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17
“네, 그렇게 했어요. 근데 그게 왜요? 올리비아 씨도 알고 있잖아요. 다 그렇게 하는 거라고요. 그 정도도 못 하게 하면 기사는 쓰지도 못해요.”
킬라인의 말에는 무언의 협박이 담겨 있었다. 단테 또한 그렇게 하지 않았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물론 파고들자면 올리비아에게도 어느 정도의 허물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회의 감사, 레드 라인 제2급의 대마법사가 킬라인과 같은 위치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착각이었다.
“킬라인, 나는 특파원으로서의 너를 탓하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믿고 있었던 네가 나를 배신한 것에 대한 징벌을 하려는 것이야.”
킬라인은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해볼 테면 해보자는 얘기였다. 서로 물고 뜯었을 때 누가 살아남는지 보자는 협박이었다.
차라리 알페아스와 같은 부류라면 두려울 게 없을 터였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세상 물정에도 밝고 어느 정도 속물적인 기질도 있다.
그런 사람이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났다면 처음부터 킬라인이 비벼 볼 구석은 없었다.
“제가 무엇을 배신했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올리비아 씨가 좋아할 줄 알았어요. 단테가 졌잖아요. 저는 올리비아 씨의 제자가 성공하기를 바랐던 것뿐이에요.”
올리비아는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킬라인의 가식을 껍데기 하나 남기지 않고 벗겨 놓았으니 이제부터가 진정한 대화라고 할 수 있었다.
“생각해 주는 건 고맙지만 주제넘은 짓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였겠지. 단테가 없으면 교사회에서의 네 위치도 흔들릴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야. 단테는 졌지만 시로네가 이겼다. 시로네 또한 내 제자이니 손해 볼 것은 아무것도 없어.”
“네? 뭐라고요?”
킬라인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시로네가 그녀의 제자란 말인가.
알페아스를 돌아보았으나 그도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로네가 제자라뇨? 올리비아 씨는 임시직이잖아요. 조만간 교장직을 그만두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러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나는 알페아스 마법학교에 남는다. 다음 학기부터는 교감으로 취임할 거야. 그러니 너는 내 학생의 앞길을 망치려고 작정한 역적이 된다.”
킬라인은 여전히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눈을 굴렸다.
밝혀진 진실 (5)
10년 전에도 왕립 마법학교의 교장이었던 그녀가 지방 학교의 교감으로 들어가다니.
특파원을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할 성격이 아니기에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왜? 평생을 승승장구하면서 쌓아 온 커리어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선택을 한 것일까?
이 학교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알페아스도 의심이 들었다.
근래 들어 예전의 앙금을 풀고 친해지기는 했지만 교감을 맡아 주는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저어하던 그녀였다.
“올리비아. 당신…….”
“좀 가만히 있어. 그건 이따가 얘기하면 되잖아.”
올리비아가 답답하다는 듯 쳐다보자 알페아스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에 킬라인의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였다. 머릿속에서 손익계산이 빠르게 오갔다.
사소한 착각이 이 사태를 불러왔다. 아니, 이것을 착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올리비아의 변덕일 뿐이다.
하지만 제2급 대마법사가 변덕을 부렸다면 맞춰 줄 수밖에 없다.
킬라인은 황급히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실수를 했습니다. 미리 기별을 드렸어야 했는데, 올리비아 씨가 그런 생각인 줄도 모르고 그만…….”
무조건 비는 수밖에 없었다.
합리적으로 누군가를 짓뭉갤 수 있을 때 올리비아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된다.
그녀를 사사한 수백 명의 제자들이 사회 각계의 지도층에 앉아 있다. 그녀가 입만 뻥긋하면 교사회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에서 영원히 퇴출당할 수도 있었다.
“곧바로 정정 기사를 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하겠습니다.”
올리비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쉽게 되는 거라면 처음부터 이런 분위기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잡지는 세상에 퍼졌고, 그것을 전부 수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설령 수거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기억마저 지울 수는 없다.
“정정 기사를 내는 건 사건을 더 크게 키우는 것이다. 괜한 이슈를 만들지 마.”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킬라인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들어왔던 그녀는 10분 만에 교사회에 처음 들어왔던 애송이 특파원이 되어 있었다.
“두 달 동안 특집 기사를 내라. 각 학교의 비리나 교사들의 학생 성추행 문제, 마법사회 일선에서 벌어지는 장기 밀매 같은 자극적인 기사들로 시선을 돌려. 내가 소스를 주마. 시로네와 단테의 이름은 절대로 잡지에 실려서는 안 돼.”
“네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로네에게 사과해라.”
킬라인은 무릎을 꿇은 채로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시로네는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화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려고 싸웠다가 굽혔다가 하는 킬라인을 보자 안쓰럽기도 했다.
아마도 그녀가 어른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게 끝장나는 어른의 인생인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보상이라면 무엇이든 할 테니,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시로네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일을 저지르지 말았어야 했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그 또한 부질없는 짓이었다.
자신보다 열다섯 살이나 더 많은 어른이 무릎으로 기어와서 고개를 땅바닥에 박는 건 무안해서 쳐다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됐어요. 그냥 가세요. 이미 지난 일이니까요. 돌이킬 수도 없잖아요. 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저희 부모님에게 사과하셨으면 좋겠어요.”
“네, 곧바로 찾아뵙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올리비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시로네는 특히나 우직했다. 조금 머리가 돌아가는 아이라면 킬라인을 이렇게 내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긴 명예욕이나 물욕, 그런 것과는 동떨어진 아이니.’
이모탈 펑션을 깨달은 자들의 특징은 사고방식이 형이상학적이라는 점이다. 속세에 대한 갈증이 극단적으로 부족하고 이상을 추구하며, 상상 이상의 세계에 깊은 관심을 드러낸다.
시로네의 성향이 어떻든지 간에 올리비아는 킬라인을 내치고 싶지 않았다.
군주 국가라도 언론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법이고 그녀는 똑똑했다.
게다가 특파원계에서는 명성이 높으니 새로운 특파원을 키우는 것보다 곁에 두고 지키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킬라인, 너는 유능한 아이다. 다시는 이런 실수가 없도록 해라. 이번 일이 끝나면 식사나 하자꾸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 가 보거라.”
킬라인은 연신 고개를 굽실거리며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이렇게 되자 알페아스와 시로네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법을 택했고 킬라인도 지옥에 떨어진 기분을 맛보았으니 마음도 어느 정도 달래졌다.
올리비아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내 불찰이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이 영감의 불찰이지만.”
알페아스는 무안한 듯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했다.
시로네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모든 감정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의지할 곳 없는 그에게 올리비아와 알페아스의 존재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알페아스가 시로네를 위로했다.
“이 또한 금방 지나갈 것이다. 이제 곧 기말시험이 있으니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시험에 집중해라. 그러다 보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야.”
“네, 감사합니다. 그만 가 볼게요.”
시로네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교장실을 나섰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들이 모두 사라졌으나 교장실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알페아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알페아스는 대답이 없었다.
적당히 심각한 사안이라면 시간이 약이다. 하지만 시로네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건 시로네의 출신이 천하다느니 마법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다느니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지.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렇겠지. 하지만…….”
올리비아는 말을 멈췄다.
알페아스의 말대로 지금 떠들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부디 이번 사건에 감춰진 무시무시한 폭탄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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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시험이 끝났다.
저번 학기에는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방학을 맞이했으나 후반기에는 한 가지 일정이 더 있었다.
바로 졸업반의 졸업 시험이었다.
모든 학생이 참관하는 마법학교의 가장 큰 축제인 만큼 교내의 분위기도 활기찼다.
시로네의 기말성적 결과는 클래스 포의 6등이었다.
1등은 단테였고, 그다음으로 사비나, 클로저, 보일, 판도라 순이었다.
시로네의 아래로는 이루키와 네이드가 자리했다.
가장 큰 약점이었던 전지를 1년 사이에 엄청나게 보강한 시로네는 만족했다. 반면에 이루키와 네이드는 이론 시험에서 뒤진 것에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실기 시험 점수를 합친 총점으로 따지면 시로네의 등수는 무려 3등이었다.
단테가 종합 1위였고 그다음이 이루키였다.
어쨌거나 종합 1등을 차지한 단테를 이천번에서 꺾었으니 졸업 예정자 1순위는 근소한 차이로 시로네의 편을 들어 주는 학생들이 많았다.
다만 평판에 있어서는 예전만 못했다.
출신이 밝혀진 탓에 시로네를 따랐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멀어져 갔다.
개중에는 시로네에게 노골적으로 비하의 말을 내뱉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로네는 그럴 때마다 감정이 상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킬라인은 약속을 지켜서 스피릿 잡지에 더 이상 기사를 싣지 않았다.
올리비아에게 들은 바로는 부모님을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했다.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수렁에 빠지는 날도 있기 마련이기에 시로네는 이 또한 흘러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피릿 잡지에 단 1회 실렸던 시로네의 기사는 모두의 생각을 초월하는 거대한 후폭풍으로 되돌아왔다.
졸업 시험이 15일 남은 어느 날, 마법학교가 들썩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철컥! 철컥!
40명에 달하는 기사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토르미아의 귀족 구역 지대를 지나갔다. 한 대의 마차를 호위하는 군사였다.
금관으로 장식된 마차는 안에서 먹고 자고 쌀 수도 있을 만큼 거대했다.
내로라하는 귀족들도 길을 점유하는 무장 병력의 행진에 감히 인상을 찡그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랬으니 학교 정문을 지키는 호위병들의 간이 콩알만 해 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차가 정문에서 멈추자 학교의 경비 체계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경비부장이 헐레벌떡 달려 나왔고, 선두 기사가 건넨 문서를 읽고는 달려왔을 때보다 더 창백해져서 교장실로 뛰어갔다.
“교장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경비부장은 노크를 하자마자 교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매너가 없는 사람을 싫어하는 올리비아의 인상이 구겨졌다.
하지만 쉰에 가까운 경비부장이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자 감정은 잠시 미루어 두었다.
“무슨 일이에요?”
“저, 저기…… 누가 찾아왔는데…… 아니, 이것 좀 보십시오!”
경비부장은 말로 설명하는 대신에 문서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올리비아는 긴장보다는 호기심에 문서를 들고 찬찬히 읽었다.
“하아…….”
서류를 다시 내려놓은 올리비아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 어떡하죠? 들여보낼까요?”
“당연히 그래야죠. 어떻게 내쫓을 수가 있겠어요? 이쪽으로 안내하세요. 저도 채비를 하는 대로 마중을 나갈 테니.”
“알겠습니다!”
경비부장은 인사마저 생략하고 후다닥 뛰어갔다.
올리비아는 뒤따라가서 잔소리를 퍼부어 줄까 싶었으나 그의 심정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아마도 오금이 저리고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터였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네.”
올리비아는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우려했던 일이 마침내 벌어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대단한 상대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긴……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런 기사를 보고.’
어쩌면 시로네에게는 잘된 일이지 않을까?
성향으로 봤을 때 오히려 질색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미래와 인생을 따졌을 때는 분명 축복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쨌든…… 나가 봐야겠지.”
올리비아는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교장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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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채 크기의 마차가 정원을 가로지르자 학생들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마차의 규모도 놀랍지만 병장기를 갖춘 무장 군인이 학교에 들어온 일은 처음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지?”
“어디 전쟁이라도 났나? 학교에 왜 기사들이 들어와?”
여기저기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기사들은 시선조차 주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학교의 중앙 건물이 있는 곳에서 마차가 멈췄다.
기사들은 수상한 낌새라도 나타나면 곧바로 발검할 듯 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댄 채 사위를 경계했다.
소문을 들은 학생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마침내 마차 주위에는 수백 명의 인파로 가득 찼다.
그럼에도 마차는 미동조차 없이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올리비아의 기별을 받은 알페아스가 먼저 마중을 나왔다.
하지만 학교의 전 교장이 등장했는데도 기사들은 경계의 기운을 거두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나요?”
알페아스는 제자들에게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했다.
올리비아의 기별을 받고서도 반신반의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자 예상을 초월하는 상황이었다.
금관으로 장식된 마차의 지붕에는 황금으로 조각한 사자상이 서 있었다.
대륙에서 사자의 상징을 사용하는 나라는 하나뿐이었다.
알페아스도 이제 막 달려온 참이기에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지만 저들이 왔다면 이유는 들어 보나 마나였다.
시로네.
킬라인이 저지른 실수가 결국 이러한 사태를 몰고 온 것이다.
‘아니, 이걸 사태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시로네에게는…….’
그 순간 마차의 문이 벌컥 열리며 눈매가 부리부리한 노인이 내려왔다. 기사들이 좌우로 길을 터 주자 고집스럽게 입을 앙다물고 걸어왔다.
노쇠하여 걸음걸이가 뒤뚱거렸으나 얼굴에 담긴 독기는 예사로운 인상이 아니었다.
기사들의 호위를 벗어난 그가 좌중의 학생들을 둘러보더니 강강하고 오만한 표정으로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냈다.
두루마리 또한 최고급 종이였고 황금으로 테가 둘려 있었다.
“나는 카즈라 왕국의 행정집무관이자 왕의 명을 받들어 행차한 사신 오르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