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30
우오린이 큐리아 경매의 VIP 회원 외에 누군가를 이렇게 오래 갤러리에 붙잡아 두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 자식이 감히…….’
지온에게 우오린은 여동생 이상의 존재였다. 그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왕족의 피보다 더.
‘왜지? 저 사생아 따위가 뭐라고 싸고도는 거야?’
지온의 들끓는 감정을 모른 채 시로네는 다른 물건들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지금 보니 가히 엄청난 재력이었다. 선반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오브제들은 C급이나 B급이 대부분이었지만 간간이 A급도 눈에 띄었다.
일국의 왕조차도 부릴 수 없는 사치였다. 테라제의 직계인 우오린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동쪽 선반을 전부 살핀 시로네는 북쪽으로 시선을 넘겼다. 하지만 그곳은 황량하게 비어 있었고 오로지 한 자루의 검만 전시되어 있었다.
“응? 우오린, 저 검은 뭐야?”
“이에요. 지온 오빠가 가장 아끼는 오브제죠.”
황금조차 하찮게 여기는 지온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라. 그런 것치고는 딱히 화려하지는 않았다.
오색 보화가 덕지덕지 붙은 것도 아니고 검집조차 없었다. 다만 묘하게도 사람을 매혹시키는 느낌이 있었다. 일반인의 감각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미세한 디자인의 차이가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평가도 손잡이 중앙에 박힌 보석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이 전해져 왔다.
마치 아르망이 부르기라도 하는 듯 저절로 발이 움직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북쪽 벽에 도착해 있었다.
천천히 손을 내밀어 검의 손잡이를 쥐려고 하는 순간 지온이 소리쳤다.
“그건 내 거야! 건들지 마.”
시로네가 놀라서 물러선 뒤에도 지온의 일그러진 표정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은 사용자에게 귀속되는 오브제다. 하지만 존재감이 너무나 강해서 때로는 다른 사용자에게 손을 내밀기도 한다.
사용자를 고르는 기준에 대한 정확한 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인이 있는 자리에서 다른 자를 유혹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이었다.
시로네는 정신을 차리고 지온에게 물었다.
“아,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그런데 이거 S급이지?”
“그건 알아서 뭐하게? 폐급도 못 사는 주제에. 빨리 내 검에서 떨어져. 어디서 사생아 따위가 왕족의 명품에 찝쩍대?”
시로네는 인상을 쓰며 돌아섰다. 아무리 이 S급 오브제라도 이런 얘기를 듣고도 관심을 가질 만큼 자존심이 없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온은 생각을 고쳤다. 차라리 잘된 일이 아닌가? 이 기회에 왕족과 산꾼의 격차를 보여 주는 것도 좋으리라.
1. 적대적 우호 관계 (6)
“좋아. 정 그렇게 궁금하다면 특별히 소개해 주지.”
“아니, 난 별로…….”
시로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온이 검이 있는 곳으로 손을 내밀었다.
“와라, 아르망.”
청명한 쇠의 울림이 방안에 퍼졌다.
시로네가 아르망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저절로 떠오른 검이 지온의 손으로 빨려 들었다.
검의 동선을 따라 다시 몸을 뒤튼 시로네는 급하게 동작을 멈췄다. 어느새 목에 칼날이 들어와 있었다. 차가운 쇠붙이가 진동하면서 고주파가 귓바퀴를 맴돌았다.
취미 생활을 방해받은 우오린이 골부림을 냈다.
“오빠!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넌 가만히 있어.”
이번만큼은 지온도 양보할 수 없었다.
시로네를 노려보자 절로 입술이 뒤틀렸다. 칼날이 목에 들어온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눈빛이 짜증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왜 그래? 갑자기 말이 없어졌군. 설마 내가 널 죽이기라도 할까 봐?”
시로네는 턱 밑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미 스피릿 존은 들어간 상태였다. 공감각을 통해서 전해지는 아르망의 성질은 실로 기괴했다.
이것은 정말로 검일까, 아니면 생물체일까?
“왜 대답이 없어? 천재적인 마법사라며?”
사람을 기습해 놓고 내뱉기에는 옹졸한 발언이었다.
물론 시로네는 지온의 반응속도보다 빠르게 순간 이동을 전개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공중을 비행하는 마검까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했다.
시로네의 침묵을 패배 승인으로 받아들인 지온이 폭소를 터뜨리며 검을 거두었다.
“하하하! 역시 안 되겠지? 내 예상이 맞았어. 잡지에 실린 기사 같은 건 전부 과대 포장된 거라고. 고작해야 학생 주제에 최고의 재능은 무슨…….”
우오린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볼멘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너무 심하잖아.”
지온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아르망을 던졌다.
시린 빛을 발하는 마검이 신속하고 은밀하게 원래의 자리로 날아가 기립했다.
시로네는 처음부터 검을 지지하는 받침대가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왜 너를 죽이지 않는지 알아? 그럴 가치도 없기 때문이야. 내가 아니더라도 너를 싫어하는 자들은 왕성에 얼마든지 있다고. 아마 느꼈을 텐데? 오늘 아침에 말이야.”
시로네는 지온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침이라면 친자 확인 검사로 바빴고 그것 말고는 특이할 게 없었다.
굳이 꼽자면 레이나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정도?
하지만 그쪽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면 이미 왕성에 소문이 퍼졌어야 정상이었다.
“무슨 소리야? 오늘 아침이 어쨌다는 건데?”
그러자 이번에는 지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비록 재수는 없지만 시로네가 멍청하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법정대리인인 레이나가 시로네에게 가는 정보를 사전에 차단했다는 얘기였다.
‘흐음, 그쪽도 보통내기가 아니군.’
가주가 아니라고 해서 만만히 봤는데 예상보다 수완이 좋은 여성이었다. 하긴, 그렇기에 오젠트 가문에서 보낸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간밤의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적이지만 탁월한 판단이었다.
“흥, 이제 보니 너 정말 불쌍한 놈이구나. 결국 아군도 너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거야. 어젯밤의 일을 모르는 건 왕성에서 너밖에 없을 거다.”
시로네가 울컥하며 따지듯 말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잖아?”
지온의 말을 들어 보면 레이나는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자신이 모를 수가 있는가?
전력 외 통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에이미조차 보내지 못할 사정이 무엇인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됐어. 내가 직접 가서 물어보겠어.”
지온에게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한 시로네가 문으로 걸어가는데 여태까지 듣고 있던 우오린이 입을 열었다.
“아마 가 봤자 만날 수 없을 거예요. 간밤에 숙소를 옮겼다고 들었거든요.”
시로네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우오린을 돌아보았다.
이것 또한 처음 듣는 얘기였다. 대체 자신의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옮겼다고? 어디로?”
“그건 저도 듣지 못했어요. 오빠의 법정대리인이 새벽에 발설 금지 조항을 추가했어요. 아마도 알현실에 가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최고 권력자에게 직접 가서 물어보라는 얘기였다.
게다가 발설 금지 조항이라니. 막강한 효력을 지닌 외교 수단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약자인 레이나의 입장에서는 공격적 대응을 한 셈이었다.
비로소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시로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갤러리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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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네가 떠난 갤러리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지온은 우오린을 흘겨보았다. 공간을 관통하는 짜르르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그저 차를 마시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이대로 1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을 것이다. 여동생은 그런 여자였다.
“너, 도대체 누구 편이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편이라니?”
우오린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온은 결국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어째서 시로네에게 잘해 주는 거야? 저 자식은 내 적이라고! 그것도 왕위를 가로채려는 적! 그러면 당연히 너는 나를 도와주어야 하잖아!”
노골적인 요구에 우오린은 부담스러웠다.
“오빠야말로 왜 그래? 우리 여태까지 이런 이야기 나눈 적 없었잖아. 설마 그런 걸 바라고 나에게 잘해 준 거야? 내가 테라제의 딸이라서?”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지온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여동생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치욕적인지 세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사실 그녀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도움이 된다.
우오린의 친오빠라는 명함만 내밀면 어떤 귀족이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막강한 화력으로 여태까지 숱한 난적들을 제거해온 그였다.
아마도 우오린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거기에 대해서 말을 꺼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하지만 그것이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자신의 등을 찍을 줄이야.
‘쳇!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지온은 서러운 마음에 돌아서서 콧김을 씩씩 불어제쳤다.
다시는 말도 걸지 않을 듯한 분위기에 우오린은 한숨을 내쉬더니 토라진 오빠의 등을 쓰다듬었다.
“아이, 참. 알았어. 나라고 아무 생각도 없겠어? 그냥 우리 사이에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어색해서 그런 거야. 왕족이 갈라서는 이유 중의 1순위가 이거란 말이야. 어차피 이곳에서 오빠를 위협할 사람은 없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야?”
지온도 문득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시로네는 연고도 기반도 없는 사생아일 뿐이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알량한 마법사회의 평판뿐. 대천사의 능력? 이곳은 대마법사도 득시글거리는 왕성이었다.
“알았어. 내가 속이 좁았어. 미안해.”
지온은 곧바로 태세를 변환했다. 여동생이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우오린은 평소에 지온이 듣고 싶어 했던 말들을 몇 가지 더 해주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입이 귀에 걸린 지온과 달리 그녀는 지쳤다는 듯 차를 따르다 말고 천장을 향해 긴 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여튼 남자들이란.’
2. 양자택일의 함정 (1)
시로네는 행정부서를 찾아가 알현을 신청했다.
10분 만에 허가가 떨어졌다. 지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른 일 처리였다.
알현실에 도착하자 근위기사가 문을 열어 주었다. 의복을 갖춘 오르캄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르려고 하던 참이었다. 이쪽으로 오거라.”
시로네는 오르캄프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오르캄프가 질문을 받기도 전에 대답했다.
“가족의 숙소는 별관으로 옮겼다. 관리에게 안내를 해 달라고 하마.”
빠른 해명이 마치 변명처럼 들렸다.
하지만 고작 숙소를 알기 위해 왕을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시로네가 알고 싶은 건 그보다 더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제가 모르고 있는 게 대체 뭐죠?”
오르캄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왕이라는 것은 결국 막다른 자리다. 레이나는 어려운 질문에서 도망칠 수 있었겠지만 그는 도망칠 수 없었다.
“어제저녁부터 새벽까지 다섯 건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 음독이 세 건, 자객이 두 건이다. 가족들에게 들어가는 음식에서 치사량의 독이 검출되었지. 새벽에는 왕족의 아파트에서 1시간 간격으로 자객이 붙잡혔다. 자결을 하는 바람에 배후를 캐지는 못했지만 너를 노렸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지.”
시로네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암살은 사람이 저지르는 일이다. 하지만 의외성이 너무나 강해서 마치 자연재해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째서 우릴 죽이려고 하는 거죠?”
“무슨 뜻이지? 설마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다.
물론 방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왕성에 도착한지 2일 만에 적들이 행동에 옮길 것이란 확신을 갖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모르겠어요. 제1왕자 후보의 암살은 중범죄예요. 만약 배후가 밝혀졌다면 가문이 멸망해도 모자란 일이라고요. 그런 중대사를 고작 2일 만에 해치운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요?”
“그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느냐? 아니, 시로네. 오히려 이것은 아주 합리적이고 영리한 판단이야. 생각의 맹점을 찌르는 것이지.”
“생각의…… 맹점?”
“암살자는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어쌔신과 히트맨. 정통파인 어쌔신의 격언 중에 이런 게 있지. ‘사람이 죽이는 게 아니라, 상황이 죽이는 것이다.’ 검은 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상황은 피할 수 없어. 어차피 너를 죽여야 한다면 어제야말로 최고의 적기였던 셈이다.”
시로네는 생각의 오류를 바로 잡았다.
암살의 위험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지금?’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어쌔신은 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상황을 유도하는 데 달통한 자들이다. 그렇기에 왕성에서는 100명의 호위보다 1명의 어쌔신이 더 무서운 법이지. 놈들은 생각의 맹점을 찌른다. 일단 걸리면 알면서도 목을 내줄 수밖에 없어.”
오르캄프의 말이 옳다.
어째서 안심하고 있었을까?
아니, 그런 수준의 착각이 아니다. 생각의 모든 부분을 점검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의 생각을 수정한다고 해도 그들은 또 다른 맹점을 찾아서 들어왔을 터였다.
“시로네, 모든 걸 머리로 분석하려고 하지 마라. 왕성은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야. 실패의 대가가 아무리 커도 그것이 두려워서 행동할 때를 놓치는 겁쟁이는 이곳에 없다.”
오르캄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독한 술을 크리스털 잔에 따르며 말했다.
“레이나가 판단을 잘했다. 어차피 3일 후면 너는 정식 후계자가 될 수 있어. 괜히 진흙탕 싸움을 벌여 봤자 우리만 손해일 뿐이다. 그러니 너도 모르는 척하고 있어라.”
시로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레이나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부모님까지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당하고만 있으란 말인가요? 이걸 빌미로 반격을 할 수도 있잖아요.”
오르캄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배후가 누구일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야 당연히 테라제 일파…….”
시로네는 말을 멈췄다.
과연 테라제 일파만이 자신을 노리고 있을까? 그것 또한 여태까지 돌아보지 못한 생각의 맹점이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래, 모르는 일이지. 제1왕자 후보가 바뀌는 것은 왕국의 모든 이익이 움직이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라제 일파가 아니라도 너를 제거할 동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시로네는 용의선상에 있는 자들을 추려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심지어는 오르캄프까지도…….
“모두 제가 죽기를 바라는 건가요?”
오르캄프는 크리스털 잔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배후가 테라제라면 일종의 경고겠지. 만약 중립파라면, 반응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들은 네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는 정확한 소스를 원하니까.”
“경고요? 치사량의 독이에요. 먹었으면 죽었다고요. 죄도 없이 따라온 에이미까지 죽을 뻔했단 말이에요.”
오르캄프는 독한 술을 꿀꺽 삼켰다. 시로네는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정상일 것이다.
일반인에게 암살은 너무나 먼 개념이다. 강도를 당하거나 마차에 치일 수는 있어도, 살인의 전문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버틴다면 한 달도 못 가서 미쳐 버리고 말 터였다.
그런 삶을 살았다. 평생을 암살자와 동거하면서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애도 낳고 살았다. 한 모금의 독한 술로 깨끗이 잊어버리는 자신이 오히려 비정상인 것이다.
2. 양자택일의 함정 (2)
“시로네, 아름다운 나비도 가까이에서 보면 흉물일 뿐이다. 세상은 너 이외에는 누구도 아름답지 않고, 감정을 표출하는 건 언제나 좋지 않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면 더더욱.”
시로네는 심호흡으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지금은 화를 내기보다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였다.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너의 힘을 보여라. 그들이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 판단의 기준을 갖고 싶어한다면 차라리 정확한 소스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
오르캄프는 비로소 속에 있는 말을 내뱉었다.
“자리를 마련해 주마. 아타락시아의 시연을 해 다오. 거기서 너의 힘을 보여 준다면 적어도 피아는 확실히 구분되지. 그렇다면 최소한 가족을 건들지는 않을 것이다.”
시로네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반면 뜨거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넘어와 목에 걸렸다.
“그것이…… 저를 부른 진짜 이유군요.”
오르캄프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시로네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발키리라고 들어 보았느냐? 최후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테라제가 조직한 군대지. 카즈라 왕국이 경제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전쟁 무기를 수주한 덕분이다. 하지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아. 테라제가 자식들을 이곳에 심어 둔 이유는 언젠가 나를 몰아내고 카즈라를 삼키기 위해서다. 우리는 발키리 내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너의 아타락시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시로네는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친부모라 여겨지는 자에게서 이런 말을 듣자 눈물이 새어 나왔다.
결국 핏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대천사의 능력인 아타락시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