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44
그런 의심이 든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
눈물에 젖어 부연 시야 너머로 문이 열리고, 양부를 닮은 실루엣이 다가왔다.
마르샤.
***
토르미아 마법협회 감찰부.
루카스에게 모든 정보를 얻은 사키리는 땀에 젖은 셔츠를 반쯤 풀고 소파에 기댔다.
“후우, 해가 갈수록 이 짓도 못 해 먹겠네.”
어떤 악당도 벌벌 기게 만드는 그였지만 봉급에 비해 수지가 안 맞는 일이었다.
“하하! 선배님도 앓는 소리를 하시네요.”
감찰부 후배가 음료수를 들고 들어오자 사키리가 담배를 꼬나물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번에 크게 한 건 하셨잖아요. 이제 마르샤를 잡는 것도 시간문제겠죠.”
“…….”
사키리는 불 붙지 않은 담배를 부러뜨렸다.
규정외식 ‘진실의 천칭’을 사용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치를 살피기 위해 온 것이 분명했다.
“걱정해 주는 건 알지만, 그만해라. 후배한테 위로받는 것도 이제 지겹다.”
“에이,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능청스럽게 맞은편에 앉은 후배가 소파에 놓인 보고서를 펼쳤다.
“흐음.”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읽어 내려가던 그가 규정외식자라는 단어 앞에 표정을 고쳤다.
사키리가 선수를 쳤다.
“규정외식자야. 타인의 마법을 활용하는 능력인 것 같다. 그래서 혼란이 왔던 거지.”
“하긴, 그런 케이스는 힘들죠. 현장에서 증거는 나오는데 범인을 특정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 문제가 아니야.”
후배가 서류를 든 채로 고개를 들었다.
“마법은 선택적 집중이지만, 규정외식자의 능력은 삶 전체를 지배하거든. 여태까지 잡히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극단적으로 의심이 많다는 증거겠지.”
‘삶을 지배한다.’
규정외식자의 말이기에 반론의 여지는 없었다.
‘진실의 천칭’은 사키리의 정신적 고통을 저울에 올려 실체의 고통으로 전달하는 것.
트라우마가 희석되면 고통 또한 약해질 테지만 여태까지 굴복하지 않은 범죄자는 1명도 없었다.
‘어떻게 버티는 겁니까.’
사키리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짐작이나마 하는 사람은 후배를 포함해 손에 꼽았다.
“소멸시킬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규정외식도 결국 마음의 문제니까요.”
“카타르시스.”
사키리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트라우마를 초월하는 카타르시스가 일어나면 규정외식은 소멸한다. 실제로 몇몇 사례가 있지만, 그건 규정외식자 전체의 1퍼센트도 안 돼. 의식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야. 그래서 누구도 그런 건 가르치지 않아. 괜히 치료하려고 덤볐다가는 오히려 치료사가 미쳐 버릴걸.”
“하,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후배는 말을 멈췄다.
결코 드러내는 법이 없는 사키리의 진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내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냐? 정말로 그래?”
머릿속으로 수많은 답변을 떠올리던 그가 내뱉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사키리는 표정을 풀었다.
후배가 얼마나 자신을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지.”
음료수를 마시며, 그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기적이겠지만.”
클레이 마르샤(7)
***
17세의 여름이었다.
마르샤는 땀이 절로 나는 후끈한 방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지면 술을 진탕 마신 양부에게 얻어맞을 테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
아니, 의지가 없다고 해야 할까?
‘왜?’
이유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너무나 무서운 생각이 들어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지긋지긋하다.
맞는 것보다도, 물건을 빼앗기는 것보다도, 진실을 모르는 게 더 힘들었다.
“마르샤.”
양부의 목소리에 마르샤는 일어났다.
평소와 달리 등 뒤에 작은 단도를 숨겨 둔 채.
“날 안아도 좋아.”
지금도 마르샤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양부의 얼굴, 눈빛, 단도의 서늘함, 피 냄새.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서 있는 양부는 마르샤를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내 딸.”
“…….”
어쩌면 오직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살았던 것일까.
뒤에 숨긴 칼날이 떨어지고, 바닥에 닿기 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시간이 되돌아왔다.
“흑! 흐윽!”
수년 동안 응축된, 그래서 더욱 뒤틀려 버린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하는 것은 완전히 열린 의식 바깥으로 화신이 터지는 것과 같았다.
“으아아앙! 아빠! 아빠!”
시로네를 끌어안은 마르샤가 열일곱 살의 소녀처럼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시로네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미안해! 미안해요!”
비록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지만 그녀의 정신 속에서 과거가 부서지고 있었다.
뒤틀린 논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논리로 기억이 재구성되는 순간, 시로네는 모든 마법을 되찾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프리먼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마, 마르샤.”
온갖 모진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녀의 곁을 지킨 이유는 오직 이 순간을 위해.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부를 주는 건 희생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시로네가 마르샤를 위해 포기한 것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완패다, 시로네.’
마르샤의 울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문이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으아아앙! 으아아앙!”
끝없이 깊은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었다.
늦은 점심(1)
치열했던 전투가 끝났다.
부상자들이 서로를 치료하는 가운데 시로네 일행도 응급처치를 받았다.
“어이, 이쪽 손도 줘.”
앵무 용병단의 부하가 시로네의 찢어진 팔에 붕대를 감았다.
의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모두 베테랑인 만큼 기본적인 처치는 할 줄 알았다.
시로네는 절벽 쪽을 돌아보았다.
마르샤가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프리먼에게 대략적인 설명은 들었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의 뒷모습은 전보다 약해 보였고, 반대로 조금은 더 가벼워 보였다.
프리먼이 마르샤에게 걸어갔다.
“부상자 치료는 끝냈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어. 솔직히 뒷정리를 할 시간이 많지는 않아.”
“프리먼.”
마르샤가 고개를 돌렸다.
“앵무 용병단은 저놈들의 유일한 안식처야. 길바닥에서 썩어 가는 꼴은 못 봐.”
“……알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말해 주고 싶었을 뿐이야.”
한동안 대화가 끊겼다.
문득 생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상은 시원한 파도 소리에 의식을 맡긴 채 무념의 평온함을 느낄 뿐이었다.
프리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떡할 거냐?”
“모르겠어. 살아가야지. 우선은…….”
마르샤는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앵무 용병단의 단원들이 휴전에 응한 것은 그들의 대모이자 삶의 이유인 마르샤의 눈물을 봤기 때문이리라.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감정, 시로네의 감정, 모두의 감정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삶도 없을 테니까.
“그렇군.”
프리먼이 배웅하듯 길을 열어 주자 마르샤는 심호흡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시로네에게 다가갈수록 심장이 빨리 뛰었으나 그녀는 용기를 냈다.
“좀 어때?”
고개를 든 시로네가 붕대를 살피며 말했다.
“괜찮아요. 단순 타박상이에요.”
분위기는 오히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어색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처음일까?
가면 바깥의 세상은 이토록 두려운 것이다.
“우린 섬을 떠날 거야. 당장은 무리지만, 한심한 놈들의 안식처를 마련해 줘야 하거든.”
“…….”
“막을 생각이라면 지금 말해. 나 하나라면 붙잡혀 줄 용의는 있어. 협회에 이름을 알릴 수 있겠지. 너에게는 빚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 부하들은 섬을 떠날 거야. 이것만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어.”
“저는 법관이 아니에요.”
시로네는 마르샤가 가모스에게 붙잡혔을 당시에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타인을 심판할 자격은 없습니다.”
마르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힘들게 사는구나.”
하기야 그런 신념이 있기에 규정외식자의 트라우마조차 굴복시킨 것이겠지.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전투가 끝난 후부터 시로네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유일한 의문이었다.
“규정외식이라는 것은 뭐죠?”
트라우마의 발현이라면 누구도 자신의 아픔에 대해 정의하고 싶지 않을 터였다.
잠시 시로네를 응시하던 마르샤가 애써 생각한 말을 내뱉으며 돌아섰다.
“일단 뭐 좀 먹자.”
***
마르샤는 시로네 일행을 아지트로 데려갔다.
멀쩡한 기물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친구들은 전투의 치열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2층으로 가.”
마르샤가 간단한 요리를 하는 동안 시로네 일행은 식탁에서 기다렸다.
분명 낯선 상황이지만, 새벽부터 한 끼도 먹지 못한 허기는 음식 냄새를 외면하지 못했다.
프리먼과 유나가 합석한 가운데 고기를 넣은 수프와 구운 빵이 올라왔다.
허기가 가실 무렵 시로네가 물었다.
“더 이상 규정외식은 할 수 없는 건가요? 다른 사람에게 강탈한 마법은 어떻게 됐죠?”
알고 싶은 게 많았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규정외식자가 소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마르샤가 식기를 내려 두고 입을 열었다.
“아는 건 다 말해 줄게. 우선 약탈이라는 마법은 소멸했어. 내 뒤틀린 논리가 사라졌으니, 같은 메커니즘은 다신 사용할 수 없겠지. 하지만 규정외식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형태로 변형이 되겠지.”
정신에 정상이라는 기준은 없다.
“두 번째, 내가 강탈한 마법. 강탈을 통해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조건 중의 하나는, 반드시 약탈을 통한 스피릿 존으로 운용을 해야 한다는 거야. 따라서 네 마법을 강탈하는 순간 내가 원래 시전했던 음향 마법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어. 그렇다고 주인에게 돌아가는 건 아니야. 마법을 되찾으려면 반드시 나를 붙잡아야 해.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지.”
에이미가 끼어들었다.
“규정외식 자체가 소멸했으니까요.”
“그래. 카타르시스로 논리가 풀린 경우 현상은 원상 복구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 비록 소수의 케이스지만 이미 실례로 검증되어 있는 정보야.”
마르샤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긴 터널을 지나고 다시 세상에 나오니, 내가 집착했던 것과는 다른 생각이 드네. 용병단을 훨씬 크게 키울 생각이야. 여태까지는 들개들만 받았지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누구나 아픈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게 아닌가 하고.”
그녀는 조금 더 평범해진 것 같았다.
“최초에 규정외식이 발생할 때 룰은 어떻게 정하는 거죠? 미리 설계하는 건가요?”
“그게 좀 미묘해. 마법이라는 게 의식을 집중하는 거라면 규정외식은 무의식의 발현이거든. 의식적으로 보면 규정외식이라는 현상이 갑자기 벌어지고, 그 이후에 룰을 알게 되는 순서지.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규정외식자들은 왜 룰에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미 무의식에서 룰을 규정했기 때문일 거야. 나 또한 세부적인 규칙을 의식적으로 조정했을 뿐 약탈이라는 큰 틀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으니까.”
무의식을 통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앞으로 규정외식이 발동된다고 해도 당장 메커니즘을 알 수는 없겠네요.”
“그렇겠지. 하지만 어차피 나라는 존재를 벗어나지는 않을 거야. 어디 보자, 어쩌면 금발 머리의 마법사를 홀리는 마법일 수도 있으려나?”
에이미의 눈이 샐쭉해졌다.
트라우마가 사라져도 성격은 그대로인 모양이었다.
프리먼이 끼어들었다.
“눈썹이 없는 남자를 홀리는 마법은 어때?”
“컥! 컥!”
수프를 삼키려던 마르샤가 헛기침을 하더니 화난 얼굴로 쏘아붙였다.
“무슨 헛소리야? 너 진짜 짜증 나게 할래? 그러고 보니까 너, 졌겠다? 또 ‘반전’ 테크트리 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