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11
네이드도 이루키의 말이 옳다고 보았다.
“아마도 목숨을 걸고 단테의 시스템으로 침투해야만 확인할 수 있는 특수한 정보들이 시로네에게 수집된 것 같아.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전체 시스템을 분석한 거지.”
마크는 알페아스 교장 선생님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떠올렸다. 통찰은 노력보다 빠르고 지식보다 정확하다. 단테가 채널을 읽는 능력이 있다면 시로네에게는 만물을 관통하는 통찰력이 있었다.
시로네가 움직일 때마다 이천번의 팔찌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고 하지만 계속 차고 있다가는 1도 화상에 걸릴 듯했다.
단테는 파스칼 시스템 안에서 5분이 넘도록 생존하는 시로네를 보고 경악했다.
어떤 상대라도 일단 물리면 5초 안에 화력으로 압살시키는 오토마톤이었다.
시스템으로 구현시킨 지옥의 한복판인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공포에 질려도 모자랄 판국에 마치 자기 집 놀이터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흔들리지 않는 거야?’
통찰은 귀납적 논리 체계의 궁극이기에 100퍼센트 정확한 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시로네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형태가 변하지 않는 금강태의 정신력이었다.
파스칼에 과부화가 걸리자 단테는 콧잔등이 시큰했다. 이대로 버티다가는 마법진과 함께 자폭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낭떠러지 아래에는 생애 최초의 패배가 기다리고 있다. 쌓여 가는 승리의 횟수만큼이나 마음속 칼날은 예리해졌고, 그 칼날은 한 번의 패배로 자신을 베어 버릴 터였다.
‘절대로 질 수 없어!’
단테는 오히려 파스칼의 연산 속도를 높였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자 또다시 벽이 허물어지며 놀라운 세계가 펼쳐졌다.
파스칼 마법진의 빛이 강렬하게 타오르고 맨션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이진수로 이루어진 기나긴 숫자들의 행렬이 급류처럼 머릿속을 흐르면서 뇌를 깎아 내고 있었다.
파스칼의 변화는 학생들의 눈에 즉각적으로 포착되었다. 시로네보다 최소 두 템포가 느렸던 기능들이 시로네의 속도를 따라잡고 있었다.
단테는 확신했다.
‘할 수 있다! 아직 더 할 수 있어!’
파스칼이 모든 것을 병렬로 처리할 필요는 없다. 가장 중요한 연산을 집중적으로 처리한다면 국소적인 기능은 몇 배나 높아질 수 있었다.
‘슬로 맨션부터. 그 다음 파이어, 볼트, 프레스 순으로.’
단테는 파스칼의 메모리에 나열되어 있는 전지 중에서 특정 주소를 먼저 연산했다. 352번째 연산에서 2,987번째 연산으로 건너뛰는 식이었다. 급기야 끝에서 끝을 한 번에 오가는 단계에 이르자 파스칼 마법진에서 굉음이 터졌다.
‘이거다!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거야!’
단테는 의식이 날아가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시로네를 볼 수 없었고, 전장에서 울리는 포화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전기적인 속도로 지나가는 1과 0의 무한한 행렬만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올리비아는 감격에 겨워 몸을 떨었다.
‘단테…….’
언젠가는 벽을 뛰어넘을 줄 알았다. 그 계기가 알페아스의 제자일 줄은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로컬 연산의 경지에 도달한 단테는 번데기가 나비로 변한 것만큼이나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냈다.
“아야.”
단테는 개미를 짓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떼었다. 검지를 깨물고 있던 개미가 버둥거리더니 땅으로 떨어졌다.
올리비아는 바닥에 떨어진 개미를 흘끗 살피고는 물었다.
“저런. 물렸나 보구나. 많이 아프니?”
“하하! 괜찮아요. 항상 있는 일인걸요.”
단테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쭉쭉 빨면서 개미를 살폈다. 목적을 상실한 1111번이 개미는 왕국의 붕괴를 깨달은 듯 어찌할 줄 모르고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었다.
“채널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특정 채널이 끊어지면 모든 게 붕괴되는 거죠. 하지만…….”
단테는 허둥대는 개미를 살며시 들고 혼란스러운 왕국의 정세를 살폈다. 유심히 관찰하던 그가 1111번을 어딘가에 내려놓자 그곳을 중심으로 점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단테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몇 마리의 개미를 요소요소에 배치시켰다. 멸망 직전이었던 왕국이 단단한 시스템으로 빠르게 구축되어 가는 광경은 올리비아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헤헤! 미안해, 개미들아.”
단테는 올리비아를 올려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이제는 괜찮아요.”
올리비아는 미소를 머금으며 단테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캐내려는 듯 소년의 맑고 투명한 눈동자를 응시하던 그녀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단테 너, 마법 배워 보지 않을래?”
올리비아와 단테의 인연이 시작된 날이었다.
올리비아는 그날 이후로 단테가 왕국 최고의 마법사가 될 것임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는 기계가 아니다. 얼마든지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엄연한 인간이었다.
시로네는 분명 대단한 아이지만 벽을 뛰어넘은 단테를 이길 수 있는 자는 더 이상 동급에 없을 터였다.
“크으으으……!”
단테는 사력을 다해 정신을 유지했다. 정보처리 속도가 생애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가속되고 있었다.
86개의 맨션에서 토해지는 마법은 이제 방향마저 무의미할 정도로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시로네의 판단이 조금만 어긋나도 경기는 끝이었고, 이제는 학생들도 누가 이길지 장담할 수 없었다.
단테의 정신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시로네 또한 순간 이동을 2천 회 이상 연계하는 중이었다.
‘제길! 어째서? 어째서 맞지 않는 거야?’
단테는 기가 찰 지경이었다.
파스칼의 기능을 가용한계치까지 올렸는데도 시로네는 여전히 시스템 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신이 올린 기어에 맞추어 그의 생각도 가속화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단테의 오감은 완전히 열려서, 어떤 것이 시각 정보고 어떤 것이 청각 정보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시로네의 정보가 뒤섞이면서 마치 몸과 마음이 하나로 합쳐진 것 같은 일체감을 느꼈다.
‘제길! 남자랑 이런 건 사양이라고!’
감정이야 어떻든 단테는 극상의 고양감을 맛보았다. 생각의 반응속도는 일전에 이루지 못한 경지에 도달했고, 시로네의 모든 정보가 시그널로 해체되어 밀려들었다.
두 사람은 존재의 대화를 나누었다. 거짓도 진실도 없는 날것의 교감. 그 지점에서 시로네와 단테는 전율했다. 마치 전기가 되어 버린 것처럼 시야 가득 섬광이 터졌다.
귀납과 연역의 궁극적 재능들이 나누는 대화는 마법이라는 형태를 빌려,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학생들은 눈조차 깜박이지 않은 채로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전투는 충돌이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마치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온갖 마법과 지식으로 버무려진 춤사위였다.
알페아스는 미소를 머금었다.
“무엇이 옳은지 알기 위해서는 먼 길을 돌아와야 하지. 확신하고, 부정하고, 다시 확신했을 때에야 정신은 몸에 깃드는 법. 마음껏 번뇌해도 좋다. 어차피 다른 하늘이 아니더냐?”
올리비아의 눈빛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전투 시뮬레이션 시스템 이천번은 학생들이 실전을 미리 경험하는 기회의 장이자 우월함을 드러내는 과시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천번의 개발자 자코뱅의 생각도 그러할까?
어쩌면 그는 학생들에게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올리비아는 무릎에 놓인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알페아스의 철학도 분명 옳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타협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투에 들어간 이상 승자만이 역사에 기록되는 법이다. 이기는 건 단테. 자신의 교사 인생에서 최고라고 자부하는 제자여야만 한다.
시로네와 단테의 정보교환은 극한의 영역으로 치달았고 학생들은 견딜 수 없이 뜨거워지는 팔찌를 빙빙 돌렸다.
86개의 맨션과 한 줄기의 섬광.
그 조합이 만들어 내는 초당 수백 회의 정보교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빙빙 도는 기분이었다.
마리아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재능. 그 재능을 보유한 두 사람이 엉키게 되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펼쳐지게 된다.
“단테 선배님…… 정말 대단하다.”
마크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리아라면 당연히 시로네를 응원할 줄 알았다. 개인감정을 떠나서라도 단테 일행에게 모욕을 당한 사건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터였다.
“마리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마도 오늘의 대결은, 역사에 기록되겠지.”
마크는 무언가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마리아의 말대로 시로네와 단테의 대결은 실습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예전에는 경쟁이라는 게 너무 싫었는데.”
마크도 알고 있었다. 경쟁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건널 수 없는 다리의 기관 장치까지 작동시키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정말 멋진 세계라는 생각이 들어. 시로네 선배님은 그냥 천재였잖아. 아무 생각 없이 우러러보기만 하면 되는 거였잖아. 하지만 단테 선배님은 그런 시로네 선배님을 사력을 다해 싸우게 만들고 있어.”
마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마리아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심정이 스며들어 와 구구절절 애간장을 녹였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거기까지 생각을 해 버리면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마리아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나는…… 평생 저런 건 경험해 보지 못하겠지.”
마크는 이를 악물었다. 시로네의 모습은 자신이 꿈꾸는 마법사의 이상과 찍어 낸 듯 일치했다.
어떤 기분일까? 천상의 영역에서 장기를 뽐낸다는 것은. 최고의 상대를 붙잡고 지옥 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마법사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일 터였다.
다른 하늘 (3)
마크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는 끝내 눈물을 흘려 보내지 않았다.
“우리도 할 수 있어.”
마리아는 조금 놀란 듯 마크를 돌아보았다.
“노력하고 노력할 거야. 그래서 반드시 선배님에게 도전할 거야.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서 나를 상대하게 만들 거야. 그러니까 약한 소리 하지 마. 한 번만 더 그런 소리를 하면 앞으로 너하고 다니지 않을 거야.”
“마크…….”
이루키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 재능이라는 건 없어.”
마크와 마리아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재능은 없지. 정신이상자가 수학을 잘하지는 못해. 하지만 최고의 화가가 될 수는 있어. 마법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직종이야. 시로네의 통찰력이나 단테의 정보처리 능력, 그것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아.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할 필요 없다는 거야. 자신만의 것을 최고로 끌어올린다면, 너희들도 언젠가는 시로네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 모르지.”
“저, 저희는 그런 생각은…….”
마크는 빨개진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시로네를 쓰러뜨리다니,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인정하는 천재에게 이런 얘기를 듣자 다시금 자신감이 차올랐다.
처음으로 이루키가 선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단테는 정보의 홍수에 인상을 찡그렸다. 0과 1의 시퀀스가 빛의 속도로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파스칼의 정보에 더해진 시로네의 정보였다.
‘할 수 있어! 따라잡고 있다!’
속도 대결에서 단테가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생물과 기계의 차이였다. 생물의 내구력은 천천히 감소하지만 오토마톤은 자폭하기 직전까지 원래의 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학생들은 파스칼의 공격 마법이 시로네를 점차 옭아매는 것을 보았다. 시로네의 순간 이동의 반경이 줄어들면서 10초 후면 무브먼트 제로의 영역으로 떨어질 듯했다.
그럼에도 시이나는 감히 승부를 예측하지 못했다.
분명 시로네의 동선이 좁혀지고 있지만 단테의 정신력도 거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태였다.
‘단테가 버틸 수 있나?’
시이나는 게이지가 줄어드는 속도를 뚫어지게 살폈다.
‘버틸 수 있다. 이대로라면 단테의 승리야.’
시이나 또한 시로네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은 있지만 단테는 분명 이길 자격이 있었다. 특히나 오토마톤의 대응력은 프로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먹힐 만한 위력이었다.
5초. 4초.
시로네가 체크메이트를 당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윈드 커터의 연사 반경이 좁아지고, 일렉트릭 맨션에서 충전 100퍼센트의 볼트가 발사를 기다렸다.
시로네의 동선이 완벽하게 차단당하는 순간이 왔다.
단테는 메모리의 행렬에서 일렉트릭 캐논의 주소를 순식간에 찾아내어 파스칼에 전송했다.
‘지금이다!’
단테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지금이다!’
시로네 또한 같은 생각을 했다.
일렉트릭 캐논의 에너지가 맨션에 가득 차는 순간 시로네의 눈앞에 섬광이 집중되었다.
단테는 코웃음을 쳤다. 포톤 캐논이 얼마나 강하든 풀 파워의 일렉트릭 캐논은 그것마저 파괴시키고 공간을 지배할 터였다.
그 순간 시로네가 필살의 마법을 시전했다.
샤이닝 임팩트!
편광 방향을 통일시켜 압축시킨 광자가 폭발했다.
그러자 1과 0으로 가득했던 단테의 머릿속으로 오직 1뿐인 정보가 밀려들었다.
가장 단순하지만 처리 불가능한 크기의 정보.
파스칼에 과부화가 걸리면서 오토마톤이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학생들은 충격을 받았다. 빛의 폭발을 일으켜서 단테의 시스템을 마비시킨 것이다.
두 번은 통하지 않을 전략. 시로네는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서 한 번의 기회를 아껴 두었던 게 분명했다.
단테의 머릿속은 샤이닝 임팩트만큼이나 창백했다. 초당 수천 건의 정보를 처리하던 연산에 1초에 가까운 공백이 발생했다는 건 치명적이었다.
단테는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어떤 공격이 가해질지 예측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시로네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을 집중하자 눈앞에 선명한 빛이 태어나면서 거대한 원을 그렸다. 리프팅 훈련을 통해 능숙해진 천사의 마법진, 헤일로였다.
네이드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타락시아!”
시로네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네이드는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광륜이 완성되더라도 정보 집적은 별개의 문제다. 1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아직 실전에 접목할 단계가 아니었다.
이루키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최악의 수다.”
네이드가 침묵으로 동조하자 이루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유일한 수이기도 하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지금이 아니면 아타락시아를 발동시킬 기회는 오지 않을 거야.”
단테는 멀어지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설마하니 빛을 폭발시켜 시스템을 마비시킬 줄은 몰랐다.
하지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시로네 또한 모든 전략을 소모하고 마지막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오토마톤이 기능을 되찾자 맨션들이 시로네를 향해 일제히 돌아섰다.
시로네는 흉흉하게 떠 있는 마법진을 보면서도 헤일로를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창백한 섬광이 원주율을 바탕으로 크게 궤적을 그리면서 시작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마침내 천사의 정신인 헤일로가 시로네의 정면을 방패처럼 막아섰다.
“크윽! 뭐야!”
보일이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을 호소했다. 소환 마법사의 측량 감각은 다른 마법사들과 궤를 달리한다. 1밀리미터의 오차마저 손쉽게 인지하는 그에게 완벽한 광륜은 형태로 가하는 폭력이었다.
이루키는 보일의 상태를 보고 직감했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미시 세계에서 가해지는 충격이다.
자신이 봤을 때는 보통의 원과 완벽한 원의 차이를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정보 엔트로피를 읽을 수 있는 단테는 어떨까?
“크으으으!”
이루키의 짐작대로 단테는 목에 핏줄이 올라온 채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정신에 충격이 가해지자 파스칼의 기능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빌어먹을! 갑자기 왜 이러지? 저 원은 도대체 뭐야?’
이루키는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시로네는 여기까지 계산하고 아타락시아를 발동시킨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할까?
보일은 이미 충격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에이미는 천국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때 바알브가…….’
아타락시아는 높은 경지에 오른 자들에게 더욱 강력한 충격을 가할 수 있는 형태.
천국에서 2각 마라가 시로네의 아타락시아 앞에서 뒷걸음질을 쳤던 상황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헤일로의 등장으로 가장 고통스러울 사람은 누구일까?
에이미는 시선을 돌려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예상대로 그녀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대체 저건…….’
올리비아는 입술을 짓깨물었다.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감각의 정점에 위치한 그녀는 헤일로를 보고 순간적으로 의식이 날아갈 뻔했다.
대마법사의 정신력으로 버텨 냈지만 그녀의 수준에서 찰나의 공백은 치명적이다. 현재 시로네의 수준에서 터득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인간의 능력으로 만들 수 없는 원이다. 세상 전부를 담을 수 있는 공간에 무엇을 넣으려고 하는 거지?’
헤일로에 아타락시아의 개념이 조립되기 시작했다.
광륜의 바깥쪽에서 색색들이 광선이 소나기처럼 날아와 마법진 위에 파문처럼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