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87
언제까지고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로네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으니 카니스와 함께 시간이라도 끌어야 했다.
그때 페오페가 바깥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저…… 저거!”
리안이 돌아보자 거인의 왕 이미르가 분노에 불타는 눈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굴욕을 안긴 시로네를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망가진 몸을 이끌고 온힘을 다해 태클을 가하자 이미르의 몸이 옆으로 밀려났다. 바닥을 구른 리안은 대검을 붙잡고 시로네에게 가는 길목을 차단했다..
‘뭐지? 어째서?’
목숨 걸고 덤비기는 했는데 사실 이미르가 밀릴 줄은 몰랐다. 전보다 힘이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르가 무릎을 털며 일어섰다.
“세 번째군. 하지만 이제는 별로 재미없을 것 같은데?”
“나는 시로네의 검이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다가갈 수 없다.”
페오페의 정신감응 덕분에 이제는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르는 오히려 실망한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네 말은 틀렸다. 힘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힘의 본질은 파괴.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너는 결코 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르는 바람처럼 움직였다. 완력은 줄었지만 민첩성은 오히려 높아진 듯했다.
소나기 같은 연타가 리안의 몸을 두드렸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던 리안이기에 반격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자신이 살아 있는 한 이미르가 시로네에게 갈 일은 없을 테니까.
‘버티자. 조금만 더 버티면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거야.’
이미르의 눈이 점차 붉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두들겨도 리안은 쓰러지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 파괴했는데도 마치 남아있는 게 있다는 것 마냥 버티고 있었다.
“리안! 리안! 그만해, 이 자식아!”
테스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제발 그만 때려! 그러다 죽겠어!”
이미르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일반적인 전투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광기였다.
생명과 생명이 부딪치는 느낌이 피부로 전해져왔다.
재밌다. 아주 재밌는 인간이었다.
“멋지구나! 너를 파괴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리안의 몸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테스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래도 보였다. 리안이 죽어가는 것이 오감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카리엘에게 소리쳤다.
“알았어! 낳아 줄게! 네피림이라면 내가 얼마든지 낳아줄 테니까 제발 그만해!”
카리엘은 흔들리지 않았다.
“네피림을 낳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미르는 내가 통제하는 게 아니야.”
-생명의 술 진행률 96퍼센트.
이미르는 공격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충격적이었다. 대체 이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죽었다. 아니, 죽어야 정상이었다.
가드조차 올리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에서는 생명의 기운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대검을 쥐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오른팔의 근육을 전부 뭉개 버렸다. 인대의 힘만으로 철을 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냥 시체일 뿐이야. 그대로 굳어 버린 것이다.’
승리한 것이 분명하건만, 이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끝장을 내 주마!”
이미르는 뿌드득 이를 갈았다. 마지막 일격을 가할 생각으로 보폭을 넓히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리안의 대검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시야를 전체로 넓히자 대세계전에 오로지 그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쳇! 또 이건가?’
수많은 전쟁을 경험한 이미르는 이것을 시간의 시소라고 표현한다. 갑작스럽게 세계의 속도가 치솟을 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현상이었다.
한쪽이 빨라지는 만큼 한쪽은 느려진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미르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만큼이나 리안의 팔이 빠르고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제길!’
이미르는 앞에 서있는 소년이 몸이 부서지고서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정신이 파괴되지 않았다. 그 파괴되지 않은 정신이 직접 육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정신이 지시를 내리면 몸이 움직인다는 생물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초월해버리는 기술.
최상위의 거인만이 가능하다는 화신술이었다.
스키마는 원래 거인의 술법이었기에 화신술 또한 인간 세상에 있는 어떤 개념과 유사했다.
스키마에서 뇌를 강화하는 검사들은 정신적 잠금장치를 통해 육체를 통제한다.
하지만 그것이 도를 넘어서면 정신과 육체가 하나로 통합되어 생각하는 대로 몸이 따라버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신적 초월’이라고 부른다.
‘크크.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잖아.’
이미르는 리안의 대검이 천장을 향하는 것을 노려보며 몸을 뒤틀었다.
회피할 수 있을 정도까지 몸을 기울였다고 생각한 순간 시간의 속도가 급격하게 되돌아왔다.
리안의 대검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잘려 나간 오른팔이 허공에서 회전했다.
이미르의 얼굴이 씁쓸해졌다. 리안이 빨리 움직일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그럼에도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피할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퍼퍼퍼퍼퍼펑!
대검이 땅에 닿는 순간 리안의 오른팔이 터져 나갔다. 찢어진 근육이 너덜거리고 뼈가 전부 드러나 있었다.
신적 초월의 속도를 육체가 버티지 못한 것이다.
-생명의 술 진행률 97퍼센트.
생명의 술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들의 삶 또한 저물어 갔다. 바알브의 촉수에 얻어맞은 카니스는 수십 미터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했다.
“바알브, 그만 끝내라.”
“네, 카리엘 님!”
카니스를 해치운 바알브는 시로네에게 돌진했다. 최초에 약속했던 1분은 이미 지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로네에게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시로네! 위험해!”
시로네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모탈 펑션을 한계까지 열어 되돌리는 과정에서 신경이 관여할 여지는 없었다.
“크하하하! 너는 내 가장 추악한 곳에 달아 주마!”
바알브의 등에서 전갈의 꼬리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침 끝에 시커먼 물방울이 매달려있었다.
한 번만 꽂히면 드래곤조차 마취되어 버린다는 강력한 수면 독이었다.
그 순간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퍼엉! 직경 2미터의 원이 탄생하더니 바알브의 공격이 충격파에 튕겨나갔다.
그것을 지켜보던 카리엘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스쳤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인간이 천사의 능력을 구사할 수는 없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 불안한 것일까? 마음을 졸이는 이 저열한 기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바알브! 시간이 없다!”
“키에에에에에!”
카리엘의 지시를 들은 바알브가 비명을 지르며 육탄 공격을 감행했다. 흉측한 얼굴이 공포에 잠겨 있었다.
시로네의 광륜이 빛의 속도로 회전하면서 붉은 점이 중앙에 박혔다. 이어서 최초의 마법진이 수많은 개념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천사의 마법진.
무한 사법광륜 헤일로.
광륜에서 연꽃처럼 피어오르는 수많은 마법진을 살핀 카리엘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말로 헤일로였다.
인간이 스스로 깨닫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가 그에게 전수해 준 것이다.
대체 누가? 이 천국에 인간에게 헤일로를 가르칠 미친 천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카리엘이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틈에 페오페는 여자들에게 날아갔다.
“빨리! 빨리!”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나선의 힘을 가하자 수갑을 비틀렸다.
카니스가 절반 이상을 잘라 놓은 덕분에 페오페의 능력으로도 어렵지 않게 수갑을 파괴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카리엘은 헤일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네피림보다도 심각한 문제였다.
천사의 배신은 천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중대사였다.
알아야 했다. 누가 전수했는지를.
그리고 존재를 멸해야 했다.
바알브는 온갖 기관을 동원해 시로네를 찍어 눌렀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힌 듯 몸에 닿기 전에 공격이 멈췄다.
“키익! 키익!”
사력을 다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자식이 어미를 죽이지 못하듯이,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상위 존재의 권위가 접근자체를 차단하고 있었다.
오색찬란한 섬광들이 헤일로에 처박히자 수많은 마법진들이 탄생하며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정보의 집적도가 80퍼센트를 넘어가는 순간 급격히 개념이 변하면서 회전속도가 빨라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광륜의 회전속도는 마치 그것만으로 세상을 헝클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법진에 담긴 개념을 깨달은 바알브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찍었다.
마라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과 마주치고 말았다.
“히익! 아타……! 아타……!”
바알브는 움직일 수 있는 기관을 모두 동원하여 카리엘에게 기어갔다. 하지만 얼마나 넋이 나갔는지 제대로 땅을 미는 기관이 하나도 없었다.
살기를 포기한 바알브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카리엘 님! 피하십시오! 초마력증폭진 아타락시아입니다!”
카리엘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워 시간조차 흐르지 않는 듯했다.
아타락시아라니.
수많은 천사들을 굴복시킨 천국 최강의 사법. 어떤 마라도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는 이카엘의 전매특허였다.
그런 능력을 인간에게 전해 줬다?
아닐 것이다.
차라리 자신의 눈이 삐어서 저기에 서 있는 이카엘이 소년의 모습으로 보인다는 게 더 그럴듯했다.
‘이카엘, 정말로…… 미쳐 버린 것이냐?’
아니, 미치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전쟁을 막을 생각이었다. 최강의 천사라는 명예조차 포기한 채 인간의 편에 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정보 전송률 98퍼센트.
카리엘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2퍼센트 남았다. 그런데 아타락시아가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노려보는 시로네의 눈빛이 보였다. 정말로 인간이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눈속임일지도 모른다. 생명의 술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만약 지금의 상황이 현실이라면…….
자신은 소멸할 것이다.
“이카에에에에엘!”
카리엘이 분노의 일갈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의 포톤 캐논이 쏘아졌다.
7. 천국 (3)
콰콰콰콰콰콰콰콰!
아타락시아에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시로네는 출력을 제어할 수 없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섬광이 퍼지면서 대세계전을 빛으로 가득 채웠다.
바알브가 수십 개의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바닥을 기었으나 곧바로 빛무리에 휩쓸려 자취를 감추었다.
섬광이 질주하는 자리에 있던 물체들이 쓸려나갔다. 마치 공간마저 밀어내버리는 듯했다.
퍼어어어어어엉!
제불의 끝에 위치한 대세계전.
거대한 돔의 장벽이 폭발하면서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두 줄기의 섬광이 천공을 갈랐다.
“허억! 허억!”
시로네는 무릎을 짚고 숨을 헐떡거렸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대세계전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자신이 해 놓고도 믿을 수가 없는 결과였다.
이카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이걸 새겨 넣은 것일까?
시로네의 시야에 남아 있는 것은 카리엘뿐이었다.
뒤편으로 하늘이 보이고 땅바닥이 거대한 Y 자로 파여져 있었다.
카리엘의 머리 위에 펼쳐진 광륜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생명…… 술 진행…… 99…… 센트.
시로네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에이미가 이마에 붙은 패널을 뜯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피가 날 정도로 긁어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절망에 빠지려는 그때 또 다시 음성이 들렸다.
-전송 취소. 생명…… 술…… 중지……합니다.
에이미의 이마에 박혀 있던 패널이 스르륵 빠져나오더니 가루보다 작은 입자로 분해되었다.
시로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카리엘을 돌아보았다.
대천사의 얼굴이 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안내 음성에는 시간적 오차가 있었지만 아타락시아가 발동되는 순간 힘을 되찾은 게 분명했다.
카리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생명의 술을 진행시켰더라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아타락시아의 증폭력은 생명의 술에 정신력을 빼앗긴 상태에서 막아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카리엘이 거대한 황금빛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이제 알겠느냐, 어리석은 인간이여? 이게 바로 생명의 술이다. 대천사인 나조차도 모든 걸 포기하고 전념해야 만들 수 있는 게 생명이란 말이다!”
카리엘은 초토화된 대세계전을 내려다보았다.
고작해야 애송이가 시전한 마법이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파괴력이다.
어째서 인간에게 이런 힘이 주어져야 하는가?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 어떤 선인이라도 힘의 유혹 앞에서는 타락해버리고 마는 법이다.
저 소년은 왕이 되려고 할 것이다. 천사의 능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며 온갖 쾌락에 탐닉할 것이다.
‘그것도 괜찮은 일이겠지.’
차라리 이대로 돌려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후의 전쟁이 일어날 필요도 없이 인간 세상은 자멸하고 말 테니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걸 이카엘이 모르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정말로 미쳐 버렸나?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천사의 사법을 인간에게 전수할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만큼 믿는다는 것인가? 저 소년을?’
이카엘은 저 인간에게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물론 재능은 인정하고 있었다. 아무 재능도 없이 천사의 사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붙잡아야 한다. 놓치게 되면 천국을 위협할 강력한 무기가 인간들의 손에 넘어가는 셈이었다.
“더 이상 나에게 자비를 구하지 마라.”
카리엘이 선전포고를 했으나 도망칠 궁리를 하는 시로네 일행은 듣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아린이 카니스를 데려왔고 에이미는 페오페를 지켰다.
테스도 리안을 데려오기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이미르가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