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63
결정을 내리지 못한 시로네가 테스에게 물었다.
“테스, 이거 갖고 싶어?”
“응! 시로네, 나 진짜 갖고 싶어. 이거 사 주라. 어차피 다른 물건은 싸구려니까 나중에 얼마든지 구할 수 있잖아.”
시로네는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무언가를 요구할 때조차 시원시원한 그녀의 성격은 확실히 에이미와 달랐다.
어차피 엘릭서는 모두를 위해 사용하는 게 좋다. 그렇다면 사기는 사야 하겠는데, 어떤 결함이 있는지를 모르니 흥정이 될 수가 없었다.
대놓고 물어보자니 상인에게 휘둘릴 게 분명하고 클로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을 터였다.
“대체 왜 안 판다는 거야! 분명히 말한 대로 가져왔잖아!”
시로네가 고민하는 그때 카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그쪽을 돌아보았다. 카냐와 달리 상인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봐, 아가씨. 연옥에 정찰제가 어디 있어? 경매라고, 경매. 가격이 올랐다는데 아가씨가 마음대로 가격을 내리면 안 되지.”
“분명 한 달 전에 그랬잖아! 에피네스는 그린 엘릭서 하나면 충분히 살 수 있다고! 거기에 레드 엘릭서 30개까지 더해서 준다는데 왜 안 판다는 거야!”
에피네스.
시로네는 약재상이 권했던 하얀 물약을 떠올렸다.
그런데 단순히 각성제라고 하기에는 카냐의 반응이 격했다. 천국에서 잠을 자지 않아야 될 일이 뭐가 있을까?
“한 달 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가격이 올랐다고.”
“아니! 두 달 전에도, 세 달 전에도 그런 말은 없었어! 이건 폭리야!”
“아가씨, 경매의 가격은 구매자의 욕망에 의해 정해지는 거야. 갖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가격은 올라가는 게 기본 아닌가? 일화의 술이 며칠 남지 않았을 거 아냐?”
“다, 당신…….”
카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무리 장사꾼이라지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가?
막돼먹은 클로브조차 이번만큼은 눈살을 찌푸렸다.
상인은 사갈시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신민에게 물건을 팔 생각 따위는 없었으니까.
“오늘 에피네스를 구한다는 건 며칠 안에 가족이 죽는다는 얘기겠지. 따라서 아가씨는 반드시 이걸 사 가야 해. 그래서 비싼 값을 받겠다는데 뭐가 문젠가?”
“당신! 가만두지 않겠어!”
카냐가 아크를 꺼내 들자 레나가 비명을 지르며 말렸다.
노르의 쉼터에서 폭력은 금물이다. 폭력 사태가 일어나면 쫓겨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건 합리적인 다수 간의 약속이었다. 규율이 깨지는 순간 커뮤니티는 붕괴되고 만다.
“언니! 제발 참아! 여기서 싸우면 죽는단 말이야!”
레나가 언니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카냐는 끌려가는 와중에도 폭언을 멈추지 않았다.
상인은 진상 고객에게 신경을 끄고 건너편의 약재 상인과 눈을 맞췄다.
에피네스를 절대 팔지 말라는 무언의 약속.
과점이었다.
세 달 전에 카냐가 에피네스를 구하러 왔을 때 상인은 그녀가 지불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가격을 불렀다.
실제로는 레드 엘릭서 40개 정도면 교환이 가능한 물건이지만 그린 엘릭서를 요구했다.
엘릭서는 화폐와 다르다. 임의적인 교환은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그린 엘릭서를 고집한다면 레드 엘릭서를 아무리 모아도 물건을 구입할 수 없다.
결국 카냐는 그린 엘릭서를 실제 가치보다 높게 구입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물건을 사러 왔으나 상인은 그 가격에도 팔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왜 저렇게 흥분하는 거지? 일화의 술이라는 게 뭐야?”
“생명 재생의 술법이다.”
가드락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숨 자고 있다가 좌판 쪽이 시끄러워서 나온 참이었다.
그는 카냐의 살기 어린 표정만 보고서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안내역으로 만난 건 처음이지만 상인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은 익히 들은 바였다.
“너도 알다시피 신민들은 수명이 정해져 있어. 수명이 다하면 일화의 술을 거쳐 다시 태어나게 되는 거지. 저 소녀의 어머니가 대상이 되었다고 하더군.”
“정확히 어떤 술법인데요?”
가드락은 한쪽 눈을 찡그렸다.
“거기에 대해서는 말을 줄이고 싶군. 보다시피 민감한 문제라서. 신민들은 일화의 술을 축복이라고 말하지. 반면에 이단의 대부분은 일화의 술에 거부감을 느껴서 천국을 탈출한 자들이야. 저기 상인도 마찬가지고. 엘릭서 때문에 그녀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하지만 카냐의 어머니는 수명이 다할 예정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각성제는 어떤 역할을 하죠? 그걸 마시면 살 수도 있나요?”
“아니. 율법이 어긋나는 경우는 없어. 이단의 기준으로 표현하자면 카냐의 어머니는 조만간 죽을 거야. 그럼에도 에피네스를 사려는 건…….”
가드락은 신음성을 냈다.
그에게도 신민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카냐가 목숨까지 바쳐 가며 해 주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한편으로는 동정심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절망 속에 주어지는 한 줄기 빛일 뿐이지. 병에 걸려 죽어 가는 사람에게 마취약을 투여해 주는 것과 같은 거야.”
시로네는 가슴이 먹먹했다. 신민과 이단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지만 부모의 고통을 덜어 주려는 진심은 어디서나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율법은 그조차도 구분 짓고 있었다.
카냐는 다시 흥정으로 들어갔다. 에피네스를 사기 위해 분을 참고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에피네스를 파는 좌판은 두 군데였고 아마도 카냐는 오늘이 아니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이다.
시로네는 반대편 약재상을 살폈다. 양심에 찔리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만약 그에게 에피네스를 사서 카냐에게 준다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까?
시로네의 생각을 읽었는지 그가 에피네스를 슬그머니 치웠다. 계약은 노르인에게 절대적이니 괜히 소란을 일으켜 일이 커지는 것을 예방한 것이다.
카냐는 최후의 수단을 제시했다.
“좋아요! 그럼 외상으로 할게요.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엘릭서를 구해 올 테니까 에피네스를 주세요.”
“어떤 걸 구해 올 수 있는데?”
“뭐든지! 평생 사냥을 해서라도 구해 주겠다고요!”
“그래서 묻잖아. 뭘 구해 올 거냐고?”
상인도 이제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신민이 끔찍할 정도로 싫었다. 그리고 천국이 증오스러웠다.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천국에 살았던 기억만큼은 지울 수가 없다. 라의 율법은 그만큼 강력했다.
“다 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니 그쪽이 말해요. 대체 어떡하면 그 약을 팔 건가요?”
“그래? 그럼 싫다고 해도 산다고 하니 말하지. 흐음, 어떡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는 척하던 상인이 시로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 소년이 가진 엘릭서의 전부 정도면 될까?”
시로네는 깨달았다, 상인의 전략이 급히 수정되었음을.
아마도 카냐가 시로네를 데리고 왔을 때부터 계산기를 돌려 보고 있었을 터였다.
상인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독했다.
화이트 엘릭서를 보고 욕심이 생겼지만 보유한 물건 중에 고가는 없다. 그래서 카냐와 엮어 버린 것이다.
감정만 제하자면 괜찮은 전략이었다.
노르인은 장사 수완이 좋다고 들었다. 그는 확실히 뛰어난 장사꾼이었다. 하지만 훌륭한 장사꾼은 절대로 아니었다.
카냐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장이 정리될수록 사기꾼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제 알겠어. 당신은 처음부터 팔 생각이 없었던 거야. 세 달 동안 내가 연옥에서 죽기를 바라면서 즐겼던 거야! 내가 당신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시로네는 안타까웠다. 카냐처럼 감정적인 대응은 마법사에게 통하지 않는다. 상대의 심리를 이용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데 통달해 있기 때문이다.
마법사를 열 받게 하고 싶으면 같은 방식으로 맞서야 한다.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드는군. 이럴수록 아가씨만 힘들어져. 불가능한 얘기를 한 것도 아니잖나? 평생 사냥을 하느니 저 소년의 엘릭서를 가져오는 게 훨씬 쉬운 일이야. 안 그래?”
“그건 도둑질이야! 강도 짓이고! 게다가 이곳에서는 싸움도 할 수 없잖아! 나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의 엘릭서를 어떻게 가져오란 거야?”
“여러 가지 있지 않겠나? 아가씨는 여자고 저 소년은 남자니 방법이야 찾기 나름이지.”
카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상인의 얼굴을 아크로 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엘릭서를 달라고 하면 시로네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단에게 생명과도 같은 엘릭서를.
그런데도 어쩌면……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나가 철이 없어도 사람 하나는 잘 보기 때문이다.
-시로네 오빠가 잘생겨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정해서 좋아하는 거야.
당시에는 코웃음을 쳤지만 확실히 그는 평범한 이단과 달랐다. 어쩌면 엘릭서를 넘겨주지 않을까? 그 비싼 화이트 엘릭서를? 어쩌면. 어쩌면!
모든 게 가정이었다. 그럼에도 가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비참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 평범한 신민의 반밖에 살지 않은 어머니를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상인의 비릿한 웃음을 뒤로한 채 카냐는 시로네에게 향했다. 이미 대화를 통해 상황을 알고 있는 시로네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카냐는 오싹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좋은 생각은 아닐 것이다. 어째서 걸어오고 있는 거냐고 하겠지. 너랑 내가 무슨 사이냐고 하겠지.
그럼에도 사정할 것이다. 모든 걸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
시로네에게 다가간 카냐는 비참한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저기…….”
“자.”
시로네가 손을 내밀었다. 화이트 엘릭서가 놓여 있었다.
카냐는 울컥했다. 치솟는 감정은 분노와 흡사했지만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이 남자는 왜 이러지? 적어도 무릎이라도 꿇을 기회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돈을 주고 감정을 사는 게 선행의 목적이 아니었나? 이런 식의 자비가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거지?
카냐는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말이 제대로 나올지는 의문이었다.
“왜…….”
“일단 가서 에피네스를 사. 너에게 소중한 거잖아.”
“하지만…….”
너에게는 소중한 게 아니잖아.
이렇게 내뱉고 싶었지만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 소년은 달랐다. 인간과도 다르고 천외종과도 다르다. 심지어는…… 라하고도 달랐다.
불경스러운 생각이 떠오른 순간 카냐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 어쩌면 이게 타락의 전초가 아닌가 싶었다.
“고마워.”
겨우 한마디를 꺼낼 수 있었던 카냐는 상인에게 되돌아갔다.
역시나 연옥은 천국과 다른 곳인가 보다. 평생 느껴 본 적이 없는 이상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그녀는 지친 걸음으로 상인에게 다가와 엘릭서를 건넸다.
“자, 이제 에피네스를 줘.”
“안 돼. 이걸로는 팔 수 없어.”
“왜…… 또 왜?”
카냐는 소리 지를 힘도 없었다. 눈물을 참아야 한다는 일념이 그녀를 두 다리로 서 있게 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나는 저 소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엘릭서라고 말했어. 그리고 내 계산대로라면 아직 1개의 엘릭서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아니. 나에게 남은 엘릭서는 없어.”
5. 노르의 쉼터 (5)
시로네는 드론을 보유한 상인에게 엘릭서를 던졌다.
양손으로 받은 상인의 몸이 떨렸다. 감격에 겨워 제대로 쥘 수조차 없었다.
레드도 그린도 옐로도 아닌, 화이트 엘릭서였다.
시로네가 손바닥을 뒤집으며 말했다.
“어때, 이걸로 끝났지? 이제 카냐에게 물건을 줘.”
“이런 식은 곤란해. 저 엘릭서 또한 내 것이어야 거래가 되지.”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뺏어 가든가.”
상인의 눈매가 꿈틀했다. 시로네의 행동이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증명해 보이듯 시로네가 엘릭서를 만지작거리는 상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렇다는데 어쩔 거야? 다시 물러 줄 수 있어?”
“아, 아니! 거래 취소는 절대로 안 되지!”
상인이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물론 메카의 드론은 가치가 높다. 다만 그 물건이 쓸 수 있는 상태라면.
그가 팔아 치운 드론은 실상 옐로 엘릭서 선에서 정리되는 물건이었다. 그것을 화이트 엘릭서에 넘겼으니 인생에 다시없는 수지였다.
“자, 이제 어떡할 거야? 이단끼리 사이좋게 치고받고 싸움이라도 할 건가? 그게 특기인 것 같던데.”
약재상의 얼굴이 굳었다.
확실히 이런 경우 난감하다. 고객과의 흥정이라면 얼마든지 뻔뻔해질 수 있지만 업자 간의 갈등은 이득 될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생필품을 주로 취급하는 하위 커뮤니티 상인끼리는 더더욱 그랬다.
약재상은 그제야 시로네를 유심히 살폈다.
이런 식으로 압박해 오는 걸 보니 노르인이 분명하다. 그것도 쉽지 않은 노르인이다.
하나만 받고 넘길 것인가? 에피네스를 화이트 엘릭서와 교환했다는 건 역사에 남을 장사다.
하지만 기분의 문제였다. 신민의 뜻대로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좋아, 나는 안 팔겠어. 그러니 장난감이나 가지고 만족하라고. 그거 알아? 너는 이 아가씨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은 거야.”
상인은 파투를 내 버렸다. 돈을 포기하고 승리의 쾌감을 택한 것이다.
상인으로서는 빵점짜리 거래지만 신민이 우는 꼴을 볼 수 있다면 상관없을 듯했다.
시로네는 그가 게임에 졌음을 깨달았다.
“아니, 당신은 약을 팔아야 해. 그러지 않으면 계약을 위반한 셈이니까.”
“뭐라? 내가 무슨 계약을 위반해?”
“당신이 말했잖아. 내가 가진 엘릭서 전부를 가져오면 약을 팔겠다고. 카냐는 그렇게 했어. 그런데 갑자기 거래를 취소한다는 건 계약 위반이야. 장사꾼이 신용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을 텐데?”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끝장이다. 최소한 커뮤니티에 발붙일 자리가 없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억울한 감도 없지 않았다. 억지를 부리는 건 시로네였기 때문이다.
“말은 똑바로 해. 내가 계약을 제안했을 때, 너에게는 엘릭서 2개가 있었어. 그리고 계약이 성사된 직후 드론을 샀기 때문에 나는 위반한 게 아니야.”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드론을 언제 샀는지?”
약재상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이성을 잃은 상태지만 오랜 장사 경험으로 촉이 왔다.
불리한 쪽은 자신이었다.
“나는 이미 드론을 사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어. 다만 엘릭서를 내놓지만 않았을 뿐이지. 상인이라면서 그 정도도 확인 안 하고 거래를 하다니, 당신도 아직 멀었군. 의심이 간다면 확인해 봐도 좋아.”
약재상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촉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드론을 판매한 상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시로네의 편을 들 것이다. 시로네와 계약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면 화이트 엘릭서의 소유권이 넘어오기 때문이다.
본토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자신도 과점을 통한 폭리를 취했으니 남을 욕할 입장은 아니었다.
‘어째서 내가 불리한 거지? 원래는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복기를 해 보던 약재상은 깨달았다. 드론의 가치가 예상보다 낮다는 걸 시로네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식으로 조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성립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인이 시로네의 편을 드는 건 몇 배 이상의 수익을 냈기 때문이니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물질을 대하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있다. 본토의 업자들 사이에서도 먹힐 만한 실력이었다.
“어떤가요, 아저씨? 우리가 먼저 계약한 게 맞죠?”
“물론 우리가 먼저지. 저 처자가 소리를 지르기 전부터 화이트 엘릭서를 받고 드론을 넘겨주기로 구두계약이 끝난 상태였네.”
요구하지도 않았건만 시로네는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다른 상인과 계약이 되었다면 고객의 한도를 확인하지 못한 장사꾼의 책임이다.
이대로 물러나야 하는가? 화이트 엘릭서 1개도 엄청난 수확이지만 자존심 문제였다.
그는 상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저열한 카드를 꺼냈다.
배를 째는 것이었다.
“내 어머니는 천국의 신민이었지. 하지만 일화의 술은 받지 않았어. 이유가 뭔지 알아?”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약재상이 머리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미쳐 버리셨거든. 아버지는 천국에서 살해당했어. 어머니를 짝사랑하던 어떤 미친놈한테. 그런데 내려진 형벌이 뭔지 알아? 수명 40년 삭감이야. 그런데도 수명이 40년이나 남았더라고. 우리 아버지는 죽었는데 말이야. 어머니는 평생토록 그 인간을 저주했어, 크크크.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일화의 술 날짜가 잡힌 거야. 아버지를 죽인 그 미친놈하고 함께.”
카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로네는 그 사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고 있었지만 일행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술법의 대상이 줄어 버렸으니 남은 죗값은 내가 받아야 했지. 그래서 율법을 피해 도망친 거야. 이제 알겠어? 난 신민이 싫어. 보기만 해도 토악질이 나온다고! 그런데 내가 약을 팔아 줄 것 같아?”
한마디로 뚜껑 열렸으니 같이 죽어 보자는 얘기였다.
시로네는 콧방귀로 응수했다.
정말로 자폭을 결심한 사람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너도 죽고 나도 죽는 상황에서 과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