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50
텔레파시도 마법이기 때문에 정신력을 소모한다. 특히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은 파이어 월처럼 지속적으로 정신을 갉아먹었다.
정신 채널이 닫히자 에이미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청각이 열리면서 철로의 울음소리가 고막을 채웠다.
광차가 동굴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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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곳은 지하 도시였다.
도식적인 멋은 없지만 개미굴처럼 갈라진 터널과, 터널의 접점마다 확장된 광장은 자연과의 공생에서 얻은 놀라운 성과였다.
에이미는 관광객으로 돌아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설레는 마음도 잠시, 그녀의 눈동자가 당혹감에 흔들렸다.
케르고의 삶은 풍경과 동떨어져 있었다. 모두가 굶주렸고 비쩍 말라 있었다. 케르고인이 외부인에게 적대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예상 밖이었다.
전쟁 난민과도 같은 노인들이 터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걸을 수 없는 노인들은 토벽에 기대어 자식이 맡겨 놓은 자식을 안고 눈을 감았다.
살풍경이 자아내는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이곳은 개미굴이다. 그리고 저들은 개미였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노인들이 불가능할 것 같은 한 걸음을 더해 가며 멀어지고, 구석에는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들이 나무껍질을 엮어 소쿠리를 만들고 있었다.
“여기가 정말 케르고 자치 구역이란 말이야?”
에이미의 물음에 대답할 사람은 없었다. 유적지라는 값비싼 부동산을 소유한 부족이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카니스는 이름 모를 분노를 느끼며 아린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어깨도 떨리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지옥이라 불리는 라둠에서의 삶을.
두 사람은 굶는다는 게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들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자들이었다.
“어이, 이쪽으로 와라.”
광차를 운전한 원주민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외부인에게 지금의 광경을 보이고 싶지 않은 표정이 역력했다.
급류처럼 휘어지는 길목을 지나 도착한 곳은 막혀 있는 터널이었다. 벽에 걸린 횃불 하나만이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에이미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먼 거리를 우회했기 때문에 여기서 소란이 일어나도 밖에서는 모를 듯했다.
원주민은 한 남자의 앞으로 에이미 일행을 데리고 갔다.
팔짱을 끼고 입을 굳게 다문 남자는 이것이 진짜 케르고인이라고 주장하는 듯 상상과 일치하는 외모였다.
상체의 근육이 리안보다 발달했고 얼굴에는 시커먼 문신을 새겼다. 양쪽 귀에는 맹수의 송곳니로 만든 귀걸이를 차고 있었다.
지스가 말을 걸자 그는 자신을 마하투라고 소개했다.
에이미는 일전에 전사의 후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하투라는 발음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이름이 전사인 마하투는 실제로도 전사였다.
“어, 그러니까, 이 사람의 이름은 마하투야. 루프를 기르고 신전에 납품하는 사람이래.”
에이미는 흑색 문신이 루프를 관리하는 자들의 색상일 것이라 짐작했다. 백색이 의식을 집행하는 자라면 흑색은 의식을 준비하는 자가 아닌가 싶었다.
아린이 텔레파시를 시도하지 않았기에 에이미 일행은 지스가 통역해 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테스는 옳은 판단이라고 여겼다. 마하투의 기질을 보건대 보통의 강자가 아니다. 스키마의 감각계라면 텔레파시를 감지할 위험이 있었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하투의 말이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했다.
에이미가 돌아보자 아린이 미소를 지었다.
-결국은 시도한 거야? 저 사람 꽤 강해 보이는데. 너 보기와 다르게 깡이 세구나.
-아니. 마하투에게 텔레파시를 시전한 게 아니야.
-어라? 그럼 어떻게 통역이 되는 거지?
아린은 살그머니 지스를 가리켰다.
에이미는 그제야 깨달았다. 마하투와 대화를 하고 있는 지스에게 텔레파시를 시전한 것이다.
표층 심리의 언어만 도청할 생각이라면 굳이 화자에게 접촉할 필요가 없다. 아린의 능력이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이었다.
“팔코아가 죽었다고?”
“그래. 프리먼 조직은 루프를 구매하지 않을 거야. 조만간 섬을 떠날 생각이거든.”
지스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총책임자를 만났으니 사실을 감출 방도가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마하투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고까운 시선으로 에이미 일행을 쳐다본 그가 눈을 부릅뜨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뭐지?”
“아, 루프를 사려는 건 아니고, 이곳에 일이 있어서 들어온 거야.”
“일? 루프 거래를 제외하면 외부인은 이곳에 출입할 수 없다는 걸 모르나?”
“그거야 알지만, 어쨌든 거래 철회는 알려야 하잖아. 그리고 여기 통행증도……! 어이쿠!”
마하투는 지스를 떠밀고 걸어왔다. 앙다문 턱이 실룩거리고 눈에서는 불이라도 튀어나올 듯했다.
일행을 살펴보던 그는 대화의 상대로 에이미를 점찍었다. 리더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만이 도발적인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프리먼 조직에서 보냈다고? 그렇다면 조직원인가?”
지스가 달려와 통역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임무를 다하는 것을 보면 책임감은 보통이 넘었다.
물론 에이미는 아린을 통해 말을 이해한 상태였다. 그러나 밝힐 수는 없었기에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아니. 하지만 프리먼과는 잘 아는 사이야.”
“얼마나 잘 알지? 생명을 걸 수 있는 사이인가?”
“물론이지.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사실 생명을 걸고 싸웠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잔금을 대신 치를 수도 있겠군.”
“잔금? 무슨 잔금?”
“팔코아는 얼마 전 선금만 내고 루프 8킬로그램을 가져갔다. 거기에 대한 잔금을 치르지 못했어.”
팔코아의 얼굴을 떠올린 에이미는 코웃음을 쳤다. 허세는 있는 대로 떨더니 쫀쫀하게 외상 거래나 하고 있었다니.
어쨌거나 받을 돈이 있다 하니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생명은 걸어도 돈을 빌려줄 사이는 아니긴 한데, 아무튼 얼마나 밀렸는데?”
“1만 골드.”
“뭐? 1만?”
에이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통역을 한 지스도 단위를 착각했는지 헷갈리는 눈치였다.
하지만 에이미는 아린의 텔레파시를 통해 1만 골드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고작해야 나무뿌리 8킬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만 골드라니. 아니, 선금을 치렀다고 했으니 최소 1만 골드 이상이라는 얘기였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모르긴 해도 팔코아는 5년 동안 거금을 주고 루프를 구입해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케르고인의 생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루프 8킬로그램만 팔면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1년 동안 배 터지게 먹여 살릴 수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지스가 마하투를 설득했다.
“잔금에 관한 것은 조직에 돌아가서 보고하겠어. 루프를 되돌려주든 잔금을 치르든 알아서 해 줄 거야.”
확신이 서지 않는 지스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동의를 구했다.
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예를 중시하는 마르샤와 프리먼이라면 반드시 잔금을 지불할 것이다.
그녀의 응원에 힘을 얻은 지스가 당당하게 말했다.
“자, 이제 됐지? 잔금은 나중에 낼 테니까 일단은 이곳에 머물 수 있게 해 줘.”
“이해가 안 되는군. 너희는 그럼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온 거지?”
에이미가 말했다.
“친구를 기다리고 있어. 성취와 희생의 방에 들어갔거든. 아마 조만간 이곳으로 올 거야.”
그녀의 말투는 전보다 까칠했다. 거액을 벌면서도 동족의 굶주림을 해결하지 않는 모습에서 마하투나 팔코아나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성취와 희생의 방이라고?”
마하투는 일행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외모가 아닌 기질을 평가한 그가 조롱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꿈도 크군. 포기하고 돌아가. 네 친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흥!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뻔하지. 너 같은 애송이들을 부르려고 세운 제단이 아니다. 수많은 얼치기들이 케르고 유적을 찾아오지. 루프를 사기 위해, 황금을 얻기 위해. 친구를 제단에 보내고 너희가 와서 우기면 허락할 줄 알았나? 잔머리나 굴리는 수준에서는 절대로 통과하지 못해.”
“당신이라고 뭐 잘난 줄 알아? 이곳에서 밀매된 루프로 바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독됐는지 생각은 해 봤어?”
“루프는 신성한 물품이다. 그걸 마약으로 남용하는 건 너희야. 그리고 어리석은 외부인의 사정 따위 내가 알 필요도 없지. 너희는 언제나 그랬다. 우리의 것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뺏어 가려고 했지. 하지만 여기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친구가 성취와 희생의 방을 통과했는지 알기 전까지는.”
“너희 실력으로는 절대 합격할 수 없어. 이곳에 온 솔직한 목적을 말해라.”
광차를 운전했던 원주민이 말했다.
“어쩌면 도둑일 수도 있지. 금을 훔치려는.”
원주민의 표정에 더 이상 가식적인 미소는 없었다. 루프 거래가 아니라면 에이미 일행은 그가 가장 증오하는 외부인, 그것도 귀족일 뿐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 더더욱 들여보내서는 안 되겠어.”
“저것들의 몸을 수색해 보는 건 어떨까? 무기 같은 걸 숨겨서 들어왔다면 부락민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마하투는 비록 적이라도 여자의 몸을 만지고 싶지는 않았다. 전사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함구하는 이유는 동료가 말하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1. 케르고 자치 구역 (3)
외부인들은 갖은 변명과 핑계를 일삼으며 케르고를 짓밟았다. 검문검색이라는 명목으로 순결을 잃은 여성도 부지기수였다. 동료의 증오심이 아무리 엇나가도 외부인의 편을 들기란 무리였다.
“지금부터 검사를 시작하겠다. 너부터 이리 와서 팔을 들어.”
에이미는 거절과 경계를 동시에 담아 자리를 지켰다.
만약 남자가 고수가 아니었다면 모욕을 당한 순간 배를 올리쳤겠지만 살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소란을 각오해야 할 것이고, 저지르기에는 장소가 좋지 않았다.
“보고 있자니 너무하는군.”
리안이 에이미의 앞을 가로막았다.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야 에이미가 낫겠지만 상대방이 여자의 수치심을 건드릴 생각이라면 자신이 나서는 게 옳았다.
“팔코아는 죽었어도 프리먼의 조직은 건재해.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너희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프리먼의 위세를 빌린 리안의 전략은 재치가 있었다. 에이미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케르고인은 예상보다 훨씬 호전적이었다.
역린을 건드린 듯 마하투의 얼굴이 붉어졌다.
“도전인가? 얼마든지 덤벼라. 케르고인은 도망치지 않는다.”
-모두 물러서. 마하투의 정신이 집중되고 있어.
아린이 정신 채널을 통해 알렸다.
말이 끝날 시점에는 모두가 느꼈다. 둔감한 리안조차 위화감을 간파할 정도의 투기였다.
에이미는 스피릿 존을 겨누었다. 마하투의 투기가 어디까지 치솟는지에 따라 전투 방식이 결정될 것이다.
뿌우우우우우!
그때 동굴 저편에서 뿔 나팔 소리가 들렸다.
구불구불한 터널 안쪽까지 들린다면 얼마나 큰 소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팔 소리가 동굴 전체로 퍼져 나가자 마하투는 놀란 눈으로 입구를 쳐다보았다.
동료의 반응은 그보다 더 심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떨고 있었다.
“마하투, 이건 진곡의 나팔이야. 대체 어떻게 된…….”
동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하투가 몸을 날렸다.
“제길! 어째서 진곡의 나팔이! 전쟁이라도 터졌단 말인가?”
진곡의 나팔은 케르고 부족이 설정한 최고 등급의 경계경보였다. 이 소리를 듣는 즉시 모든 부족원은 소리의 근원지로 집결해야만 한다. 어떤 계층이든 예외는 없었고 불참할 경우 징벌을 받게 된다.
원주민이 사라지자 에이미 일행도 혼란에 빠졌다.
“뭐지?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인데?”
“일단 가 보자. 막다른 곳에 있는 건 위험하니까.”
에이미 일행은 동굴을 벗어나 소리가 들리는 곳에 도착했다.
7개의 터널이 중앙에서 만나는 거대한 광장이었다.
원주민들이 모여들고 있었는데, 숫자가 많아서 무슨 일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웅성거리는 소음이 합쳐져 말소리를 전하기 힘들었다. 정신 채널을 기대해 봤지만 아린은 단상만 쳐다보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경배하라! 우리를 구원할 신의 사자가 오셨도다!”
단상의 노인이 소리쳤다. 그러자 족히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으며 한목소리를 냈다.
“신의 사자를 맞이합니다.”
마치 세상이 꺼지는 듯 인파가 주저앉았다. 단상까지 시야가 트였고 노인의 앞에 서 있는 시로네가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시로네의 눈이 에이미와 마주쳤다. 불과 2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이지만 황당한 상황을 너무 많이 겪었기에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에이미.”
신의 사자를 외치던 자들이 소리를 죽였다. 정적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고, 몇몇 사람이 에이미를 쳐다보았다.
그중에는 마하투도 포함되어 있었다. 에이미는 그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드는 모습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시로네.”
원주민의 시선이 다시 시로네에게 향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시로네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에이미, 이 사람들 왜 이러는 거야?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시로네를 보며 에이미는 눈썹을 긁적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난들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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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네가 걸음을 옮기자 인파가 대나무 쪼개지듯 갈라졌다. 절을 하는 자세에서도 일사불란하다는 것은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시로네의 얼굴은 초췌했다. 2시간 동안 모르는 언어에 노출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보통은 말이 안 통하면 대화를 포기하기 마련이나 제단의 집행자들은 한시도 시로네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절을 하는 바람에 결국 한마디도 안 하고 왔어. 여기 사람들 나한테 왜 저러는 거야?”
“몰라. 우리도 이제 왔단 말이야. 시험에는 합격한 거야?”
“어, 그런 거 같기는 한데, 문제가 좀 있어.”
“문제라니? 무슨 문제?”
미로의 시공에서 보았던 장면을 설명하려면 말이 장황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고 상황도 좋지 않았다.
뿔 나팔을 불었던 노인이 시로네에게 다가왔다.
노인의 뒤편으로 마하투가 따라붙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신의 사자라면 미로의 시공 8개를 전부 개방시켰다는 얘기인데,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달리 솜털이 보송한 소년이라는 게 충격적이었다.
-신의 사자에게 절대복종을.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은 말이었다.
외부인들이 말하는 종교적인 믿음과는 차원이 달랐다. 백성이 왕에게 복종하듯, 케르고인에게 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힘이었다.
마하투는 걸음을 빨리하여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정말로 신의 사자라면, 노인과 대면하기 전에 에이미 일행에게 무례를 저질렀던 죗값을 치러야 했다.
“경외하는 신의 사자시여, 외람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이 당신의 동료입니까?”
지스가 통역을 위해 다가오자 마하투가 손을 들어 말렸다.
“아니, 누군가 정신 계열의 마법을 쓰는 것 같던데, 그 사람이 있다면 신의 사자와 대화를 할 수 있게 해 다오.”
마하투가 그 사실을 깨달은 시점은 에이미의 언성이 높아졌을 때부터였다.
보통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면 말이 단순하고 짧아지게 마련이지만 몇몇 부분은 꽤나 정확하게 케르고어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린의 스피릿 존이 마하투의 그림자에 스며들었다.
시로네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당황했지만 어떤 능력인지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끝났다는 뜻으로 이해한 마하투가 조금 전의 질문을 다시 했다.
“신의 사자시여, 이분들이 동료가 맞습니까?”
“네. 제 친구들이에요.”
마하투는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았으나 시로네의 친구에게 무례를 범한 건 일족의 운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실수였다.
케르고가 멸망한 건 루프나 내란, 화산 폭발 때문이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전해지고 있으나 이면에는 아무도 모르는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케르고인은 천사를 화나게 했다.
그리고 눈앞에 서 있는 소년은 천사의 후예였다.
대대로 전해지는 500년 전의 이야기는, 현시대를 사는 케르고인의 무의식 속에 뿌리 깊은 공포로 자리 잡고 있었다.
마하투의 표정이 변해 갔다. 낭패감에서 공포로, 그러다가 각오를 마친 듯 원래의 표정을 되찾은 그는 부서질 정도로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