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97
세상에는 3개의 라인이 있고 그중에서 가장 대역폭이 넓은 채널이 마법협회가 주관하는 레드 라인이었다.
공인과 비공인을 분류하고 1급부터 10급의 호칭을 받는 모든 마법사들이 레드 라인에 속하는 것이다.
레드 라인의 시스템 아래에 있는 교사들은 올리비아의 위치까지 오르는 게 얼마나 턱없이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공인 1급은 보통 왕국에 5명도 되지 않기에 공인 2급의 마법사만 되어도 레드 라인의 정점이라 불린다.
따라서 아무리 괴팍한 철학이라도 공인 2급까지 올랐다면 반박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에텔라가 말했다. 조너로서는 레드 라인이지만 한편으로는 마법사 인력망과 관계가 없는 수도사였기에 다른 교사들보다는 발언이 자유로웠다.
“고급반의 학생들은 아직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단지 남들과 다르면 그만인 개성이 아닌,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기초에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교사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반면에 사드와 시이나는 슬그머니 엄지를 치켜들었다. 인상은 순해 보여도 속이 단단한 건 역시나 에텔라였다.
“그렇게 생각하나요? 좋아요. 그렇다면 에텔라 선생이 가르친 학생들이 얼마나 기본에 충실한지 리프팅 평가 방식으로 확인해 보면 어떨까요?”
리프팅 평가 방식은 에텔라도 학술회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다른 평가 방식보다 객관적이라는 말들이 많고, 스피릿 존의 전체적인 수준을 가늠하는 데 효과적인 테스트였다.
시로네 일행은 교사들의 기 싸움에 심장이 쫄깃했다.
“휘유, 에텔라 선생님도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도 장난이 아니네.”
“그러게. 이러다가 정말 무슨 일 터지는 거 아냐?”
“설마. 시이나 선생님도 말 한마디 못 꺼내는데 뭐.”
에텔라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가르친 학생들의 기본기는 어느 학교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그렇다면 시작해 보죠. 혹시 클래스 포에서 스피릿 존 리프팅 훈련을 해 본 학생이 있나요?”
손을 든 사람은 단테 일행뿐이었다. 알페아스는 실효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 왕립 마법학교에서는 이미 1년 전부터 정식으로 채택한 과목이었다.
“좋아요. 그럼 다들 전학생의 실력이 궁금하기도 할 테니 단테 군이 나와서 시연을 해 주겠어요?”
“네. 저야 영광입니다, 교장 선생님.”
단테가 이미지 존으로 걸어가는 동안 올리비아는 타깃의 민감도를 최대치로 맞추라고 교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에텔라가 학생들에게 리프팅을 설명했다.
“리프팅 테스트는 스피릿 존의 기능을 전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항목입니다. 반발력이 강한 타깃을 스피릿 존에 잡아 두는 것이죠. 스피릿 존의 밀도, 비중, 형태의 변화에 따라 불특정 방향으로 튕겨 나가기 때문에 오래 유지할수록 스피릿 존의 기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테는 이미지 존의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자 정수리 위에 구형의 타깃이 태어났다.
4. 전투 시뮬레이션 (2)
스피릿 존에 들어가는 순간 타깃이 감전된 듯 부르르 떨렸다. 이어서 정신의 변화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궤도로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타깃이 스피릿 존을 벗어나려고 하자 단테는 사방식을 구사하여 공간을 확보했다. 그런 다음 정신 박동의 순간 집중력을 통해 빠르게 잡아당겼다.
타깃이 중심으로 돌아오자 다시 날뛰었다. 그럴 때마다 단테는 능숙하게 사방식의 형태를 변환시켜 타깃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타깃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궤적 또한 기상천외하게 변했다.
어떤 구간에서는 벽에 갇힌 듯 진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구간에서는 10미터 이상을 전력으로 뻗어 나가기도 했다.
학생들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었다.
가장 긴 사거리의 타깃형으로도 붙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날아가자 저절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어어?”
그 순간 단테가 수열식으로 스피릿 존을 확장시켰다. 타깃형의 거리가 쭉 늘어나면서 또다시 타깃을 가두었다. 여지없이 정신 박동이 일어나 타깃을 끌어왔다.
묘기에 가까운 스피릿 존 운영에 구경하는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1분이 지나가자 올리비아가 중단시켰다.
“그만. 시연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군요.”
단테는 타깃을 끌어와 정수리 위로 띄운 다음 스피릿 존을 해제했다.
학생들은 넋을 잃고 지켜보았다. 한순간이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타깃을 이동시키는 기술은 평범한 정신력으로는 불가능한 경지였다.
“이것이 리프팅 테스트입니다. 클래스 포라면 1분 정도는 유지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럼 이제 다른 학생들도 시연을 해 볼까요? 제가 듣기로 시로네라는…….”
보일이 손을 들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시로네에게 무안을 주기 위한 전략이었는데 뜬금없이 다른 학생이 손을 들자 올리비아는 난감했다.
리프팅 1분이라면 클래스 포의 평균보다 훨씬 높은 경지였다. 테스트가 도입되자마자 연습을 한 단테조차도 2분은 무리였다.
“제가 클래스 포의 1등입니다. 자신 있습니다.”
올리비아의 눈이 빛났다. 시로네가 아닌 건 아쉽지만 고급반 1등과의 비교는 에텔라를 압박할 객관적인 데이터가 되어 줄 것이다.
“좋아요. 처음이니까 감각을 익힌다는 생각으로 해 보세요.”
보일은 씩씩하게 이미지 존으로 걸어갔다. 계단을 오르면서 단테를 노려보았으나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를 비켜 줄 뿐이었다.
학생들이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는 가운데 보일의 리프팅이 시작되었다.
스피릿 존에 들어가자 타깃이 강하게 반발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마치 두개골 속에 고무공이 튀는 기분이었다.
고급반 1등이라는 재능답게 리프팅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정신 박동으로 끌어당기는 주기가 현저히 짧아졌다.
결국 사방식의 변환 속도가 타깃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타깃이 스피릿 존을 벗어나고 말았다.
“후아, 후아.”
보일은 연거푸 숨을 내쉬었다. 처음 시도한 것치고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생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전광판을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21초.
단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과였다. 연습을 한다면 더 높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1분을 유지하기란 힘들 것 같았다.
“제길! 제길!”
보일은 고개를 숙인 채 자리로 돌아갔다.
에텔라를 볼 면목이 없었다. 자신의 실패로 에텔라의 제자가 올리비아의 제지보다 기본기가 떨어진다는 게 증명된 셈이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기뻐하지 않았고 에텔라를 핀잔하지도 않았다. 시작은 유치한 동기였지만 평생 교직에 몸담은 사람으로 학교의 일에서만큼은 진심이었다.
“보일 군도 잘했어요. 첫 시도에서 20초면 아주 준수합니다. 저는 기본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아무리 기본이라도 기능은 갖추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국의 학생들이 전문화 과정을 밟고 있는 시대에 정석만 고집하다가는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교사들은 처음으로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알게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려면 신선한 자극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알페아스가 직접 발품을 팔아 올리비아를 데려온 이유일지도 모른다.
올리비아는 학생들에게 눈웃음을 선사했다. 차가운 인상의 여자가 미소를 짓자 아름다움이 한층 돋보이는 듯했다.
“자, 여러분도 해 보고 싶겠죠. 그럼 오늘은 자유 수업으로 리프팅을 연습해 보죠. 첫날이라 감각을 익히는 게 중요하니 무엇이든 해 보세요. 그럼 실습 시작입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받은 듯이 우르르 몰려갔다. 올리비아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학생들의 연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오늘만큼은 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에텔라는 교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드와 시이나에게 다가간 그녀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죄송해요. 역시 계란으로 바위 치기네요.”
사드가 에텔라를 달랬다.
“하하!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도 에텔라 선생님이 할 말은 해 줘서 속이 시원하네요. 게다가 단테는 왕국 1등이잖아요. 보일의 기본기는 절대 뒤떨어지지 않아요.”
시이나도 생각은 비슷했다.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일도 리프팅을 연습했다면 좋은 승부가 되었을 것이다.
소환 마법사들이 대부분 30대 이후에야 빛을 보는 걸 감안한다면 어린 나이에 고급반 1등에 오른 보일도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천재였다.
“걱정이 되는 건 앞으로의 일이에요. 단테가 이겼으니 교장 선생님의 입김이 강화될 겁니다. 자칫하면 학교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에이, 설마요. 고급반에서 할 수 있는 건 어차피 한정되어 있어요.”
졸업반이 있는 상황에서 고급반 학생에게 고강도의 훈련을 접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어설픈 커리큘럼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이나는 불안했다. 단테를 앞세운 올리비아의 행동에 어떤 의도가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세 사람은 리프팅 훈련을 하는 학생들을 지켜보았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곧잘 했고 보일과 판도라가 선두 그룹다운 실력을 뽐냈다.
시이나가 시로네 일행을 가리켰다.
“어라? 쟤들은 뭐 하는 거지?”
시로네, 네이드, 이루키가 팀이 되어 하나의 타깃을 두고 리프팅을 하고 있었다.
신기한 발상에 아이들도 연습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한 사람이 타깃을 가두다가 튕겨 나가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받아서 다시 리프팅을 하는 식이었다.
“오호! 오호! 이거 재밌는데.”
네이드가 서투른 솜씨로 타깃을 가두자 이루키의 스피릿 존이 들어와 가로챘다. 다음 순간 시로네가 타깃을 빼앗아 뒤편으로 이동시켰다. 타깃이 없는 두 사람이 무섭게 달려왔고 시로네는 한참이나 버티다가 또다시 네이드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제는 모든 학생들이 시로네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클래스 파이브 때부터 악동 짓은 도맡아 했던 그룹이지만 경쟁에 대한 부담 없이 즐기고 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야, 시로네의 스피릿 존이 저렇게 컸나?”
“어라, 그러네. 고작 한 달 만에 엄청나게 올렸잖아?”
클래스 포의 학생들은 시로네의 변화를 즉각 알아차렸다.
방학 중에 특훈을 하는 건 상식이기에 성과 없는 학생은 없겠지만 시로네의 발전은 가히 경이적이었다.
단테 일행도 시로네의 스피릿 존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와. 되게 크다. 저 정도면 왕립 마법학교에서도 서열 30위권 안쪽인데.”
“쳇! 그래 봤자 단테랑 비슷한 정도구만 뭐. 리프팅으로는 단테에게 안 될 것 같으니까 저런 식으로 돌리는 거야. 전형적인 패배자 근성이지. 안 그래, 단테?”
단테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시로네 일행이 리프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크크, 애송이들. 우리가 직접 시범을 보여 줄까?”
클로저가 사비나를 데리고 이미지 존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알아서 자리를 비켜 주었다.
두 사람의 리프팅 실력은 단테에 비해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나 사비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뒤틀어 회오리 기술을 선보였다. 화려하게 휘감기는 타깃이 이탈 직전에 되돌아오자 학생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덕분에 교사들도 전학생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리비아의 제자들은 확실히 대단했다. 그녀에게 가장 시달렸던 사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왕국 최고의 재능이군요. 에텔라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조너로서, 단테의 실력을 평가하자면요.”
“으음, 리프팅만으로 평가하기는 그렇지만 확실히 독보적인 면이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마법 센스가 정말 뛰어난 것 같아요.”
시이나가 말했다.
“하지만 아쉽기도 하네요. 재능은 굉장하지만 가볍다고 할까요? 지금 아이들은 마법을 자신을 뽐내는 도구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릴 때부터 마법이 생활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죠. 마법사의 정신이랄까, 열정? 그런 게 사라진 것 같아요. 화려함과 명성만 추구하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로네와 이루키, 네이드는 클래식한 면이 있어요, 후후.”
에텔라는 시로네 일행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한때는 마법이 아이들의 꿈이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수도권의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액세서리와 같은 모양이었다.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막을 길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순수한 열정이 남아 있는 시로네와 친구들이 보기에 좋았다.
물고 물리는 게임이 끝나자 시로네는 숨을 헐떡거리며 이미지 존을 내려왔다.
한바탕 땀을 흘렸더니 기분이 후련했다.
시로네가 여자 후배가 건넨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는데 단테가 다가왔다.
누구도 알리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연습을 멈추고 시선을 고정시켰다. 마침내 두 사람이 대면한 순간이었다.
단테는 시로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스승님이 꺾으라고 한 녀석인가?’
시로네의 인상만 놓고 보면 누구라도 강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터였다. 올리비아의 특명을 받고서도 클로저와 사비나가 긴장을 하지 않는 이유였다.
하지만 생김새로 싸우는 건 아니다. 왕립 마법학교에서 무패의 신화를 이룩한 데에는 천부적인 재능에 더해 방심하지 않는 철저한 성향도 한몫을 했다.
“반갑다. 단테라고 한다.”
단테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강의실에서 보였던 모습과 전혀 다른 태도에 아이들이 놀랐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상한 사람은 보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시로네는 호의로 받아들이고 단테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 얘기는 많이 들었어.”
“물론 그랬겠지. 나도 들었다. 너, 언로커라며? 밟아 주기에는 제격이군. 아, 물론 너를 폄하하려는 생각은 없어.”
“하하! 그래. 우리 앞으로 잘해 보자.”
적극적인 도발에도 불구하고 시로네는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었다. 단테는 그의 속마음을 분석해 보려다가 생각만 복잡해진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아무튼 잘 지내보자고. 궁금한 게 있다면 뭐든 물어봐도 좋아. 배움에는 스승이나 친구가 없는 법이니까. 원한다면 제대로 가르쳐 줄게.”
“응?”
시로네가 고개를 갸웃하자 단테는 불쾌해졌다. 아무리 정세에 어두운 촌놈이라도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상대가 전학을 왔으면 견제를 하는 게 당연하다. 정말로 몰라서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너 광자 마법이 전공이라며?”
“어. 내 주특기가 광자 마법이야.”
“나도 그래. 내 별칭이 샤이닝 보이잖아. 몰라?”
시로네는 그제야 실수를 깨닫고 혀를 내밀었다.
“아, 미안해. 정말로 몰랐어. 나는 학술지를 안 읽어서.”
“몰랐다고?”
광자 계열에서 왕국 제1의 유망주인 단테였다. 마법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학술지를 안 읽었다고 모른다는 건 핑계에 불과했다.
“도발이 제법이네. 내 상대로 부족함이 없겠어.”
“아니, 몰랐다니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진짜로 미안.”
4. 전투 시뮬레이션 (3)
단테는 더 이상 모욕을 참아 낼 수 없었다.
“이게 진짜! 너 내가 그렇게 우스워? 날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시로네의 말이 사실이야.”
이루키가 다가와 시로네의 어깨를 감쌌다.
“흥분하는 것도 이해되지만, 시로네는 정말로 널 몰라. 왜냐하면 마법학교에 입학한 지 1년도 되지 않았거든. 이번이 두 번째 학기라고.”
단테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었다. 이제 막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기간으로 따지자면 고작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스피릿 존의 크기가 자신과 맞먹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니, 아니야. 이것들이 작당하고 날 몰아세우는 거야.’
단테는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며 코웃음을 쳤다.
“흥, 그렇다면 고작 반년 동안 마법을 배운 놈에게 전부 무릎을 꿇었다는 거야? 이 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전부 다 쓰레기밖에 없는가 보지?”
학생들이 발끈했으나 단테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에 차마 따질 수 없었다.
유일하게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당사자인 시로네였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누군가를 이기려고 마법을 배우는 건 아니잖아.”
“하하! 말은 잘하네. 뭐, 나도 네 실력을 직접 본 것은 아니니까.”
마법이 어떤 이유로 태어났건 간에 현대사회는 무한 경쟁체제다. 그런 상황에서 본질을 따진다는 건 약한 자의 이상이거나 강한 자의 가식이었다.
후자라고 단정 지은 단테는 까치발로 키를 높여 시로네를 내려다보았다.
“너의 거짓을 전부 까발려 주지. 기대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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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가 끝나자 고급반의 교사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올리비아는 오늘 하루 학교를 살피면서 찾아냈던 문제점들을 꼼꼼히 기록 중이었다. 그런 다음 새로운 종이를 책상에 올려놓고 회의를 시작했다.
“함께 견학했으니 긴말은 필요 없겠죠. 이 상태라면 학교의 순위는 더욱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리비아가 폭탄을 터뜨릴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폭탄인지가 의문이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해 보았으나 고급반 내에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 졸업반의 시스템을 차용하는 것이죠.”
교사들의 눈이 커졌다. 설마 하는 감정이 뇌리를 스치기도 전에 올리비아가 선포했다.
“전투 시뮬레이션 실습장, 이천번異天煩을 고급반에 개방할 것을 요청합니다.”
사드가 테이블을 치며 일어났다.
“교장 선생님! 이천번은 너무 위험합니다. 졸업반조차 교사의 통제 아래 훈련장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거죠? 너무 오냐오냐 학생들을 대할 필요 없어요. 이천번이 실전과 가깝다고 해도 싱크로율을 낮추면 됩니다.”
올리비아가 진심이자 사드는 차분하게 설득했다.
“교장 선생님의 방식도 옳은 측면이 있습니다. 저희가 고급반의 아이들을 과보호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감히 자부하건대 졸업반만큼은 그렇게 수준이 낮지 않습니다. 충분히 강도 높은 경쟁을 치르고 있고, 실전 훈련은 그 아이들만 대상으로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간 계층이 치열하지 않은데 상위 계층이 어떻게 치열할 수가 있나요? 고급반에서 졸업반으로 가는 것이지, 이 학교의 졸업반은 어디서 데려오나요?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혁신을 이룰 수 없어요.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입니다.”
에텔라가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 졸업반은 어떡하죠? 매일 이천번을 개방하고 있는데요.”
“이천번 수련장은 두 군데로 알고 있습니다. 졸업 시험장인 콜로세움까지 더하면 세 군데죠. 시간 배분을 잘한다면 둘 중의 하나 정도는 고급반에서 활용할 수 있을 거예요.”
교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천번을 통해 실전 훈련을 하기에 졸업반인 것이다. 고급반에 적용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졸업반의 자부심이라는 무형의 가치도 신경을 써야 했다.
무엇보다 수십 년 동안 학교를 위해 노력한 알페아스의 교육철학에 역행하는 일이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회의를 하자는 건지 싸움을 하자는 건지 모르는 분위기가 되었다. 참을성 있게 의견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올리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런 거군요. 제가 임시직이라서 말을 못 듣겠다는 건가요?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알페아스 씨가 교장인 것입니까?”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건……!”
“솔직히 말해도 돼요.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세요. 현 교사회의 감사이자 전직 왕립 마법학교 교장이었던 제가, 고작 알페아스 씨의 구멍이나 막자고 학교에 들어온 것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알페아스 씨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저에게 직접 찾아와 간청을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