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52
아니, 어쩌면 천국에 가는 것조차 두렵지 않을 정도의 실력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 사람은 어떻게 됐죠? 무사히 돌아왔나요?”
“물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신의 사자가 동료들과 천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위대한 라의 의지를 전해 듣고 왔습니다.”
“어떻게 돌아왔죠? 입구를 통해서 나오는 것인가요?”
“불가능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천국의 문은 이모탈 펑션으로 작동합니다. 문이 있기에 이모탈 펑션도 가능한 것이죠. 하지만 천국에는 이모탈 펑션으로 작동시킬 매개물이 없기 때문에 돌아오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합니다.”
“어떤 방법인데요?”
“거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돌아오며 수지맞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적막이 감돌았다.
신이 존재한다는 미지의 공간조차 장사 수단으로 넘나들 정도의 강자들이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라고 말했다는 건 자신의 실력으로 돌아오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카니스의 말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돌아오지 못한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죽음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배를 타고 먼 나라로 떠나는 게 아니다. 시공간을 통과하여 어딘가에 있는 별에 도착하는 일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위험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의 명운이 걸린 일입니다. 케르고를 도와주신다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습니다. 황금을 원한다면 드리겠습니다. 케르고의 여성을 원한다면…….”
“아뇨,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보상은 받을 수 없을 거 같아요.”
연회에서는 얘기나 들어 보자는 식으로 승낙했지만 지금부터는 상황이 달랐다.
솔직히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죽음의 공포와 맞먹는 강렬한 호기심은 들었다.
최선의 대답을 떠올린 시로네는 친구들의 의사를 물을 필요도 없이 말했다.
“생각을 좀 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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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에 홀로 남은 카둠은 별을 바라보았다.
시로네 일행에게 보였던 비굴한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토아 산의 지배자답게 턱을 치켜들고 서 있던 그는 인기척을 느끼고 시선을 돌렸다.
제단의 입구에서 노인이 기침을 하며 걸어왔다. 장로 하시드였다.
“정말로 그들을 보내실 겁니까?”
하시드가 존대를 하자 카둠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아버지, 아들에게 그런 말투는 좋지 않습니다.”
“아들이라니요? 제 아들은 이미 세상에 없다는 걸 알고 계시잖습니까, 아버지?”
서로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묘한 상황이이였다. 물론 호호백발의 하시드가 건장한 카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더 기괴했다.
카둠은 본색을 드러냈다. 번뜩이는 안광 속에 200년을 넘게 살아온 자의 경륜이 엿보였다.
“흥, 아직도 오해하고 있는 거냐? 카둠의 죽음은 사고였다. 내가 죽인 게 아니야.”
“물론 그러시겠죠. 하지만 제 아들이 죽지 않았다면 캉이라는 이름의 아버지가 카둠의 이름을 빌려 또다시 족장이 되지도 못했겠지요.”
카둠은 하시드를 향해 돌아섰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아버지, 저들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설령 그 소년이 신의 사자라고 해도 우리 부족이 원하는 건 가지고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재물은 이곳에 남는다. 원하는 걸 가지고 돌아오면 얼마를 줘도 상관없지만, 실패한다면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야. 모든 게 케르고를 위한 일이다.”
“과연 그럴까요? 아버지는 200년 전에 신의 사자를 통해 300년의 수명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케르고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닙니까?”
하시드는 경멸하듯 카둠을 노려보았다.
자식은 노쇠하여 걸음조차 떼기 힘들지만 아버지란 사람은 단단한 근육과 매끈한 몸매로 청춘을 만끽하고 있었다.
300년의 수명을 얻은 뒤로 족장은 폭주했다. 수명을 늘리기 위해 각지의 언로커를 수소문했고, 막대한 자금을 썼다. 부족의 재산이 줄어들자 루프까지 외부인에게 팔았다.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생이다. 영원한 젊음이다.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세상의 그 무엇이 아깝겠는가?
“이제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날 이후로 수많은 언로커가 떠났으나 돌아온 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영생에 집착하면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미로 님은 일찌감치 그 사실을 깨닫고 경고를 내리셨습니다.”
“닥쳐라! 나만큼 부족을 강하게 이끌 수 있는 족장은 없다. 네가 족장이던 시절의 케르고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잊었느냐? 너는 실패한 지도자일 뿐이야. 케르고에는 내가 필요하다. 내가 케르고 그 자체인 것이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카둠을 바라보며 하시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강하다. 이백 살이 넘는 능구렁이에 강력한 무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호언장담한 대로 그는 부족을 일으켜 세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를 마지막으로 케르고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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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네 일행은 숙소로 향했다.
광장에서 서북쪽 방향으로 뻗어 있는 동굴은 복잡했으나 이스타스를 제집처럼 드나들던 시로네에게는 그저 귀찮은 갈림길이 많은 지역에 불과했다.
숙소는 커다란 방이었고 기대하지 않았던 침대가 있었다. 게다가 침대 옆에는 수납장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외부인 전용의 방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묵었을까? 그들은 천국으로 떠났을까? 아니면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을까?
족장의 말이 너무도 충격적이라 숙소에 도착한 뒤에도 모두는 말이 없었다.
여장을 풀고 수납장에 정리한 사람들은 카니스를 돌아보았다. 신의 사자, 천국, 케르고의 사정. 이제는 그가 아는 것을 털어놓아야 할 차례였다.
“나는 약속을 지켰어. 그러니 설명을 해 봐.”
“말 그대로야. 다 들었잖아.”
에이미는 시로네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카니스를 마주 보며 쏘아붙였다.
“천국이라니, 정말 그런 곳이 존재한단 말이야? 너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솔직히 나도 확신은 못 하고 있어. 게다가 그 질문에 대해서는 시로네에게 듣는 게 빠를 것 같은데. 하시드가 너에게 물었잖아. 미로의 시공에서 무엇을 본 거야?”
에이미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랬었지. 시로네, 말해 봐. 어떤 것을 본 거야?”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곳이겠지.”
카니스의 짐작이 정확했다. 시로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맞아. 어딘가의 장소였어.”
바다가 있었고 숲이 보였다. 원형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중심에 첨탑이 서 있었다.
시로네는 첨탑 위의 빛으로 빨려 들어갔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제단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여기까지가 내가 본 광경의 전부야. 만약 그곳이 천국이라면 카둠의 이야기도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겠지. 그래서 판단하기 전에 카니스의 말을 들어 보고 싶어. 너는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거야?”
문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하비스트가 카니스에게 돌아왔다. 평소에는 쉬지 않고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 그였지만 지금은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내 스승님 아케인은…… 천국이라는 곳에 갔다 온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시로네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케인이 천국에 간 적이 있다. 알페아스에게 배신을 당한 이후 50년 동안 던전에 틀어박혔으니 시기는 훨씬 전일 터였다.
“아케인도 케르고 유적에 왔다는 거야?”
“아니. 다른 곳이었을 거야. 카둠의 말대로 세계 곳곳의 유적지는 어떤 식으로든 천국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아. 물론 소속 국가에서 통제하는 상황이지만 80년 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케르고 유적은 특이하지.”
80년 전이라면 아케인의 나이가 60세에 불과할 때였다. 인간의 수명에 비하면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149세의 아케인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생각하면 마법의 위력은 전성기 시절이라고 봐도 좋았다.
“천국에 무엇이 있는데? 거기는 도대체 어떤 곳이야?”
“그건 나도 몰라.”
시로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아케인이 천국을 경험했다면 카니스는 천국에 대해 알아야 했다. 아케인의 지식을 하비스트가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하비스트가 설명을 보충했다.
“카니스의 말이 사실이다. 아케인은 천국에 대한 기억을 지웠어.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그가 천국에 간 적이 있다는 것뿐이다.”
“스스로 기억을 지웠다고?”
“그래. 완벽하게 지워 버렸다. 그래서 거기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몰라. 아마도 그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케인의 인물 됨을 아는 시로네는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이 인정하는 3급의 대마법사가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감춰야 했던 비밀이 대체 뭘까?
“카니스, 천국이란 뭐지? 정말로 신이 살고 있는 곳이야?”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기 때문에 가는 거야.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그러니 나를 그곳에 데려다줘.”
“아니, 나는 생각이 좀 변했어. 네 말이 맞았어. 너무 위험해. 호기심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아니, 네 생각은 상관없어. 내가 제안했던 거래는 나와 아린을 그곳에 보내 달라는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반드시 천국에 들어갈 테니까.”
“솔직히 너희도 보내고 싶지 않아. 일단 들어가면 원래의 문으로는 돌아올 수 없다고 했잖아. 게다가 내가 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천국의 문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거야. 족장은 절박해 보였으니까.”
1. 케르고 자치 구역 (6)
시로네의 말이 맞았다. 성취와 희생의 방의 난이도만 봐도 알 수 있듯 케르고인이 원하는 건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미로의 시공에서 힘을 증명하거나 8개 전부를 동시에 개방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수준이 아니면 천국의 문은커녕 자치 구역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카니스, 그걸 꺼낼 때가 된 것 같다. 시로네가 가지 않는다면 우리도 천국에 갈 수 없어.
-하지만 의외인데. 이 정도로 겁을 먹을 줄이야.
-좋게 봐주자면 통찰력이겠지. 들은 정보를 토대로 촉이 움직이는 것 같다. 어쨌든 시작해 보자고.
하비스트의 의견을 수렴한 카니스는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만약 나에게……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떡할래?”
2. 거핀의 문 (1)
방 안에 전기가 흐르는 듯 시로네 일행의 눈에 빛이 번뜩였다. 새로운 국면이었다.
시로네가 천국을 위험으로 인식한 이유는 돌아올 확률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출구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자세히 말해 봐. 돌아올 방법이라는 게 뭔데?”
“알다시피 우리는 스승님이 물려준 재산을 마법협회에 강탈당했어. 길바닥에 나앉은 신세가 되었지. 그렇다고 알페아스에게 도움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어쨌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하던 중에 하비스트가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냈어. 너희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린과 여행했지. 대마법사 빌토르 아케인이 절대로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비밀 장소를 찾아낸 거야. 기억을 지웠기 때문에 마법협회에서도 이곳만큼은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지.”
“그 비밀 장소에 이곳으로 돌아올 방법이 있었다는 거야?”
“아니. 이건 그 정도가 아니야. 직접 보여 줄게.”
아린이 품속에서 정육면체의 상자를 꺼냈다.
표면에 음각과 양각으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색에 가까웠는데,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무지갯빛을 냈다. 큐브처럼 틈새가 벌어져 있어서 손으로 돌리면 돌아갈 듯했다.
테스는 아린이 들고 있는 물건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난반사를 일으키는 색감과 모방이 불가능한 문양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은 터였다.
“저건 고대 유물이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표면에는 마법적인 힘이 깃든 문양이 새겨져 있지. 강력한 잠금장치 때문에 봉인을 풀기 전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들었어. 내 말이 맞지?”
“맞아. 덧붙이자면 이것은 잠금장치가 풀려 있다는 거지.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고.”
테스의 눈빛이 번뜩였다.
엘자인 가문에서 고대 병기의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는 국가 기반을 흔들 수 있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알기로 고대 유물의 봉인을 푸는 건 국제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다. 어떤 국가에서 유물의 잠금장치를 해제한다면 그 나라는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각오가 되어 있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좀 봐도 돼?”
시로네가 말하자 아린은 고대 유물을 넘겨주었다. 친구들이 시로네의 침대로 몰려들었다.
시로네는 표면을 문지르고 틈새도 살펴봤다. 이리저리 돌려 보고 있는데 어떤 장치를 건드렸는지 중심선을 기준으로 큐브가 벌어지더니 유리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깜짝 놀란 시로네가 큐브를 압박했으나 고정이 되어 버린 듯 닫히지 않았다.
유리관의 내부에 해독할 수 없는 문자가 떠올랐다.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모르는 이상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우와, 예쁘다.”
반면에 테스는 눈을 빛냈다. 어릴 때부터 동화 대신 유물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던 그녀는 가슴이 벅찼다.
시로네에게 큐브를 건네받은 그녀가 카니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건 어디에 쓰는 거야? 아무리 봐도 사용 방법을 모르겠네.”
“나도 자세히는 몰라. 아린이 찾아냈거든. 이리 던져 봐.”
테스는 큐브를 떠받치고 조심스럽게 넘겼다. 하지만 카니스는 이미 실험을 거친 듯 긴장감 없이 아린에게 던졌다.
아린이 큐브를 다루는 모습을 지켜본 시로네는 그녀가 재수 좋게 사용 방법을 알아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대 유물을 처음 보게 되면 자신이 알고 있는 물건에 기초하여 추론하려 들 것이다. 시로네 또한 큐브나 폭탄을 떠올렸다. 하지만 형태의 강박이 없는 그녀는 사물의 특이점을 찾아내는 게 가능했다.
초경의 위력을 실감한 시로네는 아린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나도 이유는 모르지만 어떤 것들을 누르면 작동이 되더라고. 여기를 이렇게 한 다음에…… 이 부분을 누르면 되는 것 같아.”
유리관에서 붉은 빛이 튀어나와 방 안을 피처럼 붉게 물들였다. 아린이 바닥에 내려놓자 에이미가 베개로 얼굴을 가리며 소리쳤다.
“뭐야? 폭발하는 거야?”
베개가 폭발을 막는 데 얼마나 유용할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는 듯 베개 너머로 눈을 빼내고 반응을 기다렸다.
삐삐 하는 기계음이 빨라지더니 음으로 이어지면서 붉은 빛이 사라졌다.
고대 유물을 집어 든 아린이 큐브가 놓였던 바닥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었다.
“여기까지가 공간 입력이야. 큐브가 놓여 있는 곳을 기억하는 거지. 그러면 이제 다시 해 볼게.”
큐브를 만지자 유리관이 이번에는 푸른 빛을 뿜었다.
아린은 적당한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시로네 근처에 고대 유물을 놓았다.
유리관이 백광으로 변하더니 큐브의 허공에 거대하고 검은 구체가 태어났다. 아린이 조금 전에 가리켰던 장소에도 같은 형태와 크기를 가진 구체가 떠 있었다.
“어라, 이건?”
시로네는 깜짝 놀랐다.
미로의 시공에서 보았던 블랙홀이었다. 공간을 압축시켜 관통하는 능력. 이 능력이 목표로 하는 바는 명백했다.
“이제야 알겠어. 이건 포탈이야. 시공간을 관통하는 포탈.”
“바로 맞혔어. 메타게이트라는 장치지. 이 장치가 우리의 비장의 무기가 되어 줄 거야. 우선 하비스트로 시범을 보여 주지.”
카니스는 검은 구체에 선뜻 몸을 던질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생명이 없는 하비스트는 이런 실험에 제격이었다.
하비스트가 블랙홀에 손을 넣자 다른 편의 블랙홀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에이미와 테스가 침대 위로 펄쩍 뛰었다.
포탈과 포탈의 거리는 3미터. 하비스트는 3미터나 분리된 채로 양쪽에 걸쳐 있는 상태였다. 만약 사람으로 실험했다면 더욱 기괴한 풍경이 연출되었을 터였다.
“크크크크, 이거 할 때마다 재밌는데?”
“하비스트, 위험해. 이제 그만 나와.”
아린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실험에 의하면 포탈이 유지되는 시간은 1분이었다.
하비스트가 빠져나가고 포탈이 사라지자 카니스가 다시 큐브를 주워 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때? 특정 지점의 장소를 기억해서 시공간을 연결시키는 워프 장치야. 이곳의 위치를 기억시켜 놓은 다음 천국에서 사용하면 언제라도 되돌아올 수 있지.”
불가능한 상황이 가능한 상황으로 변하면서 시로네 일행의 마음속에 파문이 일었다.
테스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엄청난 거잖아?”
대마법사 아케인이었기에, 그런 그가 목숨을 걸고 천국에 다녀왔기에 소유하고 있었을 고대의 유물. 그것만으로도 국가 1급 기밀은 충분했다.
더욱 대단한 건 봉인이 풀려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 물건의 존재가 세상에 밝혀지면 외교적으로 마찰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앵무 용병단이 사용했던 마법진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한 명의 간자가 왕성에 침투하여 메타게이트를 발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병력이 물밀듯이 쳐들어올 것이고 왕국은 전복될 위기에 놓일 것이다. 고대 유물이란 그런 것이었다.
에이미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쓰임도 쓰임이지만 금전적으로 가치를 매겨도 상상을 초월했다.
아케인이 카니스에게 얼마의 유산을 남겼는지는 몰라도 이 물건 하나가 그 몇 배에 해당할 것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거…… 팔 수 있을까?”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솔직히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100억? 1천억? 팔 수만 있다면 훗날 12대 손녀딸이 매일 밤 에이미의 초상화 앞에서 절을 할 것이다. 카니스가 비밀을 고수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테스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마치 감정사처럼 턱을 괴고 메타게이트를 살펴보던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솔직히 이것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최소한 국가 단위는 되어야지. 돈도 돈이지만 파장이 엄청날 테니까. 국가를 제외하고 가장 이상적인 구매자라면 상아탑 정도가 있을 거야.”
토르미아 왕국에 거주하는 마법사라면 마법협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타국에도 마법협회가 있다.
하지만 상아탑은 그런 개념으로 접근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세계정세와 상관없이 마법을 탐구하는 자들이었다. 초국가적인 단체였고, 무력은 전 세계와 싸워도 밀리지 않았다.
“상아탑은 세상의 첨예라고 불리는 곳이잖아. 고대 유물이라도 그들이 움직일 것 같지는 않은데.”
“마법사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일단은 물건이니까.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해. 70년 전 엑스마키나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어.”
“엑스마키나?”
“코트리아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고대 병기의 이름이야. 아빠에게 들었는데, 코트리아에서 엑스마키나의 보안을 강화하려고 이전 작업을 했었대. 원래의 위치에서 30미터 떨어진 신축 벙커로 이동시키는 작업이었는데, 국제사회가 난리가 난 거야. 당장이라도 세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였지. 무슨 뜻이지 알겠어? 고대 병기가 단지 30미터를 움직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 버리는 거야.”
“무시무시하네. 어떤 무기인데?”
“엘자인 가문도 첩보전에 참여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 어떤 형태인지, 얼마나 큰지, 심지어 발동 원리조차 몰라. 하지만 당시의 주변국의 반응으로 유추하건대 맵 병기일 확률이 높을 거야.”
“맵 병기?”
“현장에서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라는 거야. 최고 수뇌부가 지도를 놓고 결정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야. 아직 봉인은 풀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모르는 일이지. 벌써 70년이나 흘렀으니까.”
맵 병기는 인간미가 없다. 지도에는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 누가 살고, 어떤 문화를 향유하며,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그려져 있지 않다. 삼각자와 컴퍼스, 연필만으로 계산되는 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