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62
-그렇겠지. 마법이야 둘째 치고 상황 판단력과 순간 대응력이 너무 떨어져. 저런 놈이 제대로 사냥이나 할 수 있겠어? 그러니 더욱 욕심이 나는 거겠지.
마법의 위력은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세부적인 우열을 가르는 기준은 될 수 없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효율적인 마법이 다르고 상성도 있기 때문이다.
소용돌이 뱀의 마법력이 압도적이라도 시로네에게 패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마법사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마법적인 판단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지를 봐야 한다.
물론 그런 부분은 마법보다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용병들이 눈에 보이는 마법 실력만 믿고 고용했다가 마법사의 실책으로 전멸당하는 일화가 왕왕 전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케인의 유서를 찾기 위해 대륙을 여행했던 카니스는 그런 경험을 누구보다 많이 했다.
천국에 도착한 이후 벌어졌던 세 차례의 전투에서 시로네와 에이미의 판단이 얼마나 주효했는지를 검토해 보면 클로브는 마법사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다음으로 클로브가 소개한 곳은 약품을 파는 좌판이었다.
시로네는 조금 전에 이 약재상과 카냐가 말다툼을 하는 걸 들었지만 정신 채널이 끊어져 있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클로브는 일행에게 여러 가지 약을 소개했다.
작은 호리병에 색색들이 약물이 들어 있었는데 엘릭서를 이용해서 만든 약이라고 했다.
빨간 물약은 상처를 치료하고 파란 물약은 정신을 맑게 해 준다고 했다. 그 두 종류가 가장 많았다.
다른 색상의 약물들 또한 효과가 독특했다.
분홍색 물약은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켜 주고, 갈색 물약은 특정 시간의 기억을 영구히 기억하게 해 준다고 했다.
시로네는 카냐가 약재상과 말다툼을 벌일 때 봐 두었던 백색의 물약을 가리켰다.
“이건 무슨 물약이야?”
클로브가 의외라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약병을 들었다.
“어라? 이게 있었네? 이거 만들기 꽤나 어려운 건데.”
“어디에 쓰는 약인데?”
“이건 각성제야. 각성제 에피네스. 이걸 마신 사람은 일주일 동안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멀쩡할 수 있어. 마법사에게도 탁월한 효과가 있지. 예를 들어 하울링에 당해서 정신이 흔들릴 때 이걸 먹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시로네는 클로브의 설명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파란 물약이 마법의 위력을 높여 주는 것이라면 하얀 물약은 내구력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너희에게 딱 좋은 물건이네. 가격이 비싸기는 하지만 내가 말해서 싸게 해 줄게. 이걸 사는 게 어때?”
시로네는 에피네스를 구입할 생각이 없었다. 일주일 동안 수면을 취하지 않을 정도의 정신력이라면 탁월한 효과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원래의 세계에 소모품을 가져가는 건 낭비였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라면 사용할 타이밍을 잡기가 애매해진다. 연옥에서야 위급할 때마다 벌컥벌컥 들이켜는 것이겠지만 저쪽 세상의 마법사에게는 오히려 심마로 작용할 것이다.
문득 실기 시험 전날에 마시면 효과가 죽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금지 약물 복용으로 퇴학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시답잖은 분석이 지나고 다시금 떠오른 생각은 카냐였다.
각성제.
그녀는 도대체 이 약물로 무엇을 할 생각인 것일까?
시로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일행은 다음 좌판으로 넘어가 있었다.
씨앗을 심으면 10분 안에 수십 미터가 자라는 나무 넝쿨은 암벽 지대를 여행할 때 필수라고 했고, 물을 받아 두고 가루를 뿌리면 물이 끓는다는 화염 가루 같은 것들도 신기했다.
클로브의 설명을 듣고 있던 시로네는 언제부턴가 따로 떨어져서 구경하고 있는 에이미를 돌아보았다.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뭔가를 쳐다보는 모습에 궁금해진 시로네가 걸어갔다.
새장처럼 생긴 소쿠리 안에 무언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불덩어리였다.
불이 살아서 움직인다고?
클로브가 이쪽으로 다가오자 시로네가 철창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뭐야?”
새장 안을 들여다보던 클로브가 자신에게도 생소한 물건인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우와! 정령이잖아? 아저씨, 이거 어디서 잡았어요? 횡재하셨네.”
“하하! 사연을 말하자면 길지. 내가 오랜만에 좋은 꿈을 꿔서 커뮤니티 밖으로 사냥을 나갔거든. 유황지렁이가 낮은 확률로 그린 엘릭서를 주니까 말이야. 그래서 몇 마리 잡았는데 죄다 레드더라고. 젠장, 개꿈이구나 하고 돌아가려는데 ‘불갈퀴’에게 딱 걸린 거야. 마누라 생각하면서 죽어라 도망쳤지. 그러다가 암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는데, 세상에, 거기가 바로 화염의 스폿이더라고. 바닥에서 새는 유황 가스 덕분에 오랜 세월 불이 타고 있었던 거지. 그래서 기억해 두려고 갈색 물약을 마시려는데, 불이 통통 튀면서 나에게 오는 거야. 그냥 뿜어 버렸어. 정신없이 정령 감옥을 꺼내서 붙잡았지. 아무튼 그렇게 된 거야, 하하하!”
클로브는 따라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왜 그런 기연이 안 생기는지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유황지렁이는 불의 나라 무스펠뿐만 아니라 용암 지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천외종이었다.
1미터 크기의 지렁이로, 용암을 분사하지만 행동이 둔해서 클로브 또한 쉽게 잡을 수 있다.
다만 불갈퀴가 문제였는데, 그런 강력한 천외종에게서 목숨을 건진 것도 모자라 불의 정령까지 얻었으니 태어날 때부터 천운의 율법을 타고난 게 아닌가 싶었다.
시로네는 에이미를 돌아보았다. 어찌할 줄 모르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갖고 싶은 마음을 시로네는 충분히 이해했다.
만약 새장 안에 빛의 정령이 갇혀 있었다면 자신도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시로네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가치를 물었다.
“아저씨, 이건 얼마예요?”
텔레파시로 의미를 전달하는 건 상인에게도 생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눈을 깜박거렸을 뿐 태연하게 대응했다.
상인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로네는 그의 반응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유추했다.
신민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자는 이 세계에서 자신들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5. 노르의 쉼터 (3)
시로네의 예상은 정확했고, 상인은 더 나아가 이들이 연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까지 짚어 냈다.
“흐음, 흥정을 할 수도 있지만 너희가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정령은 연옥에서도 굉장히 구하기 힘들거든. 나는 본토로 가져갈 참이고 쉼터에는 잠시 들른 것뿐이라서.”
가치가 낮지 않으리란 예상은 했지만 흥정조차 거부하자 덜컥 겁이 났다.
화이트 엘릭서 3개로 구입이 가능한가? 자신 있게 덤볐다가 엘릭서가 부족하면 에이미의 실망감은 더욱 커지게 될 터였다.
판단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시로네는 흥정을 접어 두고 질문을 던졌다.
“정령은 계약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 정령하고도 가능한가요?”
“계약? 아, 계약. 물론 가능하지. 하지만 불의 정령하고 계약을 해서 뭐하게?”
“불의 정령과 계약하면 불의 마법을 쓸 수 있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보통 계약으로 귀중한 정령을 낭비하지는 않는단다. 정령이 마을에 들어오면 생활이 얼마나 편해지는데. 그래서 보통은 마을 단위로 엘릭서를 모아서 구비한단다. 커뮤니티 외곽의 사람들이야 워낙 척박한 곳에서 살고 엘릭서도 넘치니까 계약을 전제로 구입한다지만 사실 그런 자들은 목숨 내놓고 사는 족속들 아니겠냐? 나는 너희가 그런 삶을 살 것 같지는 않구나.”
“으음, 어쨌든 계약은 가능한 거죠?”
시로네가 되묻자 상인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본토에서는 흔한 반응이었다. 값을 지불할 능력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개중에는 작전조가 침투하여 물건의 가치를 깎기도 한다.
커뮤니티 외곽의 사람들이 참여한다면 거기에서 경매는 끝이지만 그런 자들은 특수한 정령이 아닌 이상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대부분은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에서 피를 말리는 수 싸움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에이미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흥정이라면 전문이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금화가 통용되는 세계라면 저금을 털어서라도 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만이 가치를 갖는 연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유욕을 드러냈다가 시로네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시로네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법사에게 마법력의 향상은 인생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니 가능하면 구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판의 때가 왔음을 직감한 시로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정령을 사려면 엘릭서가 얼마나 필요하죠?”
상인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시로네의 모습에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흐음, 만약 여기에서 구입한다면 최소한…….”
시로네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떤 값을 부르든 지금 가진 엘릭서로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
역시나 상당한 고가인지 상인도 신중했다. 그가 뜸을 들이며 말을 이어 갔다.
“화이트 엘릭서…….”
시로네와 에이미의 눈에 실망이 담겼다. 엘릭서의 단위가 화이트라는 점에서 확률은 상당히 떨어진 셈이었다.
생각을 끝마친 상인이 고개를 들고 가격을 제시했다.
“1개 정도는 받아야 하겠지.”
“네? 1개요?”
시로네는 여태까지 한 번도 자신을 배신한 적이 없던 청력을 의심했다.
1개라면 구입할 수 있다.
같은 사실을 깨달은 에이미가 마치 누가 낚아채 가기라도 할 듯 초조함에 무릎을 떨었다.
시로네는 이것저것 따져 보았다. 처음에는 지불할 능력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지나간 생각은 미련 없이 떠나보내는 게 마법사다.
하지만 에이미를 돌아본 순간 웃어 버리고 말았다. 아랫입술을 깨문 그녀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갖고 싶다.”
카르미스 가문의 외동딸인 에이미는 물욕이라는 걸 모를 만큼 풍족하게 자랐다. 하지만 마법에 있어서는 그녀 또한 한 명의 마법사일 뿐이었다.
상인은 에이미의 갖고 싶다는 말을 체념으로 이해했다. 화이트 엘릭서는 본토의 상인들조차 쉽게 만질 수 없는 물건이니 이제 막 연옥에 들어온 그들이 절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딸의 얼굴이 떠오른 그가 에이미를 달랬다.
“화이트 엘릭서는 구하기가 어렵지. 사실 이것도 많이 깎아 준 거야. 본토에 가면 피곤한 일이 많이 생기거든. 위험하기도 하고. 노르의 쉼터에서 팔아 치우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정하에 내린 결론이야. 너희가 진지해서 나도 정확히 계산했어.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언젠가 운이 좋으면 불의 정령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살게요.”
“응?”
“산다고요, 제가.”
시로네가 안주머니를 뒤지자 상인은 바보처럼 눈을 껌벅거렸다. 자신을 놀리려는 수작이 분명한데 여기서 화를 내야 하는지 웃고 넘어가야 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하지만 시로네의 손에서 3개의 엘릭서가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기겁한 듯 의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무지갯빛 스펙트럼만 봐도 화이트 엘릭서가 분명했다.
“여기요. 이제 가져가도 되죠?”
상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로네가 직접 화이트 엘릭서를 손에 쥐여 주었다.
그와 동시에 에이미가 정령 감옥을 품에 끌어왔다.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불의 온기.
이것이야말로 에이미의 인생이었다.
“어이, 자네 괜찮나? 안 뜨거워?”
엘릭서가 진짜임을 확인한 상인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불의 정령은 활성화된다는 점에서 무생물과 차별화되지만 계약을 하기 전까지는 어쨌거나 불이었다. 달구어진 철창을 잡게 되면 화상을 입어야 정상이었다.
“응? 아뇨. 그냥 따듯한 정도인데요?”
“이상하군. 다시 한 번 살펴봐도 되겠나? 내가 파는 물건이지만 양심에 찔려서 그래. 불량품일 수도 있으니까.”
“아뇨, 괜찮아요. 이건 정말 불의 정령이 맞아요.”
에이미는 허공에서 통통 튀는 불의 정령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신 채널을 이용해 시로네에게 말했다.
-시로네, 스피릿 존이야.
-스피릿 존?
-응. 이거 굉장해. 진짜 불이지만 정신과도 연결되어 있어. 지금도 계속 느낌을 받고 있다고.
마법사는 자신이 만든 불에 화상을 입지 않는다. 진짜 불이지만 창조주가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에이미의 말에 의하면 정령 또한 고정된 스피릿 존을 지닌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일종의 정신적 승화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자네들, 어떻게 화이트 엘릭서를 얻은 건가?”
“소용돌이 뱀에게서 나온 거예요.”
“소용돌이 뱀이라고? 설마 계곡의 율법을 파괴했다는 건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소용돌이 뱀을 쓰러뜨릴 만큼 강력한 마법사라면 화이트 엘릭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흔히 만날 수 있지는 않지만 이런 부류 또한 엄연히 연옥에 존재했다. 상인들은 그런 자들을 일컬어 경계인 혹은 커뮤니티 외곽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계약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아, 잘 모르지만 경계인이 하는 걸 본 적은 있어. 정령을 손에 들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면 저절로 사라지더라고.”
정은 이성이 없기 때문에 키워드로 발동하는 건 아닐 듯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언령 마법이었다.
내뱉고 되새긴다. 불과 공명하는 게 중요했다.
에이미는 상인이 건넨 감옥의 열쇠로 철창을 열었다. 그런 다음 두 손으로 정령을 받친 그녀가 임기응변으로 만든 언령을 외웠다.
“불의 정령이여, 내 안에 깃들이라.”
불의 정령이 에이미에게 스며들자 배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정령과의 계약은 새로운 전지를 깨닫는 것과 비슷했다. 발화의 전지인 이그나이트와 별개로 새로운 불을 전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에이미가 정령을 소환하자 불덩어리가 피어올라 주위를 맴돌았다. 흐뭇하게 지켜보던 그녀는 고대에 존재했다는 엉터리 불꽃의 이름을 떠올렸다.
잭 오 랜턴.
도깨비불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수많은 학자들의 가설에도 불구하고 결국 검증되지 못한 채 신화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잭 오 랜턴은 천국이라는 나라에서 고대 마법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의 정령은 전략적으로 유용했다.
우선 이그나이트와 상관없이 발동하는 점이 좋았고 원하는 궤도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물론 환영처럼 여러 개로 나뉘기도 했다.
유도 기능, 속임수, 다연발 등 구사할 수 있는 전략들이 끊이지 않고 떠올랐다.
에이미는 시로네의 시선을 깨닫고 정령을 소멸시켰다.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괜히 어색해지기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싼 물건을 선물받은 것과는 달랐다. 아마도 그녀가 받은 건 시로네의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시로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치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줄 알았다는 듯 몸을 돌려 멀어져 갔다.
에이미는 그제야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어째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일까?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선물에 특별한 의미가 없었나?
시로네는 가식이 없는 성격이지만, 가끔은 이렇듯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시로네는 꼼꼼히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에이미가 불의 정령과 계약을 하는 걸 지켜보면서 깨달은 점은, 원래의 세계로 가져갈 물건을 찾는다는 생각 자체가 안일했다는 것이다.
천국은 생과 사를 넘나들 만큼 위험한 곳이었고 무언가를 보강한다면 즉시 전력감을 찾아야 한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얼마나 가치가 있든 사들이는 게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노르의 쉼터는 커뮤니티에 속한 이단들이 주로 머무는 곳이기에 생필품을 위주로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특별한 물건을 가진 상인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워낙에 고가였기에 시장에 내놓지도 않고 있을 뿐이다.
시로네가 화이트 엘릭서를 소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한 남자가 슬그머니 물건을 좌판에 올렸다.
테스가 달려와 상인이 올린 물건을 가리켰다.
“어머! 이거 혹시 그거 아니에요?”
딱정벌레 형상의 기계장치.
메카족의 기술로 만든 드론이었다.
클로브가 달려와 설명했다. 시로네가 큰손이라는 걸 깨달아서 더욱 적극적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정찰 기능, 언어 해독 기능 외에도 전파 통신, 맵 디스플레이 등의 기능이 있다고 했다.
“어때? 화이트 엘릭서와 거래하지 않겠나? 자네들도 알겠지만 드론은 엘릭서가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신민들 전용 장비니까.”
시로네도 이 물건은 긍정적이었다. 드론의 정찰 능력은 카냐를 통해 경험했던 바였다. 테스가 사용할 수 있다면 훌륭한 보조 장비가 될 것이다.
그때 아린이 조금 깎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상인의 초경에서 비싸게 부른 감정이 잡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이 싸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했다.
불의 정령이 상품이라면 드론은 한정 상품이다. 신민의 물건이 유출된 것이라면 부르는 게 값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린, 뭔가 하자가 있는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잘 모르겠어. 어쨌거나 값에 비해 많이 부른 것은 맞아. 나머지는 네가 파악해 봐.
테스는 드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고대 유물에 꽂힌 그녀였으니 하자가 있든 없든 사 준다면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를 대신에 시로네가 물어보았다.
“어떻게 구한 거죠? 메카족에게만 개인 지급되는 물건이라고 알고 있는데.”
“물론 그렇지. 하지만 메카족에도 이단은 있다네. 연옥으로 도망치기 전에 훔쳐 왔을 거야. 하나만 팔아도 생활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테니까. 그 증거로 여기를 봐. 드론의 테두리 사이에 띠가 연결되어 있지? 이건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증거야. 즉, 공장에서 바로 빼 온 거지. 아마도 원래 주인은 메카족의 기술 시설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을 거야.”
“그 사람은 어디 있죠?”
“모르지. 도망쳤을 수도 있고, 죽었을 수도 있고. 아마 죽었을 거야. 천국의 물건이 시장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그런 식이야. 엘릭서를 벌기 위해 천국의 물건을 빼 오다가 연옥에서 죽게 되면 물건만 남는 거지.”
5. 노르의 쉼터 (4)
과연 그런 상황도 가능했다. 신민의 물건이라고 해서 구입이 불가능한 품목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한정판 메리트는 여전히 유지된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상인은 고객의 지불 한도가 화이트 엘릭서 2개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욕심을 부린 값이 엘릭서 하나라는 건,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싸다는 것이었다.
“아무나 쓸 수 있는 건가요?”
“장착만 하면 누구나 사용이 가능하지. 시그나와 엑스드, 아크 같은 사냥 무기는 공용이지만 드론만큼은 개인 암호화 장치가 되어 있다네. 설령 남의 것을 빼앗는다고 해도 사용하지 못해. 하지만 이것은 아직 누구의 주인도 찾지 못한 신품이야. 그러니까 팔 수 있는 거지.”
모르겠다. 새것이라면 하자가 있을 리가 없다.
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단순한 착오인 것인가? 아니면 불의 정령이 그만큼 획득하기 어려운 물건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