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55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토해 낸 거인이 토막 난 묘목을 테스에게 집어 던졌다.
1미터 길이의 묘목이 땅에 처박히는 순간 테스가 땅을 찍으며 날아올랐다.
투척의 자세를 취하고 있던 거인이 연결되는 동작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허공에 떠 있는 테스가 피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관성을 무시하듯 전방으로 날아오르며 거인의 주먹 위에 착지했다.
외중력이었다.
거인의 팔뚝 위를 돌진한 그녀는 사브르로 왼쪽 눈을 베고 뛰어내렸다. 그리고 거인이 눈을 가리며 상체를 쳐들자 일행에게 소리쳤다.
“지금이야!”
시로네가 포톤 캐논을 쏘았다. 괴물의 덩치를 고려했을 때 정신력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대포알의 크기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빛이 거인의 복부를 직격했다.
포톤 캐논을 품에 안듯 거인의 몸이 휘어지면서 두 다리가 떠올랐다.
거인이 밀려나는 광경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전에 똑같은 기술에 당했던 카니스가 환각통을 느끼며 눈을 찡그렸다.
시로네 일행은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면과 수평을 이루던 거인의 다리가 내려오더니 발바닥으로 땅을 짓누르면서 정지했다.
모두 말을 잃었다.
포톤 캐논을 몸으로 받아 냈다. 성취와 희생의 방에서 5,000에 근접한 파괴력을 냈던 마법이 아니던가? 철문이라면 몰라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물이 버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저걸 맞고 멀쩡할 수가 있어?”
거인의 인상은 구겨져 있었다. 주름이 선명해진 얼굴이 기괴할 정도로 무서웠다.
그 순간 측면에서 에이미의 파이어볼이 날아와 거인의 얼굴을 불태웠다.
에이미의 판단은 주효했다. 불은 세포의 천적. 아무리 근력이 강하더라도 구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수염까지 타고 있는 거인이 얼굴을 붙잡고 휘청거렸다.
불꽃에 갇힌 거인의 얼굴을 확인하자 소름이 돋았다. 녹아서 흘러내리는 피부 안쪽에 새로운 피부가 재생되고 있었다.
테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건 스키마잖아? 거인이 어떻게 스키마를?”
3. 속된 자의 숲 (3)
아린이 어둠의 권능을 시전했다. 거인이 상처를 입은 지금이야말로 능력이 통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아린이 사용하는 어둠의 권능은 식물처럼 가지를 뻗어 내는 형태의 그림자였다. 거인의 그림자로 파고든 가지들이 넝쿨처럼 올라와 발목을 붙잡았다.
아린은 정신 충격 마법인 멘탈 쇼크를 시전했다.
텔레파시가 도둑이라면 멘탈 쇼크는 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트라우마까지는 무리지만 공포증 정도의 충격은 얼마든지 전할 수 있었다.
멘탈 쇼크의 진정한 강점은 마인드 컨트롤로 연계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아케인의 장기이기도 했던 마인드 컨트롤은 상대의 육체를 조종하는 마법이지만 성공하기가 까다롭다.
100퍼센트 확률에 근접하려면 상대 정신력의 20배에 해당하는 집중력이 요구된다.
결국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략과 전술에 따라 때때로 그러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멘탈 쇼크가 성공했을 경우였다.
거인을 마인드 컨트롤로 지배할 수만 있다면 숲에서는 두려울 게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카니스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결과를 주목했다.
멘탈 쇼크는 실패였다.
얼굴에 불이 붙은 거인이 더욱 난폭한 동작으로 일행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텔레파시, 멘탈 쇼크, 마인드 컨트롤. 정신 계열의 3대신기라 부르는 것들이 거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초경의 그녀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무력감이었다. 여린 감성에 불이 치솟았다.
‘왜지? 왜 안 통하는 거지? 그냥 덩치가 큰 인간일 뿐이잖아?’
“아린! 피해!”
카니스가 아린을 막아서며 섀도 월을 시전했다.
그림자가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거인의 주먹이 그림자에 처박혔다. 섀도 월의 어둠이 가루처럼 흩날렸다. 마법의 흡수량을 초과하는 충격을 낸 것이다.
하지만 거인도 힘을 빼앗겼는지 더는 밀고 들어오지 못했다.
하비스트가 거인의 팔목을 타고 혈관이 지날 법한 부위를 손톱으로 베었다.
스키마를 터득했다면 인간의 육체와 흡사할 것이라는 계산이 들어맞았다.
팔꿈치가 접히는 부분의 혈관이 잘리면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하지만 상처는 금세 아물었다. 오히려 고통에 자극을 받았는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진짜 강하다. 세상에 이런 생명체가 있다니.’
시로네는 순간 이동으로 거인을 유인하자 리안이 포를 뜨듯 거인의 뒤꿈치를 베었다.
카니스가 어둠의 권능을 시전했다. 톱니 형태의 그림자는 공격에 특화되어 있지만 발목을 휘감은 상태에서도 근육을 자를 수가 없었다.
거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게 전부인 카니스가 소리쳤다.
“엄청난 괴력이야! 뭐든지 빨리 해 봐!”
에이미의 플레임 스트라이크가 거인의 얼굴을 폭격했다. 하지만 불타고 있는 마당에 불을 더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바람의 힘이 더해지긴 했지만 물리력만 비교하면 포톤 캐논보다 약한 위력이었다.
시로네는 광자를 압축시켰다. 모두가 포톤 캐논이라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예상보다 발동 시간이 길었다.
빛의 덩어리가 물컹하게 일그러지는 모습을 발견한 카니스가 짜증을 터뜨렸다.
“젠장! 뭐 하는 거야! 집중하란 말이야!”
“아니, 그게 아니야.”
아린이 말했다.
“광자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는 거야.”
물리력으로 쓰러뜨릴 수 없으니 절삭력으로 변환한다. 열로도 충격으로도 소용이 없다면 예리함을 만들면 된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옳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카니스는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빛의 형태를 변화시킨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시로네도 느끼고 있었다. 방출하려는 빛을 인위적으로 억제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광자를 압축시키는 힘의 방향에 차이를 두면 가능하리라 여겼지만 정신의 소모량이 터무니없이 많았다.
이빨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흔들리는 정신을 금강불괴로 조이면서 집중의 강도를 높이자 광자가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원반의 형태로 변한 포톤 캐논이 거인을 향해 쇄도했다.
어둠의 권능을 힘으로 끊어 낸 거인이 허리를 뒤틀었다. 빛의 칼날이 옆구리를 베고 지나가자 상처가 한 뼘이나 벌어지면서 핏물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어쨌거나 치명타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일행은 검사고 마법사고 눈을 뒤집으며 달려들었다.
사브르로 찌르고 대검으로 두들겨 팼다. 화염으로 태우고 그림자의 톱으로 써는 등 별짓을 다 하자 거인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공격은 계속되었지만 손칼만 가지고 드래곤을 해체하는 기분이었다. 근섬유 한 가닥만 해도 강철의 강도였다.
에이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하아, 하아. 죽었지? 죽었을 거야, 응? 그렇지?”
“몰라. 죽었겠지. 불안하면 한 번 더 할까?”
테스가 몸서리를 쳤다.
“아니, 더 이상은 못 하겠어. 잔인한 것도 정도가 있지.”
“어둠의 권능으로 목을 자르려고 했는데 진짜 안 잘리네. 살부터 발라내는 건 어때?”
카니스의 말이 결정타였는지 전부 핏기가 가신 얼굴로 물러섰다. 어쨌거나 거인은 움직일 기미가 없었고 시로네가 낸 상처도 재생되지 않으니 놔두는 게 상책이었다.
테스가 시로네에게 엄지를 쳐들었다.
“멋졌어, 시로네. 이번에도 새로운 마법이네?”
“운이 좋았어. 거인이 피했다면 두 번은 없었을 거야.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네.”
카니스는 못마땅했다. 포톤 캐논은 충격 위주의 마법이다. 그런데 형태를 바꾸어 절삭력으로 변환시킨다? 발상 자체는 굉장하지만 암흑 마법사로서 밥그릇을 뺏긴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흥, 이겼으니 망정이지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어. 우리가 팀으로 움직이는 이상 개인의 정신력은 파티의 정신력에 수렴해. 실패했다면 전투 불능이었다고. 마법사의 신체마저 방패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전열 이탈은 위험하단 말이야.”
“나도 알고 있어. 생각보다 효율이 나빠서 나도 당황했다고.”
카니스는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다. 쏘아붙이기는 했지만 그 상황에서 노선을 선회한 통찰력은 확실히 재능이었다.
아린도 같은 생각인지 시로네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초경으로 지켜보다가 말했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저 아이, 정말 발상이 자유로워.”
도박이지만 확률이 높은 도박이었다.
승리에 도달하기 위해 포기할 것과 그러지 않을 것을 택하는 통찰력. 10개 중에 1~2개만 틀려도 지금의 결과에는 도달하지 못했을 터였다.
“쳇, 원래부터 순발력은 좋은 놈이었으니까.”
카니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찌 됐건 지금은 팀이었고 인정할 것을 부정하는 건 열등감의 소치였다.
“그으으으.”
거인의 신음 소리를 내자 시로네 일행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직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는 게 보였다.
의견을 교환할 필요도 없이 숲으로 내달렸다.
천국이라는 곳이 어떤 세계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거인하고는 두 번 다시 싸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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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는 홍안과 테스의 감각, 자연인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아린의 능력까지 더해지자 별다른 위기 없이 길을 잡을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암벽 지대였다.
그림자가 많다는 게 카니스와 아린의 마음에 들었다. 시로네의 마법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암흑 마법은 어둠에서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여기라면 안심이군. 여차하면 다크포트로 움직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다크포트는 여러 명을 이동시킬 수가 없잖아?”
암흑 마법에는 광자화 마법처럼 효과를 전이시키는 이론이 없다. 따라서 암흑의 마법사 외에는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는 게 불가능했다.
카니스는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최소한 전술적으로 도움은 되겠지. 여기라면 혼자서도 적들을 유인할 수 있으니까.”
테스가 순번대로 돌아오는 물통을 넘겨받으며 말했다.
“스키마를 사용하는 거인이라니. 여기 너무 위험한 거 아냐? 게다가 아린의 정신 마법이 소용없다는 것도 불안하고.”
“미안해. 내가 도움이 못 돼서.”
아린이 고개를 숙이자 테스가 양손을 휘저었다.
“아니야. 거인은 나도 감당이 안 되던 것을 뭐. 어쨌거나 이겼잖아. 우리 모두가 합심해서 이겼다는 게 중요하지. 그러고 보니 천국도 별거 아니네, 호호호!”
테스가 분위기를 풀었으나 마법사들은 오히려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임기응변이 몸에 밴 검사와 달리 마법사는 예상 밖의 상황이라는 것을 싫어한다. 모든 변수를 통제하여 마침내 지배해야 안심할 수 있는 게 그들이었다.
광자의 형태를 변형하는 마법은 파티를 운용하는 전략에 들어 있지 않았던 목록이었다.
변수에 변수가 더해지면 결국 전멸로 간다는 것을 아는 그들은 개인의 발상에 의지하여 얻어 낸 승리가 기쁘지 않았다.
“조금 전의 전투에서 우리는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했어. 도착하자마자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이쯤에서 복귀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어때?”
시로네가 운을 띄우자 에이미가 말했다.
“난 처음치고는 괜찮았다고 봐. 승리했다는 사실 자체를 간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 말은, 어쨌든 시로네는 해법을 찾아냈고 앞으로 그 해법은 여러 상황에 접목될 여지가 있다는 거야. 따라서 같은 적을 만나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피할 수 있어.”
에이미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다.
물론 카니스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쪽이었다. 하지만 욕심으로 거짓된 의견을 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아마도 시로네는 조금 전의 전략을 다시 사용하지 않을 거니까. 그렇지?”
“맞아. 너무 위험해. 광자를 압축시키는 시간도 그렇고 효율도 떨어져.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시도하지 않을 것 같은데.”
“발상은 그럴듯했어. 광자에 질량을 담을 수 있다면 빛 또한 물질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형태의 변형도 가능하다, 그런 생각을 한 거지?”
카니스가 시로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시도하려고 했던 방식이 암흑 마법의 전유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판이야. 정신을 세공하는 건 너하고는 상극이라고. 암흑 마법의 특성이니까. 암흑 마법은 충격력은 떨어지지만 형태의 변형을 통해 공학적인 힘을 발휘해. 나 같은 경우는 톱니, 아린 같은 경우는 나무덩굴.”
아린이 어둠의 권능으로 시범을 보였다. 땅 위로 솟아오른 그림자가 정교한 사과나무의 형태로 변했다. 거기에 더해 크기를 조절하여 입체미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시로네가 감탄하자 아린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마법사들은 사방식을 쓰지만 암흑 마법은 정신 세공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사방식이 필요가 없어. 우리는 이걸 모델링이라고 불러. 얼음이나 어둠처럼 안정성이 좋은 계열은 조형이 쉬운 반면에 불이나 빛은 활동성이 너무 강해서 모델링이 어려운 거야.”
에이미가 동의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러네. 불꽃의 형태까지 조절하지는 못하거든. 그래서 에어 계열의 속성을 접목해서 마법을 구사하는 거고.”
“맞아. 하지만 빛은 화염보다 더 어려워. 아니, 이론상 모델링이 불가능해. 다른 속성에 빛의 특징을 더할 수는 있어도 빛에 다른 속성을 더할 수는 없는 것과 같아. 물론 시로네는 신의 입자로 그것을 가능하게 했지만 특수한 경우일 뿐이야. 덕분에 어느 정도의 모델링은 성공했지만 그조차도 실전에 쓰기에는 무리가 있어.”
시로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면 앞으로 거인과 어떻게 싸워야 할까? 레이저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거인의 움직임을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레이저는 내구력에 상관없이 물질을 파괴할 수 있지만 에너지 축적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대상에게는 효과가 낮았다.
세상에 없는 마법이었기에 망정이지 하비스트가 레이저의 특성을 미리 알았다면 저번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문제는 우리가 만난 적이 거인 하나뿐이라는 거야. 이 세계에서 거인은 얼마나 강하지? 그걸 알 수만 있다면 탐험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3. 속된 자의 숲 (4)
리안의 지적에 시로네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그렇구나. 생각해 보자. 생물이 있다는 건 섭식을 한다는 얘기고, 그렇게 따졌을 때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피라미드형이지. 거기서 포식자의 분포만을 추출해서 통계를 내 본다면 대략 이런 그림이 되지 않을까?”
시로네는 여자의 몸처럼 굴곡이 심한 피라미드를 그렸다.
하위 포식자, 중간 포식자, 상위 포식자 사이에 소수의 돌연변이 포식자가 끼어 있는 형태였다.
육식동물만 표기한 것이기에 최하층과 중간층이 동등한 분포를 나타냈다.
“여기 돌연변이 포식자는 뭐야?”
“포식자 중에는 사냥으로 먹이를 구하지 않는 종이 많으니까. 함정을 이용한달지, 아니면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섭식하는 생물이 있을 수 있지. 우리 세계에서 원숭이 같은 종류 말이야.”
“그렇군. 그럼 거인은 어디에 위치해 있지?”
“중력도 비슷하고 공기도 있으니까 생물적 특성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가정하고 따진다면 여기쯤일까? 중간 포식자와 상위 포식자 사이.”
“호오, 거인이 돌연변이 포식자야? 저렇게 강한데?”
“음, 상위 포식자일 가능성도 있지.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는 셈이지만, 전투 방식이 너무 원시적이라고 할까? 고양이 같은 경우만 봐도 사냥 방식 자체는 세련되어 있잖아. 하지만 나무를 뽑아서 휘두르는 건 사냥에 그리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 그래서 돌연변이 포식자로 분류했어.”
테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위 포식자와 중간 포식자 사이의 돌연변이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되면 문제 아니야? 이 숲에 있는 대부분의 포식자가 거인보다 강하다는 얘기니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아. 왜냐면 언어를 사용한 것 같았거든. 조금이나마 지성이 있다면 중간 포식자보다 아래일 수는 없을 거야.”
카니스가 말했다.
“그렇군. 그럼 우리가 최초에 만난 거인은 상위 30퍼센트 정도라고 보면 되겠어. 물론 다른 분포에 속해 있을 확률도 없는 건 아니지만.”
“통계적으로는 그렇지. 어쨌거나 개체 수가 많지는 않을 거야. 감각적으로 계산해 봤을 때 거인보다 강한 적을 마주칠 확률은 10퍼센트 미만이 될 것 같은데.”
상황을 정리한 에이미가 결론을 내렸다.
“그럼 문제없는 거 아냐? 여섯이서 싸우면 못해 볼 상대는 아니야. 다친 사람도 없고.”
시로네는 신중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에이미의 말이 맞다. 하지만 목숨이 걸린 문제에서 확률이란 신기루에 불과한 것도 사실이었다.
천국에 도착하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발걸음을 돌릴 수 없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어떠한 개연성도 없는 착각일 뿐이지만 어차피 모두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였다.
결국 아직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설령 지금보다 더 큰 위험이 닥치더라도.
“좋아, 일단 성벽까지는 가 보자. 나도 여기에서 포기하기는 싫으니까.”
배낭을 짊어지고 출발할 채비를 하는 그때 숲에서 폭음이 들렸다.
테스의 청각이 여자의 음성을 감지했다.
거인의 습격보다 위험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쳤다. 하지만 정말로 여자라면 지성적인 존재라는 얘기였다. 그녀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정보는 무한대에 가까울 터였다.
서로를 돌아보며 의사를 교환한 시로네 일행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숲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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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잉! 킥! 킥!
육족보행마 독각귀가 거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갑각류에 속하는 독각귀는 삼각뿔처럼 뾰족한 6개의 다리를 땅에 박으며 움직이는 생물이었다. 연보랏빛의 몸체는 갑각으로 둘러싸여 있고 얼굴의 중심에 왕눈이 하나 박혀 있었다. 이마에 난 기다린 외뿔은 유니콘의 뿔보다도 길고 단단해 보였다.
“레나! 이쪽으로 몰아!”
“알았어! 조심해, 언니!”
카냐와 레나가 독각귀를 앞뒤에서 포위했다.
흑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성이 카냐였고 눈이 크고 예쁘장한 아이는 그녀의 여동생 레나였다.
천국의 신민인 메카라는 종족으로 갸름한 턱 선과 작은 코, 초승달처럼 얇은 입술은 다른 종족에 비해 동안을 자랑했다.
그녀들의 나이는 열일곱 살과 열네 살이지만 얼굴만 보고서는 누가 더 어린지 구별을 못 할 정도였다.
독각귀의 후미를 제압한 레나는 사각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날에 수많은 선들이 직각으로 교차하는 검은 복잡한 조립 방식으로 만들어진 무기답게 효력이 대단했다.
독각귀의 등판을 후려치자 팡 하고 충격파가 터지며 갑각의 파편이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