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0
“네. 안티매직이 왜 금지 마법인가요? 수많은 마법사들이 합법적으로 연구하고 있잖아요.”
좋은 질문이라는 듯 에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티매직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마법사가 시전하는 안티매직 마법과, 아티팩트에 부여된 안티매직 마법. 여기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요?”
“네. 들은 적이 있어요.”
“사실 안티매직은 마법보다는 독특한 파장의 스피릿 존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요. 자신의 스피릿 존으로 상대의 스피릿 존을 교란하는 것이죠. 다만 아티팩트와 달리 사람과 사람의 충돌에서는 정신적 시소게임이 벌어집니다. 사물과 달리 인간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어설프게 시도했다가는 자칫 정신에 무리한 충격이 가해질 수가 있겠군요.”
“바로 그거예요. 실제로 안티매직을 전공한 마법사는 한평생 그것만을 수련합니다. 사물에 근접할 정도로 무정한 정신을 도모하죠. 학교에서는 아직 학생인 여러분에게 그런 방식을 권유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시로네는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어느 쪽이든 1명은 피해를 입는 실전 마법이니 학생들 간에 연구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자, 그럼 다시 돌아와서, 이제부터 사방식의 기초를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학생들이 실습에 들어가자 시로네도 따로 떨어져 방어형을 연습했다.
요령은 정신을 조인다는 기분으로, 동시에 뼈대를 세워 붕괴를 막는 것이었다.
시로네는 스피릿 존이 단단해진 것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이미지 존이 아니기에 가시적으로 확인은 안 되지만 분명 성공이었다.
‘됐다. 진짜로 됐어.’
시로네의 성향이 수렴형이기에 덕을 본 것이지만 감안해도 놀라운 성과였다. 다년간 스피릿 존만을 수행해 온 노력은 결코 헛된 게 아니었다.
그때 동급생들이 이미지 존을 가리켰다.
“우와! 저것 봐!”
클래스 포의 선배들이 돌아가면서 수련 중이었는데, 지금은 에이미가 화려한 기술을 시연 중이었다.
그녀의 장기는 타깃형이었다.
십자가 형태가 오른쪽으로 90도를 돌았다가 다시 왼쪽으로 270도를 회전하는 등 변화무쌍하게 각도를 틀며 불꽃을 날리고 있었다.
스피릿 존의 크기는 직경 20미터 정도로, 타깃형치고는 무난한 정도였으나 축의 회전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사방에서 표적들이 올라오는데도 네 방향에서 쏘아지는 불꽃의 개수가 가히 연사 수준이었다.
120개의 표적을 소멸시킨 에이미는 심호흡을 하며 스피릿 존을 해제했다.
예쁜 얼굴에 탁월한 실력, 그녀를 지켜보는 후배들의 눈에 애정이 듬뿍 담겼다.
“저 선배님이 카르미스 에이미지?”
“귀족 서열 제1계급에 얼굴도 장난 아니고, 더군다나 실력까지 최고잖아. 저런 선배랑 만날 수 있으면 마법학교 생활도 할 만할 텐데.”
“꿈도 크네. 4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저 선배에게 대시한 남자들만 100명이 넘는다더라. 그런데도 눈길 한번 준 적이 없다잖아.”
“오죽하겠어? 카르미스 가문이라면 왕국에서도 알아주는 최고 명문가인데.”
대화를 들은 시로네는 더욱 의문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어째서 뒷골목 부랑자와 어울렸을까?
그 순간 이미지 존에서 내려오는 에이미와 눈을 마주친 시로네의 어깨가 움찔했다.
자연스레 다른 학생들도 시선을 따라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뭐야, 두 사람. 아는 사이인가?”
“설마. 어제 입학했잖아.”
“그럼 진짜로 순수한 관심? 남자하고는 눈조차 마주치기 싫어하는 선배인데.”
에이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시선 처리를 실수했지만, 솔직히 신경이 쓰여 미칠 것 같았다.
‘저 녀석의 눈빛. 분명 기억하고 있는 거야.’
과거의 행적이 밝혀지면 곤란한 일이 생기겠지만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목표는 이제 확고했고, 오직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문제는…….’
기억해 내고 만 것이다, 열두 살 무렵의 그녀가 시로네에게 어떤 짓을 하려고 했는지.
‘진짜 왜 그랬지, 내가?’
왜 하필 저 녀석이었을까?
“에이미, 괜찮아? 얼굴이 달아올랐는데. 혹시 이미지 존에서 무리한 거야?”
에이미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애써 외면했다.
차라리 두들겨 팼으면 팼지, 시로네에게 이성의 호기심을 품었다는 사실만은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미치겠네. 입단속을 시키기는 해야 하는데, 민망한 건 둘째 치고 너무 불리하잖아.’
이제는 그녀도 성숙한 여자라서 전말이 밝혀지면 당하는 쪽은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은밀히 접근하는 수밖에.’
한편 에이미의 시연이 끝난 이후로 이미지 존을 사용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시점에서 고급반 1등과 비교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기회라고 생각한 시로네가 요청했다.
“선생님, 제가 사용해도 될까요?”
“응? 이미지 존을?”
에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막 사방식의 원리를 배우기 시작한 학생이 굳이 이미지 존을 이용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음, 글쎄? 잠깐만. 시설 사용 원칙은 상급자부터 하기로 되어 있어서.”
잠시 이미지 존을 살폈으나 여전히 장치에 접근하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좋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겠지. 대신 표적은 올리면 안 된다. 다칠 수도 있어.”
“네, 감사합니다.”
이미지 존에 들어가자 선배들이 귀엽다는 듯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다.
그 소란에 물을 마시고 있던 에이미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로네를 보자마자 머금고 있던 물을 그대로 뿜어 버렸다.
“푸우!”
“에이미, 괜찮아? 아까부터 왜 그래?”
“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클래스 세븐 주제에 저기서 뭘 하겠다고?”
그때 시로네가 스피릿 존에 들어갔다.
‘보인다.’
자신의 뇌를 중심으로 푸른 구체가 급격히 부풀어 오르는 광경에 숨이 턱 막혔다.
‘어, 어어?’
이미지에 압도당한 시로네는 본능적으로 스피릿 존의 확장을 막았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일순 사라지고, 학생들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크다.”
직경 20미터의 스피릿 존.
클래스 세븐의 평균 직경이 13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대형 신입생의 등장이었다.
“덩치 좋은데?”
“흥! 덩치만 불린다고 마법이 되나? 저런 건 공기 방울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들의 말을 들을 겨를도 없이 시로네는 사력을 다해 붕괴를 막는 중이었다.
‘이상하다.’
불과 10분 전만 해도 성공했던 정신적 프레임이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있었다.
‘왜 안 되는 거지?’
시각적 충격에 정신이 흔들린 것일 수도 있지만, 시로네는 자신이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고 믿었다.
‘명확한 원인이 있을 거야. 뭐가 다르지? 이미지 존 밖에서와 지금의 차이라면…….’
동시에 한 줄기 섬광이 뇌리를 관통했다.
‘크기구나.’
스피릿 존이 작을수록 사방식이 쉬울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오히려 그 반대야. 형태를 바꾸는 데에도 정신력이 소모된다. 그리고 정신력은 결국…….’
스피릿 존.
따라서 어떤 식이든 형태를 바꾸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한 집중력이 필요할 터였다.
‘그렇다면…….’
시로네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최대한으로 키운다.’
마법을 배우다(5)
시로네는 더욱 정신을 집중시켰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자 스피릿 존이 2배 이상 확장되었다.
선배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미지 존 옆에 세워진 전광판에 나타난 기록은 직경 41미터였다.
클래스 포의 학생조차 평균 직경이 27미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졸업반에 근접한 수치였다.
“뭐, 뭐야? 저 자식 무슨 스피릿 존이 저렇게 커?”
물론 스피릿 존은 수련을 통해 키울 수 있지만 그 수련은 육체적인 훈련이 아닌 정신적 깨달음이었다.
정확한 느낌에 도달하지 못하면 평생을 수련해도 얻을 수 없고, 그렇기에 마법이 재능의 영역인 것이다.
에텔라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필경 살아온 세월 동안 세상의 진리를 고찰하고 내면의 번뇌를 탐구하며 자랐겠지. 그래도 이제 열일곱 살인데, 정말로 특이한 학생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시로네는 프레임을 만들기에 바빴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돼. 동시에 조인다.’
눈을 치켜뜨며 방어형에 돌입하자 커다란 구체가 시로네를 짓이길 듯 조여들었다.
직경 40미터가 넘는 구체가 조여드는 스케일에 학생들은 눈앞이 아찔했다.
“와아…….”
그리고 다음 순간, 누군가의 신음 소리와 함께 시로네의 결과물이 탄생했다.
‘됐다.’
시로네는 자신이 성공시킨 사방식의 방어형을 신비롭게 살펴보았다.
다이아몬드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완벽하게 입방체로 맞물린 형태였고, 존의 직경은 대략 13미터 정도였다.
50퍼센트 이상 크기가 감소했지만 내구력은 전보다 몇 배나 강해진 듯했다.
“진짜로 했어. 신입생이 첫날에 사방식을 해냈다고!”
동급생들의 호들갑에 속 좁은 몇몇 선배들은 인상을 찡그렸으나, 호감을 드러내는 학생도 많았다. 물론 그중의 절반 이상은 여학생이었다.
에이미는 어느 부류도 아니었다. 다만 비로소 시로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런 놈이었지.’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마법을 배우려고 다짐한 계기도 시로네에게 굴욕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저 자식, 진짜 정체가 뭐야?’
재능만 있다고 들어올 수 있는 학교가 아니니 조력자를 만난 게 분명했다.
배경에 누가 있는 것일까?
과거의 사건에 더해 생각이 많아지는 에이미였다.
시로네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선생님, 생각보다 크기가 엄청 줄어드네요.”
“응? 그럴 수밖에 없지. 하지만 정신적 뼈대가 생겼으니 어지간한 쇼크에는 흔들리지 않을 거야. 물리적 충격에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고.”
“아하.”
물리적 충격.
만약 전쟁 상황이라면 육체 능력이 취약한 마법사가 최우선 제거 대상일 터였다.
‘정신에 충격이 가해져도 프레임이 짜여 있기 때문에 형태가 크게 붕괴되지는 않는다. 이런 기술들이 합쳐져서 마법사의 실전 능력이 되는 거구나.’
에텔라는 눈썹을 긁적였다.
‘신입생 테스트 때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더니,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
물론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
통찰력은 인정하지만 방어형을 쉽게 성공시킨 건 수렴적인 성향에 더해 스피릿 존이 비정상적으로 큰 덕분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뒤늦게 깨달은 시로네는 수줍은 표정으로 돌아와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시선 속에 파묻힌 탓일까.
에이미가 강렬한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시로네는 알지 못했다.
차가운 소년과 뜨거운 소녀(1)
시로네는 다양한 학문을 접했다.
졸업반이 되면 전공을 선택할 수 있지만 기초 수업을 전부 이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는 마법사들이 사회에서 대접을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설령 마법적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그 이전에 뛰어난 학자이기 때문이다.
시로네는 클래스 세븐의 강의실에서 시이나의 화학 기초 수업을 들었다.
빙결 마법의 권위자 올리페르 시이나.
올리페르 가문의 차녀이자 올리페르 학파 출신으로 올해 나이는 27세, 빙결 마법 하나만으로 공인 6급의 마법사에 오른 천재였다.
얼굴 예쁨. 성격 차가움.
신입생 테스트를 진행한 교사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자 찬바람이 쌩쌩 불었던 기억 덕분에 시로네에게도 인상이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특징들이 의외로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강의실은 만석이었다.
보랏빛 머리를 단정하게 위로 올린 그녀가 뿔테 안경을 매만지며 교단에 섰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클래스 세븐의 화학 수업을 맡게 된 올리페르 시이나라고 합니다.”
박수갈채가 터졌다. 개중에는 휘파람을 불거나 노골적으로 애인이 있냐고 묻는 당돌한 학생도 있었으나, 시이나는 전부 무시하고 책부터 펼쳤다.
시로네는 살짝 섬뜩했다.
책을 내려놓기 전에 그녀가 자신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착각일 수도 있을 테지만, 사실 시로네의 느낌은 정확했다.
클래스 파이브를 담당하고 있는 그녀가 시간을 내서 한 과목을 더 개설한 이유는 오직 시로네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재능은 타이밍이야. 고여 있으면 썩게 된다. 최대한 빨리 진급을 시키는 게 좋아.’
일단 클래스 파이브에 올려놓으면 재능은 어떻게든 따라오기 마련인 것을, 사드가 너무 학생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다고 여겼다.
그녀는 시로네의 진급을 통해 자신의 교육 방침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속사정이야 어찌 됐건 학생들은 클래스 파이브 전담 교사가 교과를 신설해 기쁠 뿐이었다.
“선생님, 사드 선생님하고 사귀는 사이라는 게 정말 사실인가요? 아니죠?”
“첫사랑 얘기 해 주세요. 첫 수업이잖아요.”
“해 주세요! 해 주세요!”
학생들의 성토가 이어지는 그때 시아나의 옆에 큼지막한 얼음 결정이 탄생했다.
회전하는 얼음 결정이 사방으로 눈발을 휘날리자 교실 기온이 급속히 떨어졌다.
처음에는 ‘좀 춥네.’ 하고 웃고 말았던 아이들의 얼굴이 점차 굳어 갔다.
끝도 없이 기온이 떨어지면서 급기야 입술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선생님, 추, 추워요…….”
“지금부터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이나는 교단 아래로 내려왔다.
얼음의 회전속도가 줄어들면서 교실의 온도가 올라갔으나, 얼어 죽지 않을 정도였을 뿐 여전히 영하권이었다.
“이 마법은 어떤 원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