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86
카니스의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오브제는 그저…… 마라의 노리개였을 뿐이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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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리안…….”
페오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리안을 돌아보았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도 그는 싸우고 있었다.
아니, 막아 내고 있었다.
첫 번째 충돌에서 피를 토한 리안은 그 상태로 이미르를 끌어안고 정신적 잠금장치를 걸었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다.
위험한 길을 택한 대가로 얻은 것은 스키마에 준하는 육체 능력이었다.
이미르는 리안의 몸을 부수지 않으면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연거푸 주먹을 올려쳤다.
리안의 몸이 충격에 흔들릴 때마다 대검이 휘청거렸다.
“크윽! 아직……!”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미르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힘의 기질이 쇠처럼 딱딱하다. 생물이 낼 수 있는 완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배 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으니 힘을 낼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인간 중에 사용할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문데.’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아주 낮은 빈도로 그런 자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은 예외 없이 문명을 대표하는 최강의 전사였다.
거인의 술조차 쓰지 못하는 인간을 같은 급으로 놓는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예우가 아닐 것이다.
“크크! 어디 끝까지 한번 가 보자고!”
이미르는 초근거리에서 어퍼컷을 쳐올렸다.
복부의 근육이 파열되는 순간 리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떠오른 몸이 착지하면서 무릎이 구부러졌으나 이미르에게 매달려 버텨 냈다.
다음 순간 리안이 정신적 잠금장치를 풀고 이미르의 어깨를 떠밀었다.
죽어도 풀지 않을 것 같던 클린치가 끝나자 이미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상관있을까? 어차피 자신이 최강이다.
어떤 생물체든 거인의 왕과 겨루게 되면 이렇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결국 포기했나? 인간치고는 오래 버텼다. 상으로 고통 없이 끝내 주마.”
이미르는 힘껏 발을 내딛으며 주먹을 뻗었다. 근거리에서도 근육을 찢는 파괴력이었으니 체중을 실은 일격이 들어온다면 리안의 몸은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리안은 개의치 않았다. 이미르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눈은 거인의 어깨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왔구나, 시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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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네는 1킬로미터의 거리를 30초 만에 주파했다.
대세계전이 가까워오자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거인과 엉망진창으로 당한 리안이 보였다.
“리아아안!”
이미르가 움찔했다. 하지만 거력을 담은 주먹은 관성을 타고 리안의 복부를 향해 돌진했다.
시로네는 샤이닝 체인을 시전했다. 수십 미터 길이의 사슬이 이미르의 몸을 칭칭 감았다.
“응?”
이미르가 깨닫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몸이 끌려갔다.
“크으으으!”
떠 있는 상태에서도 이미르는 힘을 불어 넣어 사슬의 파괴를 시도했다.
시로네의 정신으로 거인의 완력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무식한 도전을 받아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시로네는 사슬을 움직여 거인을 패대기쳤다.
쾅! 쾅! 쾅! 쾅! 쾅!
사슬에 감긴 이미르의 몸이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며 연거푸 처박혔다. 마지막으로 땅에 메다꽂을 때는 바닥이 쩡 하고 울렸다.
대자로 뻗은 이미르는 미동이 없었다.
굴욕이었다.
한낱 인간 마법사에게 자신의 육체가 조롱당했다는 사실에 몸이 달아올랐다.
“고작 땅에 처박힌다고 부서질 것 같나? 지금 당장 이 사슬을 깨 주마! 내 육체가 얼마나 강한지 느껴 봐라!”
이미르가 근육을 부풀리자 사슬이 당겨졌다. 시로네의 미간이 구겨졌다. 하지만 상대가 정공법으로 나온다면 돌려서 받아치는 게 마법사였다.
“이런 건 어때?”
시로네가 팔을 휘두르자 사슬이 풀리면서 이미르가 다리 바깥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미르는 허공에 떠 있는 상태에서 멍한 표정으로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너…….”
무언가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중력을 받은 그의 몸이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
7. 천국 (1)
추락하는 이미르는 멀어지는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풍경들이 구름에 가릴 무렵에야 허탈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여튼 마법사란 것들은…….”
이대로 땅에 처박혀도 상관은 없었다. ‘부분’인 상태로 미적거리느니 차라리 아래에서 기다리는 땅바닥과 내구력 대결을 벌이는 게 훨씬 재밌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소년이 나타난 순간 다시 냄새가 났다. 전장 특유의 비릿하면서도 알싸한 냄새가.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천국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는 대세계전이었다.
“그런 자리에 빠질 수는 없지.”
대세계전으로 가야한다.
도약을 시도하면 ‘부분’의 힘은 더욱 약해지겠지만 전장의 피 냄새가 부르고 있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흐으으읍!”
이미르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몸을 부풀렸다.
산소를 차단하자 피부가 도자기처럼 딱딱하게 굳어 갔다. 얼굴에서 혈색이 사라지고 눈동자에 생기가 빠졌다.
입술이 열리더니 맥박이 멈췄다.
그렇게 이미르는 사망했다.
펑! 하고 시체의 전면부가 터지면서 똑같은 형태의 이미르가 튀어나왔다.
강력한 추진력에 몸을 실은 이미르는 수십 미터를 도약하여 제불을 지탱하는 기둥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후우, 할 때마다 짜증 난다니까.”
무력을 추구하는 그에게 힘의 약화는 견딜 수 없는 좌절이었다. 특히나 부분에서 부분으로 태어나는 것은 사망을 거쳐야 하기에 극도로 불쾌했다.
이 모든 굴욕을 감수하는 이유는 하나. 전투의 끝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기둥에 매달린 이미르는 발바닥을 기둥에 붙이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팔을 끌어당기면서 기둥을 박차는 순간 거체가 중력을 거스르며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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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술 진행률 80퍼센트.
시로네는 대세계전을 돌아보았다. 입구에 다가서자 페오페가 여태까지의 기억을 담아 넘겨주었다.
시로네는 피를 흘리는 리안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아? 늦어서 미안해.”
“아니. 늦지 않았어. 들어가서 여자들을 구해.”
리안은 엉망진창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최소한 체력이라도 보충할 시간이 필요했다.
“시로네!”
에이미가 소리쳤다. 여태까지 참고 있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게 모르게 서러웠던 모양이다.
“시간이 없어! 정보가 전송되면 끝이야!”
시로네는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손끝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
여태까지 지내오면서, 무엇을 하든 에이미가 자신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닥치자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허락 없이는 어느 누구도 에이미를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시로네의 그림자에서 카니스가 솟아올랐다.
“어떻게 됐어? 탈출할 방법은 찾았어? 이카엘이 여자들을 풀어 주겠대?”
“이카엘은 오지 않을 거야.”
“그럼 헛고생했다는 거야?”
“어쩌면 그럴 수도.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해 볼게.”
시로네는 바알브에게 걸어갔다. 하지만 노려보는 대상은 그 너머에 있는 카리엘이었다.
“지금이라도 여자들을 풀어 준다면 그냥 돌아가겠어.”
“그렇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진단 말이지? 멸망을 피할 수는 없다. 최후의 전쟁은 일어날 것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아니. 너희는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어.”
“무슨 근거로 그딴 망발을 지껄이는지 모르겠군. 천국의 힘은 위대하다. 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너희의 세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라는 신이 아니야.”
오기로 꺼낸 말도, 궤변도 아니었다. 시로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또한 미로도 마찬가지였다.
-시로네, 신이라는 건 딱히 위대한 존재가 아니에요. 단지 세상의 설계자일 뿐이죠.
미로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스케일 마법을 구사하는 언로커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신을 폄하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국의 비밀을 깨달은 이제는 아니었다.
미로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는 존재가 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신은 오직 하나. 세상을 설계한 자였다.
“인간은 당신의 생각만큼 어리석지 않아. 우리가 보고, 느끼고, 분석할 수 있는 존재가 신이 될 수는 없다고! 우리는 싸울 거야! 최후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멸망하는 건 천국이 될 거다!”
카리엘의 인상이 구겨졌다. 아마도 이토록 불경한 말을 듣는 건 오랜만일 터였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인간은 죽어 마땅하다. 바알브, 놈들을 처단하라.”
“그것이 저에게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카리엘 님.”
바알브의 둔중한 몸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거체가 움직일 때마다 이름 모를 기관들이 의미 없이 휘적거렸다.
“카니스! 물러서!”
시로네의 주위로 수많은 광자들이 떠올랐다. 진동하는 빛의 긴장감이 손만 대도 튀어나갈 듯 무시무시했다.
바알브가 시로네를 덮치는 것과 동시에 십여 발의 포톤 캐논이 쏘아졌다.
퍼퍼퍼퍼퍼펑!
놀랍게도 바알브의 몸이 밀려났다. 이어서 찢어질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포톤 캐논은 끝도 없이 거체를 두들겨댔다.
곤충의 다리가 부러지고 연체동물의 촉수는 어금니로 질겅거린 듯 탄력성을 잃어 갔다.
바알브의 몸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쏟아지는 대포에 얻어맞으며 카리엘을 향해 밀려나갔다.
시로네는 그제야 마법을 중지했다. 여태까지의 분노가 한 번에 폭발한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았다. 단발의 위력이 상승했음에도 피로감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카니스는 허탈했다. 인간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마법의 위력을 한 단계 올리는 게 가능한 것인가?
전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새로운 것을 깨닫는 건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시로네는 정신적 변화를 겪은 게 아니었다. 기존에 그를 이루는 모든 수치가 일괄적으로 상승한 상태였다.
‘이럴 수는 없어. 이렇게 멀어질 수는 없는 거야.’
불과 몇 달 전 시로네와 전투를 치렀을 때만 해도 차이가 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빛의 마법에 패한 이후 시로네를 뛰어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했다.
하지만 시로네는 전보다 훨씬 멀어져 있었다.
어째서 그는 좌절하지 않는 것일까? 대체 그를 이루는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카일엘이 쓰러진 바알브에게 말했다.
“장난은 그만해라, 바알브.”
그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물론 시로네의 마법은 확실히 인간치고 제법이었다. 신민의 기준으로 보자면 상위 40퍼센트 안에는 충분히 들어갈 터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이각 마라를 이길 수 없다.
율법으로 따지자면 시로네가 10명이 있어도 불가능한 게 마라의 무력이었다.
“죄송합니다, 카리엘 님. 아무래도 대세계전이 좀 부서질 것 같습니다.”
“허한다.”
카리엘이 승낙하자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알브를 이루는 수많은 생물들의 기관이 일제히 천장을 향하면서 발버둥을 쳐 댔다.
“키키키! 내 귀여운 실험체들을 잠에서 깨우다니. 너희에게는 악몽이 되겠구나.”
7. 천국 (2)
어떤 문명에서 마취의 신으로 불리는 바알브는 온갖 생물체를 잠재워 자신의 기관에 이식하는 마라였다.
잠은 생물체를 무생물의 위상으로 격하시킨다.
바알브에게 잡힌 생물체는 물건이나 다름없으며, 그렇게 평생 동안 괴물의 기관이 되어 살아가야 했다.
-일화의 술 진행률 90퍼센트.
100톤이 넘는 바알브가 비둔한 몸을 허우적대며 시로네를 뒤쫓았다. 어깨에서 네발짐승의 앞다리 같은 것이 튀어나오더니 바닥을 강타했다.
대세계전이 쩌렁쩌렁 울렸다.
“키키! 어떠냐? 사자 260마리 분의 위력이다. 조만간 너희도 내 몸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일화의 술 진행률 91퍼센트.
90퍼센트가 넘어가자 1퍼센트 단위로 음성이 나왔다. 고작 9퍼센트 남았다는 사실에 시로네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로네! 시로네!”
카니스가 부르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어디다 정신을 팔고 있어? 준비한 게 있으면 빨리 해. 설마 무턱대고 쳐들어온 것은 아니겠지?”
마법의 수준이 조금 향상됐다고 달려온 것이라면 카니스는 그냥 다크 웜을 자신에게 시전할 생각이었다.
죽으면 죽었지 수면마의 일부분이 되어 영원히 고통 받고 싶지는 않았다.
카니스의 말을 들은 시로네는 이카엘이 전해 준 마법진을 떠올렸다.
하지만 광륜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천사처럼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는 없었다.
“한 가지 있긴 있는데…….”
“그럼 해! 왜 꾸물대고 있는 거야!”
바알브의 하체에서 20개의 게 다리가 튀어나왔다.
빠르게 움직이는 다리가 100톤의 무게를 밀고 들어오자 시로네와 카니스는 동시에 옆으로 몸을 날렸다.
10미터를 뛰어오른 바알브가 그들이 있던 자리를 깔아뭉갰다.
대세계전이 흔들리며 천장에서 철가루가 떨어졌다.
“시간이 필요해. 잠시만 시간을 끌어 줄 수 있어?”
카니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런 것이었나?
하지만 맨정신으로도 상대하기 힘든 이각 마라를 얼마나 붙잡아 둘 수 있을까?
“10초. 그 이상은 절대 못 버텨.”
“1분만 부탁할게.”
시로네가 자리를 떠나는 즉시 바알브가 문어의 다리를 휘둘렀다. 카니스가 날다람쥐처럼 몸을 날리는 순간 축축한 촉수가 바닥을 부쉈다.
“키헤헤헤! 도망치는 건 일품이구나. 하긴, 약한 것들의 유일한 장점이지.”
“흥! 둔해 터진 주제에 기고만장하기는.”
카니스는 정신을 다잡고 시간을 계산했다. 무력의 차이는 극심하지만 회피에만 전념한다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모기가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1분 동안 도망치지 못하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리안이 대검을 움켜쥐고 일어섰다.
“내가…… 가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