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81
“괜찮아요. 그나저나 어떤가요, 천국의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은?”
시로네는 이카엘이 전해 준 기억을 더듬었다. 마치 꿈을 꾼 듯 아련했지만 분명 꿈은 아니었다.
엄청난 사실을 알아 버렸다. 특히나 미로가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차원과 차원을 연결하는 능력은 천사들의 전유물이죠. 하지만 오래전부터 우리는 천사의 능력을 인간에게 전수해 왔어요.”
“그게 네피림이군요.”
“그래요. 네피림은 인간을 신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하니까요. 하지만 어떤 네피림은 반대의 일을 행하기도 하지요. 그런 문명은 대부분 신의 의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문명을 구축해요. 시로네가 살던 세상처럼 말이지요.”
시로네는 고대 마법의 기재가 다른 이유를 알았다. 언제부턴가 인간은 신의 의지에서 벗어났고 그렇게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온 마법이 스피릿 존이었다.
5. 천사의 마법식 (2)
“거핀이라고 했어요. 거핀의 문을 만든 그 거핀이 맞죠? 미로는 어째서 마지막 순간에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른 거죠?”
이카엘은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시로네가 그 목소리를 들었다는 건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이내 차분한 말투로 설명을 이어 갔다.
“거핀은 천국의 군대로부터 당신의 세상을 지킨 첫 번째 문지기예요. 미로는 이를테면…… 거핀의 후임이라고 할 수 있죠.”
“네? 미로가 첫 번째가 아니란 말인가요?”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일단은 그래요. 맥클라인 거핀, 그 사람은 당신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간 중의 1명일 거예요. 아니, 어떤 네피림보다 뛰어나죠. 그렇기에 인간을 신에게서 분리시킨 것이겠지만.”
“그럼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죠?”
이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굽어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났어요. 미로라는 후임자를 남겨 두고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그래요. 그녀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에서 영원히 장벽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시로네의 세계는 멸망하고 말 테니까요.”
시로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마지막에 보았던 미로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세상과 격리당해 기약 없는 고독을 맞이해야 하는 그녀의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
그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교장 선생님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당시에 알페아스의 얼굴은 슬퍼 보였다. 아니, 가끔은 화난 사람처럼 무서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만약 미로가 스스로 그 길을 택한 게 아니라면?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격리당한 것이라면?
거기까지 생각한 시로네는 소름이 돋았다.
이건 범죄라고도 부를 수 없었다. 1명의 인간을, 영겁의 지옥으로 처박아 버린 결정이었다.
“대체 미로는 언제까지……?”
“지금도 천국의 군대는 최후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어쩌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몰라요. 시로네 일행이 가져온 메타게이트에 좌표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죠.”
시로네의 정신이 멍해졌다.
미로는 스케일 마법을 이용해 천국의 문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메타게이트는 천국에 새로운 게이트를 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럴 수가…….”
“아뇨. 가능해요. 메타게이트만 있다면 천국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미로의 시공을 우회하여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로네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건 자신들이 죽고 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류 전체가 멸망하는 일이었다.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짓을 해 버린 것일까?
“제가 도우려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시로네의 친구들은 대세계전에 잡혀 있어요. 카리엘이 소녀들의 몸에 네피림의 정보를 심을 것입니다.”
“어째서죠? 최후의 전쟁을 준비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네피림이 이 마당에 무슨 상관이에요?”
“상황이 달라졌으니까요. 미로는 네피림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자력으로 이모탈 펑션을 열었죠.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시로네의 세상에서는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어요.”
노르의 쉼터에서 네피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혼란이 왔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천사의 후예라기에는 언로커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만큼 시로네의 세상이 라의 의지에서 멀어졌다는 얘기에요. 거핀은 인간이 세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을 끌어 준 거예요. 그리고 이제 그 의지는 미로에게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녀가 방어한 시간은 거핀에 비하면 초라해요. 하지만 성장의 속도로 봤을 때는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시로네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마법의 발전 속도는 확실히 빨라지고 있었다. 지난 100년의 성과가 근래 10년보다 못하다는 분석도 나오는 시점이었다.
“이번에는 인간들도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란 거군요.”
“맞아요. 소수이기는 하지만 인간 세상의 지배자들도 천국의 존재를 알고 있을 거예요. 아마도 어떤 식으로든 대비를 하고 있겠죠. 지금은 1명이라도 더 네피림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시로네는 치를 떨었다.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인간의 몸에 천사의 정보를 주입하다니.
그런 이유로 에이미가 누군가를 낳는다는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어째서 방관하고 있었던 거죠? 대천사라면 풀어 달라고 할 수 있잖아요?”
이카엘은 슬픈 눈으로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아…….”
그런 것이다. 어째서 미로는 이카엘을 싫어하는가? 그녀가 천국의 군대를 지휘하는 천사이기 때문이다. 이카엘 또한 한때는 천사장으로서 인간에게 징벌을 내린 존재였다.
“그래요, 저는 천사예요. 만약 최후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저 또한 인간과 싸울 수밖에 없어요.”
시로네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결국은 이런 것이었는가? 천국에서 누구의 도움도 얻지 못한 채 친구들이 당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가?
“제가…… 거핀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말이지요.”
이카엘이 눈웃음을 지으며 혀를 쏙 내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시로네. 당신을 돕고 싶어요. 인간은 천사와 달리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죠. 최후의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시로네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그녀의 말에 담긴 무게감을 깨달았다.
천사장까지 오른 대천사가 인간의 편에 서겠다면 최후의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희망이 있었다.
거핀을 만나기 전이라고 했다. 이카엘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물어볼 수는 없지만 그 사람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안 돼요. 저는 힘을 봉인당한 몸. 게다가 방에서 나갈 수조차 없으니, 시로네를 돕는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도움은 줄 수 없어요.”
“하지만…… 저의 힘으로는 천사를 이길 수 없어요.”
“맞아요. 천사는 강합니다. 게다가 카리엘이라면 제가 힘을 잃기 전이라도 함부로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대천사예요.”
“그러면 이제 어떡하죠?”
단순히 기를 죽이려고 이런 말을 꺼내지는 않았을 터였다. 시로네는 실낱같은 희망을 기대하며 그녀에게서 해결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 친구들을 구할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질 거예요.”
“정말요? 어떤 건데요?”
“천사의 마법진입니다. 그것을 시로네가 구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헤일로 말인가요?”
“맞아요. 천사는 광륜에 정보를 집적시켜 능력을 발동하죠. 시로네가 그것을 익힌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한 번의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시로네는 샤마인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이카사가 광륜을 펼쳤을 때 느꼈던 위압감이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자신더러 구사하라는 말인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간은 오버 스피릿이 없기 때문이다.
성광체가 없으면 정보를 새길 공간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마법진을 만들겠는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시로네가 천사의 마법진을 구사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의 난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카엘이 손가락 3개를 펼치며 말했다.
“먼저 성광체를 만드는 일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몸속에 있지만 특별한 방법을 통해 그것을 밖으로 빼낼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할 수 있나요?”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카엘이 말한 개념은 사방식의 이탈형이었다.
확실히 이탈형이라면 천사의 오버 스피릿을 어느 정도 모방할 수 있을 듯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예요. 성광체를 만들었다고 해도 광륜을 펼치는 것은 차원이 달라요.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원이 일그러지면 빛의 연산 속도는 현저히 느려지고, 0.1퍼센트만 느려져도 천사의 능력은 구현이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없다. 하지만 정신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원에 대한 수학적인 개념을 잡는 게 중요하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었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난관이에요. 두 번째는 더욱 심각하죠. 천사의 능력은 헤일로에 집적되는 엄청난 정보량에서 나옵니다. 수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평생을 기록한다고 해도 부족한 분량이죠. 그것을 빛의 속도로 연산하는 것이 헤일로의 요체예요.”
시로네는 이카엘이 갈리앙트 화산을 폭발시킨 장면을 떠올렸다. 휴화산의 활동성을 무려 2만 배나 높여서 활화산으로 터트리는 능력은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완벽한 원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수식은 어떡하죠? 인간의 머리로는 화산을 폭발시킬 만큼 어마어마한 정보를 순식간에 계산할 수 없어요.”
“하지만 통찰력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시도를 할 거예요. 정신적으로 결합을 하는 거죠. 제가 시로네가 되어 헤일로를 구사할 겁니다. 그러면 그 경험은 고스란히 시로네의 경험으로 전환되어 정신에 남아 있게 되는 거죠.”
“그, 그런 방법이…….”
이카엘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방법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극강의 폭력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칫하면 시로네의 정신은 깨져 버리고 말아요. 그리고 시로네와 동화한 저의 정신도 무사할 수 없습니다.”
시로네는 속이 울렁거렸다.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정신이 파괴되는 것은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목숨을 걸었으니까. 하지만 이카엘마저 위험하다면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만약 제가 실패하더라도…….”
“시로네, 다른 생각 하지 말아요. 저는 당신을 돕겠다고 했습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말고, 지금은 친구들을 구하겠다는 생각만 하세요.”
시로네는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녀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세 번째 난관은 뭐죠?”
“마법진의 수식이 완성되더라도 그것을 버틸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예요. 정신적 내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로네는 파멸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위험과는 별개예요. 하지만 버틸 수 없다면, 처음부터 이런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버틸 테니까.”
마지막 관문만큼은 자신 있었다. 마법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그의 정신은 내구력에 강점을 보였다.
게다가 금강불괴의 경지에 올랐으니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해를 못 하고 있군요. 시로네가 절대로 붕괴되지 않은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절대로 붕괴되지 않는데 붕괴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건 모순 같은데요.”
“아뇨. 전자와 후자는 개념의 층위가 다릅니다. 시로네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면 지금의 내구력으로 충분하겠죠. 하지만 상위 차원에서 태어난 천사의 개념은 질이 다릅니다. 물을 담는 데는 충분한 그릇일지도 모르지만, 그 물이 얼어붙으면 어떤 그릇이든 깨질 수밖에 없어요.”
“그, 그렇군요.”
산 넘어 산이었다. 그녀가 제시한 세 가지 난관 중에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정상이었다.
대천사의 마법진을 인간이 익히는 일이었으니 처음부터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는 게 좋았다.
“헤일로는 시로네의 정신을 내부에서부터 폭발시킬 겁니다. 선택은 시로네의 몫이에요. 이런 위험을 알고도 시도해 보고 싶다면 제가 도울 것입니다.”
천사에게 정신의 붕괴는 생명의 소멸과도 같았다.
이카엘이 모든 것을 걸고 도와준다면 시로네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친구들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대천사의 진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해 볼게요. 아니, 해 주세요. 어떤 결과가 벌어지더라도 받아들이겠어요.”
“좋아요. 이제부터 시로네에게 행할 술법은 빙의라는 것이에요. 정신과 결합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죠. 보통은 파견천사들이 라의 의지를 전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시로네는 여러 문헌을 통해 빙의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대천사가 직접 입을 통해 말하는 지금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빙의를 성공시키면 저와 시로네의 정신이 합쳐집니다. 제가 악한 마음을 먹으면 시로네를 해하는 건 쉬운 일이에요. 또한 시로네가 순수성을 잃어버린다면 그 악은 저에게 스며들 겁니다.”
서로 간에 조심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경고였다.
시로네는 이번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카엘이 악한 마음을 먹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순수성을 잃어버린다고 해서 그것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천사도 아니었다.
5. 천사의 마법식 (3)
“당신을 믿을게요. 어떤 불안감도 생기지 않을 거예요.”
이카엘은 미소를 지었다. 시로네가 이해가 빠른 소년이라 다행이었다.
“바로 그거예요. 그러면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카엘은 눈을 감고 빙의를 시전했다.
그녀의 성광체가 시로네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자 시로네는 눈을 크게 떴다.
눈동자에서 섬광이 뿜어지고 2개의 정신이 합쳐지는 기묘한 느낌이 전해졌다.
-시로네, 기분이 어떤가요?
-어, 어? 이게…….
빙의를 처음 경험한 시로네는 당황스러웠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자신의 것인지 이카엘의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혼자서 두 사람을 연기하는 기분이었다.
-혼란스러워하지 말아요. 제가 시로네고, 시로네가 저입니다. 그저 생각을 떠올리면 돼요.
어떤 방식인지는 알겠는데, 지금 떠오른 생각조차 자신의 망상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꼭 저 말을 떠올렸어야 했을까? 다른 생각을 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의심하지 마세요! 의심하기 시작하면 시로네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붕괴되어 버립니다. 빙의는 예민한 술법이에요. 그저 받아들이세요.
시로네는 그저 믿기로 했다. 머릿속의 생각이 혼자만의 망상에 불과할지라도 진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마음이 편해지면서 심장박동이 안정을 되찾았다.
해프닝이 있었지만, 아직 천사의 마법진은 시작도 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카엘은 첫 번째 난관을 넘어 보기로 했다.
-이제부터 성광체를 만들 거예요. 정신을 밖으로 빼내세요.
시로네는 스피릿 존을 이탈형으로 변화시켰다.
천사의 광륜은 정수리 위쪽에 있지만 시로네는 정면으로 스피릿 존을 빼냈다.
인간에게 가장 익숙한 방향이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되나요?
-네. 아니, 잘했어요. 무엇을 하든 시로네의 결단이 중요해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마법진의 틀이 되는 광륜을 만들 거예요. 빛으로 완벽한 원을 그리는 겁니다.
시로네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자 아무 목소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저기…… 지금 하라고요?
-네. 지금 하세요.
조언이라도 해 줄 것이라 생각했던 시로네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빛을 고리 형태로 확장시켰다.
직경 1미터의 광륜이 시로네의 정면에 탄생했다.
일단 눈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멋졌다.
깔끔한 원이었고 밝기도 적당했다. 이 정도면 천사의 광륜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싶었다.
-턱없이 부족해요. 이렇게 일그러진 원으로는 막대한 정보량을 연산할 수 없어요.
예상대로 이카엘의 지적이 들렸다. 인간의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단위로 들어가면 엉망진창인 모양이었다.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완벽한 원이라는 건 개념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구현하라는 말인가?
-완벽한 원?
시로네는 번뜩 깨달았다. 한 가지가 있었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완벽한 원이.
-맞아요, 시로네. 이모탈 펑션이에요. 그렇기에 네피림을 천사의 후예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모탈 펑션을 열어 정신을 끝까지 확장시킨다. 그것만이 완벽한 원이었다.
전체는 언제나 완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이미 미로의 시공에서 경험하지 않았는가?
-이모탈 펑션을 100퍼센트 가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붙잡은 다음 형태로 구현하는 거예요. 제가 제어하겠지만 위험한 일인 건 확실해요. 할 수 있겠어요?
무한의 영역에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이 대천사의 능력을 익히는 데 필요한 첫 번째 관문이었다.
-해 볼게요. 한 번 해 봤으니 두 번째는 쉽겠죠.
사실 쉬울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실없는 소리라도 하지 않으면 긴장감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시로네는 이모탈 펑션을 개방했다.
브레이크도, 망설임도 없는 방출이었다. 정신이 분해되면서 무한으로 퍼져 나갔다.
시로네의 정신은 아카식 레코드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그 자체로 완벽했기에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시로네! 시로네! 제 목소리를 들으세요! 자신을 놓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감각을 마음에 새기세요! 금강불괴로 잡아당기는 겁니다!
시로네는 최소 단위로 해체된 정신을 금강불괴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당겼다.
거대한 빛의 고리가 모든 것들을 쓸어 담으며 시로네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유리를 잘라 내는 듯 시리도록 차가운 소리가 터졌다. 이어서 시로네의 눈앞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광륜이 탄생했다.
광륜을 레일 삼아 회전하는 빛의 속도는 말 그대로 광속이었다. 이탈형으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스피릿 존은 엄연히 마법사의 정신이다. 그런 것이 정신에서 돌고 있으니 사고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한마디로 시로네는 이모탈 펑션이라는 개념을 현실 세계에 구현한 셈이었다.
이카엘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