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74
인간의 뼈가 부러지는 것과는 달리 단단한 바위가 우그러지는 소리였다.
샤이닝 체인이 사라지자 타부의 시체만 덩그러니 남았다. 찰흙 인형을 손으로 우겨 버린 듯 몸 전체가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다.
샤이닝 체인의 위력에 카니스는 간담이 서늘했다.
타부가 압살당할 정도라면 어지간한 생명체는 손쉽게 으스러뜨릴 수 있을 터였다. 덫에 걸린 토끼처럼 생사여탈권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부를 소멸시키자마자 시로네는 바닥에 엎드렸다. 두 손으로 흙을 가득 움켜쥐며 어깨를 떨었다.
마법을 성공시킨 설렘도, 타부를 이긴 성취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에이미, 테스, 아린이 납치당했다. 그리고 네피림을 낳게 한다고 했다.
미칠 것 같은 충동이 가슴을 두드렸다. 자신이 이토록 혐오스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페오페가 시로네에게 날아왔다.
마법을 구사하는 그녀였기에 조금 전 샤이닝 체인에 얼마만큼 막대한 정신력이 들어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너…… 괜찮아?”
페오페가 용기를 내어 물었으나 시로네는 반응조차 없었다. 귀를 기울여 보니 ‘나 때문이야.’라는 중얼거림이 들렸다.
이유 없이 울화통이 터진 페오페가 삿대질을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이 바보야! 그러니까 왜 이렇게 일을 키워? 타락천사라고 해도 샤마인보다 상위 율법이란 말이야. 앞으로 이 구역의 사람들은 어쩔 거냔 말이야! 전부 너 때문에…….”
“으아아아아!”
페오페의 어깨가 들썩였다.
고개를 쳐든 시로네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분노와 원통함, 슬픔이 뒤섞여 마치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에이미가…… 테스가…… 아린이……. 전부 나 때문에.”
페오페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시로네의 눈빛은 살아 있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일화의 술을 부정하고 이기린에게 맞서 소리치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자들은 무사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말이야.”
시로네는 이기린을 돌아보았다. 참칭의 대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사하다고? 어떻게 무사하다는 거야?”
“이카사가 여자들을 데려간 이유는 처녀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의 몸에 천사의 정보를 집어넣어 네피림을 잉태하는 것이지.”
카니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더 위험한 거잖아? 너희는 어떨지 몰라도 인간에게는 정조라는 게 있어.”
“너희가 생각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천사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을 수치로 여기니까.”
리안이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가능하다는 얘기잖아? 최악의 상황에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지.”
“가능성과 개연성은 다르다. 천사는 양성을 지닌 종족. 따라서 인간과 관계를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명예를 실추시키는 짓은 저지르지 않아.”
시로네는 이기린의 말에서 희망을 되찾았다.
천사가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위정자라면 아직 구출할 기회는 남아 있는 셈이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서는 에이미 일행도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리안이 시로네의 어깨를 짚었다.
“시로네, 어때? 이제 조금 진정됐어? 네가 그렇게 화내는 건 처음 봐.”
“미안해, 너무 흥분했어. 친구들을 구출할 생각부터 했어야 했는데.”
“괜찮아.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시로네에게 에이미가 소중하듯 리안에게도 테스는 의지하는 친구였다. 또한 카니스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할 존재가 있었다.
‘아린…….’
카니스의 마음은 전에 없이 불타고 있었다.
라둠의 참혹한 생활에서도 지켜 냈던 아린이다. 그런데 이토록 쉽게 빼앗겨 버리다니.
어째서 이카사에게 바로 달려들지 못했을까?
약해졌기 때문이다. 희망이니, 행복한 미래니, 그딴 것들이 마음을 나약하게 만든 것이다.
‘아린, 조금만 기다려.’
카니스는 라둠의 들개였던 시절로 돌아가기로 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적을 멸하는 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시로네가 물었다.
“말해 줘. 천사의 안식처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페오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물었다.
“알아서 어쩌려고? 정말 구하러 갈 생각이야?”
“당연히 가야지. 가는 방법 알고 있어?”
물론 방법이야 알고 있다. 게다가 에이미 일행이 어디로 끌려갔는지도 대충은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렇기에 시로네는 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기린조차 허가 없이는 출입할 수 없는 곳이 천사의 안식처였다.
“들어가게 해 줄 리가 없어! 무슨 말인지 몰라? 이단이든 네피림이든, 가면 죽는단 말이야!”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잖아.”
페오페는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시로네도 타부라는 강적을 쓰러뜨렸지만 천사는 수준이 달랐다.
타락천사인 이카사에게도 범접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쳐들어가 봤자 죽을 뿐이었다.
“정신 차려, 이 바보야! 너희가 가려는 곳은 제6천 제불이야! 진짜 천사가 머무는 곳이라고!”
천사는 강하다. 누구보다 강하다가 아닌, 태어날 때부터 생물의 정점에 위치한 존재였다.
하지만 시로네는 그들이 사는 곳에 가야만 했다. 에이미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페오페, 만약 네가 누군가에게 끌려갔다면, 너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아? 누군가 구하러 와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지 않을까? 친구들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지 않을까?”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쩌면 구할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친구들의 희망마저 꺼트려서는 안 돼. 우리가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붙잡힌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을 테니까.”
페오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죽는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의 죽음에 충실하면 세상은 조화롭다. 어째서 인간은 불가능한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일까?
메카족의 남자가 다가왔다.
“천사의 안식처는 제6천 제불일세. 지리상으로는 샤마인 바로 옆이지. 하지만 다섯 단계나 상위 구역이라 바로 들어갈 수는 없어. 절차를 밟아 제2천부터 차례로 돌아야 하는데 그러면 며칠은 걸리지.”
“절차는 필요 없어요. 직선거리로는 얼마나 걸리죠?”
“직선거리라. 어차피 천국의 장벽을 넘는 건 불가능할 테고, 여기서 제6천으로 바로 간다고 하면 하루 정도 걸릴 것이네.”
예상보다 훨씬 먼 거리였다. 이카사의 비행 속도로 보건대 그녀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을 터였다.
제불의 출입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하루의 유예는 여자들에게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네.”
50대의 남자가 걸어왔다. 생김새나 차림새로 보건대 노르인이었다.
“방법이 있다고요? 어떤 방법이죠?”
“여기서 1구역으로 가는 걸세. 샤마인에서 가장 내부에 위치한 구역이지. 천국의 중심부랑 가깝기 때문에 거기에서 중앙 가도를 따라 제불로 들어가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거야.”
천국은 아라보트를 중심으로 여섯 등분의 파이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아라보트에 가까울수록 원호의 길이가 줄어들기 때문에 비약적으로 동선을 줄일 수 있었다.
“여기에서 1구역까지 걸리는 시간은요?”
“12시간 정도?”
시로네는 다시 시무룩해졌다. 하루보다는 단축되겠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해 보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노르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보통의 방법으로 간다면 말일세. 샤마인 내에는 노르인이 관리하는 포탈이 있네. 빛의 스폿을 이용하면 1구역까지는 단번에 갈 수 있지.”
그런 방법이 있었다. 연옥에서 빛의 스폿을 타고 이동해 봤던 시로네는 남자가 제시한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희를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 다른 문제는 없나요?”
“굳이 따지자면 신민들에게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걸세. 내가 바로 그곳에 근무하는 통제관이니까.”
시로네는 농담에 웃을 정신조차 없이 몸을 떨었다. 처음으로 희망이 생겼다.
어쩌면…… 친구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냐가 눈물을 흘리며 다가왔다.
“미안해, 시로네. 괜히 우리 가족 때문에. 하지만…… 고마워. 정말로…….”
시로네는 카냐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일화의 술을 부정한 대가로 친구들이 위험에 처했지만 어찌 신민의 탓이겠는가?
진정한 권력자는 시스템의 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는 분노의 화살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네 탓이 아니야. 반드시 친구들을 구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잠깐만요!”
광장의 갈림길 쪽에서 레나가 달려왔다. 메카의 장비인 시그나와 엑스드를 끌어안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가져왔어요. 도움이 될까 하고.”
메카의 물건은 개인화 암호가 걸려 있지만 검과 방패는 공용 장비에 속했기에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율법으로 대여는 금지지만 일화의 술이 깨진 마당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장비는 리안에게 필요할 것이다.
마법사에게는 현상을 뒤트는 기믹이 있기에 강한 적과 싸울 때도 변수를 일으킬 수 있지만 검사는 정직한 무력이 전부였다. 그런 만큼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2. 격동의 시대 (4)
리안은 시그나와 엑스드를 받아 들고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의 무기에 의지하는 것은 검사에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친구가 잡혀 있는 마당에 그딴 것이나 따지고 있을 리안이 아니었다.
“고마워. 하지만 험하게 다룰지도 몰라.”
“괜찮아요. 아니, 부서져도 상관없어요. 제발 언니들을 구해 주세요.”
페오페는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만 해도 하루하루 수명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던 신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타인의 불행을 분쇄하기 위해 저마다 리스크를 짊어지고 있었다.
어째서 율법은 인간을 통제하는가?
개체 수를 유지하고, 수명을 통제받으며, 천국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다. 인간의 숫자가 불어나는 것이 라에게는 도대체 어떤 위험으로 인지되는 것일까?
“정말로 갈 거야?”
페오페는 이런 걸 묻고 있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로네를 만난 이후부터 모든 게 변해 버렸다. 그는 혼돈이었다. 천국의 수면에 던져진 바윗덩어리였다.
“알잖아, 갈 수밖에 없는 거. 아까는 고마웠어. 싸움을 피해 줘서. 사실 나도 너하고는 싸우고 싶지 않았거든. 카냐와 레나의 죄를 가볍게 해 준 것도 그렇고, 우리는 서로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
페오페는 시로네의 말을 애써 외면했다. 통하는 게 있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요정과 인간이 어떻게 통할 수 있단 말인가?
“앞으로 신민들을 잘 돌봐 줘. 무사히 돌아온다면 그때는 더 친해질 수 있겠지.”
장담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시로네는 몸을 돌렸다.
페오페의 작은 심장이 콩닥거렸다. 노르인을 따라 멀어지는 시로네의 모습이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그럼 나도 구해 줄 거야?”
시로네는 페오페를 돌아보았다. 망설이던 그녀가 용기를 내어 다시 물었다.
“내가 잡혀가도 구하러 와 줄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친구라면 말이야.”
시로네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페오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당연한 것인가? 그렇다면 시로네는 죽을 것이다.
그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1구역에 간다고 해도 제불의 문을 넘어갈 수는 없을 거야. 나에게 여자애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러니까 같이 가 줄게.”
시로네의 눈이 커졌다.
분명 구할 방법이 있다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방법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정말이야? 정말 구할 수 있어?”
“장담할 수는 없어. 하지만 너희끼리 갔다가는 반드시 죽을 테니까, 그래서 같이 가 주겠다는 거야.”
시로네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페오페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빨개진 페오페가 화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흥! 이상한 생각 할 필요 없어. 이번 사건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을 뿐이야.”
이기린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신민들이 시로네를 돕는 것도, 페오페가 인간에게 이끌리는 것도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고야 마는가? 아니, 이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율법이라면…….’
결정을 내린 이기린이 입을 열었다.
“페오페, 나에게 오거라.”
페오페의 어깨가 움찔했다. 이제 보니 부장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결정해 버린 상황이었다.
예상과 달리 이기린은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에 눈을 감으며 기억을 페오페에게 전달했다.
페오페의 머릿속에 새로운 정보들이 속속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건……?”
“페오페, 내 기억을 가지고 가거라. 제불에서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요정 간의 기억 전이는 흔한 일이지만 높은 서열이 낮은 서열에게 전이하는 경우는 의미가 남달랐다. 이를테면 자신을 대신해 임무를 다하라는 대리 임명장과 같았다.
요정 72계급의 중진. 하늘 같은 선배의 진심을 깨달은 페오페는 여태까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부장님. 이번에도 실망시켜 드려서.”
“나는 한 번도 너에게 실망한 적이 없다. 너는 천국의 격동기에 태어난 요정이야. 이제부터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네가 아는 율법과 다를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페오페의 눈망울이 감격에 젖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기린의 미소를 보았다.
“너는 좌충우돌하는 성향이 있지만 그렇기에 스스로 깨닫는 아이다. 나선은 모든 방향을 살피며 똑바로 나아간다는 것을 명심해라. 믿는다, 페오페.”
페오페는 눈물을 훔치고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기린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녀의 용기를 백배로 끌어 올렸다.
시로네 일행은 페오페를 데리고 광장을 벗어났다.
포탈 통제관이 도착한 곳은 중앙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노르인의 건물이었다.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했는데, 방방마다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각기 다른 정령들이 머물고 있었다.
구석에 설치된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암실의 중앙에 빛의 정령이 홀로 떠 있었다.
통제관이 다가가 부드럽게 정령을 움켜쥐었다. 정령의 움직임이 멈추면서 그의 팔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정령의 힘을 이용하면 1구역까지 단번에 갈 수 있네. 하지만 정을 모으는 데는 시간이 걸려. 5분 정도 걸릴 거야.”
연옥에서 경험해 본 터라 별다른 의문은 들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시로네는 눈높이에 떠 있는 페오페를 살폈다. 작은 엉덩이를 이쪽으로 내밀고 투명한 날개를 흔들고 있었다.
시로네는 검지를 들어 앙증맞은 엉덩이를 콕 하고 찔렀다.
페오페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으로 엉덩이를 가렸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손바닥보다 작은 한 살짜리 요정이지만 그래도 여자인 모양이었다. 물론 그녀를 놀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날개가 움직이는 부분을 빼면 남는 부위가 거기밖에 없었을 뿐이다.
“도와줘서 고마워. 우리 앞으로 잘해 보자. 덕분에 희망이 생겼어.”
페오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시로네의 진심을 읽었는지 다시 빛의 정을 향해 돌아섰다.
기다리는 5분의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이런 현상 또한 시간의 상대성이었다.
카니스가 페오페에게 물었다.
“타부라는 놈, 정말로 죽은 건가?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라는 죽일 수 있는 존재인 거야? 죽기 전에 그 자식이 그랬잖아. 인간의 타락이 어쩌고 하면 다시 찾아온다고.”
시로네도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니, 핵심적인 질문이었다. 마라가 소멸시킬 수 없는 존재라면 전투의 접근 방식부터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흐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멸은 맞지만 영원한 죽음은 아니야.”
“쉽게 설명해 봐.”
“마라는 개념으로 이루어진 존재라 죽어도 언젠가는 되살아나. 천국에서는 그것을 초기화라고 불러.”
“초기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곧바로 되살아나지는 않을 거야.”
“죽이면 죽는다는 거로군.”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자면…….”
“됐어. 당장은 그것만 알면 돼.”
카니스는 전투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린을 되찾으려면 지금보다 강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