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43
시로네의 눈빛에서 단호한 결의를 읽은 마르샤가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나마 역하진 않네. 하지만 어떡하지? 너는 졌어. 나에게 올 수 있을 것 같아?”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 이제부터 당신에게 갈 테니까.”
“…….”
마르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심장은 어느 때보다 빨리 뛰고 있었다.
‘헛소리야. 난 절대로 잡히지 않아.’
시로네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고 친구들도 모두 지친 상태였다.
자신을 지키는 부하들을 뚫고 시로네가 도달할 확률은 0퍼센트에 수렴했다.
“리안.”
시로네가 말했다.
“덤비는 놈들은 모조리 베어 버려.”
일행 중에 가장 부상이 심한 사람이 리안이었으나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래. 나에게 맡겨.”
테스가 끼어들었다.
“잠깐만. 뭘 하려는지 몰라도 내가 할게. 나는 리안보다 괜찮으니까.”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돼. 이건 기사 서약에 대한 신뢰야. 리안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피를 보게 할 수는 없어.”
“피, 피?”
시로네는 설명 대신 적진을 향해 걸어갔다.
리안이 옆을 지키는 가운데 마르샤의 얼굴이 굳었다.
10미터, 9미터…….
절대로 올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죽여! 못 오게 막아!”
부하들이 칼을 빼 들고 돌진하자 리안이 대직도를 강하게 움켜쥐고 앞장섰다.
‘내가 막는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로네는 침착하게 걸음을 옮겼다.
본인을 방어할 수단조차 없는 상황이기에 에이미와 테스가 초조하게 지켜보는 그때, 리안과 충돌하려던 부하의 몸이 빛으로 변하더니 하늘로 솟구쳤다.
에이미가 시선을 들어 섬광을 뒤쫓았다.
“공간 이동?”
하지만 어째서?
서로 칼을 부딪치기도 전에 도망치는 게 정상적인 일인가?
클레이 마르샤(6)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앵무 용병단의 부하들은 계속 자리를 탈출하고 있었다.
마르샤가 넋을 잃고 지켜보는 가운데 테스가 에이미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적들이 도망치지?”
“저건…… 슬로 마법이야.”
특정 영역의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아광속 계열의 마법으로, 시로네가 시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법을 강탈당한 시점에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대응이었을 테지. 그렇다고 해도…….’
실패할 경우 적들의 칼질에 죽는다. 시로네 또한 목숨을 걸었다는 뜻이다.
“슬로 마법이라고?”
테스는 다시 적진을 살폈다.
밖에서 보기에는 적들이 허무하게 공간 이동을 시전하는 것 같지만, 슬로 영역에 갇힌 앵무 용병단은 미칠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대……체…….’
시로네가 만든 시공간 필드 안에서 시간은 리안의 편이었다.
일부러 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칼날이 느리게 움직였고, 리안은 모든 공격을 태연하게 관찰하며 적의 목을 향해 대직도를 휘둘렀다.
‘뭐야? 베면 되는 건가?’
포박당한 상대를 베는 것처럼 기분이 별로였지만 시로네를 곁에 두고 방심은 없었다.
느리지만 절대적으로 자신의 목을 끊을 대직도를 눈에 담은 부하들은 공포에 질렸다.
전장에서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군인이라도, 이런 식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끔찍함이었다.
“안…… 돼…….”
버티지 못한 부하가 팔찌에 장착된 공간 이동 마법을 시전해 장소를 이탈했다.
끼이잉! 끼이잉! 끼이잉!
그렇게 연달아 굉음이 터지고, 마르샤의 주위에 남은 부하는 아무도 없었다.
시로네가 다가오는 것을 본 마르샤는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가 부상의 고통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테스에게 당한 상처에서 심각할 정도의 출혈이 생긴 상태였다.
“오, 오지 마.”
시로네가 차갑게 말했다.
“내 정신력을 훔치면 반격할 수 있을 텐데. 강탈이 발동된 상황에서는 약탈을 할 수 없나 보네.”
“…….”
사실이었다.
“이제 그만 포기해. 당신은 잡혔어. 어디로도 도망칠 곳은 없다고.”
마르샤의 얼굴이 공포에 질렸다.
뾰족한 돌을 쥐어 든 그녀가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멈춰! 가까이 오면 죽을 거야! 내가 죽으면 절대로 마법을 되찾을 수 없어.”
“이번에는 마법인가?”
시로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당신이 빼앗은 마법은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부였던 거야. 되돌려준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고.”
마르샤의 멱살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는 순간, 뒤편에서 프리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돼! 멈춰!”
악귀처럼 눈이 뒤집어진 그가 돌진해 오자 리안과 테스가 길목을 가로막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로네는 마르샤의 겁에 질린 눈동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가를 치러. 스스로 정한 대가를.”
“으아아아! 마르샤!”
프리먼의 괴성을 뒤로하고 시로네는 온 힘을 다해 마르샤의 얼굴을 강타했다.
동시에 프리먼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안 돼…….”
리안이 그의 팔을 꺾은 상태로 쓰러뜨리고, 테스가 레이피어를 목에 겨누었다.
“움직이지 마. 허튼수작을 부리면…….”
그녀는 말을 멈췄다.
눈물을 쏟아 내는 프리먼의 얼굴에서는 투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에이미가 다가왔다.
“이제 말해 봐. 마르샤는 어떤 대가를 치르지? 시로네는 마법을 되찾을 수 있어?”
“마르샤는…….”
프리먼의 목소리는 허탈했다.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될 거야.”
모두의 시선이 마르샤에게 향했다.
쓰러진 그녀를 시로네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저 침묵 속에서 마르샤가 웃었다.
“후후, 후후후.”
시로네에게 맞은 턱이 얼얼했지만 이제는 그 어떤 고통도 상관없었다.
“왜? 초조해? 분명히 나에게 닿았는데 마법이 돌아오지 않아서?”
“나는…….”
“걱정 마. 마법은 되찾을 수 있을 거야. 내 몸에 닿는 조건은 제약일 뿐, 문제는 대가지. 설마 닿으면 죽는 정도로 타인의 마법을 훔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대가가 뭐지?”
마르샤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목에 칼날을 건 채 끌려오는 프리먼이 보였다.
친구의 공허한 눈빛을 본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네 책임이 아니야.’
마르샤는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나를 붙잡으면 내가 마법을 훔친 자에게 ‘구속’ 상태가 돼. 나는 네 곁을 떠날 수 없고, 네가 떠난다고 해도 움직일 수 없어. 물론 그것에 대한 정의는 자의적이지만…….”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자의인 거지.”
“그래. 애초에 부정할 정신 자체를 만들어 낼 수 없기에 규정외식이 생긴 거니까.”
뒤틀린 논리에 객관성이 있을 리 없기에, 규정외식자의 능력은 늘 자의적이다.
다만 타인에게 강요하기 위해서는 납득 가능한 설득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
마르샤가 느끼는 구속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그리 넓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구속 상태가 되면, 나는 이렇게 말해야 돼. 나를 안아도 좋아. 무슨 뜻인지 알지?”
“…….”
그런 것이었다.
평생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트라우마.
마르샤가 선택한 대가는 열일곱 살의 그날 이후로 멈춰 버린, 삶의 가장 비참한 마무리였다.
이제는 그녀의 규정외식을 이해했기에 짐작이 갔지만, 시로네는 애써 물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지?”
“강탈로 빼앗긴 마법은 너에게 돌아갈 거야. 나는 자살로 생을 끝내야 하고.”
적으로 싸웠지만 에이미 일행은 착잡했다.
그녀를 안는 문제는 자의적인 기준이 적용된다고 해도, 시로네가 누군가를 자살로 몰아넣는 상황을 겪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시로네는 마법을 되찾을 수 없게 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어차피 난 죽으니까. 그래서 이건 방어기제가 아니라 대가야. 이 정도로 하지 않으면 강탈 같은 마법은 얻을 수 없다고.”
마르샤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자, 시로네. 혐오스러워서 못 하겠다면 실컷 때려도 좋아. 내 양부도 그런 걸 좋아했지. 빨리 끝내 줬으면 해. 마법을 되찾아야 하잖아?”
프리먼이 한 걸음 나섰다.
“마르샤.”
테스가 목에 걸린 레이피어를 피부에 닿을 정도로 들이대며 멈춰 세웠다.
“움직이지 마. 이 거리에서는 바보도 실수 안 해.”
마르샤가 눈웃음을 지었다.
“미안해, 프리먼.”
“안 돼! 마르샤!”
시로네가 그녀에게 걸어가자 프리먼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보다 놀란 건 친구들이었다.
“시, 시로네.”
말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신의 입자, 포톤 캐논, 광폭, 순간 이동……. 시로네가 간절히 원하는 마법사의 꿈이 여기서 꺾일 수는 없는 것이다.
“마르샤.”
시로네가 다가오자 마르샤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다음 순간 자신을 감싸는 온기가 느껴졌다.
놀라 눈을 떴을 때, 시로네가 그녀를 안고 있었다.
-날 안아도 좋아.
열일곱 살의 그날, 양부에게 했던 말.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배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엄청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틀렸어. 이건 내 기준에 맞지 않아.”
“다행이네.”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왜 이러는 거야? 지금도 날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 어차피 끝났어.”
“이것도 위선처럼 느껴지겠지만…….”
삶에 정답은 없고,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자신의 것을 되찾으려는 마음을 비난할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지만…….
“내가 선택한 삶이야.”
시로네는 결국 오답을 적을 수 없었다.
“살아가세요.”
마르샤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리안과 테스도, 심지어 프리먼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에이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시로네…….’
또다시 흐릿해지고 있었다.
“거짓말!”
마르샤가 일갈을 내질렀다.
시로네를 떨쳐 내려고 해 보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규정외식을 풀지 않겠다고? 그러면 너는 마법을 되찾을 수 없어! 네 평생의 노력을 빼앗기는 거라고!”
“알아.”
“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평생 도망칠 거야. 마법사가 되는 건 고사하고 학교도 다닐 수 없다고! 그런데도 따라오겠다고? 네 꿈을 버리고?”
“그래.”
마르샤는 숨이 막힐 정도로 짜증이 났다.
이런 것은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이것도 위선이야. 가식이야! 분명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 거야.’
그래서 마법을 포기한 것이다.
‘재판에 넘기려는 거겠지. 기회를 봐서 협회에 신고하고, 그 대가로 더 큰 제안을 하려고.’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다.
“흐윽.”
모르겠다.
왜 이러는 것일까? 이런 짓을 해서 시로네가 얻을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
‘설마…….’
정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