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
‘될 것 같은데. 여기를 이렇게.’
마침내 시로네가 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빠.”
“응?”
“이거 제가 한 번에 부러뜨려 볼까요?”
“하하하! 아직 절반도 안 팼는데 그게 부러지겠니?”
“재수가 좋으면 될 수도 있죠.”
물론 노련한 나무꾼은 홈의 취약점을 공략해 적은 횟수로 나무를 부러뜨릴 수 있다.
다만 그런 수준은 빈센트라도 무리였기에 어린 시로네가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좋아! 우리 아들의 운을 믿어 보자!”
그럼에도 빈센트는 장단에 맞춰 주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하고 싶어 하는 의욕이 대견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거 부러뜨리면 소원 하나 들어주세요.”
“응? 소원?”
빈센트는 불안했다.
글을 배우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닐까? 다른 부잣집 아이들처럼 학교에 보내 달라고 하면 어쩌지?
“이번에 물건 팔러 도시에 갈 때 저도 데려가 주세요.”
솔직히 십년감수했지만, 빈센트는 내색하지 않고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그 정도라면 좋다! 얼마든지 들어주마!”
시로네는 도끼를 들고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자 빈센트는 섬뜩함을 느꼈다.
나무를 응시하는 시로네의 모습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도끼가 휘둘렸다.
이번에도 정확히 홈을 가격했으나, 인간이 간파할 수 없는 미세한 뒤틀림이 있었다.
쩌저저저적!
벼락이 내리치는 소리에 빈센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건?’
도끼가 박힌 자리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나무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지끈 부러졌다.
“야호! 성공이다!”
빈센트는 믿을 수 없었다.
시로네가 성공시킨 것은 나무꾼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천둥패기’였다.
‘나도 어쩌다 한 번, 그것도 운으로 성공하는 건데.’
어떤 급소가 있는 모양이다.
형태, 하중, 결합 구조 같은 변수가 더해져 존재하는 아주 작은 확률의 사건.
대부분의 나무꾼들이 한 번은 경험하지만 의식적으로 해내는 건 꿈과 같은 일이었다.
-딱히 꼭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그런 걸 기대하고 휘두르다가는 제풀에 지쳐 버릴걸.
반면에 어떻게 휘두를 것인가가 중요한 검사들의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빈센트는 모르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연구가 된 현상이었고, 그런 검사들 사이에서도 초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기술이었다.
“성공이다, 성공!”
시로네는 자신이 해낸 것보다는 도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아빠! 약속 지키는 거죠?”
펄쩍펄쩍 뛰는 아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빈센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떡하지?’
이 아이를 나무꾼으로 키워야 하는지, 나무꾼으로 키워서는 안 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짐수레가 도시의 성문을 넘었다.
빈센트가 고삐를 붙잡고 인솔하는 가운데 짐칸에 오른 시로네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 오랜만이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숫자만 봐도 벌써부터 가슴이 뛰었다.
‘시간은 많으니까.’
시로네가 앉은 짐칸에는 여태까지 산에서 구한 물건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가죽은 무기 상점, 고기는 식료품 가게, 내장은 약재상이나 마도 상점에 납품한다.
동선이 제법 길고 흥정까지 하려면 족히 4시간 이상은 걸릴 터였다.
식료품 가게에 도착한 빈센트가 고기 가방을 들고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해 지기 전까지는 돌아와야 한다.”
“걱정 마세요. 길은 다 외웠는걸요.”
“으슥한 곳으로는 들어가지 말고 큰길로만 다녀야 된다. 누가 와서 왜 혼자냐고 물어보면 가장 가까운 가게를 가리키면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야 돼.”
“알았어요. 저번에 왔을 때도 별일 없었는데요, 뭐.”
빈센트는 아들을 방치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으나 이제부터 해야 할 흥정에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점가를 벗어난 시로네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크레아스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었다.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식.’
이곳에 유사 이래의 지식이 전부 담겨 있을까?
호기심을 충족할 방법은 직접 살펴보는 것이나, 귀족 외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2명의 여학생이 책을 품에 안고 나오자 시로네는 황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귀족이다.’
똑같은 사람일 것이다.
세상 어디에나 악인은 있고, 귀족 중에도 선한 인간은 있으리라 보았다.
하지만 빈센트는 귀족에 대해 말할 때는 늘 도깨비처럼 으름장을 놓았다.
-절대로 대들지 마라.
귀족에게는 평민 가족의 일상 따위 손쉽게 부술 수 있는 돈과 권력이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시로네는 자신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돌아보았다.
‘책을 읽고 싶을 뿐이야.’
약간의 오기와 열망으로 그는 두 사람의 뒤를 밟아 귀족 구역으로 향했다.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지만 처음의 생각은 귀족 구역에 세워진 건물의 박력에 짓눌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산 몇 개를 더한 것 같은 규모의 학교였다.
걸음을 멈춘 시로네는 정문의 아치에 새겨진 고풍스러운 글씨를 읽었다.
알페아스 마법학교
‘마법.’
시로네가 언어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유일한 말이었다.
수많은 책에 등장하지만 원리에 대해 정확히 서술한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아닌 이상 아무리 설명해 봐야 헛수고라는 오만함마저 느껴졌다.
“뭐야! 너 뭐 하는 자식이야?”
정문을 지키는 경비들이 시로네에게 소리쳤다.
귀족 구역인 만큼 시로네의 허름한 옷차림이 더욱 눈에 띄었던 탓이다.
“썩 돌아가! 여긴 너 같은 아이가 올 데가 아니다.”
“아, 죄송합니다.”
시로네는 황급히 도망쳤으나 아무리 달려도 담벼락이 끝나지 않자 다시 걸음을 멈췄다.
‘얼마나 넓은 거야?’
그때 담벼락 너머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그럼 오늘은 마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 보자꾸나.”
“아아아, 싫어요! 마법 보여 줘요. 하나만 더 보여 주세요!”
“불요! 불 나가는 거요, 교장 선생님!”
시로네는 담벼락 위를 응시했다.
아름드리나무가 올라온 것을 보아하니 교장이 그늘에서 수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어렸다.
물론 태어나는 순간부터 교육을 받는 귀족이니 마법학교라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허허허, 학교에서 불을 질렀다가는 혼난단다. 대신에 문제를 맞히면 재미있는 마법을 보여 주마.”
“아싸! 무슨 문제요? 빨리 내 주세요!”
호기심이 동한 시로네는 귀를 기울였다.
“마법을 배우는 데 가장 필요한 재능은 무엇일까?”
정적이 느껴졌다.
시로네의 생각에도 꽤나 주관적인 문제였으나 아이들 또한 마법적 재능을 인정받은 영재들, 잠시 후 하나둘씩 저마다 답을 내놓았다.
“노력요. 마법은 평생 공부해도 다 배울 수 없으니까 노력이 중요해요.”
“지식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본 마법 서적만 백 권이 넘어 가거든요.”
그 외에도 집중력, 기억력 등 그럴듯한 대답이 이어졌으나 교장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인지한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돈요. 마법을 배우려면 사야 할 게 엄청 많거든요.”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렸고, 그 사이에는 교장의 너털웃음도 섞여 있었다.
이쯤 되자 시로네도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노력도, 지식도, 돈도 아니라고? 그럼 마법을 배우는 데 가장 필요한 재능은 뭐지?’
마침내 교장이 말했다.
“마법을 배우는 데 가장 필요한 재능은, 통찰력이란다.”
두 번째 정적이 찾아왔다.
“통찰이 뭐예요?”
교장이 끙 하고 신음 소리를 내더니 이내 친절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통찰이란 지식보다 정확하고 노력보다 빠른 것이란다.”
“우와! 그럼 완전 마법이네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아니, 그 말이 맞다. 세상에 존재하는 마법은 전부 통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니까. 예를 하나 들어 보마. 1 더하기 1이 몇인지 알고 있니?”
“당연히 2죠.”
어떻게 그런 걸 물어볼 수 있느냐는 듯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그렇구나. 그러면 1 더하기 1이 어째서 2인지 설명할 수 있겠니?”
“어? 그야 당연히…….”
아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할지,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알페아스가 미소 지었다.
“지금 느끼는 그 이상한 기분이 통찰이란다. 오래전에는 1 더하기 1이 2라는 것을 모르던 시대도 있었지. 하지만 수많은 지식과 노력으로 그것을 검증해 낸 것이지. 하지만 너희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1 더하기 1이 2라는 것을 완벽하게 깨닫고 있지 않니?”
시로네는 점차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마법이란 원래부터 존재하는 어떤 현상이란다. 1 더하기 1이 2라는 것을 몰랐을 때도 정답이 2인 것처럼 말이지. 누군가는 노력과 지식으로 밝혀냈지만 누군가는 너희들처럼 당연하게 깨닫고 있는 것. 이렇듯 통찰이란 특정 규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빠른 수단이란다.”
“그럼 공부하거나 노력할 필요는 없는 거네요?”
“허허허, 말이 그렇게 되나?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이 그렇단다.”
상식은 달콤한 법이지만 가끔은 이해시키기 편해서 상식인 경우도 있다.
잔혹한 진실을 말해야 하는 알페아스의 부담감을 시로네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학교 안 다녀도 되는 거예요?”
“통찰이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다. 1 더하기 1이 2인 이유는 학자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검증했기 때문이지. 물론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정답을 깨닫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 사람을 천재라고 부르지.”
“엄마가 저더러 천재라고 했는데요?”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게다. 인간은 누구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 재능을 갈고닦으면 누구라도 천재가 될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시로네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누구라도 천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아득히 높은 담벼락을 넘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자신에게도 주어질까?
“그래, 거기 벽 뒤에 서 있는 아이야. 네 생각은 어떤지 들어 보고 싶구나.”
마법을 만나다 (3)
시로네는 화들짝 물러섰다.
‘어, 어떡하지?’
도망쳐야 할까, 대답해야 할까? 아니, 평민에게 대답할 자격이 있는 걸까?
알페아스가 말을 이었다.
“당황할 필요 없다.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넘어오렴. 얼굴을 보고 싶구나.”
생각을 거듭하던 시로네는 무언가에 홀린 듯 담벼락으로 걸어갔다.
지금 이 벽을 넘지 못하면 앞으로도 영원히 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담벼락을 오르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호호백발의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는 왕국이 인정한 공인 4급의 마법사로, 높은 덕망으로 타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자였다.
바위에 앉은 알페아스가 손을 흔들었다.
“어서 오려무나. 이 늙은이의 말벗이 되어 주러 왔느냐?”
그 인자함에 자신감을 얻은 시로네는 담을 뛰어넘어 학교로 들어왔다.
나무 그늘에 시로네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둥그렇게 앉아 있었다.
한 아이가 미간을 찡그렸다.
“교장 선생님, 쟤 귀족 아니에요. 천민인 것 같아요.”
“어? 진짜네? 천민은 여기 들어오면 안 되는데. 야, 너 빨리 나가!”
귀족이 아닐 줄은 몰랐는지 알페아스도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으니 이쪽으로 오렴. 그래, 늙은이의 어떤 말이 네 마음을 끌어당겼는고?”
시로네는 우물쭈물했다.
알페아스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으나 아이들의 눈빛이 접근을 막고 있었다.
“마법을 보여 주세요.”
“허허, 마법을 본 적이 없느냐?”
“책에서 읽기는 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어요.”
한 아이가 손가락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