 이제는 네 대, 세 대…….
마침내 최후의 일격을 옆구리에 질러 버린 그가 속 시원하다는 듯 쇠몽둥이를 내동댕이쳤다.
“후우, 개운하다. 오늘 운동 다 했네.”
“으으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이 자식아…….”
사지가 뒤틀린 채로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고서도 사키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대마법사 아케인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던 악당이라면 이 정도는 죽여 놓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일어나.”
루카스의 머리채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간 사키리가 의자를 향해 집어 던졌다.
“아윽!”
머리털이 한 움큼 빠진 채로 내동댕이쳐진 루카스가 의자에 매달려 힘겨워하자 사키리가 책상의 반대편에 앉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앉아. 팔도 잘라 버리기 전에.”
“…….”
초인적인 의지로 상체를 세운 루카스는 마치 등반을 하듯 의자에 올라탔다.
그리고 서류를 살피는 사키리를 바라보며 풀린 눈으로 말했다.
“수사관 나리, 그만 감옥으로 다시 보내 줘. 마르샤가 있는 곳을 말해 줄 테니까.”
일언반구 없었는데도 알고 있다는 것은 루카스도 멍청이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키리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필요 없어. 그 여자가 어떤 여잔데, 아직까지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그것도 사실이었다.
“제기랄! 그럼 나는 왜 두들겨 팬 거야?”
서류철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사키리가 짜증 난다는 듯 책상을 내리쳤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범죄자가 뭔지 알아? 살인범? 아니, 탈옥범이야. 국가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간덩이가 부어도 유분수지, B급 범죄자 따위가 공권력을 조롱해? 너는 이제 인생 끝났어. 앞으로 평생 태양을 못 볼 거야.”
루카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키리의 말은 아마도 협박이 아닐 터였다.
천 대를 때린다고 해 놓고 진짜로 해 버린 조사관의 성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시작하자. 말 잘 듣는 게 좋아. 지금 내 딸이 네 살이야. 한창 아빠 앞에서 재롱부릴 나이지. 그런데 며칠째 집에도 못 가고 있거든. 죽을 놈은 빨리 죽고, 살 놈이라도 좀 살자. 무슨 말인지 알지?”
루카스의 눈에서 희망이 빠져나갔다.
클레이 마르샤(3)
“……어떤 말을 듣고 싶은데?”
“다른 건 다 됐고. 클레이 마르샤. 그 여자에 대해 아는 거 있으면 전부 실토해.”
아케인 사건은 유산을 접수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됐지만 앵무 용병단이 연루된 것은 토르미아의 국제 관계와 연결된 사안이었다.
용병단의 단장이 A급 범죄자, 그것도 정치범이기 때문이다.
‘영악한 여자야.’
가장 큰 문제는 레드 라인을 통해 들어오는 첩보들이 중구난방이라는 점이었다.
어떤 서류에는 화염의 마법사라고 했다가, 또 어떤 서류에는 빙결 마법을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런 면으로 봤을 때 굉장히 용의주도하고 철두철미한 성향이었다.
첩보력을 최대한 가용해서 정보를 모으는데도 이동 루트를 명확히 짚어 낼 수 없었다.
사키리가 루카스를 호출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처음부터 전략이 틀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르샤가 있는 곳은 중요하지 않아. 내가 알아내야 할 것은 위치가 아닌…….’
마르샤 그 자체였다.
“뭐든지 좋아. 네가 알고 있는 걸 전부 분다면 곱게 감옥으로 돌려보내 주지.”
루카스는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잔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잔뜩 애를 먹는 중이군. 하긴, 보통 내기가 아니지, 그 여자는…….’
아케인처럼 대단한 마법사는 아니지만 세상이 무력만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마르샤의 진가는 어떤 상식으로도 예측이 안 되는 탈인간적인 행보에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앵무 용병단이 몰락했을 때 입단한 루카스는 특별한 의리는 없었다.
다만 여기서 자백을 하고 나면 평생 지하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거래를 하는 건 어때?”
“거래?”
“마르샤에 대한 모든 걸 말해 주지. 대신 형량을 줄여 줘. 죽기 전에 나올 수 있게만 해 준다면 너희들이 원하는 정보를 내놓으마.”
“허허…….”
얼빠진 표정으로 루카스를 바라보던 사키리가 폭소를 터트리며 발을 굴렀다.
“하하하하!”
와당탕하고 책상이 옆으로 쓰러졌다. 이어서 벌떡 일어난 사키리가 악을 지르며 다가왔다.
“이 미친 자식이! 너 여기가 어딘지 알아?”
발을 들어 차 버리자 루카스의 몸이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사키리는 쓰러진 몸뚱어리를 작신작신 밟기 시작했다.
“끄윽! 끄윽!”
이번만은 루카스도 필사적이었다.
어차피 거래에 실패하면 인생은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쳐! 아무리 쳐 봐! 나는 절대로 말 안 할 거야! 그러니까 거래를 하자고!”
사키리의 발길이 우뚝 멈췄다.
어째서 범죄자들은 하나같이 뻔뻔한 것일까? 그렇게 감옥에 가기 싫으면 애초에 법을 지키란 말이다.
“진짜 환장하겠네.”
사키리가 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겁에 질린 상태에서도 루카스는 그 모습을 관찰했다.
발길질을 멈췄다는 건 갈등하고 있다는 뜻. 조금만 더 버티면 협상의 창구가 열릴 듯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키리는 조사실의 문을 열고 무시무시한 지시를 내렸다.
“야, 여기 마법 제한 장치 해제해.”
마법 제한 장치는 안티매직과는 달라서 애초부터 마법 발동 자체를 막는 기술이었다.
물론 그 또한 마법공학의 일종이지만, 제1급 대마법사들이 설계한 회로를 파회할 수 있는 도적놈들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루카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대로 해 보겠다 이거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키리 또한 최후의 발버둥인 만큼, 이 고비만 넘기면 형량을 줄이고 죽기 전에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으로 숨을 고르는 그때 웅 하고 공기가 가라앉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이 변했는지 루카스는 알 수 없었으나 사키리는 한결 가벼운 듯 고개를 꺾으며 다가왔다.
“마르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말해라. 사실을 묵비하거나 위증할 시 견딜 수 없는 공포를 느낄 것이다.”
“나, 나는 말하지 않아. 절대로 말하지 않아.”
루카스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으나 사키리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눈을 감더니 주문과도 같은 말을 외웠다.
“심판하는 자로서 명하노니, 언령은 언령에 답한다. 진실의 천칭은 오직 그대에게만 있다.”
“뭐, 뭐야? 무슨 소리야?”
당장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떠올린 루카스는 시체처럼 안색이 창백해졌다.
“설, 설마 너?”
흔한 조사관이라고 생각한 게 오판이었다. 사키리는 범죄자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그로부터 10분 뒤.
“끄아아아아!”
정신이 나갈 정도의 고함 소리가 조사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으아아! 으아아!”
루카스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을 때도 힘들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전신에 가해지고 있었다.
“말할게! 전부 말할 테니까 제발 이것 좀 그만둬!”
그 순간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아! 하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조사실의 구석에 완전히 구겨져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이미 마음은 꺾인 상태였고, 사키리가 다가오는 발소리만 듣고도 몸이 움찔했다.
“너의 선택이다. 편해지고 싶다면 순순히 털어놔.”
루카스는 체념했다.
또다시 이런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아니, 감옥이 천국이지.’
침묵도, 거짓말도 용납되지 않는다.
사키리의 마법 ‘진실의 천칭’ 앞에서는 어떤 범죄자도 사실을 실토할 수밖에 없는 것.
“……마르샤는 영리하지. 그리고 실수가 없어. 일단은 밀리는 척하면서 상대의 장기를 전부 드러내게 만들어. 그때부터 공격이 시작되는 거야.”
“전형적인 사기꾼 수법이군.”
“크크, 사기꾼? 아니, 그녀는 사기꾼이 아니야. 그녀가 무서운 이유가 뭔지 알아?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거든. 무슨 말인지 알아? 그녀의 인생 자체가 거짓이라고.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그녀를 붙잡지 못할 거야.”
“흐음,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군.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협회를 속일 수 있다고 보나?”
“느낌이 아니야. 사실이지.”
“사실이라.”
인생 자체가 거짓일 수가 있을까?
그 순간, 사키리는 가장 가까이 있었던 힌트를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설마 그 여자…….”
“그래. 너와 똑같은 종류의 인간이다.”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며 루카스는 힘없이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