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83
관성을 일격에 제압할 수 있는 근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너는 뭐냐?”
이미르가 물었다. 정말로 모르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시그나와 엑스드를 들고 있으니 메카인이겠지만 생김새는 노르인을 닮아 있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거인은 정신 공명이 불가능하기에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미르도 마찬가지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언어보다는 무력의 육질을 재 보고 있었다.
“그렇군. 네가 천국에 난동을 부렸다는 이단이로구나.”
이미르의 몸에서 투기가 전해지자 리안은 본능적으로 물러나서 검을 치켜들었다.
오줌을 싸고 도망칠 줄 알았던 인간이 오히려 칼을 들이밀자 이미르의 마음이 격하게 움직였다. 시선과 시선이 격돌하는 순간이야말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좋은 눈이군. 인간치고는 상당히 깎아 냈구나.’
리안은 왼발을 뒤로 빼냈다. 체중의 차이를 고려했을 때 힘으로는 해 보기가 어렵다. 빈틈을 보이는 즉시 속전속결로 해치우는 게 최우선의 전략이었다.
“정체를 밝혀라. 적인가, 아군인가? 만약 방해할 생각이라면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
이미르는 리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강렬한 눈빛에서 백 마디 말을 읽을 수 있었다.
‘선택하라 이거군. 하지만 그건 내 역할인데…….’
이미르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일견 무식한 접근처럼 보이지만 리안의 호흡을 완벽하게 끊어 내는 타이밍이었다.
기습을 노렸던 리안은 낭패감을 느끼며 물러섰다.
그 모습에 이미르는 쾌감을 느꼈다.
전투는 이미 시작되었다. 서로를 죽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벌어지는 모든 감정들을 그는 사랑했다.
리안에게 접근한 이미르가 말했다.
“적이다.”
리안의 머리털이 곤두섰다.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거인의 기운은 거대한 장벽과도 같았다. 너무나 커서 전체를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시작해 볼까?”
그 순간 천장에서 드론의 기계음이 들렸다.
“언. 어. 해. 독. 시작해 볼까?”
이미르의 시선이 한순간 천장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내렸을 때 리안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타하!”
측면에서 날아드는 시그나를 이미르가 팔을 들어 막았다. 강력한 충격파가 터지면서 거인의 피부가 강풍에 떨리는 물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그나를 팔로 밀어 올린 이미르는 얼굴을 기울여 리안을 노려보았다.
먹잇감을 노리는 뱀의 눈빛이었다.
“멋진 기습이다. 그래서 미안해지는군. 검사라면 이쪽도 검으로 해 줘야 하는데 말이야.”
말과 동시에 이미르가 시그나를 밀어냈다. 이어서 몸의 좌우가 역전되더니 강력한 훅이 휘어지면서 들어왔다.
리안은 엑스드를 내밀고 몸을 웅크렸다.
이미르의 주먹이 방패를 때리자 굉음이 터지면서 엑스드의 홀로그램이 이미르를 강타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미르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튕겨 나간 쪽은 리안이었다.
바닥을 구른 리안은 무릎을 꿇고 중심을 잡았다.
팔에 장착한 엑스드가 대포에 맞은 듯 내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미르가 어깨 너머로 얼굴을 세우고 씩 웃었다.
“보다시피…… 내 힘을 견뎌 내는 무기가 별로 없어서.”
“제길, 쪽팔리게…….”
천장에서 드론을 통해 테스의 시선이 전해져 왔다. 도움을 기다리는 그녀가 어떤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을지 상상이 되자 더욱 피가 끓어올랐다.
“간다아아아!”
리안은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변칙적으로 시그나를 집어 던진 그는 공중으로 날아오르면서 등에 차고 있던 대검을 뽑았다.
이미르는 쇄도하는 시그나를 붙잡고 과자처럼 으스러뜨렸다.
동시에 리안이 대검을 내리그었다.
시그나를 쥐고 있는 이미르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쩡 하는 소리에 리안은 경악했다. 대검의 칼날을 주먹의 뼈로 받아 낸 것이다. 흡사 쇠를 때린 기분이었다.
리안은 검을 휘두른 역순의 동작으로 날아갔다. 이미르가 곧바로 추격해 와 주먹을 치켜들었다.
“재밌었다. 선물을 주지.”
“흐으으읍!”
리안은 대검을 땅에 꽂았다. 그리고 넓적한 면을 방패 삼아 어깨와 허벅지를 밀착시킨 다음 모든 체중을 실었다.
6. 천국 소동 (2)
쾅!
이미르의 스트레이트가 강타하는 순간 대검만 남고 리안의 모습이 사라졌다.
빠르게 날아가는 리안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다. 추가타를 막으려면 중심을 잡고 착지해야 한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얼추 두 다리로 착지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깨달은 건 자신의 몸이 구겨진 채로 바닥을 구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몸에 남아 있는 충격이 빠져나가자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뺨에 닿았다.
입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니건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미르는 퍼져 있는 리안을 살피다가 바닥에 떨어진 대검을 주웠다. 인간에게는 대검이지만 이미르가 들자 흔한 장검처럼 보였다.
대검의 날을 살펴보던 이미르의 눈빛이 빛났다.
“호오? 이건 제법 유용하겠어.”
“내, 내놔. 그거…… 할아버지의…….”
리안이 다리를 떨며 일어났다.
날마다 한계까지 육체를 단련한 덕분에 충격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은 정상인보다 훨씬 빨랐다. 이른바 맷집이라는 것이었다.
이미르는 씩 하고 입가를 찢으며 대검을 던졌다. 대검이 바닥을 미끄러져 리안에게 도착했다.
“다시 해볼 거냐? 근성은 마음에 드는군.”
리안은 힘겹게 대검을 주워들고 다시 돌진했다. 힘의 격차는 분명하지만 이미르가 가려는 곳이 대세계전이라면 전투 외에 선택지는 없었다.
이미르와 리안이 복도의 중앙에서 충돌했다. 이미르는 대검을 막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쩡! 대검이 이미르의 이마를 강타했다. 아니, 이마로 막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했다.
이미르의 주먹이 큰 궤적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피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리안은 눈을 부릅떴다. 죽어야 한다면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고 싶었다.
리안의 눈빛에서 이미르는 짜릿함을 맛보았다.
‘이름을 모르는 게 아쉽군.’
이미르의 주먹이 강풍을 일으키며 리안의 있던 곳을 가르고 지나갔다.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이미르의 표정이 언짢게 변했다. 전투 중에 불청객이 끼어드는 것만큼 불쾌한 게 또 있을까?
기묘하지만 눈에 익은 현상.
주먹이 닿기 직전에 리안이 수십 개의 정사각형으로 쪼개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하여튼…… 높은 것들은 분위기를 탈 줄 모른다니까.”
리안이 있던 자리에서 3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정사각형의 유리판들이 점멸하더니 두 사람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흑발의 미남자 아슈르. 그리고 옆에는 리안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미르는 차갑게 웃었다. 천국에서 엉덩이 무겁기로 소문난 마라가 행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세계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어, 바쁘신 분이 오셨구먼. 사모하는 분은 어디다 두고 전장을 기웃거리시나?”
“이미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다. 이만 돌아가라.”
“크크, 싫다면?”
“존재를 멸하는 수밖에.”
아슈르가 손바닥을 펼치자 허공에 30여 개의 유리판이 3열종대로 세워졌다. 그곳에 보랏빛 광채를 내는 길고 가느다란 장검이 투영되었다.
“시그널인가?”
아슈르의 능력 시그널은 모든 종류의 신호를 수집한다.
하나의 유리판에는 하나의 신호가 담기고, 그 판의 패턴을 조합하여 무한에 가까운 현상을 구현할 수 있다.
아슈르의 장검 ‘쇼크웨이브’ 또한 각기 다른 30개의 신호를 받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전자기 펄스의 영향으로 자체적으로 진동하기 때문에 일단 파고들면 내부를 초토화시키는 살상력 만점의 무기였다.
리안은 멍하니 아슈르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처럼 중간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었다.
“당신은 누구야?”
“가라. 아군이다.”
짧은 말이었지만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시로네가 어떤 변수를 만들어 낸 것이 분명했다.
리안은 이미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슈르가 나타난 뒤로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리안은 입술을 짓깨물고 대세계전으로 달렸다.
속에서 불이 끓어올랐다. 패배가 두려울 만큼 고결하게 자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의 공격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테스의 드론이 뒤를 따르는 게 느껴졌다. 기계는 끝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녀가 전하는 위로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제길! 제길!”
리안은 전력을 다해 대세계전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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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르는 여전히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리안을 따라 대세계전으로 가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이미르를 막는 게 급선무였다.
시그널의 능력인 ‘전송’을 사용하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신호를 보내 순식간에 장소를 옮길 수 있지만 대세계전만큼은 불가능했다.
전자기파로 도배가 되어 있는 곳이라 신호가 전송되기를 기다리느니 뛰는 게 빨랐다.
리안을 먼저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물러서라, 이미르. 더 이상의 방종은 용납하지 않겠다.”
이미르가 아래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쁘장한 천사님까지 버려두고 온 걸 보면 뭔가 중요한 일이 터진 모양인데. 그러지 말고 같이 좀 알면 안 되겠소?”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어째서인지 상관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아슈르는 부정하지 않았다.
거인의 왕 이미르가 원하는 것은 전투였다. 오직 강하다는 이유로 육체를 빼앗긴 그는 본체의 힘으로 싸워야만 이길 수 있는 치열한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에 이카엘은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카엘이 그것을 바란다면 아슈르 또한 따를 것이다.
자신이 나서는 한 천국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미르가 관심을 두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슈르는 이미르의 명치에 쇼크웨이브를 겨누었다.
“대천사 이카엘 님의 명에 따라, 너에게 주어진 모든 권리를 박탈하겠다.”
“크크크, 천박한 천사에게 그런 권한도 있었나?”
아슈르는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두 팔을 교차한 이미르의 팔뚝이 갈라지며 핏물이 튀었다. 전자기파의 진동이 뼈를 후끈하게 불태웠다.
아슈르는 모욕을 당한 시선으로 이미르를 짓눌렀다.
“한낱 거인 따위가 대천사를 능멸하느냐? 너는 그저 육신에 불과하다. 역겨운 혀로 고결한 정신을 능욕하지 마라.”
“한낱 거인?”
이미르의 한쪽 눈썹이 꿈틀했다.
“나는 이미르다.”
살기를 느낀 아슈르가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이미르는 한 번의 도약으로 10미터를 따라잡았다.
이미르의 강력한 스트레이트가 복부를 꿰뚫었다.
“컥!”
아슈르의 눈동자에 충격이 담겼다.
시간 속에 멈춰 있던 그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신호를 담고 있던 180여 개의 유리판이 깜박거리다가 사라졌다.
이미르는 짜증 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새로운 공간에 전송을 완료한 아슈르가 고고한 자태로 쇼크웨이브를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크크,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힘의 구속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너에게 동정받을 위치가 아니다. 네 육신이나 제대로 간수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하오?”
“빙염의 지옥.”
아슈르와 이미르를 둘러싼 공간이 유리판으로 둘러싸였다.
대략 2,400개에 달하는 유리판이 점멸하면서 열화와 냉기의 신호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불과 얼음이 10센티미터 간격마다 교차되는 광경이 눈을 어지럽혔다.
모든 신호가 전송되면 이곳은 어떻게 될까? 열에 타들어 갈 것인가? 냉기에 얼어 버릴 것인가?
“네가 자초한 일이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않소. 난 최강이니까.”
이미르는 야수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돌진했다. 그에 맞서 아슈르도 차가운 눈을 치켜뜨며 쇼크웨이브를 휘둘렀다.
전송이 완료되면서 열풍과 냉기가 동시에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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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조금만 기다려! 거의 다 와 간다!”
리안은 더 이상 산소를 아끼지 않았다. 아슈르와 헤어지고 10분을 달린 끝에 대세계전으로 가는 다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리의 길이는 1킬로미터였고 폭은 60미터에 달했다. 가드펜스가 없어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강풍이 불자 이유 없이 아랫배가 울렁거렸다.
다리의 끝에는 돔형의 구조물이 서 있었다. 친구들이 붙잡혀 있는 대세계전이었다.
건물이 보인다는 건 호재였다. 카니스가 메카 시스템을 해제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뭐야, 너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야?”
뒤를 돌아보자 카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너, 어떻게 벌써 여기에?”
“포탈을 타고 왔지. 그나저나 얼굴은 왜 그래? 누구한테 두들겨 맞은 것처럼.”
리안은 얼굴을 만져 보았다.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바닥을 구르는 바람에 부은 것도 몰랐다. 미안한 감정을 담아 드론을 올려다보았다.
‘걱정했겠구나, 테스.’
카니스도 그것을 살폈다. 설명을 듣지 않고서도 테스의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천사에게 붙잡혀 가는 상황에서도 드론을 흘려보낸 것은 확실히 제법이었다.
“안쪽의 상황은 어때? 확인은 했겠지?”
“어. 아직까지는 괜찮은 모양이야. 그런데…….”
갑자기 드론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고 날아다니더니 전력이 끊긴 것처럼 뚝 떨어졌다.
리안은 황급히 받아 들고 살펴보았다.
작동 램프가 꺼져 있었다. 뇌파와 연결되어 있는 장비이기 때문에 테스의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증거였다.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몰라! 시간이 없어!”
리안이 먼저 몸을 날렸다. 다크포트라면 한 번에 갈 수 있지만 하늘 위에 떠 있는 다리는 온통 빛의 영역이었다.
리안을 붙잡은 카니스가 자존심을 죽이고 광자화 마법을 시전했다.
두 사람을 태운 섬광이 다리 위를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