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7
“크크크, 재능이 없어서 검술학교에 집어넣어 버렸어. 아무튼 그런 놈은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내가 말하려는 건 리안의 친구일세.”
“그렇게 재주가 좋다면 정식으로 입학을 해도 상관없지 않겠나? 자네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밖에는 생각하지 못하겠네만.”
“아주 큰 문제가 있지. 귀족이 아니거든.”
알페아스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귀족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뇌리에 짧지만 강렬했던, 4년 전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하니…… 금발에 푸른 눈의 소년인가?”
알페아스 마법학교(4)
이번에는 클럼프가 놀랐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람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친구였다.
“마법에 도가 트면 예지력이 생긴다더니.”
“그런 건 아닐세. 짧게나마 인연이 있었거든. 하긴, 인상에 남긴 하더구먼.”
세상에 없지는 않을 뿐, 시로네 정도의 재능을 발견하기란 마법학교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평민이라면 크레아스 도시에서 그 소년밖에 없으리라 단언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있었네.”
알페아스는 열두 살 무렵의 시로네와 만났던 일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러자 클럼프가 그 이후에 오젠트 가문에 들어온 이야기를 해 주었다.
“흐음, 아리안 시로네라.”
알페아스는 다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장고에 잠긴 것이었다.
클럼프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받아 보는 게 어때? 이 또한 운명일지도 모르지 않나?”
“운명이란 말장난에 불과하지. 인간의 미래는 인간이 개척하는 거야. 가져다 붙이려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운명이 아닌 게 있겠나?”
이번에도 안 통하나.
클럼프는 입맛을 다셨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좋은 재능을 발견하고서도 결단을 못 내리는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너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알페아스는 말이 없었다.
“귀족들의 알력에도 굴하지 않고 특별 전형을 열어 둔 이유는 젊은 시절에 대한 후회 때문이겠지. 하지만 자네는 할 만큼 했어. 이미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지 않았나. 이제 그만 자신을 용서하게나.”
“허허허, 자신을 용서한다는 건 오만일세. 난 신이 내려 준 소중한 재능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놈이야.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닐세. 다시는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지.”
클럼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공인 4급의 마법사에 명문 학교의 교장을 지내고 있지만, 고작 이 정도로 끝날 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천재였다. 그날의 일만 없었다면.
“크크크, 하긴, 당시의 자네는 친구인 내가 봐도 재수가 없기는 했지. 미르히 가문의 빛. 100년에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지금은 늙다리 교장이라니. 인생 참 무상해.”
나이가 들면 고통도 자식처럼 품는 것인지, 가슴을 찌르는 독설에도 알페아스는 기분이 좋았다.
“껄껄! 반면에 자네는 하늘이 도왔지. 그 재능 없던 바보가 공인 3급 검사를 하고 있으니 말이야. 토르미아 왕국의 미래가 걱정되는구먼.”
두 사람은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재능과 노력, 그 천적의 싸움에서 클럼프는 승리했다고 봐도 좋았다. 알페아스는 그런 친구가 대견하고 존경스러웠다.
“늙어서 드는 생각이네만, 천재란 인간이 만든 망상에 불과하네. 그저 무언가를 조금 더 즐기는 것뿐이지. 과연 그 소년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을까?”
“그거야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알페아스는 미소를 머금으며 창가로 걸어갔다.
결국 되돌아오는 것인가? 신분의 장벽에 막혀 멀어졌던 재능이, 4년이라는 시간을 우회해 다시 자신의 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세상에 운명은 없다고 믿었다. 인간의 미래는 인간만이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알페아스는 불현듯 전율을 느꼈다.
어쩌면…… 정말로 운명이란 말인가?
“시로네를 입학시키겠네.”
마법을 배우다(1)
봄이 찾아왔다.
빈센트의 오두막에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가운데 시로네는 입학식을 기다렸다.
마법학교 입학은 집안의 경사였으니 빈센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괜히 이상한 소문이 퍼져 시로네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로네는 그런 아버지가 고마웠다.
도시에 집을 잡아 주겠다던 오젠트 가문의 제안마저 거부한 이유는 오로지 자식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한 부모의 마음이었다.
행복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마침내 마법학교에 입학하는 날이 되었다.
부집사 테무란이 마차 앞에서 기다리는 가운데 시로네는 부모님과 작별의 정을 나누었다.
“아버지, 다녀올게요. 편지 자주 할게요.”
“그래, 내 아들! 열심히 해라! 자, 뽀뽀!”
“윽!”
시로네는 질색했다. 아무리 외모가 어려도 이제 열일곱 살이니 입을 맞추는 건 무리였다.
“이제 뽀뽀는 좀…….”
“어허! 네가 안 하면 아빠가 한다?”
“으으.”
두툼한 입술이 다가오자 시로네의 목이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입이 아닌 시로네의 이마에 뜨겁게 입을 맞추고 끌어안았다.
“시로네, 네가 자랑스럽다.”
“아버지.”
시로네도 빈센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부모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에 귀족 학교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떨쳐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인사말로 집을 나서자 테무란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타시지요. 학교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마차에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불과 2년 사이에 입장이 반대가 되었으니 불편한 게 사실이었으나 시로네는 잊지 않고 있었다, 루이스 집사장의 견제에도 그가 자신의 편을 들어 주었던 것을.
마법학교의 정문에 도착한 테무란은 더욱 예의를 갖추어 시로네를 하차시켰다. 귀족들이 다니는 곳이니 특별히 이목을 신경 써야 했다.
“입학금을 비롯한 교재비는 저를 통해서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금전적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시고 도련님은 그저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시로네도 공손하게 인사했다.
“부집사님, 감사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아서요. 저를 좋게 봐 주신 덕분에 마법학교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평민이 아무리 날고뛰어 봤자 평민일 뿐입니다. 귀족을 넘을 수는 없지요.”
시로네가 고개를 들었다. 테무란이 예의 깐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 또한 누구나 쟁취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학교에 들어가면, 수많은 귀족들이 도련님을 좋지 않게 볼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참고 또 참으십시오. 끝까지 참을 수만 있다면, 결국 끝은 있는 법입니다.”
고아 출신으로 부집사까지 오른 테무란다운 조언이었다.
진리는 단순하다. 끝까지 참을 수 있다면, 결국 끝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마법사가 될게요.”
테무란은 웃었다. 2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처음으로 본 그의 미소였다.
“각오가 되셨다면 따라오십시오. 도련님은 오젠트 가문의 게스트로 등재되어 특별 전형 입학을 한 상태입니다. 제가 소개를 해 드리지요.”
학교 정문에는 5년 전의 그때처럼 경비들이 서 있었다.
시로네를 쫓아냈던 그들과 같은 이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은 변해도 그 자리의 철학만큼은 같을 터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번에 마법학교에 입학한 시로네 님이시네. 여기 입학증명서와 오젠트 가문에서 공증하는 신분증명서일세.”
입학증명서를 본 경비는 신분증명서까지는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쨌거나 이 문턱을 넘어설 수 있는 이상 평범한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문 경비를 맡고 있는 마르코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5년 전과는 딴판인 대우에 시로네는 낯선 기분에 휩싸였으나, 이제는 그도 꼬마가 아니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테무란이 시로네에게 돌아섰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언제든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저에게 연락을 하십시오.”
테무란에게 서류를 넘겨받은 시로네는 마법학교 학생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충성.”
경례를 받으며 마법학교의 문턱을 넘는 순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알페아스 마밥학교.’
천재들의 요람이라 불리는 곳에서 과연 무엇을 배우고 누구를 만나게 될까?
부지 위로 솟아 있는 수많은 건물들이 마치 자신을 반기는 거인처럼 보였다.
***
마법학교는 부지면적 75.425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산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기숙사를 포함해 총 스물두 채의 건물이 있고 훈련장만 마흔 군데가 넘었다.
학생 총원은 420명이고 교사의 숫자는 32명으로, 이 정도 규모라면 명실공히 왕국 최고의 학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접수처가 있는 건물로 들어가자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서류를 제출하고 기다리는 동안 시로네는 벽면에 있는 커리큘럼을 살폈다.
‘확실히 체계적이구나.’
알페아스 마법학교는 클래스 텐이라는 제도로 운영되고 있는데, 텐에서 에이트 클래스가 기초반, 세븐에서 포 클래스가 고급반, 스리에서 원 클래스가 졸업반이었다.
졸업반은 상대평가를 적용하며 최대 인원 30명 중에 10명만이 졸업할 수 있었다.
‘고작 10명?’
졸업생 테스트가 1년에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해마다 20명의 인재들이 낙제한다는 얘기였다.
“네가 시로네로구나.”
고개를 돌리자 5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알페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새삼 이곳이 마법학교라는 것을 상기한 시로네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시로네입니다.”
“우리는 구면인 것 같은데? 나를 기억하고 있니?”
시로네에게 마법사의 꿈을 꾸게 만든 사건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네.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래. 아무튼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일단 가자꾸나. 입학 테스트를 치러야 한단다.”
“네? 테스트요?”
시로네는 당황스러웠다.
아직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데 어떻게 테스트를 한단 말인가?
“걱정할 것 없다. 단순히 클래스를 정하기 위한 평가니까. 스피릿 존에는 들어갈 수 있니?”
“네, 할 수 있어요.”
“호오.”
혼자서 스피릿 존을 열었다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학교 밖에서의 관점일 뿐, 알페아스의 걱정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알페아스가 시로네의 접수를 가장 늦게 진행시킨 이유는 입학생들과 나이 차가 있기 때문이다.
영재교육의 특성상 입학생 대부분은 10세 미만이고 많아도 열네 살을 넘지 않았다.
반면에 시로네는 열일곱 살이었으니, 체면이 상하지 않게 시간을 조정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가르쳐야겠지. 내 눈이 어두운 탓이지만 안타깝구나. 조금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을.’
알페아스는 직접 시로네를 안내했다.
빨리 도착해 봤자 다른 아이들의 테스트가 한창일 것이기에 동선을 바꾸어 교실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지금까지 보았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에 시로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두가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기초반 교실이었음에도 아이들의 기상천외한 묘기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4층 높이에 떠 있는 소녀가 친구와 창문을 사이에 두고 토론을 하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세 권의 책을 공중에 펼쳐 두고 동시에 읽고 있었다.
알페아스는 시로네의 반응을 곁눈질하며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클래스 세븐으로 들어가자 학생들의 나이대가 훌쩍 올라갔다. 아이들처럼 묘기를 부리지는 않았지만 눈빛은 지성으로 불타올랐고 옆에 누가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대화에 몰두하고 있었다.
“대기를 빙점 이하로 끌어 내릴 만큼의 대류 에너지? 차라리 냉매를 응축시키는 게 효과적이지 않나?”
“하지만 가역반응을 촉진시킬 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 이런 건 어때? 에너지의 방향성을 뒤집는 대신 시간축을 회전시킨다면…….”
학생들의 대화에 주의를 기울이던 시로네는 덜컥 겁이 났다.
어떤 주제를 두고 토론하는지는 알겠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었다.
복도의 끝에서 강렬한 노이즈가 들리더니 문짝이 뜯기면서 여학생이 귀를 막고 나왔다.
학생들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으나 이내 관심을 끄고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이곳에서는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인 모양이었다.
소란의 주인공인 여학생이 귀에서 손을 떼고 알페아스에게 달려왔다.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허허, 그래. 문제가 생긴 모양이로구나.”
“소리 증폭 실험인데 출력 회로에 오류가 있었나 봐요. 설계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입출력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단다. 전기력을 균등하게 유지하는 게 핵심이지.”
“네. 다시 해 볼게요.”
여학생은 안경을 고쳐 쓰고 실험실로 들어갔다.
시로네가 지나가면서 안을 살피자 또래의 아이들이 기묘한 마법진을 두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
시로네는 여태까지 얼마나 작은 우물에 갇혀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이곳의 모두가 자신과 같은 재능이었다.
상황판에 도착하자 고급반 270명의 학생들 성적이 주르르 적혀 있었다.
고급반에서도 최상위인 클래스 포에는 42명의 학생이 등재되어 있었고, 1등은 카르미스 에이미라는 이름이었다.
‘오호, 카르미스 가문.’
오젠트 가문에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시로네도 유명한 귀족 가문 정도는 외우고 있었다.
카르미스라면 크레아스 도시에 본가를 두고 있는 귀족 서열 제1계급이었다.
‘멋지다.’
모든 정보들이 그를 압도하고 있지만 두렵기보다는 오히려 심장이 뛰었다.
말 그대로 무한 경쟁.
겨루어 보고 싶다. 자신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도전하고 싶다.
“야! 에이미! 같이 가!”
시로네는 고개를 돌렸다.
분명 에이미라고 했다. 고급반의 1등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그의 눈에 붉은 머리의 예쁜 소녀가 책을 껴안고 있는 게 보였다.
“어?”
그 순간 원인 모를 긴장감이 심장을 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