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46
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실 미토콘드리아를 베이스로 두는 빌드가 가장 대중적이기는 한데, 효율이 100퍼센트인 자리에 범용적인 스키마를 두는 건 좀 그렇달까. 특기를 극대화시킬 수 없잖아.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신경계 스키마를 베이스로 하고 있어. 세검을 다루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정밀함이니까.”
테스가 엄지를 뒤로 넘겼다.
“성취와 희생의 방에서 만났던 용병들도 제법이라는 게, 미토콘드리아 빌드를 가진 자가 없다는 거야. 전사는 근력 강화 계열인 것 같았고, 궁수 같은 경우는 아마도 감각계 빌드를 선택했을 거야.”
“응? 신경계와 감각계가 다른 거야?”
“비슷하지만 강화 부분이 달라. 쉽게 말해 내부감각과 외부감각의 차이라고 보면 돼. 내가 선택한 신경계는 내부감각을 올리는 거야. 따라서 육체의 동작을 누구보다 정밀하게 수행할 수 있지. 반면에 감각계 빌드는 외부감각이야. 눈, 코, 귀와 같은 원감각과 혀나 촉각과 같은 근감각을 말해. 당연히 궁수는 감각계를 익혀야 하지. 그들의 시각, 후각, 청각은 남들보다 훨씬 예민해. 물론 나도 세 번째 스키마는 감각 계열로 단련하고 있고.”
“그래서 미행이 힘들다고 했구나.”
“맞아. 신경계 빌드인 나는 기척을 죽일 수 있고, 감각계 빌드인 상대는 탐색을 할 수 있지. 다만 미행이라는 상황에서는 후자가 더 승률이 높아. 그렇다고 베이스가 전부는 아니야. 각각의 스키마를 갈고닦는 건 기본이지. 효율은 효율일 뿐, 얼마나 단련하느냐에 따라 절대치는 올라가니까. 실제로 삼류 도적들의 미토콘드리아 빌드쯤이야, 내 두 번째 스키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보다도 못하거든. 정리하자면 스키마 유저 간의 전투는 이런 모든 복합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산물이야. 예측이 어렵지.”
“육체를 강화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어려운 이론이구나. 여기에 수많은 검술이 들어가면 정말 끝도 없이 커지겠네.”
“후후, 사실 이론을 떠벌리니까 대단해 보이지, 나도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야. 그냥 쉽게 생각해. 스키마라는 건 자신이 느끼는 신체의 전부야. 이를테면 환각 통증이라는 현상이 있잖아. 팔이 절단된 사람인데도 팔이 지나가는 공간에 물체가 놓여 있으면 무의식중에 통증을 느끼는 것. 그게 바로 스키마의 실체인 거야.”
에이미도 느끼는 바가 많았다.
본인도 스키마를 열었지만, 테스의 이론을 듣고 보니 여태까지 관심이 없었던 몇 가지 사건들이 떠올랐다.
“그러면 테스, 우리 아빠는 스키마를 몇 장이나 중첩시킨 걸까? 단련을 거듭하면 두 번째, 세 번째 스키마의 능력도 강화되겠지만 효율의 한계도 있잖아. 대략 네 번째부터는 빌드 업을 하나 마나 아니야?”
테스가 웃으며 검지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 나도 에이미 아버지의 명성을 익히 들었지만, 그런 분들의 수준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달라. 검사들은 이걸 ‘체득’이라고 부르지. 의식할 필요조차 없이 몸에 새겨 버리는 거야. 도식으로 설명하자면 스키마는 자신의 몸을 그대로 따온 그림자를 생각하면 돼. 스키마를 연다는 것은 그림자의 검은 부분을 점차 투명하게 걷어 내는 과정이고. 그런데 솔직히 자신의 육체를 완벽하게 파악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말하자면 한 장의 스키마에 있는 검은 부분을 전부 다 걷어 낸 사람 말이야.”
“음, 확실히 그건 힘들 것 같은데.”
“하지만 그걸 해낸 사람들도 있지. 완벽하게 투명해져서 자신에게 스며드는 것, 그것이 체득이야. 특정 스키마를 체득한 사람은 결국 그 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에, 두 번째 장의 효율이 100이 되는 거지. 시간과 노력의 문제야. 재능은 그 시간을 단축시킬 테고.”
스키마에 대해 전반적인 부분을 전부 알게 된 시로네는 큰 숨을 내쉬었다.
‘엄청나구나.’
마법사가 꿈이었지만, 리안과 진검 대결을 펼쳤을 당시 검의 무한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정신과 육체.’
스피릿 존과 스키마.
과연 이 세계를 양분하는 무력이라고 칭해지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 테스.”
시로네의 칭찬에 테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뭐. 나야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들었으니까. 사실 마법사인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좀 장황하게 설명을 하기는 했지만.”
“응. 정말 큰 도움이 됐어. 이제는 오늘 같은 상황이 와도 전보다 대응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테스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좋았어! 그럼 나는 이미 회복했고, 내일은 리안과 지스를 데리고 회복 마법을…….”
그녀는 말을 멈췄다.
여태까지 리안이 한마디도 거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멍청이.’
검사의 자부심으로 떠들었던 스키마의 가능성도, 그것을 기반으로 발전되는 검술도 그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내가 너무 들떴어. 어떡하지?’
테스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리안은 평소와 다름없이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속마음도 괜찮을 것이라는 정신 질환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기, 리안…….”
리안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괜찮아. 스키마가 없어도 나는 튼튼하니까.”
그러고는 상처를 입은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친구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행동일 테지만, 그 모습을 지켜본 자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엄청 아플 텐데.’
허세로 참을 수 있는 게 아니기에, 테스는 리안의 행동에서 진심을 느꼈다.
‘맞아, 리안. 그게 너야.’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그 정신력이야말로 리안이 검술학교의 생도들과 차별화되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기도 했다.
‘팔코아는 강했어.’
그것은 직접 검을 맞댄 테스가 더 잘 알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 팔코아의 몸을 완전히 구속한 리안의 완력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녀석.’
이대로 스키마를 열지 못한다면 결국 리안은 검술 세계에서 도태되고 말 테지만, 테스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머리가 아닌 심장을 믿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래, 네가 그깟 상처에 지면 안 되지.”
“하하! 그렇다니까.”
어쩌면 리안에게 남은 마지막 무기일 것이기에 선뜻 회복 마법을 받으라고 권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로네의 생각은 달랐다.
“리안, 고집부리지 말고 내일 치료를 받자.”
“괜찮아. 치명상도 아니고. 물론 테스가 찌른 부분은 이상하게 조금 아프지만 말이야, 하하하!”
“난 케르고 유적에 대해 알고 싶어.”
리안의 웃음이 그쳤다.
“어쩌면 위험한 순간이 올 수도 있어. 그때는 사소한 변수가 생사를 가르겠지. 네가 쓰러지면, 너를 향하던 칼날은 전부 나에게 오는 거야.”
테스가 당황하며 말했다.
“시로네, 그건 좀…….”
“미안.”
리안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미안하다, 시로네. 나도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야. 내일 치료를 받을게.”
수치스러웠다.
스키마라는 화두 앞에서 담담한 척을 하려다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망각했던 것이다.
‘멍청하긴. 기사가 되겠다는 놈이…….’
평생을 지키기로 약속한 사람 앞에서 부상이 자랑인 것처럼 떠벌리고 있다니.
리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 번 다시 시로네를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 눈빛 앞에서 테스는 깨달았다.
자신이 리안을 가장 사랑할지는 몰라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로네를 돌아본 그녀가 입 모양으로 전했다.
‘고마워.’
시로네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위험한 거래(3)
***
아침 일찍 별장을 나선 시로네 일행은 마법사 길드에서 회복 마법사에게 치료를 의뢰했다.
세포의 활성을 촉진시켜 자연 치유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리 뛰어난 실력은 아닌 듯했다.
리안과 지스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나왔을 때는 어느덧 점심때가 되어 있었다.
“자, 그럼 출발해 볼까?”
짐을 챙긴 시로네 일행은 본격적인 탐사에 나섰다.
유적지는 전에 왔던 때와 비슷했다.
긴 행렬을 이룬 관광객, 표정 없이 주위를 경계하는 원주민, 용병들을 만났던 술집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지스는 프리먼이 전달한 매뉴얼을 살폈다.
간단한 설명만 적혀 있었지만 팔코아 밑에서 잔심부름을 했던 사람답게 과정을 그릴 수 있었다.
“흐음, 뭔지 알겠어. 그런데 밀수 루트는 너희들이 들어갔던 곳과는 다르네. 어떡할래? 성취와 희생의 방을 먼저 도전할 거라면 왼쪽 편으로 가야 하는데.”
“길이 다르다는 거지? 그럼 일단 밀수 루트부터 확인해 보자. 프리먼 씨가 통행증을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팔코아가 죽었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시험의 관문을 통과할 자신이 그다지 없었기에 확실한 루트를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그럼 오른쪽.”
지스가 데려간 곳은 성취와 희생의 방이 있는 제단의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곳의 제단 또한 문명화된 의복을 입고 있는 원주민이 지키고 있었다.
지스가 선두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누구지?”
“프리먼 조직에서 왔는데요. 언제쯤 출발할 수 있나요?”
원주민은 지스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통행증을 보여 주자 곧바로 아는 사실을 말했다.
원주민어로 몇 마디를 주고받은 지스가 시로네에게 말했다.
“차편이 도착하려면 기다려야 한다는데? 1시간 정도.”
“응? 차편이라니?”
“아마도 광차를 타고 들어가나 봐. 프리먼 씨가 전달한 매뉴얼에 적혀 있었거든. 아무튼 지금은 못 들어가니까 차가 도착하면 오라고 하네.”
테스가 친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떡할래? 여기서 기다릴까? 아니면 다른 곳이나 좀 둘러보고 오든지.”
잠시 생각하던 시로네가 고개를 들었다.
“시험의 관문으로 가자.”
테스가 물었다.
“지금? 어차피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 같은데. 그러다가 또 차를 놓치면?”
“그 전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사실 통과보다는 시험의 관문에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어제 에이미의 말도 그렇고,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는 하잖아.”
안 될 것은 없었다.
“좋아. 그럼 일단 동쪽으로 가자.”
지스가 말했다.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혹시라도 너희들이 늦으면 연락책이 필요하니까. 게다가 어제 듣자 하니, 일행으로 포함되면 반드시 시험을 치러야 한다며?”
“아, 그러네. 그럼 부탁할게.”
그렇게 결정을 내린 시로네 일행은 다시 동쪽의 제단으로 향했다.
원주민이 지키고 있었으나 전에 왔을 때에 서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시로네, 암호 기억하고 있지?”
“응. 내가 말할게.”
시로네가 원주민에게 향하는 그때였다.
먼저 들어간 사람이 있었는지 제단의 안쪽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로네가 걸음을 멈춘 가운데 원주민이 기관 장치를 작동시켜 석벽을 열었다.
‘생각보다 도전자가 많구나.’
어떤 인물이 시험을 치렀는지 궁금했기에 일행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등장한 얼굴에 시로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놀란 건 에이미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쟤들이 왜 저기에?”
테스가 물었다.
“왜 그래, 에이미? 혹시 친구야?”
“흥! 친구는 무슨! 원수들이지!”
반응을 보아하니 딱히 좋은 관계는 아닌 듯싶었다.
더욱 호기심이 생긴 테스가 한 쌍의 남녀를 살폈다.
남매처럼 특징이 비슷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동공, 창백한 얼굴과 대비되는 어두운 느낌이 꽤나 독특한 기질이었다.
시로네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케인의 제자인 카니스와 아린이었다.
“너희들이 어떻게 여기에?”
카니스와 아린도 놀랐는지 걸음을 멈췄으나 이내 감정을 지우며 다가왔다.
“역시. 너희들도 왔구나.”
“역시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글쎄? 무슨 뜻일까?”
비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카니스의 뒤로 아린이 고개를 숙인 채 따랐다.
다음 학기부터는 마법학교 학생이지만 여전히 대인 관계가 서툰 그녀였다.
“아, 안녕, 시로네?”
카니스가 아린을 흘겨보았다.
실수를 깨달은 그녀가 얼른 손을 내렸으나 예상외로 시로네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래, 안녕. 잘 지냈어?”
“어? 응. 그냥, 뭐.”
카니스의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으나 속마음은 나쁘지 않았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탓이겠지만, 상대가 배려해 주는데 굳이 적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너도 잘 지내…….”
용기를 내어 시선을 올린 아린은 시로네의 초경을 확인하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또 변했구나.’
처음 봤을 때도 대단했지만, 지금은 훨씬 선명했다.
‘신기한 사람이야.’
한편 시로네도 생각이 많아졌다.
어쨌거나 제단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는 것은, 결국 천사의 눈동자가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는 뜻이었다.
‘카니스와 아린도 탈락. 쉽지 않구나, 미로의 시공.’
두 사람의 마법 수준은 직접 상대한 시로네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실전 경험만큼은 마법학교의 경험치를 상회하는 게 사실이었다.
‘대체 커트라인이 얼마나 높은 거야?’
에이미가 끼어들었다.
카니스의 묘한 미소가 거슬린 그녀의 말투는 곱지 않았다.
“보아하니 탈락했나 보네. 하긴, 너희들 수준으로는 당연한 결과겠지만.”
“흥,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 아닌가? 5대 명문 어쩌고 하더니, 졸업반도 별거 아니군.”
“웃기고 있네! 내가 탈락했는지 어떻게 알아?”
“내가 탈락했으니까. 그걸 안다는 건 너희도 시험을 봤다는 얘기잖아. 만약 너희가 성공했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시비를 걸고 있지도 않겠지. 혹시 너 바보냐?”
“이 자식이! 새파란 후배 주제에 어디서 까불어! 그리고 시비를 건 사람은 너잖아.”
“우린 그냥 제단에서 나왔을 뿐이야. 아, 이제 알겠군. 내 존재 자체가 너에게는 시비겠지. 죽을 뻔했던 기억이 저절로 떠오를 테니까.”
에이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당시의 전투를 입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싸우자는 뜻이었다.
“이 자식이 진짜……!”
에이미가 멱살을 잡으러 다가가는 그때 카니스의 뒤편에서 그림자가 솟구쳤다.
이어서 시커멓고 기다란 손톱이 어깨를 타고 넘어왔다.
에이미가 반사적으로 멈추고, 카니스를 끌어안은 하비스트가 입꼬리를 찢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