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56
벌써 세 번째 공격을 받은 독각귀가 예의 괴성을 지르며 옆으로 움직였다. 그에 맞춰 레나도 몸을 날렸다.
독각귀의 외눈은 반경 330도를 살필 수 있을 만큼 시야가 넓지만 레나는 유일한 30도의 사각을 고수하고 다시 갑각을 후려쳤다.
흥분한 독각귀가 방향을 틀며 돌진하자 이번에는 손목에 차고 있는 카이트실드 형태의 방패를 내밀었다.
장난감처럼 작은 방패였지만 뿔이 충돌하자 그보다 몇 배나 거대한 방패의 환영이 튀어나와 독각귀를 밀어냈다.
몸이 뒤집어진 독각귀가 풍뎅이처럼 여럿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찾아 일어섰지만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자꾸만 오른쪽으로 비틀거렸다.
카냐는 아크를 겨누었다.
활의 형태와 흡사했지만 철로 만들어졌고 활시위가 없었다. 대신에 잡아당길 수 있는 손잡이가 있었는데, 끌어당기자 활의 끝과 끝에서 적색 빛이 튀어나와 독각귀를 겨누었다.
삼각측량으로 목표물을 조준할 수 있는 무기였다.
영점을 잡아 주는 이상 발사체가 빗나가는 일은 없다. 카냐는 적색 빛이 모여드는 붉은 점을 독각귀의 얼굴에 맞췄다.
위기감을 느낀 독각귀가 어지러운 와중에도 좌우로 움직였다. 그러자 카냐도 독각귀의 움직임에 맞추어 허리를 틀었다.
레나가 다시 사각으로 사라지자 겁에 질린 독각귀는 카냐에게 뛰어들었다.
카냐는 독각귀의 외눈을 겨누고 손잡이를 놓았다. 철사가 빠르게 감겨들어 가면서 아크의 중심에서 작은 구술이 튀어 나갔다.
독각귀의 눈을 파고들어 간 구슬이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독각귀의 몸이 덜컥 흔들리더니 땅으로 고꾸라졌다.
내장이 녹아 버렸을 테지만 여전히 소름 돋는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레나가 검을 역수로 들고 갑각의 틈새를 찔렀다. 펑 소리를 내며 독각귀의 몸이 소금을 튀긴 것처럼 솟아올랐다. 그리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전투를 끝낸 카냐가 아크를 내리고 땀을 닦았다.
“후우, 힘들었다. 이번에는 좀 질긴 놈이었어. 그렇지?”
“응. 언니는 괜찮아?”
“보다시피, 아무렇지도 않아. 그런데 이상하네. 어째서 독각귀가 나타났지? 서식지하고는 거리가 있을 텐데.”
“혹시 우리가 길을 잃은 건 아닐까?”
“그럴 리가. 드론도 정확히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걸. 어쩌면 숲의 율법이 변했는지도 몰라. 빨리 여기를 벗어나자.”
“그래도 엘릭서는 챙겨야지. 혹시 들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레나는 독각귀의 몸에 올라탔다. 갑각을 벌리고 손을 쑥 집어넣자 녹아 버린 내장이 죽처럼 뜨끈했다.
징그러운 감촉이지만 레나는 당돌하게 혀를 내밀며 무언가 잡힐 때까지 휘저었다.
한참을 뒤지던 그녀의 눈에 쾌감이 차올랐다.
“어? 있다! 언니, 있어!”
독각귀의 몸에서 붉은 빛을 내는 구슬이 나왔다.
“야호! 레드 엘릭서야. 고마워, 독각귀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동생의 모습에 카냐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연옥의 생물 중 대부분의 종들은 체내에서 엘릭서를 키운다. 신의 보호를 받는 신민에게는 딱히 필요가 없지만 연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물질이었다.
“운이 좋았네. 자, 이제 빨리 가자.”
엄한 언니로 돌아와 동생을 다그치는 순간, 카냐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묘한 기운에 뒤를 돌아보았다.
숲에 박힌 눈동자들이 살기를 번뜩였다.
잠시 후 뾰족한 다리로 암석 지대를 두드리며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독각귀였다. 그것도 무려 일곱 마리나.
“레나! 이쪽으로 와!”
동생을 끌어당긴 카냐는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서식지와 동떨어진 곳에서 독각귀가, 그것도 무리를 지어 나타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쳇. 방심했어. 드론을 계속 확인했어야 했는데.’
천외지옥이라 불리는 연옥이지만 이곳에도 신의 의지는 드리워져 있었다. 물론 이성이 없는 마물이기에 율법은 본능처럼 작용한다. 결국 본능에 변화가 생길 만한 어떤 사건이 근처에서 발생했다는 얘기였다.
“하필이면 지금……!”
숲의 율법이 변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신민이 천국을 벗어나 연옥으로 나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
확률적으로 낮은 두 가지 사건이 겹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언니, 어떡하지? 독각귀가 너무 많아…….”
독각귀 한 마리는 메카족 한 명이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두 마리라면 메카족 다섯 이상이 필요했다.
율법에 따르면 메카족의 장기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집단 전투였다.
육체 능력은 신민 중에서 가장 약하지만 집단을 이루면 케르고족이나 노르족도 무시할 수 없는 게 그들이었다.
카냐가 두려움에 떠는 이유는 이것이었다. 아크가 있다고 해도 일곱 마리의 독각귀를 물리치기는 불가능했다.
대체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마물을 피하기 위해 1년이나 루트를 점검했건만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키이잉! 킥! 킥!
독각귀들이 뿔을 흔들며 위협하자 자매는 등을 맞대고 서로의 뒤를 보호했다.
간을 보듯 접근하던 독각귀 한 마리가 레나에게 뛰어들었다.
메카의 방패인 엑스드를 내밀자 강력한 반탄력이 독각귀를 튕겨 냈다.
레나와 위치를 바꾼 카냐가 아크를 갈겼다. 정밀 조준이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발사체는 독각귀의 갑각을 강타하고 폭발을 일으켰다.
독각귀가 충격에 바닥을 구르는 것과 동시에 남은 놈들이 덤벼들었다.
“언니! 내 뒤로 숨어!”
레나가 다시 위치를 바꾸어 엑스드를 내밀었다. 독각귀의 뿔이 방패에 닿을 때마다 천둥 치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충격파 무기인 시그나까지 휘둘렀지만 사각에서 공격하지 않는 한 독각귀는 맞히기 어려운 마물이었다.
엑스드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반탄력의 한계치를 초과하자 방패의 기능이 정지하면서 흔한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일곱 마리의 독각귀가 사방에서 협공을 가하자 카냐와 레나는 서로를 껴안으며 눈을 감았다.
죽음의 공포보다도 죽기까지의 고통이 더욱 두려웠다.
독각귀는 살아 있는 인간의 배에 주둥이를 꽂아 내장을 빨아 먹는다. 카냐는 지금이라도 레나의 시그나를 빼앗아 그녀의 목을 베어야 할지 고민했다.
일곱 마리의 독각귀가 뿔로 자매의 몸통을 꿰뚫으려는 순간 하늘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섬광이 내려왔다.
카냐와 레나의 눈에 소년의 뒷모습이 보였다. 금발이었고 이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이상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시로네는 착지와 동시에 광폭을 시전했다.
반경 3미터에서 5미터 사이에 빛의 장막이 왕복하면서 독각귀를 모조리 튕겨 냈다.
바닥이 원형으로 움푹 꺼지자 두 여성이 주저앉았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시로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속된 자들의 숲에 사람이 산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괜찮아?”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평생을 달려도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향수병과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었다. 두 여성의 정체가 뭐든지 간에 징그러운 괴물은 적이고 사람은 아군으로 느껴졌다.
소년의 등장에 카냐는 경계심을 높였다. 반대로 사춘기 소녀인 레나는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였다.
‘잘생겼다. 노르인인가?’
두 여성이 동상이몽을 하는 동안 시로네 일행은 독각귀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리안과 테스가 각기 한 마리씩을 도맡았다.
일합을 치른 리안은 적잖이 안심했다. 쉬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강함은 원래의 세계에서도 몬스터라는 이름으로 꽤나 많이 접해 본 그였다.
독각귀의 뿔을 잡고 완력으로 젖히자 위태로운 여섯 다리가 발라당 뒤집혔다.
리안은 놈의 복부에 직도를 꽂아 넣어 땅에 고정시켰다.
3. 속된 자의 숲 (5)
테스의 전투도 막바지였다.
무게감이 떨어지는 사브르는 독각귀의 갑각을 깰 수 없으나 틈새를 노리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갑각의 사이를 찔러 대며 기동력을 떨어뜨린 테스는 결정타로 외눈에 사브르를 꽂았다. 그리고 사브르를 뒤틀면서 독각귀를 발밑에 굴복시켰다.
전투가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에이미가 주위에 파이어 월을 쳤다.
이성이 없는 짐승들이었으니 도망쳐 준다면 가장 좋은 결과였으나 예상을 깨고 한 놈이 불의 장벽을 관통해 들어왔다.
덩치를 부풀린 하비스트가 독각귀의 몸통을 붙잡고 등뼈를 꺾어 버렸다.
아린은 초경이 통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네 마리의 독각귀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시전하자 개중에 두 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인드 컨트롤에 걸려든 두 마리의 독각귀가 몸을 돌려 아군을 찔러 대기 시작했다.
마물끼리 치고받으니 일행이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
독각귀의 숨통을 끊은 리안과 테스가 무기를 갈무리하며 시로네에게 돌아왔다.
에이미가 파이어 월을 해제하자 독각귀들의 혈투가 보였다. 뿔과 다리, 주둥이까지 사용해 서로를 찌르고 쓰러뜨리고 짓밟는 중이었다.
이 대 이로 숫자가 같았기에 아린의 독각귀 조종 실력이 관건이었다. 처음에는 생소한 생물이라 적응이 되지 않았으나 금세 특성을 간파하고 사정거리가 긴 뿔을 이용해 각개격파 전술을 시도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지켜보고 있던 일행은 소름을 쓸어내렸다.
특히나 카냐와 레나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율법에 따르는 존재가 율법을 거스르고 동족을 죽이다니. 오늘은 속된 자들의 숲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는 날이었다.
전투에 승리한 아린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인드 컨트롤 자체가 지속적으로 정신력을 소모하는 데다 싸움을 시킬 때에는 피지배 생물의 전의마저 흘러들어 오기 때문에 정신적인 피로도가 상당했다.
아린의 지배하에 있는 독각귀가 시로네 쪽을 돌아보았다. 카냐와 레나가 황급히 물러섰으나 놈들은 그저 복종의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아린은 남은 독각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초경을 통한 마인드 컨트롤의 어마어마한 성공 확률은 아린만의 강점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약점이 되기도 했다. 감정 동화율이 높다는 건 상대방의 마음을 더욱 선명하게 받아들인다는 얘기였다.
세상의 모든 정신을 다루는 정신 계열 마법사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고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린은 역시나 머뭇거렸다. 아무리 마물이라도 자신을 위해 싸워 준 존재의 생명을 잔혹하게 끊는다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자칭 마음이 여리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한 테스가 아린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냥 데리고 다니면 안 돼? 두 마리만 있어도 엄청 든든할 것 같은데?”
“안 돼. 이 정도 마물에 정신력을 낭비할 수 없어. 초경이 통한다는 걸 알았으니 아린은 그쪽으로 집중하는 게 좋아. 정신 채널도 항시 유지해야 하고.”
“음, 풀어 주는 건?”
“다시 공격하러 오겠지. 최악은 다른 무리를 데려오는 거야.”
“그렇구나. 그럼 아쉽지만 죽이는 수밖에. 서로 싸우게 해서 죽이면 되지 않나?”
자칭 마음이 여리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한 테스의 말에 아린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
독각귀를 조종해 다른 독각귀를 죽인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동화율이 높은 데다가 함께 싸웠다는 아군의 감정까지 더해졌으니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리안이 대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죽일게. 그냥 붙들고만 있어.”
카니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아린이 해야 되는 일이야. 정신 계열의 마법사로 높은 경지에 올라가려면 언제까지고 나약한 상태로 있을 수는 없어.”
초경의 능력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목표로 하는 곳에 도달하려면 이 정도의 상황쯤은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카니스는 아린이 오랫동안 옆을 지켜 주기를 바랐다.
“아린, 마법협회에 끌려갔을 때 약속했잖아. 스승님은 이제 세상에 없어. 우리가 강해져야 돼. 이곳은 동정심을 발휘할 만큼 여유로운 곳이 아니야.”
아린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카니스의 말이 옳았다. 초경에 의지할 것인가 초경을 지배할 것인가. 힘든 일이지만 한 번은 이겨 내야 하는 문제였다.
아린은 독각귀들을 숲의 경계선까지 걸어가게 했다. 그런 다음 뿔로 서로의 눈을 찌르도록 만들었다.
두 마리의 독각귀가 얼굴을 맞댄 채 쓰러졌다.
숨은 붙어 있었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니 다른 방식으로 치명상을 줄 방법은 없었다.
아린은 애써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비스트는 유리관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 마주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마법사치고는 유약하다는 평가가 여전히 돌지만, 세상 모든 것을 두려워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린의 강점이자 약점이지. 상대의 정신과 쉽게 공명하지만, 그렇기에 독해질 수 없는 거야. 아케인은 언제나 이 점을 아쉬워했지.”
“하지만 이제는 변하고 있어. 아린은 잘해 나갈 수 있을 거야.”
아린의 슬픔을 함께 느끼던 시로네는 하비스트와 카니스의 대화를 듣고 안심했다. 비록 힘든 직업을 택했지만 그녀에게는 평생을 함께할 동료가 있었다.
“어쨌거나…….”
시로네가 운을 띄우며 돌아보자 친구들도 카냐와 레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여성은 움찔 놀랐다. 여섯 명의 눈에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감동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다.”
“응, 사람이야. 칼과 방패도 있어.”
“아, 칼과 방패. 저걸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 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휘두르는 거인하고 대화할 생각을 하니 아찔했거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이어지자 카냐가 동생을 가로막았으며 소리쳤다.
“뭐라고 하는 거야? 너희 도대체 누구야?”
아린이 스피릿 존을 연결하여 텔레파시를 시도했다. 카냐의 정신이 전해지자 아린은 초경으로 구체화시켜 시로네 일행에게 전달했다.
시로네는 최대한 호의적으로 말을 건넸다.
“어,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곳에서 왔는데…….”
매서운 눈초리가 시로네를 멈춰 세웠다.
알아들을 수 없던 말이 갑자기 이해되자 카냐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입 모양과 언어가 일치하지 않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이것도 마법인가? 너희 노르족이야?”
“노르족? 그게 뭔데?”
카냐는 대답 대신 오른팔을 내밀었다. 하늘에서 드론이 날아왔다. 딱정벌레처럼 생긴 기계장치가 손목에 내려앉더니 계단처럼 분리되며 건틀렛으로 장착되었다.
“언어 해독.”
건틀렛의 손등 부분에 빛이 들어왔다.
“너희, 다시 말해 봐.”
“무슨 말?”
그것으로 충분했다. 카냐는 팔을 구부려 건틀렛을 확인했다.
데이터 없음. 해독 불가.
드론의 정보를 확인한 그녀는 아크를 꺼내 들었다. 손잡이를 당기자 시로네의 미간에 붉은 점이 박혔다.
“뭐,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숲에서 지켜봤던 시로네는 아크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었다.
이유조차 모르고 이런 꼴을 당하자 당황스러웠다. 괴물이 사는 곳에서 사람끼리 마주쳤을 때 나오는 반응은 절대로 아니었다.
“레나! 이것들 신민이 아니야! 싸워야 해!”
“하, 하지만 언니…… 그래도 생명의 은인이잖아.”
“이제 알았어. 어째서 독각귀가 이곳에 있는지. 저것들이 숲의 율법을 어지럽힌 거야.”
레나도 그 말을 듣고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에는 내키지 않는 감정이 묻어났지만 그럼에도 시그나와 엑스드를 들고 싸울 자세를 취했다.
“솔직히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아크에 머리가 날아가기 싫으면. 대체 이 숲에서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너희는 도대체 누구야?”
누구냐고 물어본들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답답해진 시로네는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사람이야!”
“그걸 어떻게 믿지? 신민의 언어를 쓰지 않잖아! 그렇다고 이단도 아니고!”
“어쨌거나 말이 통하잖아. 그러면 된 거 아냐?”
카냐는 눈살을 찌푸렸다. 묘하게도 시로네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대화로 풀자고. 말이 통한다면 적어도 그 이상한 무기를 들이미는 것보다는 평화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평화? 속된 자들의 숲에서 평화라는 말을 꺼내다니. 너희 정말로 수상해.”
“속된 자들의 숲?”
“여기 숲의 이름인가 봐.”
아린의 설명을 끝으로 침묵이 흘렀다.
대치 상태가 한동안 이어졌다.
시로네가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제압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으나 싸움은 절대로 싫었다.
인간이다. 말이 통한다. 그녀가 적개심을 풀기만 한다면 이 세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레나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위를 순찰하고 있던 드론이 500미터 떨어진 지역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그녀의 망막에 투사했다. 스무 마리가 넘어가는 독각귀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언니, 큰일 났어. 독각귀야.”
카냐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숲의 율법이 어긋난 이상 오래 머무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