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66
하늘에 닿아 있는 성벽을 넘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별다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카냐는 그조차도 고개를 저었다.
“비행 승인을 받은 드론 외에는 천국의 영공을 날 수 없어. 요격당할 거야. 여태까지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예전에 할아버지에게 들었거든. 그리고 어차피 몰래 들어가는 건 불가능해.”
“어째서? 문을 지키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출입을 제재하지는 않아. 율법의 문제야. 천국에서 일어나는 정보는 천사가 거주하는 제6천 제불에서 관리해. 각 구역의 질량 변동과 공기에 섞이는 기체 성분까지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숨어서 들어온다고 해도 허사야. 너무 걱정하지 마.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까. 여기는 연옥이 아니라고.”
신민인 카냐는 천국에 대해 미리 안 좋은 감정을 심어 줄 필요는 없다는 듯 시로네를 안심시켰다.
성문에 다가가 건틀렛을 들이밀자 렌즈에서 튀어나온 적색 광선이 표면을 스캔했다.
성문이 열리면서 세상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었다.
73번 구역의 입구가 개방되자 시로네 일행은 카냐의 뒤를 따라붙어 천국으로 들어갔다.
성문이 닫히면서 렌즈가 반짝였다.
새롭게 변한 73번 구역의 정보가 제6천 제불로 전송되었다.
총질량 497억 3,949만 8,847.3423킬로그램.
이산화탄소 발생량 0.0000024퍼센트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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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마인의 첫 느낌은 이질적이었다.
길목을 사이에 두고 종족의 거주지가 구분되어 있었는데 문화양식이 극단적으로 달랐다.
노르인의 건물은 실용적인 데 반해 케르고인의 건물을 사치스러웠다. 그리고 메카인의 건물을 발견했을 때, 시로네와 에이미는 걸음을 멈추고 말을 잃었다.
마법 창고 이스타스였다.
정방형의 상자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는데 옆의 건물과 자유롭게 교차하며 위치를 옮기고 있었다.
메카인이 마법학교에 견학을 왔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메카의 기술이 원래의 세계로 흘러들어 왔다는 증거였다.
카냐는 메카인의 거리를 지나 광장으로 빠져나왔다.
문화의 교두보처럼 여러 종족이 섞여 있는 광장의 풍경은 중립국의 국제시장을 보는 듯했다.
“시로네, 저기 좀 봐.”
에이미가 거인의 상을 가리켰다.
케르고 제단에서 보던 때와는 기분이 달랐다. 이곳에는 실제로 거인이 살고 있다. 게다가 전투까지 치렀다.
신민의 추앙을 받는 거인이 연옥을 떠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냐의 집은 다른 메카족의 집과 똑같은 크기였다.
케르고가 과시, 노르가 실용이라면 메카는 규격을 추구하는 듯했다.
카냐의 집으로 들어가자 건물이 4층으로 떠올랐다.
비인간적인 형태와 달리 내부는 아늑했다.
식탁에 앉아 있던 부모님이 벌떡 일어섰다.
일화의 술은 수명이 끝나는 자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들었는데 그들의 얼굴은 시로네의 예상보다 훨씬 젊었다.
카냐의 엄마가 두 딸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대체 어디를 갔다 온 거니?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안해. 사정이 있었어.”
“저 아이들은 누구니? 노르인 같은데.”
“노르의 쉼터에 갔다 왔어. 이걸 구하려고.”
카냐가 물약을 내밀자 엄마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딸이 이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일까?
“너…… 이건…….”
“각성제야, 노르의 마법으로 만든. 일화의 술 전에 이걸 마셔.”
“레나!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엄마는 이런 걸 바라지 않았어!”
“그럼 지켜보고만 있으란 말이야? 엄마도 할아버지에게 약을 주려고 연옥에 나간 적이 있잖아!”
“너 도대체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할아버지가 얘기해 주셨어! 그래서 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일화의 술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야! 그거면 됐잖아! 그런 게 가족이잖아!”
“너 정말 왜 그래! 그럼 약을 구하다가 엄마의 수명이 줄어든 것도 알고 있을 거 아냐! 딸이 그 짓을 똑같이 한다면 엄마의 마음이 어떻겠어!”
침통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아빠가 끼어들었다.
“두 사람 다 그만해.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일단 무사히 돌아왔으니 됐잖아.”
아내를 말린 그는 시로네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럼 자네들은 이단인가, 노르의 쉼터에서 온?”
카냐가 시로네 일행을 소개했다.
“아니야. 저들은 땅의 나라에서 왔어. 나와 레나의 목숨을 구해 주고 이 약도 구하게 도와줬어. 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죽었을지도 몰라.”
딸을 살려 주었다는 말에 매몰차게 대할 부모는 세상에 없다.
아빠는 시로네 일행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엄마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카냐는 연옥에서 겪은 일을 말해 주었다.
시로네가 네피림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는 두 사람 모두 무릎을 꿇는 바람에 거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일행의 간곡한 부탁 끝에야 부모님은 편하게 대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랬군. 카냐와 레나를 도와준 건 고맙네. 하지만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게 좋을 거야. 네피림이라고 해도 땅의 나라에서 온 자들을 반기지는 않을 테니까.”
“아뇨. 저희는 제7천으로 갈 생각이에요.”
신의 성지 아라보트는 감히 가겠다고 말하는 것조차 불경일 정도로 성스러운 곳이었다. 하지만 시로네는 율법에서 자유로운 자였으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자유롭게 내뱉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제7천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네.”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겠죠. 그보다 궁금한 건 이곳의 율법이에요. 수명이 줄어든다는 건 무슨 얘기인가요?”
“말 그대로일세. 신민은 태어날 때부터 율법에 따라 수명을 부여받지. 카냐의 수명은 62세. 레나는 73세까지 살 수 있다네.”
“어라? 레나가 동생인데 수명은 더 많네요?”
“수명은 언제든 바뀔 수 있어. 레나는 어릴 적에 찬송을 아름답게 불렀다는 이유로 10년의 수명을 더 얻었지.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아내일세. 아내의 수명은 43세 하고도 247일.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어.”
시로네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수명을 하루 앞까지 알고 있을까? 만약 자신이 그랬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럼에도 카냐의 엄마는 웃고 있었다. 라의 은총이 내릴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젊을 적 연옥에 나간 죄로 20년의 수명을 삭감당했네. 그래서 내일이면 일화의 술에 들어가게 되지.”
사람의 수명을 바꾼다는 건 잔인한 일이다. 아니, 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라가 수명을 지배한다면 그는 몇 살이란 말인가?
천국의 역사가 수십만 년이라 했다. 어쩌면 라는 정말로 신일지도 모른다.
“일화의 술이라는 건 무엇인가요?”
“흐음, 말해 주지 않았나 보구먼. 하긴 그랬겠지. 알아서 좋을 일이 아니네. 무엇보다 네피림은 율법에서 자유로운 자가 아닌가? 자네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래도 알고 싶어요.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좋은 방법이 떠오를지도 모르고요.”
“흐음, 그렇다면야…….”
아빠가 말을 꺼내려는 그때 창문 밖에서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나를 받들라! 메카족 담당관 페오페니라.”
시로네 일행은 벌떡 일어섰다.
소리 증폭 마법처럼 목소리가 여기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언어가 저절로 통역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채널을 통하지 않고 소리만으로 시전하는 정신감응의 능력.
마법이라면 고난이도였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군. 요정이네.”
“요정요? 제가 아는 그 요정 말인가요?”
시로네는 원래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요정족을 떠올렸다.
카냐의 아빠는 그가 말하는 요정이 이곳의 요정인 줄로 착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율법을 행하는 자. 거인이 율법을 지킨다면 요정은 율법을 행하는 존재일세. 내정관이라고 할 수 있지. 카냐와 레나의 건으로 찾아온 것일 게야.”
“저희는 어떡하죠?”
“자네가 네피림이라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율법에서 자유로운 존재이니. 다만…… 그녀가 그런 점을 감안해 줄지는 모르겠군. 특이한 성격이라.”
“무엇 하느냐! 이 집의 신민은 어서 문을 열어라!”
요정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이곳은 4층이었다. 그리고 시로네가 알고 있는 요정은 결코 하늘을 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빠가 문을 열어 주자 시로네의 예상을 깨고 앙증맞은 생물체가 날아들었다.
손바닥 크기의 여자아이였다.
금발의 곱슬머리였는데, 작은 얼굴에도 이목구비가 또렷하게 보일 만큼 예뻤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녹색 부츠를 신었고 투명한 날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카냐의 가족이 무릎을 꿇자 시로네 일행도 눈치껏 그들을 따라 했다.
허공에 떠 있는 페오페가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나는 나선의 요정 페오페. 신민 재판을 하러 몸소 출두했느니라.”
요정은 잭 오 랜턴처럼 정에서 태어나지만 자연계의 속성이 아닌 개념이었다.
단일개념체.
따라서 요정은 이성이 있고 모태가 된 개념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율법을 집행하겠다. 카냐와 레나, 너희 연옥에 나간 적이 있더냐?”
“네. 나갔다 왔습니다.”
카냐의 부모님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당사자인 카냐는 담담했다. 천국을 나서기 전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레나였다.
“죄송합니다. 일화의 술을 앞둔 어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서, 속된 자의 숲에서 사냥을 했습니다.”
케르고는 자유롭게 연옥을 오갈 수 있으니 사냥의 핑계를 대면 죄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페오페는 신민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녀를 몰아붙였다.
“흥, 어디서 감히 거짓을 고하느냐. 내일이면 죽을 신민에게 음식이 무슨 소용이지?”
카냐의 엄마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일화의 술이 설령 축복이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생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 위태로운 감정을 페오페가 들쑤셔 버린 것이었다.
시로네는 그 사실에서 분노를 느꼈다.
신민들은 일화의 술을 재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정 관리인 요정에게서 나온 말은 명백한 사망 선고였다.
단순한 협박이 아닌 이유는, 페오페의 말에서 악의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순진무구한 어린아이가 느낀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과 같았다.
“어쨌거나 판결을 내리마. 카냐와 레나, 너희의 수명을 40년씩 삭감한다.”
카냐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40년 삭감이면 남은 생이 10년도 되지 않는다. 레나는 나은 편이지만 그래 봤자 33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무단이탈로 40년 삭감을 선고받은 건 그녀가 알기로는 최고 기록이었다.
1년 전 동갑내기 세일은 5년 삭감을 받았다. 노르족인 카이 아저씨는 7년이었다. 가장 재수가 없는 경우로 알려진 엄마조차도 20년이다.
그런데 40년을 삭감한다고? 자신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레나의 인생은 어쩌란 말인가?
6. 일화의 술 (3)
“페오페 님! 용서해 주세요! 저와 레나의 수명을 합치면 80년의 삭감입니다. 제가 동생을 억지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니 동생만이라도 죄를 덜어 주세요!”
“40년이 어때서 그래? 어차피 길어야 60년밖에 못 살지 않느냐? 5년이면 하고 싶은 일들을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생물학적 특성을 결정짓는 건 수명이다. 요정은 인간처럼 이성이 있지만 유구한 수명을 영위하는 만큼 사고방식이 판이하게 달랐다.
요정의 인생에는 실수를 만회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래서 아집이 없고 솔직하지만 수명이 제한된 인간의 기분을 알 턱이 없었다.
하루살이의 1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는 인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나 탄생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페오페의 입장에서 죽음이란 천 년 뒤에나 떠올려 봄 직한 단어에 불과했다.
카냐의 엄마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내정관이 서투르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참담한 판결을 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페오페 님, 당신은 율법의 집행자이십니다. 허나 요정계의 어느 누구도 이토록 가혹한 처벌을 내리진 않았습니다. 저만 해도 20년이었습니다. 부디 생각을 고쳐 주세요.”
“뭐야? 너 지금 내가 한 살밖에 안 됐다고 무시하는 거야! 나도 알 건 다 알아! 율법의 집행자는 최대 50년까지의 수명을 판결할 권한이 있다. 내 고유의 권한에 반기를 드는 것이냐?”
“정말로 그리 판결을 하셨다면 납득할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흥, 좋다! 그럼 이렇게 말해 주지! 카냐와 레나의 천국 무단이탈은 수명 삭감 20년! 그리고 남은 20년은 이단을 끌어들인 죄다! 이러면 불만 없겠지?”
페오페가 시로네 일행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단이 들어왔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지만 이곳에 와서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니 판결을 내리는 건 문제가 없었다.
“페오페 님! 이 사람들은 이단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소년은 네피림입니다.”
“네, 네피림?”
페오페는 시로네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로 네피림인가?
천사의 후예. 율법에서 자유로운 자. 탄생과 동시에 주어지는 원천 지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요정은 율법의 조율자가 아니므로 정해진 율법에 한해서만 죄를 물을 수 있다. 따라서 네피림에게는 어떤 처벌도 가할 수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페오페는 물러서지 않았다.
요정 72계급, 4만 8천 요정 중에서 막내인 그녀는 매일같이 시달리는 선배 언니들의 언어폭력을 떠올렸다. 여기서 권위를 세우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다음 막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놀림거리가 될 터였다.
“그래 봤자 죄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네피림은 넘어가 주마! 하지만 모두가 네피림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단을 들인 죄는 그대로 물을 것이야!”
카냐의 엄마가 고개를 쳐들고 반박했다.
“네피림은 아니지만 네피림의 동료입니다. 그들을 이단으로 모는 건 율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닥쳐라! 신민 따위가 율법의 집행자에게 율법을 논하다니! 나는 라의 의지를 수행하는 것이다. 나에게 대항하는 것은 신에게 대항하는 것과 같다!”
“잠깐 기다려.”
무릎을 꿇고 있던 시로네가 일어서자 페오페는 팔짱을 끼며 그를 돌아보았다.
네피림과 싸우는 건 좋은 일이 아니지만 아무리 네피림이라도 율법의 집행에 관여할 권한은 없었다.
“뭐야? 집행을 방해하는 거라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니, 착각을 바로잡으려는 거야. 우리는 저 소녀가 데리고 온 게 아니야. 단지 따라왔을 뿐이지. 그렇다면 저 소녀에게 죄를 물을 수 없는 거 아닌가?”
“무슨 소리야? 따라오다니?”
“나는 천국 밖에서 우연히 저 소녀를 발견했어. 문을 열기에 따라서 들어온 것뿐이야. 나는 율법에서 자유롭기에 어디든 갈 수 있어. 그래서 저녁을 먹기 위해 이 집으로 쳐들어온 거야. 따라서 저 두 자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누가 그런 거짓말에 속을 줄 알고?”
“그렇다면 증명해 봐. 내 말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대 보란 말이야.”
천국 내의 메카 시스템은 어떤 작은 변수도 잡아내지만 감정만큼은 읽어 내지 못한다.
시로네 일행이 카냐와 함께 들어온 상황은 수많은 정보들이 검증하지만 그들의 관계까지 파악하는 건 무리였다. 이 모든 게 시로네가 네피림이라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페오페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간의 말에 놀아났다는 소문이 퍼지면 천 년 동안은 놀림거리가 될 테니까.
“좋다. 그렇다면 카냐와 레나의 수명을 20년 복원시킨다. 그리고 네피림의 출입도 허가한다. 하지만 남은 자들은 율법을 부정하는 이단임이 분명하므로 수명을 삭감하겠다. 거기 너, 너부터 이름을 말해 봐.”
페오페가 아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한 인과는 모르지만 수명을 부여하는 능력에는 이름이 반드시 필요한 듯했다. 살생부에 버젓이 이름을 적을 만큼 아린은 어리석지 않았다.
“싫은데. 왜 내가 너한테 이름을 말해야 하는데?”
“이것들이 진짜! 천박한 이단이라 요정의 무서움을 모르는구나!”
시로네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람의 생명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도 언젠가는 죽을 거 아냐.”
“나는 정이야. 인간의 목숨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게다가 아직 1년밖에 안 살았거든! 수명이 끝나려면 아주아주 많이 남았단 말씀.”
시로네는 코웃음을 쳤다.
미래는 결국 다가오기에 미래다. 그렇기에 먼저 산 자들을 예우하는 것이고 세상을 떠나면 추모하는 것이다.
페오페는 미래라는 개념이 파괴 불변의 성질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아니,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한 살이라고 했다. 인간의 한 살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미성숙한지 짐작이 갔다.
페오페가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