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13
다른 하늘 (5)
아타락시아를 보유한다면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명성은 단번에 올라갈 것이다. 게다가 올리비아의 힘을 빌린다면 왕립 마법학교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알페아스가 나직하게 말했다.
“사드.”
사드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네, 스승님.”
“지금 당장 이천번의 블랙박스를 수거해라. 아무에게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시로네가 보는 앞에서 파기하도록. 반드시 시로네에게 파기된 걸 확인시켜.”
“알겠습니다.”
사드는 군소리 없이 대답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의 팔찌도 수정구가 파괴되어 있었다.
이천번을 관리하면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인 만큼 예상보다 사태가 심각해질 수도 있음을 직감했다.
물론 사건이 커질수록 학교의 이름은 알려지겠지만, 알페아스의 지시라면 사적인 생각은 할 필요가 없었다.
올리비아의 사나웠던 눈초리가 의아함으로 변했다.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라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꽉 막힌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
“괜찮겠어? 블랙박스에는 이번 대결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어. 단테의 파스칼은 물론이고 시로네의 마법진도. 복사만 해 놓는다면 큰 도움이 될 텐데. 왕국에서 보안을 건다고 해도 엄청난 거금을 주고 가져가게 될 거야.”
올리비아가 은근히 떠보았으나 알페아스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시로네의 것이야. 시로네의 허락 없이 정보에 접근하는 자는 있어선 안 돼.”
“시로네가 허락할지도 모르잖아. 잘 생각해 봐. 모교의 번창을 위해 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거고, 무엇보다 마법사회에 이바지하는 일이야. 시로네 또한 수많은 천재 마법사들이 이룩해 놓은 것들의 수혜를 받고 있잖아.”
올리비아의 말도 일견 옳았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고귀한 희생과 도전, 노력과 재능이 없었다면 인류의 마법은 여기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알페아스 또한 광자 마법의 혁신을 일으킨 양자론의 논문을 국가에 헌납하듯 제출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페아스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시로네가 살아 있는 한 언제든 선택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정말로 필요하다고 느낄 때 스스로 결정하면 되는 일이야. 이런 식으로 선택지를 제시한다면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올리비아는 쳇 하고 혀를 찼다. 예나 지금이나 고지식하기로는 제1급이었다.
‘하긴…… 그래서 좋아했던 것이지만.’
대결이 끝났지만 자리를 떠나는 학생은 없었다.
이번 결투의 하이라이트. 단테가 시로네에게 무릎을 꿇는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패배한 단테는 교사들의 회복 마법에도 쉽게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사비나가 고개를 저으며 울먹거렸다.
“단테가 지다니.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여태까지 수많은 강자들을 꺾었는데, 이런 시골 학교에서 무패의 기록이 깨질 수는 없는 거야.”
“사비나, 진정해. 지금은 단테가 무사하기만 바라자고.”
클로저가 사비나의 어깨를 붙잡고 진정시켰다. 하지만 이미 감정이 북받친 사비나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변수가 계속해서 생겨서 모든 일이 꼬여 버리는 날이.
단테에게는 오늘이 그런 날인 것이다.
“단테는 무적이야! 싱크로율도 50퍼센트였잖아. 왕립 마법학교에서는 100퍼센트로 맞추고 싸운 적도 있어! 저런 촌뜨기에게 패할 리가 없다고!”
“흥, 그래 봤자 시뮬레이션일 뿐이지.”
카니스의 말에 사비나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뭐야?”
“단테는 거인과 싸운 적이 없잖아. 대천사하고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단테를 조롱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적과 목숨을 걸고 싸워 본 적이 있냐는 얘기야. 이천번이든 싱크로율이 100퍼센트든 상관없어. 실전은 그런 게 아냐.”
사비나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에이미가 말을 이었다.
“단테는 실전을 몰라. 물론 실전에서도 충분히 먹힐 만한 실력이지. 하지만 시로네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언제나 목숨을 걸었어.”
카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천번. 실전과 흡사하지. 하지만 실전은 아니잖아? 저런 건 별로 재밌지도 않다고. 목숨을 건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게 되면 사고가 정지되고 오직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성을 유지하고 싸우는 것, 그게 바로 실전이야.”
사비나는 아이처럼 씩씩거렸다. 네이드에게 린치를 당했기에 카니스가 말한 상황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테가 어떤 각오로 싸웠는지 그들은 모른다.
시뮬레이션이라고 비하해도, 이길 수 있는 상대하고만 싸웠을 뿐이라는 조롱에도 변치 않는 사실이 있다.
단테에게 이천번 대결은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사비나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 단테는…… 단테는 진짜로 목숨을 걸고 싸웠단 말이야.”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시로네의 친구들도 이제 와 단테 일행을 조롱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한 학기 동안 날뛰었던 고까움이 이것으로 풀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단테는 강했다. 같은 라인에서 경쟁하는 동료라는 게 즐거울 만큼. 비록 시로네에게 패했지만 결과적으로 친구들의 체면은 세워 주고 고꾸라진 셈이었다.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단테가 정신을 차렸다.
흥분하여 떠들어 대던 학생들이 일제히 침묵을 지키고 이천번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비나와 클로저는 안타까웠다. 차라리 오늘 하루 끝까지 기절해 있기를 바랐건만 수비력 최강의 학생은 회복력도 빠르다는 게 문제였다.
시로네가 다가가자 학생들은 숨소리마저 죽였다. 단테는 힘겹게 시로네를 올려보다가 안 되겠는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시로네는 묵묵히 기다렸다.
마침내 단테가 중얼거림을 멈추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더 이상 정보의 교환은 없다. 승자와 패자는 갈렸고 남은 건 전리품을 챙기는 일뿐이었다.
“죽여라.”
단테가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시로네는 입을 굳게 다물고 단테를 노려보았다.
여기저기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무릎을 꿇느니 죽겠다고 나올 줄은 몰랐다.
철이 없다느니 남자답지 못하게 억지를 부린다느니 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사비나는 알고 있었다. 단테의 말은 억지도 아니고 치기 어린 발언도 아니었다.
-최고의 마법사가 될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이천번도 실전처럼 훈련해야 돼.
-하지만 단테, 아무리 그래도 이천번은 시뮬레이션이야. 판정도 존재하고, 실전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잖아.
사비나는 당시에 단테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겠지. 하지만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훈련해서는 대마법사가 되지 못해. 그래서 결심했어. 내가 만약 이천번에서 패한다면, 그것은 곧 내 죽음을 의미하는 게 될 거야.
물론 어린 나이였다.
사비나도 승부에 앞서 각오를 다지는 결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테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150전, 200전을 치르면서 패할 수도 있었던 상황은 정말로 많았다.
하지만 결국 단테는 승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400전이 넘어가자 단테도 당시의 말이 칼날이 되어 자신을 몰아세우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단테는 빠르게 성장했고, 472전 472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알페아스는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꼈다.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올리비아를 돌아보았으나 그녀 또한 금시초문인지 고개를 저었다. 단테가 정말로 목숨을 걸고 대결에 임했을 줄은 예상조차 못 했다. 최고의 마법사가 되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18세 소년의 각오치고는 너무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18세의 소년이기에, 최고의 자리를 지켜 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잡지에 실리고, 모든 학생들이 경외하고, 라이벌들을 쓰러뜨리면서 어찌 좋기만 했겠는가?
단테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동기에는 분명 자신의 책임도 있었다.
단테는 거짓이 아니라는 듯 다시 한 번 말했다.
“죽여라. 한 번도 누군가에게 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의 패배다. 네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하겠다. 하지만 너에게 무릎을 꿇는 일은 없을 거야.”
시로네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단테는 아주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어떻게 다루든 본인의 마음이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게 되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누군가에게는 분노가 되는 법이다.
“졌으니까…… 죽겠다고?”
“그래. 그것이 내가 이번 대결에 임한 각오다.”
“왜? 너 따위가 뭔데?”
학생들의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단테는 수치심에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감정이 격한 사람은 시로네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토록 쉽게 무릎을 꿇으라고 하면서, 너는 그 정도도 못 한다는 거야?”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나는 정말로 목숨을 걸었다. 어쩌면 평생의 라이벌이 될지도 모르는 내가 스스로 사라져 주겠다고 말하는 거야.”
“네가 그렇게 대단하냐?”
단테의 인상이 다시 구겨졌다. 비록 패했지만 좋은 대결을 펼쳤다. 시로네라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왕국 최고의 재능이라는 이름값은 했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변명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너 또한 나를 쉽게 이긴 건 아니잖아?”
“왕국 최고?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야? 전쟁이라도 멈출 수 있다는 거야?”
“뭐야?”
“네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면 사소한 것 하나라도 바꿔 보란 말이야.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그런데 네가 도대체 뭐라고 패배에 목숨을 거는 거야?”
단테의 인상이 일그러졌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시로네는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전쟁도, 기아도, 내란도, 아무것도 막을 수가 없지. 그런데 뭐? 왕국 최고? 네가 대단하다고?”
단테는 숨이 가빠 왔다. 시로네의 한마디 한마디가 머리에, 가슴에,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렇게 추락하고 있다. 자신을 이루는 무언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네가 죽는다고 한들 세상은 변하지 않아. 아무도 네가 죽은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밑바닥까지 떨어질 것 같았다.
“닥쳐! 한 번 이겼다고 기고만장한 거냐! 이번엔 진짜로 붙어 볼까?”
“단테.”
시로네는 동정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넌 그냥 인간이야.”
단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의 껍질을 둘러싸고 있던 무언가가 산산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문득 카니스의 말이 떠올랐다.
-네가 상상할 수 있는 밑바닥의 끝까지 밟히는 기분을 느끼게 될 테니까.
처음부터 싸움을 거는 게 아니었다. 카니스의 말은 한 치의 과장도 없는 사실이었다.
“대마법사도, 아니, 어떤 사람도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 인간이니까. 그렇기에 네가 죽어야 할 자격 같은 것도 없는 거야.”
학생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침묵했다. 단테와 싸우기를 거부하는 시로네를 겁쟁이라고 조롱했던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왕국 최고의 재능이라는 명함.
그것은 분명 마법사 지망생에게 꿈과 같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 또한 인간들의 손에 만들어진 인간 이하의 관념에 불과했다.
“저 아이는……?”
올리비아는 알페아스에게 물었다. 시로네가 누구인지는 학생기록부에 상세하게 적혀 있을 테지만 그녀가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알페아스는 마침내 사실을 털어놓았다.
“시로네는…… 미로를 만났어. 그리고 천국에서 대천사 이카엘을 만났지.”
올리비아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페아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실을 알고 있는 소수의 인간 중에 하나지.”
올리비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도 이 세상은 1명의 마법사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시로네의 눈에는 인간사의 모든 일들이 더욱 대수롭지 않게 보였을 것이다.
“강한 아이네. 대부분은 겁에 질리거나 체념했을 텐데.”
“처음부터 저랬던 건 아니야. 수줍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지.”
알페아스는 시로네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담벼락 너머에 귀를 대고 자신의 수업을 도강하던 열두 살의 소년은 이제 왕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유망주로 성장했다.
다른 하늘 (6)
“경쟁이라는 것은 1등을 가리기 위한 시스템만은 아니야. 수많은 철학과 부딪치면서 자신의 것을 찾아 가는 과정이지. 순위에 집착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올리비아는 단테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시로네의 말에 거짓은 없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마법학교의 1등을 차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실체조차 확인할 수 없음에도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마법사라고 일컬어지는 맥클라인 거핀.
그리고 그가 선택한 후계자 아드리아스 미로.
그들조차도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크나큰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단테도, 시로네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
“모두 강해질 거야. 이곳에 있는 학생들 모두가.”
올리비아는 눈을 감았다.
이것으로 대결은 끝났다. 그리고 자신과 알페아스의 질긴 인연도 여기까지가 마지막이었다.
“내가 졌어. 교장직을 내려놓고 학교를 떠날게.”
알페아스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그대로 계셔도 괜찮소만?”
“무슨 소리야? 어차피 곧 임기도 끝나잖아.”
“학교에 남아서 나를 좀 도와줘. 나이가 먹으니 혼자서는 힘들어. 말하자면, 이 학교의 교감이 되어 달라는 거지.”
올리비아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왕립 마법학교의 교장까지 지냈던 자신에게 교감을 하라니. 그것도 끔찍하게 미운 알페아스의 아래에서.
이쯤에서 묻어 두려고 했다. 무엇을 해도 이 능구렁이를 이길 수 없으니 잊고 살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알페아스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제안의 의도는 짐작이 간다. 제롬 올리비아가 교감으로 있다고 하면 학교의 명성은 순식간에 올라갈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이곳에 머물면서 이루어 낸 혁신도 적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거부해야만 한다.
명성과 능력,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알페아스의 술수에 넘어갈 수는 없었다.
“교감? 내가 미쳤어? 왜 너를 도와서 그런 일을 해야 하는데?”
알페아스는 고민하지 않고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날 밤…… 네가 찾아왔을 때…….”
“그만! 제발 좀!”
올리비아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세상에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 있을까? 도대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거지?
10년이 넘도록 연락 한번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만 해도 복수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자신을 찾아온 그날 매몰차게 돌려보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올리비아의 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다.
“넌…… 진짜 이기적이야.”
알페아스는 농담을 접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남아 줘. 한가로울 때는 나랑 같이 차도 마시고 화단도 가꾸자고. 그리고…… 에리나에게 인사도 하고.”
올리비아의 눈에 살심이 차올랐다. 뻔히 자신의 감정을 알고 있으면서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에게 인사를 하라니.
대체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지?
단지 좋아했을 뿐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 인간은 나를 지옥 끝까지 떨어뜨리려고 하는가?
“너 정말……!”
언성을 높이려던 올리비아는 알페아스의 눈빛을 보고 말을 멈췄다. 전과는 다른 감정이 그의 눈동자에 드러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