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99
“그렇다면 여러분 모두 사망입니다.”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외모가 어떻든 본질은 마족입니다. 마족이란 무엇이죠?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인간들의 추악한 실수죠. 마족을 보게 되면 판단할 것은 하나입니다. 죽일 수 있는가, 없는가? 그 외의 다른 판단을 내리는 순간 여러분의 목은 바닥을 뒹굴고 있을 것입니다.”
올리비아가 사드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서큐버스가 원래의 추악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저런 괴물을 보고 잠시나마 황홀해했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섬뜩함을 느꼈다.
“이런 말이 있죠. 보는 것이 곧 정신이다. 서큐버스의 외모가 스피릿 존을 흔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족을 상대하려면 최소한 6급 이상의 파티를 꾸려야 하죠. 그 정도 레벨에서 한순간의 방심은 궤멸로 이어집니다. 검사가 한눈을 팔든, 서저리가 부상자에게 달려가든, 마법사는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냉철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동료들이 전력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법사는 파티의 최우선 생존 대상이며 죽어도 가장 마지막에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일선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적나라하게 알려 주는 수업은 처음이었다.
이 또한 올리비아가 주창하는 실전주의 교육이었다.
“어떤가요? 이게 바로 이천번의 효율성입니다. 아무리 말로 설명해 봤자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마족과 싸우는 것은 먼 훗날의 얘기겠죠. 하지만 이천번 전투는 졸업 시험 과목 중의 하나입니다. 콜로세움에서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면 탈락입니다. 그런 마법사를 실전 현장에 보냈다가는 동료들을 죽이고 말 테니까요.”
4. 전투 시뮬레이션 (5)
시로네도 새겨들었다. 훗날 어떤 직업을 갖든 마법사는 자신과 동료의 몸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임무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서류만 뒤적이던 마법사라면 학자를 고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죠. 서큐버스로 시험을 하기는 그러니, 이번에는 용아병으로 불러 주세요.”
사드는 언제 그 말이 나오나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서큐버스를 소멸시켰다. 용아병의 코드를 입력하자 강철색의 해골이 이천번에 투사되었다.
학생들은 이번에도 환호성을 터뜨렸다. 용아병은 드래곤의 송곳니로 만든 마도 생물체였다. 너무 단단해서 물리적인 공격으로는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턴 언데드를 익힌 신성 마법사가 없으면 도망치는 게 이득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몬스터였다.
“시연을 위해 교사 한 분을 모시겠습니다.”
“제가 하죠.”
사드가 나섰다. 솔직히 하기 싫지만 시이나나 에텔라를 보낼 수는 없었다. 여자가 용아병에게 얻어터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비록 가상이지만 받아들이는 정보는 실제의 용아병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실전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럼 가볍게 싱크로율 50퍼센트로 가 보죠. 괜찮나요?”
“하하! 물론입니다. 50퍼센트 정도면 뭐.”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공인 6급의 마법사에게도 용아병은 강력한 몬스터였다. 아무리 충격이 절반만 들어온다고 해도 정신이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 사드 선생님이 용아병의 공격을 받아 보겠습니다.”
용아병이 쿵쿵 발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무섭다. 젠장.’
사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코앞까지 다가온 거구의 해골이 유물 같은 검을 쳐들자 학생들의 눈이 커졌다.
굉장한 박력이었다.
“어? 어어?”
용아병의 팔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졌다.
가상의 검이 사드의 몸을 관통해 지나가자 머리 위에 떠 있는 백분율 게이지가 50퍼센트 깎였다.
사드는 태연한 표정을 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보다시피 사드 선생님의 정신력이 반으로 줄어들었죠. 이는 검에 베이면 죽기 때문입니다. 현재 싱크로율이 50퍼센트이기에 절반만 깎인 것이죠. 마법사가 사망 판정을 받으면 홀로그램이 관통합니다. 이것을 ‘먹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방어 판정을 보여 드리죠. 사드 선생.”
사드는 숙련된 조교답게 곧바로 마법을 시전했다. 에어 스킨을 구사하자 몸에 압축된 공기의 막이 씌워지면서 백분율 게이지가 1퍼센트 깎여 나갔다.
정신력을 수치화한 것이기 때문에 공격을 당할 때는 물론 마법을 시전할 때도 게이지는 줄어들었다.
“자, 용아병의 공격을 받아 보겠습니다.”
용아병이 팔을 치켜들고 검을 내리그었다. 이번에는 먹힘 판정과 달랐다. 사드의 정수리에 콱 하고 박히듯 칼날이 멈췄다. 백분율 게이지가 1.8퍼센트 깎였다.
올리비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단하군요. 에어 스킨에 소모된 1퍼센트의 비용으로 48.2퍼센트의 방어력을 얻었어요. 실전이라고 생각해 보면 전력을 다한 용아병의 일격을 맞고도 정신이 거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라는 거죠. 사드 선생님이 얼마나 강한지 알겠죠?”
모든 학생들이 큰 소리로 네 하고 답했다. 공인 6급 마법사의 정신이 1.8퍼센트나 깎일 정도의 파괴력이라면 고급반 학생들은 스치기만 해도 즉사였다.
사드는 우쭐하게 어깨를 세웠다. 맞기 직전에 엄청나게 수열식을 전개시켰다는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을 듯했다.
“홀로그램이 관통하지 않는 것을 ‘막힘’이라고 부릅니다. 먹힘과 막힘. 이 두 가지 판정이 일어나면 안티매직과 마력 제어 기술을 통해 정신력을 빼앗습니다.”
마력 제어는 뇌의 특정 회로를 차단하여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스피릿 존은 뇌 전체가 활성화되는 현상, 따라서 대뇌 네트워크의 일부분만 차단해도 집중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회로가 차단당하면 뇌는 곧바로 다른 루트로 우회하여 정보를 전송한다.
하지만 마력 제어 장치 또한 초당 20회의 속도로 차단 경로를 바꾸기 때문에 생각은 가능하지만 스피릿 존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초당 20회의 차단 속도를 뛰어넘고 불규칙한 패턴까지 우회하면 스피릿 존으로 들어가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공인 2급의 대마법사 이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협회의 공식 입장이었다.
대단한 기술인 것은 사실이지만 학생들은 마력 제어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신이 상하는 것도 아니고 본래 범죄자에게 쓰려고 개발된 기술이기 때문에 공학자가 꿈인 사람이 아니고서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안티매직이라는 말에는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교장 선생님, 안티매직은 아무래도…….”
“네,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어요. 정신에 손상을 주는 마법이죠. 하지만 싱크로율이 80퍼센트 이상이 아니면 큰 위험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올리비아는 단호하게 마무리를 짓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러면 공격 판정으로 넘어가죠. ‘밀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드 선생.”
이번에는 용아병을 공격할 차례였다. 하지만 사드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신성 마법을 할 수 없다면 드래곤의 이빨을 부술 정도의 물리력이나 녹일 정도의 화력이 필요했다.
전력을 다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 앞에서 용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저기, 용아병은…….”
“아, 그렇군요. 제가 하도록 하죠.”
사드가 물러서고 올리비아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용아병을 바라보며 가볍게 손을 든 그녀가 신성 마법 홀리 크로스를 시전했다.
손바닥에서 광채가 터지는 것과 동시에 용아병의 명치에 커다란 빛의 십자가가 폭발했다.
충격을 받은 용아병이 비틀대면서 물러섰다.
“이것이 밀림입니다. 가상의 정보가 여러분의 육체를 밀리게 할 수는 없지만 홀로그램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몬스터의 사망 판정도 밀림에 속합니다. 시범을 보여 드리죠.”
올리비아가 입술을 살며시 내밀었다. 색기 넘치게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삐 하는 고주파 음이 새어 나왔다.
홀리 크로스를 시전하자 전보다 4배는 커진 십자가가 용아병을 박살 냈다.
뼈다귀들이 하늘에서 춤추는 광경에 학생들의 눈이 똥그래졌다.
충격을 받은 건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언령 마법의 최고권위자답게 초음술의 고등 기술인 단음술을 손쉽게 해냈다.
시이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알페아스가 복귀할 때까지 최대한 버텨 보려고 했으나 샘솟는 존경심을 막을 길이 없었다.
“대단하군요. 증폭력을 보면 2천 음절 이상이었을 텐데.”
“0.82초 걸린 것 같네요. 소설책 다섯 페이지 분량을 1초도 걸리지 않아서 읽은 거죠.”
에텔라의 실감나는 비유에 소름이 돋았다.
상상을 하려고 해도 그게 어느 정도의 빠르기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언령의 기본은 되새기고 내뱉는다. 발음도 그렇지만 생각의 속도가 무시무시하네요.”
“네, 그래서 S급 범죄자에게는 마력 제어 장치 대신에 염옥을 채워서 생각 자체를 못 하게 만들잖아요. 물론 교장 선생님이 범죄자는 아니지만요.”
마법을 시전한 뒤에도 올리비아의 정신력을 나타낸 게이지가 조금도 줄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0.1퍼센트 이내의 감소였을 것이다. 용아병을 박살 내는 일이 그녀에게는 숨 쉬는 것보다 편한 일인 듯했다.
“이것으로 이천번의 기본 설명을 끝내겠습니다. 이미지 존과 이천번을 번갈아 가면서 수업을 할 예정이니 시간표를 잘 확인하도록 하세요. 클래스 세븐은 싱크로율을 20퍼센트로 맞추고, 단계별로 10퍼센트씩 올려서 클래스 포는 50퍼센트로 합니다. 참고로 졸업반은 현재 80퍼센트로 훈련을 하고 있고 졸업 시험에서는 100퍼센트입니다. 추가적으로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지금 질문하세요.”
클래스 포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만약 게이지가 전부 줄어들면 어떻게 되죠?”
“그렇군요. 사드 선생님의 게이지를 보세요.”
학생들의 시선이 사드에게 향했다. 어느새 그의 게이지는 전부 채워져 있었다.
“정신력 게이지는 마법사의 정신을 실시간으로 반영합니다. 공격을 받으면 줄어들고, 마법을 시전해도 줄어듭니다. 물론 휴식을 취하면 채워지죠. 만약 0퍼센트가 된다면 2개의 팔찌에서 빛이 나고 이천번 효과가 사라지게 됩니다. 다른 질문?”
“어…… 정말 그것뿐인가요?”
올리비아가 눈웃음을 지었다.
“네, 그것뿐입니다. 이천번 실습 훈련을 통해서 여러분은 전술적, 전략적 이해도를 월등히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천번의 핵심 기능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으니 벌써부터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천번의 효율을 인정하면서도 졸업반에만 국한시킨 이유는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가 아무리 강해도 인위적으로 수집한 죽은 정보에 불과합니다. 패턴이 있다는 것은 공략법 또한 찾을 수 있다는 얘기죠. 이천번의 진정한 강점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패턴을 찾을 수 없는 정보. 살아 있는 정보 간의 충돌입니다.”
학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천번의 시스템을 이해한 그들은 올리비아의 말에 담긴 의미를 짐작하고 있었다.
“이천번의 꽃이라고 불리는 대인 전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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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반 통합 수업은 이미지 존과 이천번 수업으로 나뉘었다. 올리비아의 정책에 빠르게 적응한 학생들은 더 이상 이천번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야, 저쪽이야! 잡아라!”
“아니야, 이쪽으로 몰아야 된다니까!”
클래스 세븐의 아이들이 타이콘을 사냥하고 있었다.
털이 없는 적갈색의 괴조로, 부리는 길쭉했고 발톱은 날카로웠다. 그리 크지 않은 데다가 싱크로율이 10퍼센트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겁 없이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하늘로 마법을 시전하자 대공화망이 펼쳐졌다. 집중포화에 걸려든 타이콘이 온갖 마법에 두들겨 맞고 땅으로 추락했다.
“잡았다! 아이스 소드에 맞았어!”
“아니야, 바보야! 내가 날린 윈드 커터에 당한 거야!”
“어쨌거나 이겼잖아! 우리가 몬스터를 잡았어!”
비행 몬스터를 사냥하는 정석은 지나가는 길목에 화망을 펼치는 것이다. 클래스 세븐의 학생들은 실전에서 대공화망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몸소 깨닫고 있었다.
시로네는 학생들의 변화를 실감했다.
이천번 수업이 시작된 후부터 모든 학생들이 마법 수련에 더욱 매진했다. 올리비아가 주창한 실전주의의 효과였다.
후배들의 실습이 끝나고 클래스 포의 차례가 되자 몬스터의 수준이 월등히 높아졌다.
화전민촌에서 만났던 울크는 기본이고 거대 전갈 스콜피언과 음향 마법을 쓰는 하피까지 날뛰고 있었다.
재생 능력을 보유한 트롤이 가장 까다로웠다. 마법에 약점이 있다고 들었건만 어중간한 공격으로는 기별조차 가지 않았다.
“나와라, 메르세스.”
보일이 북극 바다에 서식하는 메르세스를 소환했다.
몬스터계 극피몬스터문 성게강의 생물로, 직경 50센티미터의 구체에 가시처럼 단단한 섬모가 자라 있었다.
지능은 없지만 일단 달라붙으면 대상을 냉각시켜 자신이 살던 환경과 흡사하게 만들려는 습성이 있으므로 빙결 계열의 능력이 필요할 때 소환사들이 선택하는 몬스터였다.
상온에서는 1분도 살지 못하는 생물이라 트롤의 등에 달라붙은 메르세스는 본능적으로 냉기를 뿜어냈다.
트롤이 얼어붙기 시작하자 재생 능력이 떨어지면서 움직임이 둔해졌다. 틈을 노린 학생들이 집중 공격을 퍼부어 트롤을 박살 냈다.
“해냈다! 우리가 트롤을 쓰러뜨렸어!”
“보일, 대단한데? 메르세스를 익히려면 극저온의 환경에서 최소 두 달은 살아야 하잖아? 언제 북극까지 다녀온 거야?”
“하하! 북극은 무슨. 날마다 냉동 창고에서 살았지 뭐.”
이천번이 도입되면서 보일의 이름값이 올라갔다. 기존의 수업에서는 소환 마법의 효용성을 증명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실전에서는 또래의 마법사들이 구사할 수 없는 극한의 능력을 지닌 소환수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반면에 클래스 포의 2등이었던 판도라는 점차 초조해졌다.
두각을 드러내고 싶은 열망은 크지만 향기 마법으로 몬스터를 압도하기는 무리였다.
4. 전투 시뮬레이션 (6)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향기 마법은 실전에 젬병인가?’
판도라는 고개를 저었다.
향기 마법사가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일단 자격증을 따면 마법사회에서 유리한 대우를 받는다.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고, 영역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효과마저 독특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기 마법의 진가를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판도라는 경쟁자들을 돌아보았다.
보일은 모범생답게 정석적인 훈련을 하고 있었고 시로네 일행은 문제아답게 마음대로 사냥을 하고 있었다.
특이한 건 단테 일행이었다.
이천번이 개방됐음에도 바깥에 앉아 다른 학생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흥, 뭐야? 급이 다르다 이건가? 건방지게.”
단테는 판도라의 시선을 무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가 뒤편에 앉아 있는 클로저와 사비나에게 턱짓을 했다.
“얘들아, 저 여자애가 우리를 쳐다보는데?”
“크크, 똥줄이 타나 보지. 취향은 마음에 드는데 실력은 영 꽝이야. 향기를 이용해서 싸우는 법도 안 가르쳐 주나?”
“보나마나 전공은 졸업반에서 배우라는 소리나 했겠지. 아무튼 기분 나쁘네. 촌닭 같은 계집애가 눈을 부라리고 있잖아? 확 가서 뭉개 버려?”
클로저가 단테를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을까, 단테? 우리가 조금 시범을 보여도?”
“갔다 와. 이천번이 뭔지 제대로 가르쳐 줘라.”
그제야 클로저와 사비나가 팔찌를 찼다. 가상의 풍경은 넓은 초원 지대였다. 그들이 들어오자 미리 자리를 선점한 학생들이 훈련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잡지를 통해서 이야기는 들었지만 단테 일행의 실력을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사비나가 거만하게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너희, 이천번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실전 연습을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 줘야지. 사드 선생님, 17번 패키지로 부탁드려요.”
사드는 구석에 앉아 시간만 죽이고 있다가 하품을 하며 코어에 정보를 전송했다.
17번 패키지면 꽤나 소란스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싱크로율이 낮으니 별다른 위험은 없을 터였다.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육해공을 막론하고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등장했다.
땅에서 골렘이 일어나고 울크와 해골이 언덕을 뛰어내려 왔다. 시체만 뜯어 먹는다는 괴조 나찰이 창처럼 긴 주둥이를 앞세워 육탄 공격을 시도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광경에 학생들은 숨이 멎었다. 전략조차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물량 공세였다.
“후후, 이 정도는 되어야 할 맛이 나지.”
사비나는 허리를 젖히고 마법을 시전했다. 몸에 차가운 바람이 맴돌더니 이내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반쯤 감긴 눈으로 지켜보던 사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어라? 헤이스트잖아?’
에어 계열의 전공 마법으로, 바람의 힘을 이용해 움직임을 가속하는 효과였다.
사비나를 뒤쫓던 울크들이 손톱을 휘둘렀으나 어느새 그녀는 놈들의 뒤로 돌아들어가 윈드 커터를 뿌려 댔다.
그러는 동안 골렘은 사비나가 움직였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눈에 보이는 클로저에게 다가갔다.
“크크, 우리가 어째서 스타인지 보여 주지.”
골렘의 주먹이 클로저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무게는 1톤에 가까웠기에 육체 능력이 약한 마법사가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하지만 판정은 막힘이었다.
‘어스라이즈? 저것도 전공 과정이잖아?’
대지의 힘을 끌어 올려 내구력을 높이는 마법. 시전자가 움직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떤 계열도 모방할 수 없는 강력한 방어력은 자랑거리였다.
‘그렇군. 왕국의 스타라. 비결은 패시브 스킬이었나?’
액티브 마법이 현상에 집중한다면 패시브는 속성이 가진 개념에 포커스를 맞추는 마법이었다.
바람은 빠르고 대지는 단단하다. 거기에서 파생된 마법이 헤이스트와 어스라이즈였다.
마법을 시전한 뒤에도 효과가 지속되기 때문에 다른 액티브 마법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었다.
마법사의 대표적인 패시브 스킬로 순간 이동이 있다.
액티브 스킬로 보이기 쉽지만 실제로는 마법사를 광자화 상태로 변환시키는 게 전부였다.
빛으로 변한 상태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는 온전히 감각의 문제였고, 그렇기에 시로네도 순간 이동을 배울 때 한 달이나 땅바닥을 뒹굴었던 것이다.
“호호호! 느려! 느려!”
“크크크! 이쪽은 너무 약한데!”
사비나가 치명상을 입히면 클로저가 대지의 힘으로 짓뭉개 버리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순식간에 몬스터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졸업반에서 다루는 마법을 익혔으니 고급반의 패키지 정도야 금세 클리어가 가능했다.
사드는 이마를 부여잡고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어쩌자고 패시브 스킬을? 저게 왕립 마법학교의 방식인가?”
시이나가 다가오며 말했다.
“개성을 중시하는 수도의 학풍이 반영된 것이겠죠.”
“개성도 좋지만 다양성은요? 여러 마법을 접해 봐야 적성과 소질을 알 수가 있을 텐데요. 패시브 스킬은 순간 이동으로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데 뭐가 저리 급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