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68
거인의 동상.
그곳으로, 동상의 밑바닥으로 여덟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 동상에 차오르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영원불멸의 라.
앙케 라를 찬양하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갑자기 거인의 동상이 강하게 진동했다.
그 시점에서 신민들은 입을 다물었다.
유리구에는 물 한 방울 남지 않았다. 모조리 거인의 동상에 채워진 것이다.
마치 거푸집처럼.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한번 떠오른 생각은 멈출 수가 없었다.
인간을 녹여서 들이붓는 거푸집. 그렇다면 저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건…….
거인의 상이 절단면을 보이며 열렸다.
거대한 발이 밀려 나와 땅을 울렸다.
시로네는 젤리를 뒤집어쓴 거인의 모습을 보고 전율했다. 인간이라 부르기에는 표정이 엇나가 있었다.
정신 채널을 통해 아린이 중얼거렸다. 거인과 정신 감응을 하지 못한 이유, 그것은 하나의 육체에 여러 명의 정신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육체에 담겨 있는 정신은 어떤 상태일까?
여덟 명의 정신일까, 아니면 그것과 완전히 달라져 버린 무엇일까?
신민들이 자비를 구했다.
율법으로 태어나 율법을 지키는 자. 거인.
그렇기에 거인은 율법을 어긴 자를 처단할 권리가 있다.
이 순간 거인의 발에 누군가가 짓밟히더라도 거인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거인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눈의 기술인 프레싱이었다.
아아.
시로네는 전율했다.
스키마의 원류. 태초의 스키마는 일화의 술로 뒤섞인 인체 도식이 겹쳐지는 현상이었다.
거인의 뒤를 따르며 신민의 대화를 엿들었다.
거인은 이대로 천국을 벗어나 연옥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천국을 위협하는 이단을 처단하고 다시 라의 부름을 받아 제5천 마테이로 돌아오게 된다.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음성에 반응하듯 거인이 움찔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고,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성문 밖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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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오페의 기억 속 풍경이 불붙은 종이처럼 타들어 가면서 집의 풍경이 되살아났다.
시로네 일행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페오페는 보이지 않았다. 기억이 재생되는 동안 도망쳐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일화의 술이 무엇인지 알게 된 그들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일화의 술 대상자는 액체 속에서 분해된다. 그리고 거푸집에 들어가 특별한 변성 과정을 거친 후 거인으로 재탄생한다. 사람들의 정신은 뒤섞이고, 그 과정에서 스키마가 발생한다.
카냐가 구입한 각성제는 그런 의미였다.
미지의 암흑 속에서 조금이라도 의식을 차릴 수 있도록 하는 바람이었다.
가드락의 말이 맞았다. 고통에 죽어 가는 환자에게 마취제를 투여해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럴 수가…….”
테스의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
거인의 능력 스키마. 그리고 자신의 능력 스키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구석으로 달려가 토악질을 했다. 조금 전 먹은 음식이 쏟아졌다.
테스를 핀잔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메스꺼웠다.
리안이 다가오자 테스가 손을 들어 말렸다.
물론 페오페의 기억이 전장의 풍경보다 역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정신적인 구토가 밀려들었다.
스키마는 거인의 기술이다. 그런데 자신은 어째서 스키마를 열 수 있을까? 네피림처럼 거인의 핏줄이 따로 있는 것일까? 하지만 거인에게 생식기는 없었다.
“내가 왜 말하지 않았는지 알겠지?”
카냐가 슬픈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누군가는 축복이라 하고, 누군가는 저주라 한다.
신민과 이단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이 행사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입에 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율법에 따르면 인간은 거인에게서 태어났어. 그렇기에 다시 거인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게 일화의 술이야.”
카냐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시로네가 목격한 일화의 술은 어떤 화장으로도 본모습을 감출 수 없는 괴물이었다.
결국 깨닫고야 말았다.
천국에서 자행되는 일화의 술은, 사람의 살과 내장을 원료로 하여 거인을 찍어 내는 술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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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의 자비 (1)
일화의 술.
인간을 녹여 거인을 만드는 술법.
다수의 개체를 하나로 합친다는 생각에 생물의 존엄성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생물은 자손을 퍼트린다. 하지만 천국의 사술은 그런 생물의 구조를 역행하고 있었다.
수명부로 신민의 수명을 조절하고 개체가 늘어나면 거인으로 통합하여 인구수를 유지한다.
그것이 라의 의지라면 일화의 술은 천국을 유지하는 핵심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로네 일행은 테이블에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천국의 잔인한 생각을 접했기에 긴장감은 한층 높아져 있었다.
우선은 페오페의 처우였다.
기억 전이 중에 자리를 빠져나간 그녀가 상부에 보고를 올린다면 카냐의 집도 안전하지 않았다.
“당장 떠나야 해. 페오페는 더 많은 병력을 끌고 올 거야.”
카니스는 움직여야 한다는 쪽이었다.
페오페의 실력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한 살에 불과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른 요정들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는 이상 전투는 피하는 게 좋았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시로네는 네피림이잖아. 율법에 의하면 네피림은 율법의 영향을 받지 않아. 요정이 시로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거야.”
신민인 카냐는 철석같이 율법을 믿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은 네피림이 만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천국의 율법에서 자유롭지만 그렇기 때문에 율법에 관여했을 때의 반발도 심했다.
“시로네, 네가 결정해. 우리는 네 뜻에 따를 거야.”
에이미는 시로네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천국의 입장에서 이단은 이물질 같은 존재였다. 그나마 무언가를 해 보려면 시로네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지내는 게 좋겠어. 페오페가 우리를 밀고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럴 이유도 없고. 게다가 메타게이트가 있으니 최악의 사태에서는 도망치면 돼.”
시로네는 페오페를 믿었다. 성격은 괴팍했지만 카냐와 레나의 수명 삭감을 1년으로 줄였다.
자기비판이 가능할 만큼 지성이 높은 그녀가 감정에 치우쳐 일을 키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카냐가 걱정스러웠다. 이제 내일이면 카냐의 어머니가 일화의 술을 받게 된다.
평생 동안 나라는 존재만을 탐닉하는 인간에게 다른 인간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공포였다.
“네가 일화의 술을 말하기 꺼렸던 이유를 알겠어. 하지만 카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내가 확인한 일화의 술은…….”
“알아, 불합리하다는 거. 나도 알고 있다고.”
카냐는 순순히 인정했다.
조금 전만해도 일화의 술을 성스러운 술법이라고 표현한 그녀치고는 과격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시로네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믿음과 감정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나라고 바보는 아니야.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신을 믿지 않으면 죽어. 신을 믿으면 영생을 얻지. 선택권은 없어.”
카냐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천국에 사망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에 머물 거라면 쉴 곳을 마련해 줄게. 이쪽으로 와.”
배전판의 버튼을 누르자 건물의 측방이 열리면서 새로운 구조물이 날아와 카냐의 집과 연결되었다.
시로네 일행이 놀란 듯 쳐다보자 대부분의 가정이 여러 개의 칸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후후, 메카족은 손님을 초대하는 걸 좋아하거든.”
카냐의 미소가 시로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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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카냐와 레나는 같은 침대에 누웠다.
마치 달리고 있는 것처럼 심장이 빨리 뛰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매는 울지 않았다. 누가 먼저 울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하염없이 뒤척이던 그때 레나가 돌아누웠다.
“언니, 내일이면 엄마는 없는 거지?”
카냐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게 된 동생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데 레나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시로네 오빠라면…… 언니에게 양보해도 좋아.”
카냐의 미간이 살며시 좁혀졌다. 황당한 표정에는 정곡을 찔린 마음도 조금은 감추어져 있었다.
“무슨 소리야? 시로네는 네피림이야. 내가 어떻게 그런 사람하고 삶을 공유하겠어?”
“하지만 언니는 절대로 이단하고는 사귀지 않을 거야. 그리고 시로네 오빠 같은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겠지. 그러니까 지금이 기회야. 반드시 잡아.”
카냐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애써 참아 냈다. 동생의 심정이 구구절절하게 전해져왔다.
내일이면 엄마는 집에 없다. 레나는 공허함을 새로운 가족으로 채우고 싶어 하고 있었다.
“후후, 하지만 너도 시로네를 좋아하잖아. 시로네가 형부가 되면 네 성격에 못 견딜걸. 날마다 나를 질투할 테니까.”
“아냐! 진심이야! 언니라면 양보할 수 있어!”
카냐는 웃었다. 어차피 시로네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건 카냐도 알고 레나도 알고 있었다.
야심한 밤에 오가는 소녀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레나가 비 맞은 고양이처럼 파고들자 카냐는 동생을 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걱정하지 마, 레나. 나에게는 너밖에 없어.”
레나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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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네 일행은 카냐가 제공해 준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시로네는 물론이고 친구들도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한동안은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테스가 우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어. 솔직히 여기, 너무 힘들다, 진짜.”
다른 사람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12시간 동안 몇 차례의 전투를 치른 것인가?
게다가 상대하는 적들마다 하나같이 원래의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강력함을 지니고 있었다.
피로도 그렇지만 아무리 파헤쳐도 끝이 없는 천국의 비밀도 문제였다.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접한 탓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카니스가 말했다.
“그럴 수는 없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나랑 아린은 반드시 제7천 아라보트에 가야 해.”
고작 샤마인이나 관광할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터였다.
천국에 온 이상 메타게이트를 회수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그들이 티켓 값으로 지불한 것은 무려 고대 무구인 셈이었다.
에이미가 베개를 끌어안고 돌아누웠다.
“하지만 아라보트는 신이 사는 곳이잖아? 천국에서도 가장 들어가기가 어려운 곳일 거야. 도대체 무슨 수로 거기에 간다는 거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가는 게 두려우면 차라리 여기서 기다리든지.”
“어쭈? 아주 대놓고 무시하는데? 그냥 확 우리 먼저 돌아가 버린다?”
“그건 더더욱 안 되지. 여기서 메타게이트를 발동하면 기억이 초기화되니까. 기억은 1회용이야. 우리가 남더라도 돌아갈 방법이 없어지잖아.”
에이미가 베개로 바닥을 퍽 때리며 일어나 앉았다.
“어라? 진짜 그런 거였네? 결국 우리가 돌아가려면 너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거잖아?”
“그래. 여태까지 그것도 몰랐냐, 이 호박아?”
“뭐, 호박? 세상에 이렇게 예쁘게 생간 호박 봤어?”
“봤지. 지금 네 목에 붙어 있는 게 그거 같은데.”
에이미는 이를 갈았다. 칭찬인지 악담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카니스가 입을 봉해버린 것만은 사실이었다.
시로네가 베개를 껴안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도 아직 돌아갈 생각은 없어. 하지만 카니스, 메타게이트를 사용할 시기는 합리적이어야 해. 생존 이외의 것이 머리에 남아 있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리게 되니까.”
“흥,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아린에게 맡겨 두면 돼. 정말로 위험해진다면 천국이고 뭐고 무조건 돌아갈 거니까.”
“그런데 말이야…….”
테스가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어지는 몸의 굴곡이 압도적이었다.
‘어른…… 어른이다.’
‘테스, 어른이구나.’
아이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었지만 테스는 익숙하다는 듯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수명을 조절하는 거야? 정말로 신이라는 게 존재해서 사람의 수명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거야?”
아이들은 생각에 잠겼다.
“난 마법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르샤 누나랑 대결할 때도 같은 느낌이었는데, 마법은 불가능한 게 없는 것 같아.”
분명 클레이 마르샤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함께 싸웠던 에이미는 부정적으로 보았다.
“흐음, 규정외식 말이지. 수명을 줄이는 건 대가와 조건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지만 영생은 어떡할 건데? 어떤 마법도 수명을 늘릴 수는 없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니까.”
“그런가? 나는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으음.”
아린이 말했다.
“왜 다들 비판적으로만 생각해? 어쩌면 라가 정말로 신일 수도 있잖아. 세상을 창조하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신에 근접한 존재는 아닐까?”
“그것도 좀 이상해. 정말로 신이라면 수명을 조절하는 데 어째서 이름이 필요하지?”
에이미의 말대로 이름이란 인간이 부여하는 호칭일 뿐이다. 인간이 다루는 언어에 의존하는 존재가 신격에 올라 있다고 생각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시로네가 말했다.
“게다가 일화의 술,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어떤 이유에서건 인간의 생명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거잖아. 라는 단순히 천국을 관리하기 위해서 수명을 조절하는 것일 수도 있어. 신이 세상을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아.”
친구들은 시로네가 천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악은 인간의 개념이고 환경에 따라 유동적이다. 가치판단을 내리는 건 최후까지 신중해야 하는 일이었다.
테스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잖아. 그들이 선택한 삶이고 그들의 문화야. 특히나 종교라는 것은 하나의 문화권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관념이라고.”
“아니, 종교가 아니야. 우리도 방금 말했잖아, 라는 신이 아니라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신이 아니라 독재자라고 해도 상관없어. 라는 어쨌거나 수명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으니까. 종교에서 그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지?”
시로네는 할 말이 더 있는 듯했지만 결국 말을 삼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이미는 시로네가 여전히 카냐의 어머니를 구할 방법을 찾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시로네가 좋았지만, 지금은 냉정해야 할 때였다.
“어떡하려고, 시로네? 내일이면 일화의 술이 진행돼. 테스의 말대로 신민이 선택한 일이야. 단순히 우리의 기준에서 불합리하다고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하지만 미로는 율법을 부정했다고 그랬어.”
“시로네, 그건…….”
“알아. 그녀의 생각에 묻어가려는 게 아냐. 내가 받은 느낌도 비슷해지고 있다는 거야. 이제는 어느 정도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