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28
도망치다가 뒤통수를 맞느니 차라리 직접 만나서 반응을 살피는 게 효과적이었다.
“안내하세요.”
“역시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관리는 시로네를 데리고 지하실로 갔다. 물품 창고가 밀집된 곳이라 유동 인구가 극히 적었고 확장 공사를 자주 해서인지 구획이 미로처럼 복잡했다.
도착한 곳은 최외곽이었는데, 벽에서 더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원래부터 존재한 방이 아니었다.
“이곳입니다. 들어가시지요.”
시로네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방이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횃불이 타오르는 사각형의 동굴이 뻗어있었고 15미터 앞에 또 하나의 문이 설치되어 있는 게 보였다.
이중 출입문.
장난삼아 이런 구조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납득할만한 이유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동굴의 절반 정도를 지날 무렵 관리가 문을 쿵 하고 세게 닫았다. 분명 누군가에게 기척을 전하기 위함이리라.
깜짝 놀라 멈춰 섰던 시로네는 다시 심호흡을 하고 두 번째 문을 열었다.
온통 하얀 방이었다.
도색을 한 것이 아닌 전체가 대리석이었고 벽을 따라 이어진 선반에는 각양각색의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다.
딱히 고급스러운 물건은 보이지 않았지만 지온의 성향을 알기에 오히려 위화감이 들었다.
지온과 우오린이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우오린을 보자 조금 마음이 놓였지만 그런 생각조차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왔군. 뭐 하고 서 있어? 어서 들어와.”
시로네는 선뜻 발을 옮기지 못했다. 지온과 우오린이 장난기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문 앞에서 계속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최대한 사방을 경계하며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느닷없이 바닥이 푹 하고 꺼지면서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윽! 뭐야!”
시로네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바닥이 푹신해서 충격은 받지 않았지만 지온과 우오린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리자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창피했다.
‘무슨 바닥이 이렇게 물러?’
엉금엉금 기면서 주위를 더듬어 보자 어떤 경계에서 단단한 바닥이 만져졌다.
“괜찮아요, 오빠? 장난쳐서 미안해요. 하지만 재밌었죠?”
우오린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선 시로네는 넘어졌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다른 바닥과 구별되는 특징은 없었다.
“이건 뭐야?”
“이에요.”
“어디서나…… 뭐?”
1. 적대적 우호 관계 (3)
우오린은 시로네가 넘어진 자리의 바닥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투명한 비닐이 쭉 하고 벗겨져 그녀의 손에 들렸다.
“짠! 바로 이거죠. 다시 바닥을 살펴보세요.”
시로네가 발로 눌러보자 넘어졌을 때하고는 달리 상식에 어울리는 대리석의 단단함이 전해져 왔다. 완전히 체중을 실어 두드려도 보았으나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신기하죠? 이것만 있으면 암석 지대에서도 낮잠을 잘 수 있어요. 심지어는 이런 것도 가능하죠. 잘 보세요.”
우오린은 키보다 높은 독수리 조형물로 걸어가 비닐을 씌웠다. 거짓말처럼 조형물이 가라앉으면서 평평한 바닥이 드러났다.
그녀는 치마를 누르고 뛰어올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폭신한 바닥에 엉덩이가 파묻혔다가 통통 튀었다.
행동은 유치하지만 시로네는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원인에 대해서 짐작이 가지 않았다.
과학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법도 아니었다.
시로네는 심각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로소 방에 있는 물건들이 고급스럽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우오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여긴 오브제를 수집하는 곳이에요.”
예상은 했지만 막상 입에서 나온 말을 듣자 현실적인 충격이 밀려들었다.
천국에서 2각 마라 바알브가 소유했던 수면의 오브제가 떠올랐다.
당시에도 그 기괴함에 몸서리를 쳤지만 지금의 충격은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여기 있는 게 전부 오브제라는 말이야?’
식기는 주방, 책은 서고 등 물건이란 기능에 따라 배치가 정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이곳의 물건들은 배치에 두서가 없었고 진열된 순서에도 일관성을 찾을 볼 수 없었다.
어림잡아 세어 보니 대략 50개가 넘는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륙을 지배하는 테라제 가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로네가 넋이 나가 있는 동안 지온이 다가왔다. 손에는 스피릿 학술지가 들려 있었다.
반응은 예상대로 냉소적이었다. 같잖다는 듯 입꼬리를 올린 그가 잡지를 들이밀며 말했다.
“천재적인 마법사 지망생이라지?”
시로네는 대꾸조차 하기 싫었다.
“물론 마법은 대단한 힘이지. 나도 인정해. 하지만 말이야, 그런 능력도 오브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카즈라 왕성에서 근무하는 3급 대마법사 연봉이 대략 3천만 골드야. 여기 있는 물건 하나를 팔면 대마법사 몇 명을 고용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결국 왕족의 개에 불과하다는 거야. 지배자의 재능은 마법 따위로 정해지는 게 아니거든.”
지온은 스피릿 잡지를 시로네의 눈높이에 들고 떨어뜨렸다. 그리고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잡지를 밟으면서 시로네를 지나쳐 뒤로 돌아갔다.
“좋겠어, 3일 후면 제1왕자가 될 수 있으니. 어때? 벌써부터 왕이라도 된 기분인가?”
친자 확인 검사가 끝났으니 귀족들의 눈치 싸움이 더욱 가열될 것은 자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권력의 핵심인 지온이 시로네의 심리 상태를 확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나는 관심 없어. 결과만 나오면 집으로 돌아갈 거야.”
“흥, 그러시겠지.”
지온은 믿지 않았다.
세상의 누가 왕의 자리를 마다하겠는가?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아직 권력의 단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력은 인간이 갈구하는 모든 종류의 쾌락을 보장한다.
일단 제1왕자가 되면 시로네가 얼마나 인격 수양이 되어 있든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고한 척 연기해 봤자 소용없어. 여기는 왕성이니까. 특히나 나에게 그런 수작은 안 통한다고.”
지온은 을 우오린에게서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런 장난감 같은 물건 하나면 네가 다니는 마법학교를 통째로 살 수도 있어. 한순간에 내가 너의 스승이 되는 거야. 너의 스승은 내 가랑이 사이를 기어야 할 테고. 그런데 뭐? 왕좌에는 관심이 없다고? 내가 그 말을 믿을 거 같아?”
시로네는 지온이 지극히 사물적인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학교를 다니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닌 그 안에 담긴 무형의 가치를 얻기 위해서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 억 단위에서 논다는 얘기인데, 그것을 고작 애들 장난감으로 치부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상식을 깨는 오브제의 능력은 쓰임에 따라 얼마든지 값어치를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정령의 정수’를 보관한 금고를 은폐한다면 어떨까?
오브제가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세계에서 17개(불 2, 물 3, 바람 5, 흙 7)밖에 없는 정령의 정수에 비하면 빵값도 되지 않는다.
일단 장착하면 해당 속성의 마법을 시전하는 것은 물론 동일 속성의 마법을 100퍼센트 막아 낼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는 소규모 왕국 예산을 뛰어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세상에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자들이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고, 그들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지출을 아끼지 않을 터였다.
테라제의 가문 정도면 재미로 사들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수집가적 욕구에 의해 오브제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건 지온의 착각에 불과했다.
“내 생각에 은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게 좋겠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냄비 받침으로 쓰는 자에게는 쓸모가 없는 법이니까.”
“하하! 그게 바로 왕족의 특권이지. 좋은 책? 황금이라도 냄비 받침으로 써 주지.”
시로네는 이를 악물고 분을 삼켰다. 태생부터가 다르니 사소한 것에서도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됐어. 할 얘기 끝났으면 돌아가겠어.”
더 머물러 봤자 감정만 상할 것이기에 문으로 향하는데 우오린이 달려와 소매를 잡아끌었다.
“잠깐만! 저도 시로네 오빠에게 볼일이 있단 말이에요.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요. 이쪽으로 와 보세요.”
시로네도 우오린이라면 단호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우선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고, 오만한 왕족들 사이에서 자신을 지지해 준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테라제의 딸이었다.
“빨리, 빨리요. 이쪽으로.”
시로네가 우오린에게 끌려가자 지온이 비웃음을 지었으나 실상 그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오린이 볼일이 있다고 하자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여동생의 뒤를 따르는 것만 봐도 그랬다.
시로네를 테이블에 앉힌 우오린은 작은 상자를 들고 왔다.
허름한 사각형 나무틀에 내부가 반구형으로 함몰되어 있는 구조였다. 중앙에는 손때가 묻은 화살표 모양의 지침계가 박혀 있었는데 손가락으로 튕겨서 돌리는 룰렛인 듯했다.
“이건 이라는 오브제예요. 하루에 한 번 선물을 놓고 가요.”
어린애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이지만 시로네는 마치 주어나 목적어가 없는 것처럼 핵심적인 무언가가 빠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후후, 이상하죠? 처음에는 다 그래요. 오브제는 상식을 벗어나는 범주에 있는 물건이라서 을 접할 때는 말이 안 되는 경우가 좀 많거든요.”
“그러네. 가장 이상한 건 놓고 간다는 말이야. 대체 누가? 이건 그냥 물건이잖아.”
“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요. 일단 가 성립되려면 중력이 필요하죠. 또한 는 하지만 것은 아니에요. 따라서 안에서도 밖에서도 관찰할 수 없는 공간이 있어야 해요.”
시로네는 이곳의 출입문이 이중 구조인 이유를 깨달았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제3의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 그리고 .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하루에 한 번 선물을 줘요. 여기 룰렛을 자세히 보면 네 가지 색상으로 구분되어 있죠?”
시로네는 우오린이 가리킨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상당히 오래된 물건인지 색칠이 벗겨져 있었지만 명도가 달랐다. 영역의 크기는 제각각이었고, 안쪽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희미해서 보기가 힘들었지만 토르미아 언어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우오린이 네 가지 영역을 하나하나 짚으며 설명했다.
“여기 적힌 글자는 동부 산맥 지대의 집시들이 쓰는 언어예요. 번역하면 소박한 선물, 느낌 좋은 선물, 과도한 선물, 기적이에요. 라디안 값을 측정한 결과 소박한 선물이 대략 75퍼센트, 느낌 좋은 선물은 20퍼센트, 과도한 선물이 4퍼센트, 기적이 1퍼센트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요.”
“흐음…….”
소박한 선물이 75퍼센트나 된다는 것은 선물의 차등이 꽤나 높다는 얘기다. 4퍼센트 확률의 과도한 선물도 기대가 되지만 기적은 무엇인지 더욱 궁금했다.
하루에 한 번만 돌릴 수 있으니 단순 계산으로는 100일 안에 기적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확률의 개념을 따졌을 때는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릴 수도 있었다.
시로네는 손끝이라도 닿을까 조심스럽게 룰렛의 지침계를 가리켰다.
“이 화살표를 돌리면 되는 건가?”
“네. 그래서 오빠가 오기를 기다린 거예요.”
“응? 나를?”
“한번 돌려 봐요. 여기서 나온 선물은 오빠에게 줄게요.”
예상치 못한 말에 시로네는 눈을 깜박거렸다.
우오린 정도의 재력이라면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도 물심이 생기지는 않을 테지만 무엇이 걸릴지 모르는 이상 남에게 선뜻 양보할 성질도 아니었다.
“확률이라…….”
어쨌거나 오브제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시로네도 딱히 선물에 욕심은 생기지 않았다. 다만 어떤 선물이 나올 것인지는 굉장히 궁금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오브제의 가치가 아닐까?
선물을 상상하면서 느끼는 두근거림.
그런 의미에서 은 인간 심리를 굉장히 잘 파악한 유희 도구였다. 다른 도박과 다르게 실패가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소박한 선물은 보장이군. 그럼 내가 한번 해 봐도 될까?”
“물론이죠. 저야 매일 하는 건데요.”
우오린은 흔쾌히 승낙하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지침계의 끝을 손가락으로 튕기면 돼요. 실험한 결과 열 바퀴 이상 돌지 않으면 무효 판정이 나더라고요. 그렇다고 하루의 기회가 박탈되는 건 아니니까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오호, 그렇구나.”
시로네는 흥미롭게 눈을 빛냈다.
어째서 반드시 열 바퀴 이상을 돌아야 하는가? 회전수의 제한이 없다면 지침계를 살며시 미는 것만으로 기적을 맞힐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신기하다. 사물인데도 마치 규정외식처럼 룰이 걸려 있네.’
그 순간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어쩌면 계속 기적에 걸리게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자 우오린도 시로네처럼 눈을 빛냈다.
하나의 사물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안목은 오브제 컬렉터의 필수 조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로네는 수집가의 기질이 다분했다.
“역시 마법사라 다르네요. 감각을 조절해서 정확히 3,600도를 돌리면 된다는 거죠?”
“맞아. 아니면 전문 도박사를 고용하거나. 룰렛의 감도를 느끼고 힘을 조절하면 언제나 같은 값을 낼 수가 있잖아.”
“좋은 생각이에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불가능해요. 이미 해 봤거든요. 아마도 룰렛을 돌리면 특정한 난수 변환을 통해서 위치가 결정되는 것 같아요.”
“흐음, 그 말은 이 확률을 조종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기적이 1퍼센트라는 것도 속임수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공정한 도박이 아닐 텐데?”
도박을 하는 오브제라면 최소한 확률은 공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초부터 확률을 실험할 인터페이스를 갖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오린은 시로네에게서 진한 동질감을 느꼈다.
사실 그녀는 시로네 외에도 여러 사람에게 룰렛을 돌려 보게 했다. 하지만 대부분 오브제의 성질에 매료되기보다는 자신이 받을 선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룰렛 앞에서 값비싼 선물이 나오기를 기도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짜증이 나서 나가 버린 적도 있었다.
오브제 수집가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하나는 흥미로운 오브제이고 또 하나는 그 오브제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관객이다.
지온은 괜찮은 오브제를 가끔 구해 주기는 하지만 안목에 있어서는 영 꽝이었다.
1. 적대적 우호 관계 (4)
하지만 시로네는 달랐다.
그녀의 생각에 은 물질의 가치보다는 선물의 기대감을 매일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브제를 탐구하는 시로네의 성향은 처음 을 손에 넣었을 때의 자신의 모습과 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맞아요. 그래서 저도 스키마의 초고수를 초빙한 적이 있어요.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세계적인 프로 도박사였죠. 10일 동안 같은 힘으로 10회 가격했는데 결과는 매번 달랐어요. 하지만 저는 이게 여전히 도박으로써 유효하다고 봐요.”
“어째서? 다른 특징이라도 발견한 거야?”
지온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하품을 했다.
물론 그도 오브제의 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머리 아픈 일은 아랫것들에게 시키면 된다. 왕족은 그저 오브제를 구입하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오린의 시선은 오로지 시로네에게 향해 있었다.
“바로 통계 때문이죠. 제가 이 룰렛을 손에 넣은 건 정확히 1,003일 전이에요. 즉 오늘을 제외하고 1,002회 돌렸죠. 그중에 기적은 두 번 나왔어요. 소박한 선물이 823회, 느낌 좋은 선물이 171회, 과도한 선물이 6회예요.”
시로네는 우오린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아하, 확률과 통계가 얼추 일치하네. 그렇다면 변수는 공정하다고 봐야겠지. 어쩌면 그 변수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거나……?”
우오린이 시로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바로 그거죠! 통계가 확률을 따른다는 건 속임수는 없다는 거예요. 따라서 이 오브제는 여전히 도박의 도구로써 가치를 갖고 있는 셈이죠.”
시로네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통계로 봤을 때 공정한 룰은 존재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도박사조차 같은 값을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이 조절할 수 없는 영역에서 발동하는 변수라는 얘기였다.
“극도로 예민한 센서인가, 근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네. 전문가들의 의견도 그래요. 양자 레벨의 오차일 거라고 하더라고요.”
양자 레벨이라.
확실히 원자보다 가벼운 전자의 무게를 근육의 힘으로 조절하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보기에는 유치해도 극도로 정밀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시로네는 전보다 자세히 을 살폈다.
겉으로는 그저 오래된 골동품 같았다. 투박한 목제 케이스. 미니어처 피에로가 웃고 있고 반구형의 표면에는 유치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문득 집시촌의 어린아이들이 룰렛을 돌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평소라면 흐뭇한 광경이겠지만 지금은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기적이 나오면 어떤 선물을 주는 거야?”
우오린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건 알려 드릴 수 없어요.”
시로네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혀를 삐죽 내밀며 귀여운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헤헤, 농담이에요. 미리 말해 주면 재미없잖아요. 아이 참, 이제 얼른 돌려 봐요.”
“음, 그럴까?”
시로네도 분석을 멈추고 실전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손가락을 튕겨 보지만 어차피 인간의 힘으로 통제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운에 모든 걸 맡기는 것이다. 즐거움만이 기다리고 있는 유치한 미래를 향해.
“그럼 시작한다.”
시로네는 지침계의 끝에 손가락을 대고 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