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05
네이드의 눈은 금방이라도 피눈물이 쏟아질 듯 충혈되어 있었다. 하지만 점차 동공에 인간미가 돌아오더니 사비나의 목을 놓아주고 천천히 물러섰다.
“컥! 커억!”
사비나는 주저앉아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허파는 미친 듯이 산소를 빨아들였다.
“네가 이겼고, 내가 패했다. 오늘 일어난 일은 그것뿐이야. 알았어?”
사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드의 입에서 어떤 지시가 떨어지더라도 무조건 고개를 끄덕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네이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숲을 빠져나왔다. 입구를 나가기 직전 그의 걸음이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름드리나무를 돌아보았다.
‘히익! 어떡하지? 들킨 건가?’
나무 뒤에 숨어있는 판도라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사비나에게 앙갚음을 하려다가 공교롭게도 봐서는 안 되는 광경을 지켜보고 말았다.
네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판도라, 복수는 내가 했으니 너는 돌아가라.”
이름을 언급했다는 것은 상황을 크게 키우지 말라는 경고였다. 나무에 가려서 볼 수도 없겠지만 판도라는 입을 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드는 비참한 심정으로 공원을 벗어났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시원하게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건만 하늘은 자신의 마음처럼 그저 우중충할 뿐이었다.
“이루키, 나는 절대로 마법사가 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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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대결이 치러지는 주말이 돌아왔다.
네이드와 사비나의 대결이 흥행하면서 저번 주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렸다. 특히나 이루키가 패하면 세 번째 대결이 무산되기 때문에 저번 주보다 더 치열한 전투가 되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애들 싸움에 관심 없다던 교사들마저 뻘쭘하게 웃으며 자리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심판을 맡은 에텔라가 점검 사항을 확인하는 동안 시로네와 단테 일행은 사이드에서 대기했다.
사비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숲에서 당한 린치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잊혀지지 않았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점점 심해져서 요즘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출전 시간이 가까워지자 클로저가 몸을 풀었다. 마법사답지 않은 고난이도의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이완시킨 그가 제자리 뛰기를 하며 단테를 돌아보았다.
“내가 끝낼게. 굳이 너까지 나설 필요는 없잖아?”
팀 대결에서 2승을 먼저 올리면 끝나는 규칙이었다. 하지만 올리비아가 주관하는 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임을 단테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대결은 무산되지 않을 거야.”
“뭐? 어째서?”
“스승님은 시로네를 짓밟아 주기를 원하고 계시니까. 이미 교사회에 특파원 신청까지 해 놓은 상태야. 학교 측에서도 이런 이벤트가 무산되는 걸 원치 않을 테고.”
“그렇군. 결국 내가 이겨도 너랑 시로네는 싸운다는 거네?”
“하지만 판이 다르지. 우리가 2승을 가져간다면 시로네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아마도 그게 최고일 거야.”
“크크크. 좋아, 너에게 최고의 판을 깔아 주지.”
에텔라가 중앙으로 오라는 지시를 내리자 이루키와 클로저가 걸음을 옮겼다. 규칙 설명이 끝나자 클로저는 큰 키를 과시하듯 이루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티매직이 들어오면 콧잔등이 시큰한 기분이 들지. 하지만 나랑 싸울 때는 안티매직 정도가 아니야. 혹시 코뼈 부러져 본 적 있냐? 주먹으로 맞아서 말이야.”
이루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굉장히 아프지. 아파서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고. 이제부터 내가 너의 코뼈를 오크처럼 주저앉힐 거야. 그만두라고 소리쳐도 계속 두들겨 팰 거라고. 그래도 되지?”
클로저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왜 말이 없어? 무섭냐? 그런데 어쩔 수 없어. 경기는 시작됐고 너는 엄청나게 얻어터지게 될 거거든. 10분 후면 코에서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지를 거야. 이빨도 몇 개 부러지겠지.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지겠군.”
에텔라가 끼어들었다.
“대결 전에 잡다한 말은 삼가세요. 두 사람 모두 지정된 위치로 가세요.”
이루키에게 큼직한 주먹을 흔들어 보인 클로저는 자리로 돌아가면서 대결 전에 숙지한 정보를 토대로 전략을 짰다.
이루키의 주특기는 이탈형의 빠른 타기팅과 도달속도가 존재하지 않는 화점폭발이었다. 무엇보다 수열식에 강한 서번트 능력자이니 선제타격은 불가능하다고 봐야했다.
클로저는 이루키와 6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초반 대응을 정했다. 자신의 장기 또한 공격이 아닌 방어에 있으니 정석대로 진행하면 문제없을 것이다.
“경기 시작!”
에텔라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클로저의 주위에 다연발 폭발이 일어났다. 두 팔로 얼굴을 가린 클로저의 눈에 놀람이 담겼다. 시작과 동시에 폭발. 이탈형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크기가 줄어든다. 그런데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60미터를 날아왔다는 것은 가히 최상급의 수열식이었다.
시로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스피드 건 시험에서 이미 느꼈지만 로그를 이용한 수열식의 위력은 대단했다.
실제로 이루키의 스피드 건 점수는 이모탈 펑션을 개방한 시로네를 제외하고 마법학교 역사상 최고였다.
학생들은 클로저의 거구가 불꽃에 파묻히는 광경에 넋을 잃었다. 아무리 싱크로율이 50퍼센트라도 연타에 당하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마침내 폭발이 걷히면서 클로저의 모습이 드러났다. 전신을 보호하던 토벽이 후두두 떨어지면서 여유롭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등장했다.
“크크, 이게 끝이냐? 모기에 물린 것처럼 간지럽군.”
패시브 스킬 어스라이즈로 신체를 강화하고 흙의 방어벽으로 몸을 보호하는 어스 스킨까지 시전했다. 어지간한 폭발로는 충격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 이동으로 거리를 좁힌 클로저는 이루키와 반대로 근접전으로 대결을 몰고 갔다.
“록앤드롤!”
클로저가 흙을 퍼 올리듯 손을 휘두르자 땅이 출렁이더니 지면이 돌돌 말리기 시작했다.
직경 3미터까지 커진 바위가 이루키가 서 있던 자리를 깔아뭉개고 지나갔다.
이루키는 순간 이동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함정이라도 파 놓은 듯 지면이 무너졌다.
“크크크! 이걸로 끝이다!”
대지 마법의 상징인 어스퀘이크로 이루키의 움직임을 봉쇄한 클로저는 이럽션 마법을 연계했다. 대지를 압축시켜서 발생한 마찰열로 인해 폭발이 일어났다. 이루키가 빠진 구덩이에서 5톤에 가까운 토사가 솟구쳤다.
이루키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날아올랐다. 머릿속에서는 기폭 방정식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6. 마법 격돌 (4)
기폭 마법의 단점이라면 전지가 직관적이지 않아 폭발력에 따라 캐스팅의 시간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1킬로버스터는 짐마차 한 대를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을 말하는데 공인 10급의 마법사가 1킬로버스터를 캐스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1초였다.
하지만 서번트인 이루키는 3초면 전지를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10초 이상의 시간을 들여 끌어 올리는 위력은 무려 10킬로버스터에 달했다.
클로저는 이루키의 마법이 침묵을 지킨다는 점에서 이번 폭발이 심상치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전체를 방어하려다가는 오히려 치명상을 입을 공산이 컸다.
타격 지점을 예측한 클로저는 어스 스킨을 왼쪽에 집중시켰다. 마치 시간을 빠르게 돌리는 것처럼 흙이 쌓이면서 단단한 토벽을 형성했다.
동시에 이루키의 아토믹 봄이 작렬했다.
밀림 판정이 없기에 클로저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어스 스킨은 흔적조차 없이 날아갔다.
“푸우!”
클로저는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충격은 상쇄했지만 어스 스킨을 날려버린 위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쯤 되자 이루키도 심각해졌다. 10킬로버스터의 폭발까지 완벽하게 막아 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예상보다 훨씬 단단한 마법사였다.
‘할 수 없이 해야 하나.’
이루키는 정신을 두 개로 나누어 스피릿 존을 하나 더 운용했다. 2개의 스피릿 존이 공감각으로 침투하는 순간 클로저의 눈이 커졌다.
마치 2명의 마법사하고 싸우는 기분이었다.
‘젠장. 이거 반칙 아냐?’
이제부터는 클로저도 즐길 수가 없었다. 조금 전에 막았던 10킬로버스터짜리 아토믹 봄이 양쪽에서 날아온다면 방어는 불가능했다.
“그 전에 끝내 주지!”
헤비 스톤을 시전하자 허공에서 엄청난 속도로 흙이 뭉치더니 무려 1톤에 육박하는 바윗덩어리가 이루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단순히 흙을 연성(새로운 물질을 창조하는 연금술 용어)하는 것뿐이지만 높은 곳에서 실행될 경우 위치에너지만으로 압사시킬 수 있는 중력 무기였다.
쿵! 쿵! 쿵! 쿵! 쿵!
이루키가 이동하는 곳은 어디에서건 바위가 추락했다.
연성에 시간이 걸리는데다 도달시간까지 계산하면 대인전투에서 효과가 크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렇군. 오히려 그걸 노리는 건가?’
이루키는 클로저의 의중을 간파했다. 지상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다른 마법과 연계하여 시간 차 공격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예상대로 클로저는 넓은 범위에 헤비 스톤을 시전했다.
허공에서 여러 개의 바위가 만들어지는 동안 능숙한 솜씨로 헤비 스톤의 전지를 이탈시키고 새로운 전지를 장착했다.
슬러그 마법을 시전하자 주위의 돌멩이들이 둥실 떠오르면서 탄환처럼 쏘아졌다.
“이건 어떠냐!”
하늘에서는 낙석이, 전방에서는 돌멩이들이 산탄처럼 퍼져서 날아들었다.
“쳇! 이것까지 쓰기는 싫었는데.”
이루키는 스피릿 존 하나를 수비형으로 바꾸고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스피릿 존의 표면을 따라 깨알처럼 작은 10그램버스터짜리 폭탄 수백 개가 구체의 형상으로 퍼졌다. 그러자 쇄도하는 돌멩이들이 폭탄에 충돌해 소형 불꽃을 일으켰다.
학생들은 공방의 경계지점에서 수없이 많은 연쇄 폭발이 일어나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폭 마법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봄블렛 배리어였다.
초소형 폭탄 수백 개를 주위에 띄워서 접근하는 물체가 마법사에게 도달하기 전에 요격하는 기술로 얼마나 많은 소형폭탄을 스피릿 존에 구현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이루키는 총 387개의 소형 폭탄을 동일한 시간대에 구현시킬 수 있는 경지였다.
개수만 놓고 보면 프로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이지만 이루키는 봄블렛 배리어를 펼치고도 수세에 몰렸다.
이탈형이 너무 뛰어난 것도 문제였다. 이루키의 고등 기술은 대부분 이탈형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봄블렛 배리어는 수비형의 스피릿 존으로 구사할 때 극대의 효과를 낸다.
한마디로 쌍검을 다루는 공격지향적인 검사가 한 자루의 검을 포기하고 방패를 든 셈이었다.
물론 더블 스피릿 존의 이루키였기에 그나마 한 자루의 검이라도 쥘 수 있는 거지만 이탈형 2개를 동시에 운용하지 않으면 대지 마법의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다.
“크크크! 이걸로 끝내주마!”
클로저가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봄블렛 배리어에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어스 스킨의 방어력을 믿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소형 폭탄의 장막을 뚫고 들어오자 이루키는 아토믹 봄을 빠른 리듬으로 폭발시켰다.
10그램버스터의 폭발이 미친 듯이 가드 위를 두들기자 이번에는 클로저도 안면을 구겼다. 하지만 돌진을 멈추기는커녕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어스 스킨이 박살나는 순간 주먹을 들어 이루키의 얼굴을 후려쳤다.
이루키의 눈동자가 핑 하고 돌더니 나가떨어졌다.
장내에 정적이 흘렀다. 이천번 대인 전투에서, 그것도 마법사가 주먹으로 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저, 저래도 되나? 주먹으로 때렸잖아.”
“모르겠는데. 대결이니까 상관없지 않나? 몸을 쓰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잖아.”
학생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심판에게 꽂혔다. 에텔라도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마스터 팔찌로 상태를 보았을 때 조금 전의 일격은 대단한 효과였다.
여태까지 이루키의 게이지는 분당 1퍼센트씩 줄어들고 있었다. 모래시계처럼 감소율이 일정하다는 건 그만큼 운용을 잘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클로저의 주먹에 맞는 순간 반 토막이 나 버렸다. 물리 공격에 약한 마법사의 단점이었다.
결정을 내린 에텔라는 인정한다는 뜻으로 물러섰다.
대지 마법의 특성상 육체적 충돌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기에 전술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크크크, 내가 말했잖아? 힌트를 줬는데도 받아먹지를 못하니, 천재라는 말도 허명이군.”
클로저는 일어서려는 이루키의 허리를 발길질로 떠밀었다. 이루키의 몸이 뒹굴 굴러 바닥에 엎드렸다.
거구의 마크조차 일격에 쓰러뜨렸던 공격이었으니 더블 스피릿 존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클로저는 만약을 대비해 전신에 어스 스킨을 두른 상태로 다가갔다.
“슬슬 개조에 들어가 보실까? 일단 몸부터 다져 놓고.”
클로저가 발을 들어 작신작신 몸을 밟아 댔다. 이루키는 얼굴을 가리고 웅크린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야, 아프냐? 아파? 얼굴은 끝까지 안 보여 주네? 원래부터 못생겼는데 뭐가 어때서 그래?”
“저 자식……! 죽여 버린다.”
네이드가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거렸다. 그럼에도 달려들지 않고 있는 건 이루키의 마지막 자존심을 위해서였다.
“시로네, 너는 물러서 있어. 내가 책임질 테니까.”
“싸울 거라면 같이 싸워야지. 하지만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이루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네이드는 이루키를 유심히 살폈다. 가려진 팔 사이로 웃고 있는 이루키의 얼굴이 보였다. 봄블렛 배리어까지 격파당한 지금 시도할 수 있는 건 없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얻어터지는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일까?
“의외로 질기네. 야, 좀 돌아봐라.”
클로저의 발길질에 밀린 이루키는 대자로 돌아누웠다. 겁에 질려있으리라는 예상과 다르게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이 자식이 끝까지 기분 더럽게 만드네. 이번엔 진짜로 콧대를 주저앉혀 주마.”
불쾌해진 클로저는 다리를 들어 이루키의 얼굴을 겨냥했다. 한 방이면 콧대가 부러질 터였다.
“킥킥! 킥킥킥!”
괴상한 목소리만큼이나 이상하게 웃은 이루키가 허리를 활처럼 휘더니 머리로 땅을 받치고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시로네, 미안하다. 너에게 쓰려고 아껴 뒀던 건데.”
학생들은 말을 잃었다. 이루키의 기괴한 행동이 또 다시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이 자식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클로저가 벼락처럼 발을 내리 꽂는 순간 이루키의 입가가 길게 찢어졌다.
“재밌는 걸 보여 줄게, 시로네.”
쾅! 구둣발이 땅바닥을 내리쳤다.
바닥을 굴러서 회피한 이루키는 클로저의 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느다란 손목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클로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스 스킨은 물론 어스라이즈까지 걸린 상태였으니 주먹만 상할 터였다.
“아욱!”
예상과 달리 묵직한 충격이 복부에 전해지면서 클로저의 입에서 가벼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클로저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위력이야 그저 그랬지만 자신을 감싸던 방어 마법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어, 어떻게……?”
이루키는 학을 흉내 내는 권법 자세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두 손가락으로 클로저의 눈을 찔렀다.
“아초!”
“크악! 내 눈!”
순간적으로 시각을 잃은 클로저는 황급히 어스라이즈를 시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이 발동되는가 싶더니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취소되어 버렸다.
톡. 또르르.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기록관이 이루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펜을 떨어뜨렸다.
“……캔슬레이션?”
취소 마법 캔슬레이션.
위력과 별개로 난이도 최상급의 마법으로 마법사의 전능을 취소시키는 마법이었다.
마법 서적에서는 흔히 캔슬레이션을 유리잔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유리잔을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산산조각 부서진 파편들이 저절로 복구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정답은 ‘있다’이다.
그럼에도 그런 현상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유는 확률이 지극히 낮기 때문이다.
태초에 시간이 발생하면서 이 세상은 안정한 상태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유리잔을 떨어뜨리면 무한에 가까운 변수로 깨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무한의 경우 중에 단 하나, 유리가 깨지는 순간 작용하는 힘의 방향과 속도가 완벽하게 역전되었을 경우, 유리잔은 저절로 복구될 수 있다.
기실 깨짐이라는 것을 분자간의 결합이 끊어진 상태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자단위에서 힘이 역전되어버리면 실금하나 가지 않은 완벽한 상태로 복구가 가능하다.
그것을 마법사들은 ‘돌아온 유리잔’이라고 부른다.
이루키는 이탈형의 스피릿 존을 클로저의 스피릿 존에 침투시켜 정신에서 변하는 작용을 분석했다.
그리고 특정 마법에서 발생하는 패턴을 방정식으로 역전시켜 돌아온 유리잔을 성공시켰다.
평범한 인간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계산 능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캔슬레이션을 구사할 수 있는 마법사의 72퍼센트가 서번트 신드롬 능력자인 이유였다.
“으아아아! 짜증 나!”
클로저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짜증을 부렸다. 아예 방어를 포기하고 헤비스톤을 시전하자 10여 개의 바위가 허공에 연성되었다.
이루키는 손가락으로 콕콕 찍으며 하나씩 캔슬레이션을 걸었다. 그러자 흙이 뭉치는 과정이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역전되면서 종적을 감추었다.
“아초! 아초! 아초!”
이루키는 고집스럽게 권법을 전개했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클로저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 그는 진지했다.
클로저의 콧잔등을 가격하자 두 줄의 쌍코피가 터졌다.
마법이 강제로 취소되는 상황에 대응할 방법은 없었다. 마법사와 일반인이 싸우고 있는 격이었다.
캔슬레이션이 얼마나 무서운 마법인지는 교사들의 표정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아무리 학생이라도 취소 마법을 익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뛰어난 줄은 알았지만 언제 저런 능력을…….”
“환경의 영향도 클 거예요. 아무래도 이루키의 아버님이…….”
용뢰의 수장인 메르코다인 알비노.
허술한 성격으로 보이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왕국에 그리 많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서번트는 안티매직과 캔슬레이션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천하의 알비노라면 어릴 때부터 훈련을 시켰을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