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71
스위치를 내리자 10개의 유리구슬에 검은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시간이 없어! 지금 막아야 해!”
리안과 테스가 동상을 파괴하기 위해 달려갔다.
이기린이 손을 들어 요정들을 지휘했다.
“공격하라! 절대로 접근하게 둬서는 안 된다!”
시로네 일행은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아린은 파티에 연결된 채널만을 남겨 두고 정신감응을 해제했다. 이기린의 정신 공명이 전체에 퍼져 있기에 굳이 통역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발사의 정령이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대기층에 구멍이 뚫리듯 공기가 튀어나왔다.
작고 단단한 기체 덩어리가 시로네 일행의 몸을 두드렸다.
몸이 관통당할 정도는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데다 숫자가 워낙에 많아 맞설 수가 없었다.
“뒤로 물러서!”
카니스가 섀도 월을 세웠다. 공기 탄환이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섀도 월의 표면을 두드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따가운 소음이 일었다.
마찰의 정령이 정전기를 일으켜 벼락을 내리치자 하비스트가 받아 냈다.
번쩍번쩍 빛나는 번개가 연거푸 내리꽂혔으나 마도 생물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크크크! 기분 좋은데? 신종 안마술인가?”
섀도 월의 장벽에 등을 대고 있는 에이미가 손바닥 위로 잭 오 랜턴을 띄웠다.
하늘로 날아오른 불의 구체가 수십 개로 늘어나더니 전방을 무차별로 폭격했다.
잭 오 랜턴의 고유 능력인 엉터리 불꽃이었기에 실제 불꽃은 세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게 진짜인지 모르는 이상 당하는 입장에서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에이미의 폭격이 요정들을 분산시키자 카니스는 비로소 섀도 월을 거두었다.
열린 시야로 요정들의 위치를 빠르게 포착한 아린이 정신 채널로 작전을 제안했다.
-요정들이 정신적인 존재라면 나에게 방법이 있어. 멘탈 쇼크로 잡을 수 있을 거야.
시로네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마법 대 마법의 전투에서는 상성이 있지만 정신을 직접 가격하는 것에는 요정들도 손쓸 도리가 없을 것이다.
-가능하겠어? 숫자가 많은데?
-광역 멘탈 쇼크를 시전할 거야. 정신력이 상당히 소모되지만 한 번 정도는 가능해. 대신에 요정들을 유인해 줘. 나를 중심으로 20미터 반경이야.
요정들을 전부 몰아넣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절반이라도 성공한다면 전투의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좋아! 우리도 흩어지자!”
각개전투가 시작되었다.
요정들의 능력도 만만치는 않았다. 이미 싸움을 예상하고 왔는지 대부분 전투에 특화된 개념들이었다.
하지만 적들이 강하다면 유인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어? 어?”
온갖 마법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유일하게 페오페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실전 전투는 처음인 데다가 오가는 마법의 위력도 자신과는 차원이 달랐다.
섬광이 번쩍하고 페오페에게 다가왔다.
깜짝 놀란 페오페는 양손을 들고 나선의 능력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시로네도 반사적으로 포톤 캐논을 장착했다.
서로의 얼굴을 뒤늦게 확인한 그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페오페는 입술을 깨물며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자 시로네도 포톤 캐논을 취소하고 몸을 돌렸다.
페오페가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으나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다른 요정을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페오페의 고개가 시무룩하게 떨어졌다.
-아린!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이게 한계야!
요정들은 비행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한곳에 몰아넣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로네 파티의 마법사들 또한 무브먼트는 수준급이었기에 절반 이상을 영역 안으로 유인할 수 있었다.
-충분해!
무브먼트는 시간과 공간의 결합이다.
요정이 영역으로 들어온 1초도 안 되는 순간이 아린이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이었다.
아린은 쪼그려 앉아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녀의 그림자가 싱크홀처럼 확장되자 5명의 요정들이 위기를 직감하고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펑 하고 정신 파동이 솟구치면서 흙이 일제히 튀었다.
요정들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더니 살충제를 마신 것처럼 날개를 멈추고 후두두 추락했다.
전력의 절반이 날아가자 사기가 저하된 요정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비스트가 손톱을 휘둘러 그녀들을 쫓아 버리는 동안 리안과 테스도 케르고인의 포위를 뚫고 스위치를 원래대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3분의 1 정도 차오른 액체가 다시 탱크로 빨려 들면서 유리구슬의 수위가 낮아졌다.
대상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고문일 것이다. 일말의 희망이란 거의 절대적인 절망의 다른 말에 불과하니까.
“시로네! 지금이야! 레이저로 박살 내 버려!”
시로네는 이미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동상이 파괴되면 일화의 술은 중지된다. 요정들이 궤멸당한 지금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못할 터였다.
시로네의 레이저가 붉은 빛을 발하는 순간 이기린의 목소리가 전장에 스며들었다.
“신의 종속으로 명하노니, 세상의 권위 없는 자들이여, 내 앞에 무릎을 꿇으라.”
언령이 끝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상이 꺼지듯 모든 인간들이 무릎을 꿇었다. 시로네 일행이라고 예외는 될 수 없었다.
무릎을 땅에 처박은 시로네는 어리둥절했다. 일어서려고 다리에 힘을 줘 보지만 마치 코끼리가 되어 버린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정신 채널에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된 거야? 일어설 수가 없잖아.
-분명 권위의 요정이라고 했어. 이게 권위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단순한 마법이 아니야. 이건 규정외식이야.
시로네가 생각하기에도 규정외식이 아니라면 지금의 결과는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발동이 되는 것일까?
언령은 아니었다. 단지 말을 던졌다는 이유만으로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무릎 꿇린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로네 일행과 다르게 신민들은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경외의 눈빛으로 이기린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기린은 신민들의 사이를 유유히 지나치며 동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직접 스위치를 내렸다.
다시금 유리구슬에 액체가 차오르기 시작하자 대상자들의 눈이 질끈 감겼다.
가족들의 흐느낌이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1. 신의 자비 (5)
시로네는 이를 악물었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마법은 시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 상태에서 순간 이동을 시전하면 몸이 박살 나고 만다.
‘제길! 어떻게든 움직여야 되는데.’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카냐의 어머니는 죽는다.
아니, 모두 죽는다. 최후에 남게 되는 건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흉측한 거인이었다.
“체념하라,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어느 누구도 라의 율법을 방해할 수는 없다.”
이기린은 모두 인간이 무릎을 꿇고 있는 광경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이것이 권위다. 복종은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젠장, 뭐가 이렇게 무거워?”
동상 뒤편에서 들린 소리에 이기린의 얼굴이 굳었다.
이어서 턱, 턱 하고 발을 내딛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귀신이라도 나오는 것처럼 모두가 그곳을 돌아보았다.
테스가 화색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리안!”
리안은 오만상을 찡그리며 걸음을 옮겼다.
몸무게가 1톤은 되는 듯했다.
그럼에도 압사당하지 않는 이유는 하중이 전신으로 분산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몸이 엄청나게 무겁잖아.”
“어떻게 움직일 수가……?”
단순히 완력이 세다고 버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근육량에 비례하여 하중이 매겨지기 때문에 근력이 강할수록 더 무거운 몸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움직인다면 가능한 경우는 한 가지였다. 자신이 낼 수 있는 근력 이상의 힘을 내야 한다.
물론 그것 또한 정상적인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육체 이상의 힘을 낸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거인의 술법 중에서도 최상위의 능력인데.’
이기린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시로네 일행이 있는 곳에서 탁한 소리가 들렸다.
“크크크, 아주 웃기는 마법이군. 이래서 전투는 재밌어.”
카니스의 그림자에서 하비스트가 불쑥 솟아올랐다.
시로네는 리안과 하비스트의 경우를 보고 깨달았다.
절대치가 아닌 상대적인 하중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발동 원리가 다르면 대응법도 달라지기에 중요한 정보였다.
“어디 잡아 보실까?”
하비스트가 이기린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요정부장의 비행 능력도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매 싸움을 보는 듯한 추격전에 잠시 넋을 잃고 있던 시로네가 리안에게 소리쳤다.
“리안! 시간이 없어! 동상을 부숴야 해!”
리안이 동상 앞에서 대검을 치켜들자 비행 중인 이기린의 얼굴이 충격에 잠겼다.
자신을 쫓고 있는 그림자는 인간이 아니라고 치지만 검사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규정외식에 걸린 상태에서 대검을 휘두르려면 육체의 지배력이 100퍼센트에 근접해야 한다.
리안이 기합을 내지르며 동상을 후려치자 쾅 하는 소리가 터졌다.
신민들은 화들짝 놀랐으나 동상에는 금조차 가지 않았다.
리안은 이를 악물었다.
닥치는 대로 깨부수고 싶지만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일격을 더하는 것뿐이었다.
“제길! 이상한 마법만 아니라면!”
구슬의 액체는 절반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대상자들은 이미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리안이 미울 것이다. 방해를 받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모든 것이 편안해졌을 테니까.
아린이 정신 채널을 통해 말했다.
-방법을 찾아야 해. 언령만으로 수백 명의 동작을 구속한다는 것은 등가교환에 맞지 않아. 우리가 모르는 조건이 있을 거야.
시로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규정외식이 제아무리 기상천외한 능력을 갖더라도 등가교환의 제로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능력의 강도로 보건대 구속당한 상태에서 해제할 방법이 존재해야 했다.
시로네는 마르샤의 조언을 복기했다.
규정외식은 술자의 성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기린은 권위의 요정.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권위라는 개념에 관계된 전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야아압!”
리안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동상을 내리찍었다.
굉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신민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창백하게 질려 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에이미의 홍안이 붉게 타올랐다. 자기상의 기억이 신체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시로네, 고정되어 있는 구속력이 아니야. 조금 전에 하중이 5킬로그램 약해졌어. 이번에는 7킬로그램, 9킬로그램……. 리안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무게가 빠져나가고 있어.
시로네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에이미의 말을 통해 이기린의 규정외식의 기재를 깨달았다.
“리안! 계속 내리쳐! 일화의 술은 재생의 술법 같은 게 아니야! 그냥 살인이라고!”
-시로네! 방금 60킬로그램 약해졌어! 설마 이거……!
-그래! 정확한 건 아니지만 이기린은 권위를 수치화시켜서 물리력을 내는 것 같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하중은 약해질 거야.
시로네의 생각을 증명하듯 이기린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일화의 술이 살인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의심의 카운트가 갑자기 치솟았다.
악에 받쳐서 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결국 이단들이 마법의 발동 조건을 파악했다는 뜻이다.
규정외식 권력자.
이기린은 영역 내의 대상에게 믿음과 의심을 측정하는 저울을 들이댈 수 있다.
언령을 말하는 순간 주위의 모든 생명체가 믿는 자와 의심하는 자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중앙 광장에 모여 있는 대상은 318명이고 믿는 자와 의심하는 자의 비율은 293 대 25였다.
모든 인원이 이기린을 믿는다면 단위면적당 가해지는 하중이 근력의 100퍼센트이므로 이론상 거동이 불가능하다.
반대로 믿음의 비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참칭의 대가’가 발동, 이기린은 24시간 동안 100퍼센트의 하중이 가해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시로네는 리안의 행동이 마법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를 깨달았다. 천국의 상징물이 훼손당한다는 공포가 신민들의 마음속에 의심의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리안이 거인의 동상을 때릴 때마다 미약하게나마 하중이 약해지고 있었다.
“모두 정신 차려! 일화의 술은 거짓이야! 당신들을 죽이는 술법이란 말이야!”
계속해서 신민을 압박했으나 더 이상 하중은 약해지지 않았다.
시련은 믿음을 강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겁에 질리더라도, 누군가는 더욱 강하게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닥쳐! 우리를 속이는 건 너희야!”
“죽여라! 이단을 죽여라!”
동상을 훼손하는 행태에 골수 신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광신도로 돌변한 자들이 늘어나면서 의심하는 자들도 조금씩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시로네는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일화의 술이 재생의 술이라고? 다음에는 당신들 차례다! 왜 그걸 모르는 거야?”
“우리는 율법에 따를 것이다. 라에게 부여받은 수명을 다하고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야!”
시로네는 이를 악물었다. 규정외식이고 뭐고 신민들의 꽉 막힌 생각에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
“더 살 수 있어! 일화의 술 대상자들은 오늘 죽지 않아도 된다고!”
거짓말처럼 신민들의 아우성이 사라졌다. 모두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시로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정적을 신호로 하비스트는 이기린의 추격을 포기했다.
어차피 이대로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
산만하게 구는 것보다는 그녀와의 심리전을 통해 신민을 흔드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이기린은 눈살을 찡그렸다. 이번 발언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비율이 말해 주고 있었다.
267 대 51.
전체 대상자 중에 17퍼센트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중이 약해지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의 수치였다. 감각이 급격히 변하는 것도 권위를 지키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터였다.
“살 수 있다고? 우리가…… 더 살 수 있어?”
“그래. 정말로 대상자들이 지금 수명을 다해 죽는다면 최소한 장례라고 해 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죽는 게 아니야. 일화의 술은 당신들의 무덤이 될 수 없다고!”
-시로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에이미는 믿을 수 없었다. 수명부가 절대적이기에 신민들이 따르는 것 아니겠는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이라면 뒷감당이 어려워진다.
시로네도 확신을 갖고 꺼낸 얘기는 아니었다. 다만 밤새도록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연옥에서 이단을 만났어. 그들 중에는 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수명을 몰라. 하지만 누군가에게 수명을 지배당하지도 않지.”
“그거야 당연히 이단이니까…….”
“정신 차려! 아직도 모르겠어? 이름을 모르니까 할 수 없는 거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거라고! 신이 전능하다면 어째서 이름이 필요하냔 말이야!”
이기린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