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29
티리리리. 장난감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를 내며 화살표가 돌아갔다.
우오린은 눈을 빛내며 쳐다보았다. 이번만큼은 지온도 흥미가 동하는지 팔짱을 끼고 룰렛에 시선을 고장시켰다.
지침계가 멈추자 우오린이 테이블을 때리며 벌떡 일어났다.
“우와! 과도한 선물이다! 이건 4퍼센트 확률인데!”
시로네는 낮은 확률에 당첨되었다는 기쁨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룰렛은 에 따라 정확히 돌아갔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되는가?
똑똑!
시로네는 노크 소리에 문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이상의 인기척은 느낄 수 없었다.
“왔다! 오빠, 빨리 나가 봐요!”
시로네는 빠르게 문으로 걸어갔다. 반면에 문을 열기까지는 꽤나 오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사각형의 동굴에 횃불이 타오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인기척은커녕 날파리 하나 돌아다니지 않았다.
시로네는 을 떠올리고 바닥을 살폈다. 붉은 리본으로 장식된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다.
덩그러니 나타난 선물을 보자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
이곳은 밀폐된 공간이다. 첫 번째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노크를 했을까?
“오빠, 빨리 보여 줘요. 궁금하단 말이에요.”
우오린이 재촉하자 시로네는 찜찜한 심정으로 선물을 챙겨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지온과 우오린이 거북이처럼 목을 빼고 살폈다.
“오빠 거니까 오빠가 풀어 봐요.”
붉은 리본을 잡아당기자 스르륵 하고 사각 묶음이 저절로 풀렸다.
낭만적인 광경이었지만 시로네는 마치 폭발물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선물을 다뤘다.
“응? 이게 뭐지?”
선물 상자에는 도자기 인형이 들어 있었다.
흑발의 머리가 발목까지 내려온 3등신의 여아였다. 속눈썹이 길었고, 보석으로 가공한 눈동자는 실제 사람의 눈처럼 생겼다.
딱히 괴기스러운 형태는 아니지만 시로네는 손조차 대기 싫어질 정도로 혐오감을 느꼈다.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지점은 생소한 것과 익숙한 것의 중간 지점이라고 한다.
도자기 인형도 마찬가지였다.
비율도 엉망이고 생기도 없지만 머리카락과 속눈썹, 눈동자가 사람과 똑같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자아냈다.
반면에 우오린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흥미를 드러냈다.
“어라, 이거?”
자신도 모르게 인형에게 손이 나간 우오린은 멈칫하더니 시로네의 눈치를 보았다. 선물을 준다고 해 놓고 관심을 보이면 부담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로네는 흔쾌히 양보했다. 솔직히 쳐다보는 것조차 싫었다.
“괜찮아. 나는 뭔지 모르니까 네가 살펴봐.”
우오린은 표면에 금이라도 갈까 봐 조심스럽게 인형을 꺼냈다.
지온이 시선으로 그것을 따라갔다.
인형에 조예는 없지만 저건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도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구해 준 적이 있는, 여동생의 주요 컬렉션이었다.
“엘 크라우치의 무접합 관절 인형이군.”
“응? 엘 크라우치?”
우오린은 천장의 조명에 인형을 비추고 도자기 얼굴의 내부를 살폈다. 역시나 접합한 흔적이 없는 진품이었다.
확신을 가진 그녀가 뒤늦게 말했다.
“엘 크라우치는 인형 제작자예요.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죠. 크라우치의 유품은 열두 점밖에 공개되지 않았는데 모두 주인이 있어요. 저도 네 점을 소유하고 있고요. 한마디로 이건 미발표작인 거죠. 경매에 내놓으면 최소 1억 골드부터 시작할 거예요.”
“뭐? 1억 골드?”
시로네의 눈이 똥그래졌다.
토르미아 왕국 평민 가정의 1년 생활비가 대략 100골드였다. 더군다나 가난한 시로네의 집은 오젠트 가문의 집사로 들어가기 전까지 50골드로 1년을 난 적도 있었다.
평민이 아닌 마법사의 수입으로 따져도 엄청난 액수였다.
이제 막 프로에 입문한 마법사의 연봉은 4천 골드 정도이고, 공인 6급의 마법사라도 평균 연봉은 20만 골드를 넘기지 않는다. 한마디로 시이나 선생님이 뼈 빠지게 500년 동안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중진으로 분류되는 5급 이상부터는 실력에 따라 연봉이 천차만별이지만 카즈라 왕성의 3급 대마법사의 연봉이 3천만 정도인 것으로 봤을 때 1억이라면 어떤 귀족이라도 눈빛이 달라지는 액수였다.
‘가만, 그러고 보니…….’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엘 크라우치의 유품이 선물로 선정될 수가 있을까?
예술가의 작품이라면 엄연히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이다. 미리 선물을 준비한 다음에 주는 게 아니라면 특정 공간의 사물을 순식간에 이동시켰다는 얘기가 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오브제니까요. 과도한 선물은 희소성의 가치를 판단해요. 한 번은 사람 얼굴처럼 생긴 심해어가 도착한 적도 있어요. 곧바로 죽어 버렸지만요. 과도한 선물이 반드시 비싼 물건이라는 보장은 없어요. 그런 측면에서 엘 크라우치의 인형이면 물질적으로는 굉장한 이득이죠. 이건 팔 수도 있으니까요.”
우오린은 시로네의 눈치를 살폈다.
“저기, 그래서 말인데…….”
시로네는 듣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벌써 인형을 네 점이나 모았다고 했다. 타인이 보기에는 흉측하지만 마니아라면 이보다 사랑스러울 수 없을 터였다.
“갖고 싶으면 가져. 이 정도야 선물로 줄 수 있지 뭐.”
“네? 아, 아뇨! 그럴 필요까지는! 저는 그냥 이걸 1억에 사려고 했거든요. 하지만 오빠는 이런 거래를 싫어할 것 같아서…….”
왕성에 초대된 첫날 엘리자가 시로네의 부모님에게 성을 사 준다고 하자 성질을 냈던 것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하하! 맞아. 돈은 필요 없어. 그냥 가져가도 돼. 어차피 오브제도 네 것이잖아.”
1억 골드라면 시로네도 선뜻 버리기 아까운 금액이었다.
하지만 양보의 대상이 카즈라의 최고 권력자인 우오린이라면 포기할 가치가 있었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목숨값보다 비싸지는 않을 테니까.
예상대로 지온이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친오빠와 왕좌를 두고 다투는 라이벌에게 어쩌자고 빚을 진단 말인가? 아무리 철이 없다지만 이번에는 생각이 너무 짧았다.
‘아니, 정말로 그럴까?’
지온의 머릿속에 문득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우오린은 오빠의 말을 잘 따르는 여동생이다. 테라제의 직속 후계자이면서도 한 번도 자신을 무시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이상했다.
시로네와 만날 장소를 정한 사람은 우오린이었다.
물론 그녀는 오브제를 자랑하기를 좋아하니 갤러리를 선택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하고 많은 오브제 중에서 왜 하필 이었을까?
‘가장 확률적인 오브제이기 때문에…….’
시로네가 75퍼센트의 소박한 선물에 걸렸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일이다.
하지만 결과는 무려 4퍼센트의 과도한 선물.
게다가 선물은 우오린이 그토록 아끼는 엘 크라우치의 도자기 인형이었다.
‘우오린은 아무에게나 빚을 지는 바보가 아니야. 어쩌면 시로네의 확률을 시험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와 시로네 사이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건데…….’
상상만으로도 목이 타들어 갔다.
망상이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다.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시로네가 4퍼센트의 확률에도 당첨되는 마당인데 우오린이 을 선택한 게 우연이 아닐 건 뭐란 말인가?
게다가 그녀는 테라제의 딸이다. 모르는 척해도 패왕의 야망이 없지는 않을 터. 시로네가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카즈라의 정권을 쥐고 있는 친오빠를 배신할 만큼 머리가 비어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아아, 정말 예쁘다. 고마워요, 시로네 오빠.”
시로네는 도자기 인형을 끌어안고 즐거워하는 우오린을 바라보며 오빠들이 여동생을 챙기는 이유를 알았다.
하지만 흐뭇한 미소는 이내 걱정스럽게 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브제는 정상적인 물건이 아니었다.
“우오린, 앞으로 이 룰렛은 돌리지 않는 게 좋겠어.”
“응? 어째서요?”
시로네는 을 찝찝하게 바라보았다.
“말이 되지 않아. 어떤 마법도 등가교환의 원칙을 어길 수는 없어. 규정외식조차 정신적 등가교환의 일종이란 말이야. 반면에 오브제는 너무 기괴해. 이런 식으로 계속 선물을 얻는다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될 수도 있어.”
우오린은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신중한 동작으로 도자기 인형을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는 효력이 떨어진 의 지침계를 톡톡 튕겼다.
“흐음,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의 어떤 것도 100퍼센트 안전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오브제로 사망하는 빈도보다 부엌칼로 사망한 빈도가 더 많다는 거죠.”
“하지만 오브제 사용자는 부엌칼 사용자보다 적잖아. 10명 중 1명이 죽는 것과 100명 중 10명이 죽는 건 달라. 숫자로만 따질 수는 없어. 게다가 들어 보니 오브제로 죽는 사람도 분명 있는 것 같은데?”
우오린은 을 시로네에게 내밀었다.
“이 오브제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건 240년 전이에요. 그리고 이 물건을 소유한 사람 중에서 몇몇은 실제로 비참한 죽음을 맞았죠.”
1. 적대적 우호 관계 (5)
“행운과 불행의 등가교환?”
“아뇨. 오브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예요. 의 첫 번째 주인은 하류층에 사는 구두장이였대요. 아마 큰돈을 벌었을 거예요. 하지만 강박을 이겨 내진 못했어요. 소박한 선물에 걸린 날은 극도로 우울해졌대요. 그런 날은 100일 중에 75일이었죠. 결국 정신 질환이 생겨서 하루 종일 룰렛만 돌리고 있다가 미쳐 버렸다고 해요.”
인간이 확률에 빠졌을 때 생기게 되는 현상이었다.
실제로 도박에 중독되어 막장까지 내려간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확률 싸움에서 이겼을 때의 쾌감이었고, 돈은 그것을 얻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은 어느 귀족의 손에 넘어갔어요. 돈이 모자라서 룰렛만 바라보는 부류는 아닌 셈이죠. 그런데 어느 날 기적에 당첨된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우오린은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가문이 망해 버렸죠.”
“망해? 어째서?”
“기적에 걸리면 오브제를 줘요. 귀족이 받은 오브제는 라고 불리는 작은 돌인데, 그것과 접촉하면 사용자의 상상이 반경 20미터 내에 현실로 나타나죠. 를 얻은 귀족은 매일 상상에 심취했어요. 오빠도 알잖아요. 그 왜, 인간의 욕망이라는 게…….”
말로 하기 민망한지 우오린이 검지를 휘저으며 혀를 쯧 하고 찼다.
시로네는 곧바로 이해했다. 또한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망을 갖고 살기 마련이고 상상을 통해 현실과의 균형을 이룬다.
문제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렸을 경우였다.
“어쨌든, 그래서 망해 버렸어요. 그리고 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났죠. 지금도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인기가 있어요. 하지만 오래는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한 달 만에 경매장에 돌아온 경우도 있거든요. 물론 오브제가 위험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문제이지 오브제의 문제는 아니에요. 실제로 의 소유자 대부분이 안락한 생활을 했고요.”
그렇다면야 시로네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기분은 더 이상해졌다.
딱히 위험하지도 않다면 오브제는 대체 무엇일까? 어째서 이런 물건이 세상에 돌아다니고 있는 것일까?
시로네는 로 눈길을 돌렸다.
오브제가 오브제를 낳는다는 것은 컬렉터의 입장에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독히 파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오브제 생산에 한도가 없다면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세계는 멸망하고 말 터였다.
그렇게 생각을 털어놓자 우오린도 일정 부분은 동의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죠. 비록 우리 세대에서는 아니지만.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오브제라고 해도 내구력이 다른 물건보다 튼튼한 건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 파손될 수밖에 없죠. 현재까지 기적에 걸려서 나온 물건 중에 가장 위험한 건 예요. 큐리아 경매에서는 를 A급으로 분류하고 있어요. 도 A급이고요. 아마도 등급 이상의 선물을 줄 수는 없나 봐요.”
큐리아는 세계적인 경매 회사로, 일전에 네이드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로네는 그것보다는 다른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은 자신의 등급 이상의 선물을 내놓지 못한다. 언뜻 그럴듯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등급은 경매 회사가 정하는 건데 오브제가 기준을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우연의 일치 아닐까? 240년이나 됐어도 기적에 걸리는 빈도수는 낮아. 거기에 A급이 나올 확률까지 따지면 통계를 내기에는 자료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그럴 수도 있지만…….”
우오린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말을 흘렸다. 시로네의 생각은 분명 상식적이지만 무려 40개 이상의 오브제를 개인 소유할 정도가 되면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새로운 정보들을 얻게 되기 마련이다.
그중의 하나가 큐리아 경매 회사에서 발급하는 VIP 회원 카드였다. 카드의 뒷면에는 주의 사항이 적혀 있는데, 거기에 보면 제1항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오브제는 사용자에게 100퍼센트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회원들은 제1항을 보고 큐레이터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그러면 큐레이터는 오브제의 발생 원리를 추측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알려 주는데, 그 얘기를 들어 보면 제1항의 경고가 단순한 협박성 문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오린은 여기에 대해서만큼은 말을 아꼈다.
큐리아의 VIP 회원은 단순히 돈만 많다고 가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브제에 대한 동맹자적 의식이 있어야 한다.
VIP 회원이 아닌 자에게 특권을 남용하는 건 오브제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위였다.
그렇다고 놀이를 멈추는 건 테라제의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기에 우오린은 시로네에게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주었다.
“이쪽으로 와요. 다른 오브제도 보여줄게요.”
우오린은 시로네를 선반으로 안내했다. 가장 먼저 소개한 것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돋보기였다.
“이건 이라는 오브제예요. 사람의 맨살을 보여 주죠.”
“옷을 투시한다는 거야?”
“네. 하지만 5센티미터 거리 안에서만 효과가 나타나요.”
우오린은 에잇 하면서 시로네의 하체 쪽을 비추었다.
을 이미 들었음에도 시로네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꼬았다. 그러자 우오린이 혀를 쏙 내밀고는 돋보기를 건넸다.
“헤헤, 오빠가 한번 해 봐요.”
시로네는 돋보기로 팔을 비추었다.
처음에는 옷감이 확대되어 보일 뿐이었으나 가까이 가져다대자 맨살이 드러났다.
“신기하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대놓고 보는 게 낫겠어.”
“맞아요! 여자를 훔쳐본다면 곧바로 붙잡히겠죠. 그래서 아닐까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거 쓰기에 따라서는 유용할 거야. 갑옷도 투시가 될 것 같은데, 그러면 검문할 때도 쓸 수 있고.”
시로네는 을 돌려주었다.
“어떤 원리지? 투시라니.”
“아직 확인은 안 해 봤어요. 오브제의 능력이 꼭 물건의 기능에 따르는 건 아니라서 손잡이나 테의 능력일 수도 있어요. 사실 높은 등급의 오브제는 아니에요. 어쩌다 구입했는데 그냥 개수나 맞추려고 가지고 있는 거죠.”
시로네가 생각하기에도 에 비해서는 급이 떨어지는 듯했다.
다음으로 우오린이 소개한 오브제는 책장이었다. 저명한 학자들의 저작물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이건 지온 오빠 거예요. 라는 오브제죠. 이 책장에 책을 꽂아 두면 책을 읽지 않아도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와요. 카즈라 조판으로 대략 백스물네 권의 책을 꽂을 수 있죠. 단, 책장에서 책을 빼내면 기억도 사라지니 유의할 것.”
시로네는 황당했다. 책을 꽂아 두기만 하면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온다는 것은 과는 다른 종류의 충격이었다.
“책장이 어떻게 사람의 머리와 연결될 수 있는 거지?”
“음, 그건 의외로 간단해요. 오브제 중에 어떤 것들은 사용자에게 귀속되는 성향을 갖고 있거든요. 이것을 경매에서는 이라고 불러요. 한마디로 는 오브제라 지온 오빠에게 귀속되어 있는 상태예요. 이건 큐리아 경매 기준으로 B급이죠.”
시로네는 황홀하게 를 살폈다.
다른 것들은 몰라도 이 만큼은 정말이지 갖고 싶었다. 컬렉터들이 오브제에 빠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오린은 그 외에도 여러 오브제를 소개해 주었는데 라는 이름의 머리띠는 장착하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1시간 동안 운동을 한다고 했다.
힘들지 않게 살을 뺄 수 있지만 추한 동작을 할 때가 많으니 가급적 방문을 잠그라는 이었다.
라는 오브제도 있었다. 적색과 청색을 띠는 한 쌍의 돌이었는데, 양손에 쥐면 아픈 부위가 수축하여 근육을 풀어 주는 기능이었다.
시로네가 직접 해 보니 상당히 시원했다. 팔, 다리, 어깨, 발목, 발바닥까지 동시에 안마가 들어가자 정신을 잃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비록 사람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아도 효과는 최고였다.
‘그래서 인가? 이건 아마도 D급 정도 되겠네.’
거기까지 생각한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여태까지 접한 오브제의 이름. 게다가 문외한인 자신조차 판단이 가능한 등급. 이 두 가지 사실이 오브제의 비밀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렇구나. 오브제는…….’
은 A급 이상의 오브제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중 하나의 가설을 따라야 한다.
오브제가 경매 회사의 기준을 알고 있거나, 오브제 자체에 가치가 정해져 있거나.
정답은 후자였다.
오브제는 태어날 때부터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기능들이 하나같이 인간의 욕망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연 발생한 물건이라고 보기에는 목적성이 너무 뚜렷하다는 것은 지적 존재의 인위적인 생산품이라는 뜻이었다.
예뻐지고 싶은 욕망, 지식을 얻고 싶은 욕망, 매일 선물을 받고 싶은 욕망, 상상을 현실로 이루고 싶은 욕망.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최상위의 욕망을 이루게 해 주는 는 누가 뭐라고 해도 A급 판정을 내릴 만했다.
‘그렇다면 S급은 뭐지?’
이 A급 이상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S급이 존재한다는 얘기였다.
시로네가 생각하기에도 그럴 공산이 컸다. 인간은 동물적 욕망도 있지만 고차원적인 열망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물적 욕망의 최고봉인 가 A급이라면 S급은 이성적 열망이 담긴 오브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후후. 조금은 감을 잡은 모양이네.’
시로네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자 우오린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맛에 오브제를 수집하는 것이다.
반면에 지온의 속은 타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