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98
사드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올리비아의 말대로 현재 교장은 그녀였다. 그리고 교사들은 반드시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6개월 뒤에는 그녀가 없다. 알페아스의 철학이 학교의 역사이고 전통인 만큼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누구도 올리비아 선생님의 명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저 또한 마음으로 존경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요청은 저희도…….”
“올리비아 씨의 말대로 따르게.”
교사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뒷문으로 들어온 알페아스가 웃고 있었다. 교사들의 정신적 지주가 등장하자 올리비아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뭐죠? 감시하는 건가요? 전권을 위임받은 제가 알페아스 씨의 허락을 구할 이유는 없는 걸로 아는데요.”
“그럴 리가 있겠소. 산책이나 하던 중에 초음술이 들리는 것 같아서. 허허허!”
“그렇다면 신경 꺼 주시죠, 전 교장 선생님.”
“가기 전에 개인적으로 제자에게 한마디 하고 싶구려. 사드, 학교의 교장은 엄연히 올리비아 씨네. 그 사실을 잘 알아야 할 것이야.”
“알겠습니다.”
알페아스가 직접 나서서 쐐기를 박자 다른 교사들도 할 말이 없어졌다. 6개월의 임시직 교장에게 정말로 전권을 넘겼을까 싶었지만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껄껄! 그럼 한가한 노인네는 그만 가 보겠소이다.”
올리비아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더 이상의 심통은 부리지 않았다. 한번쯤은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는 일이었다.
올리비아가 사드를 돌아보자 마음의 준비를 끝낸 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급반에 공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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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반 게시판에 공고가 붙었다. 앞으로 통합 교육은 제27훈련장에서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위 클래스는 어리둥절했으나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 상위 클래스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네이드와 이루키도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거긴 이천번이 있는 데잖아? 이거 진짜로 괜찮은 건가?”
“어차피 이대로 끝날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잖아. 뭐 상관있나? 죽는 것도 아닌데.”
이루키의 말대로 죽는 건 아니지만 위험한 건 사실이었다.
전투 시뮬레이션이라고 해서 어린 시절 입으로 효과음을 냈던 전쟁놀이 같은 게 아니었다.
“그래도 긴장되네. 정말로 하려는 건가?”
“알 수 없지. 지금 교장의 성향을 보자면 그럴 수도 있고. 실전주의라고 했잖아. 어쨌거나 시로네에게 말해 주러 가자.”
네이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시로네는 어디 간 거야, 저녁도 안 먹고?”
“거른대. 밤에 연구회에서 보기로 했어. 훈련장에 볼일이 있다던데.”
“이 시간에?”
“조용할 때 하기는 좀 그렇다더군. 연습할 시간은 지금밖에 없다고.”
“설마…… 아타락시아?”
이루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훔쳐보기에 딱 좋은 시간이지.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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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네는 아무도 없는 훈련장에 홀로 서 있었다. 밥을 거르면서까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아타락시아를 훈련하기 위해서였다.
1분이라는 준비 시간은 그가 생각하기에도 턱없이 길었다. 마법진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공성병기로 활용할 수 있겠지만 당장 전쟁에 뛰어드는 것도 아니고 대량 살상을 유발하는 행동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수백수천 번을 연습하면 적응이 되겠지만. 아마도 하루에 한 번이 고작이겠지.’
반복 훈련이 여의치 않다는 점도 아타락시아를 훈련하는 데 생기는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시로네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젠트 가문의 도서관에서 역사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해내지 않았던가? 모든 일에는 가속이 붙는 법이니 열심히 걷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달리고 있을 터였다.
“좋아! 해 보자.”
시로네는 헤일로를 시전했다. 눈앞에 직경 1미터의 원이 태어나 수많은 개념을 빨아들였다.
전방에서 밀려드는 오색 빛깔의 색들은 언제 봐도 몽롱한 광경이었다. 어떤 경지를 지나자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다차원적인 구조가 새겨지면서 아타락시아가 탄생했다.
시로네는 전방에 있는 타깃을 노려보며 마법을 정했다. 포톤 캐논이 아닌 광자 출력이라면 물리력이 없기 때문에 마음껏 마법을 펼칠 수 있었다.
“야, 시로네……!”
네이드와 이루키가 훈련장에 들어오는 순간 아타락시아 마법진에서 거대한 광선이 쏘아졌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훈련장이 번쩍거릴 정도의 빛이었고 멀리 떨어진 학생들조차 산 저편이 밝아지는 걸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네이드와 이루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빛의 출력량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졌다.
인간이 다룰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대자연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을 눈앞으로 옮겨다 놓은 기분이었다. 대체 저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뭐가 남아 있을까?
놀랍게도 먼지 한 톨 피어오르지 않았다. 이루키는 시로네가 시전한 마법이 광자 출력이었음을 깨달았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포톤 캐논이었다면 훈련장을 가로막고 있는 절벽은 사라져 버렸을 터였다.
‘역시 대단하다, 시로네. 그 정도는 되어야 내 필살기가 빛을 발하지.’
네이드가 걷는 법을 까먹은 사람처럼 어색하게 다리를 움직였다.
“야, 시로네. 이거…….”
네이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로네가 쿵 하고 쓰러졌다.
원래라면 어느 정도의 의식은 남아 있지만 하루에 한 번뿐인 훈련이다 보니 모든 힘을 쏟아 낸 탓이었다.
“시로네, 시로네! 정신 차려 봐.”
네이드가 시로네를 일으켜 세우고 뺨을 두드렸다. 가끔씩 마법사들이 무리한 마법을 시연하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끔찍한 상상이 밀려들었다.
걱정과 달리 시로네는 금세 눈을 떴다.
“어? 언제 왔어?”
“괜찮아? 아타락시아인지 뭔지 쓸 때부터 왔었단 말이야.”
“하하하! 봤어? 아껴 두려고 했는데.”
시로네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섰다.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루키가 표적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다가왔다.
“천국에서 시전했던 마법은 아타락시아 더하기 포톤 캐논이었겠지? 그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일까? 이걸 봤으니 해 보라고 할 수도 없겠네.”
“맞아. 아마도 현실에서 이런 강력한 힘을 쓸 경우는 거의 없겠지. 그래도 꾸준히 가다듬고 싶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게 문제야.”
“꼭 그렇지도 않아. 어쩌면 현실에서 바로 쓸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
“응? 무슨 소리야? 기회라니?”
이루키는 네이드를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시로네를 붙잡고 하소연이나 하려고 찾아왔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이천번 훈련을 할 거야. 교장이 그렇게 하겠대.”
“이천번? 그게 뭔데?”
이루키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상의 번뇌.”
네이드가 덧붙였다.
“대마법사 전용, 전투 시뮬레이션 시스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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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반 통합 수업이 시작되기 10분 전, 학생들의 긴장도는 여느 때보다 높았다.
제27훈련장은 산을 평평하게 깎은 개활지로, 바닥은 작은 금속 재질의 블록으로 조밀하게 마감되어 있었다.
외곽 테두리를 따라 4개의 철탑이 세워져 있었는데 높이가 7미터는 되어 보였다.
교육을 주관하는 교사는 시이나, 사드, 에텔라였다. 인기 교사 모두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기에 학생들은 만족했다.
4. 전투 시뮬레이션 (4)
훈련장을 찾은 올리비아가 학생들 앞에 섰다.
“첫 수업이니만큼 직접 설명하도록 하죠. 갑작스럽게 교과목이 변경되어서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강해야 합니다. 이천번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요. 마법공학의 선구자인 루이 자코뱅 씨가 개발한 장치로, 훈련 상황에서도 실전과 같은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입니다.”
네이드에게는 자코뱅이라는 이름이 확성기를 통한 것처럼 크게 들렸다.
세계 최고의 마법공학자로, 이미지 존이라는 희대의 걸작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었다.
이미지 존이 등장하면서 스피릿 존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시스템이 이천번까지 발전했다.
세간 사람들은 전투 마법사의 화려한 명성에 찬사를 보내지만 그 전투 마법사를 키운 건 누구인가?
자코뱅이 만든 장치가 아니었다면 마법사들의 수준 또한 30년은 정체되었을 터였다.
“사드 선생, 마스터용 팔찌를 주세요.”
사드가 2개의 팔찌를 가지고 왔다. 올리비아는 그것을 손목에 착용한 다음 학생들에게 보여 주었다.
“여기 붉은색 팔찌와 푸른색 팔찌가 있습니다. 각각의 팔찌가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으니 친구들과 바꿔 차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붉은색 팔찌는 마법사의 상태를 정보로 변환하고 푸른색 팔찌는 외부의 상태를 정보로 변환합니다. 그 두 가지 정보가 탑으로 전송되어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해보세요.”
학생들은 한 쌍의 팔찌를 받았다. 손목에 채우자 적색과 청색의 조명이 켜졌다.
“그럼 이제부터 이천번을 가동하겠습니다.”
관리자가 시스템을 작동시키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깔린 물리 블록의 높낮이가 달라지면서 자연환경을 구현한 듯 복잡한 지대를 이루었다.
생전 처음 보는 가상의 풍경이 덧씌워지자 학생들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졸업반 선배들에게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접해 보자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현실감이었다.
가상의 풍경은 크레아스 도시의 시가지였다. 사람은 지나다니지 않았지만 수백 채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은 현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시가지는 좋지 않군요. 다른 풍경으로 바꿔 주세요.”
블록의 배열이 변하기 시작했다. 전체 면적 중에서 4분의 1에 해당하는 북동쪽 테두리의 블록이 일제히 하강했다.
움푹 들어간 곳에 물이 차올라 호수가 생기고 그곳을 기점으로 주위의 풍경이 숲으로 변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산속이었다.
“역시 명문 학교군요. 이천번이라도 호수를 만들기는 어렵죠. 자연지물의 80퍼센트 이상은 물리 블록이지만 풍경은 전부 가상으로 만들어집니다. 푸른색 팔찌가 정보를 수신하고 그것을 여러분의 뇌에 전달하는 것이죠. 따라서 팔찌를 벗게 되면 물리 블록만이 남게 됩니다. 우선 둘러보세요. 10분 정도 시간을 드리죠.”
학생들은 열을 맞추어 이천번으로 들어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전열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건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산에서 흔히 보던 것들이지만 굴러다니는 돌멩이조차도 신기했다. 시로네 일행은 호수 쪽으로 가서 살펴보았다.
네이드가 나무를 만지자 푸른색 팔찌가 빛나면서 질감이 전해져 왔다.
“굉장하다. 이건 물리 블록도 아닐 텐데, 정말로 가상이란 말이야?”
“나뭇잎도 진짜 같아.”
시로네는 이파리를 뜯었다. 사라지지 않고 손바닥 위에 실물처럼 놓였다.
이루키가 호수로 다가가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셔 보았다.
“어때? 물맛이 나?”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해갈이 되는데. 물론 착각이겠지만. 뇌에서 물이라고 판단을 내린 거야. 이건 좀 위험한데.”
시로네도 같은 생각이었다. 만약 물이 아니라 불이었다면 어떻게 되는가? 뇌가 열기의 정보를 인지하고 몸이 타 버릴 것인가?
현실의 불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로네는 이런 쪽에 박식한 네이드를 돌아보았다.
“네이드, 이거…….”
“그래! 스피릿 존의 메커니즘과 흡사해! 정말 엄청나잖아! 루이 자코뱅은 인간의 정신을 기계장치를 통해서 구현시킨 거야.”
생물학자의 꿈이 인간의 장기를 인공기관으로 대체하는 것이라면 공학자의 최종 목표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였다.
아직은 요원하지만 최소한 자코뱅은 인간의 정신을 정보화시키는 데에는 성공한 듯했다.
“이천번을 고급반에 개방하기로 했을 때 교사진의 반발이 엄청 심했다던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겠어.”
“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새 올리비아가 다가와 있었다.
“죽을 수도 있다면…….”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졸업 시험 외에는 싱크로율을 100퍼센트로 맞추지 않으니까요. 현재는 시연을 위해 필터를 해제했지만 여러분이 체험할 때는 50퍼센트 내외일 것입니다. 졸업반은 80퍼센트죠. 왕국교육법으로 정해져 있는 규정입니다.”
이루키가 말했다.
“50퍼센트라고 해도 반드시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겠죠?”
“의외로 겁이 많군요, 이루키 군.”
“모르고 덤볐다가 죽는 바보는 되기 싫거든요.”
올리비아는 이루키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때는 단테와 동급이라고 평가받던 아이였다.
하지만 왕립 마법학교는 학생들의 건방을 받아 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고 결국 자퇴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세 치 혀만 남은 건가? 안쓰럽군.’
올리비아는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루키 군의 말이 맞아요. 이천번은 위험합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있는 위험입니다. 이미 왕립 마법학교에서는 학생의 수준에 따라 1퍼센트에서 100퍼센트까지 싱크로율을 자유롭게 조절하여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라는 말이 아니라,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굳이 높은 싱크로율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엄연히 교육이기 때문에 수준에 맞춰서 연습하면 실전 감각도 절로 상승할 것이란 얘기였다.
학생들이 자리로 돌아가자 올리비아는 본격적으로 이천번 수업을 진행했다.
“제가 차고 있는 팔찌는 여러분과 달리 마스터용입니다. 이천번의 여러 기능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죠. 그럼 무엇이 다른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올리비아의 머리 위로 60센티미터 길이의 붉은색 게이지가 떴다.
“이것은 저의 정신력을 백분율로 수치화시킨 것입니다. 물론 실습 시간에 여러분은 게이지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우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사드 선생님, 몬스터를 불러 주세요.”
마스터 팔찌는 기능을 공유한다. 1명의 교사가 학생들을 위험에 빠트리려고 해도 다른 교사들이 마스터 팔찌를 차고 있는 한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도록 설계한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어떤 걸로?”
점심 메뉴를 고르라는 것처럼 난감한 상황에 사드는 차라리 선택권을 넘겨 버렸다.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인지 올리비아도 턱을 괴고 고심했다.
“흐음, 6.2버전인가요?”
“네, 최신 버전입니다. 10일 전에 정보를 갱신했습니다.”
“그러면 마족이 추가됐겠군요. 서큐버스로 하죠.”
학생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서, 서큐버스? 진짜로 서큐버스를 부를 수 있단 말이야?”
마족은 몬스터와 차원이 다른 강력한 종족이다. 인간의 발길이 끊긴 고대의 탑이나 지하 미궁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 발견되는데 그런 구역은 국가에서도 6급 이상의 파티가 아니면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마족의 특성을 띠는 것으로 볼 때 고대인의 집단의식이 투영되었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개인의 개성이 강조되는 현대에 새로운 마족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정설을 뒷받침하는 의견이었다.
고대에는 선과 악의 개념이 불분명했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금기들이 행해졌다.
당시의 사람들이 향유했던 자극은 현대의 전쟁에서도 느낄 수 없을 만큼 강렬했고 그 열망이 승화된 것이 고대의 신이라 불리는 마족이었다.
서큐버스 또한 난교 의식에서 발생했다는 설이 유력한 만큼 호기심이 왕성한 학생들이 긴장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서큐버스의 코드네임을 찾은 사드는 중앙통제실로 정보를 전송했다.
4개의 첨탑에서 빛이 쏘아지자 한적한 풍경 속에 반투명한 물체가 아롱거리더니 서큐버스가 구현되었다.
학생들은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전문 서적보다는 소설이나 신화에서 접했던 존재였기에 기대를 했으나 예상과 다르게 참혹한 외모였다.
헐벗은 여자의 몸은 멍이 든 것처럼 시퍼렇고 흉측한 박쥐의 날개가 등에 달려 있었다.
쭉 찢어진 눈에 코는 완벽한 들창코였고 치열은 엉망이라 입을 다물어도 입술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시체처럼 푸르스름한 입술도 기괴함을 더했다.
“저, 저게 서큐버스라고?”
남학생들이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몸매가 아름다워도 그 외의 흉측한 특징들이 혐오감을 자아냈다.
올리비아는 서큐버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교사회의 감사로서 보고는 받았지만 실제로 확인하는 건 처음이었다.
소싯적에 자신이 해치웠던 서큐버스의 특징이 제대로 담겨있자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 정도면 괜찮네요. 마족은 워낙에 데이터가 부족해서 반신반의했는데.”
올리비아는 박수를 쳐서 학생들을 주목시켰다.
“자, 여러분. 서큐버스를 보는 건 처음일 거예요. 이렇게 생겼답니다. 이천번으로 구현되는 몬스터들은 수많은 탐험가와 학자들의 정보를 토대로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마족 버전은 저도 처음 보는군요. 그러면 이번에는 몽매 능력을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 봅시다.”
사드가 테스트 모드로 변환하자 서큐버스의 외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얼이 빠진 얼굴로 입을 벌렸다. 특히나 남자들의 입에서는 침까지 새어 나왔다.
흑발의 생머리에 하얀 피부, 청초한 얼굴의 서큐버스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완전히 벗은 몸이었다.
“저기, 교장 선생님. 아직 어린 학생들도 있는데 이런 부류는 좀…….”
사드가 말했으나 올리비아는 오히려 그들이 자세히 볼 수 있게끔 자리를 피해주었다.
“자, 어떤가요? 이 정도면 아름답다고 할 수 있나요?”
남자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우아아! 최고예요! 진짜 최고!”
“이런 수업이면 하루 종일 해도 안 지겨울 것 같아요.”
올리비아는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