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33
블랙 라인의 대부분은 지명수배범이다. 특히나 마도7걸은 세계적인 흉악범으로 낙인이 찍혀 있기에 한곳에 머무르려면 절대적으로 안전한 은신처가 필요하다.
이런 덜떨어진 주인 밑에서 일하다가는 조만간 단두대에 목이 걸리게 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흐음, 슬슬 이곳도 정리할까?”
레드 라인의 현상범 사냥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추적해도 아리우스가 여태까지 잡히지 않은 이유는 치고 빠질 때를 동물적으로 잡아내는 육감 덕분이다.
10년이 넘는 도피 생활로 다듬어진 감각이 지금 떠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운데…….’
아타락시아. 도굴꾼 인생에서 최고의 대어가 그물에 걸렸다.
그가 도굴에 뛰어든 이유는 물질적 가치도 한몫을 하지만 언로커의 지적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더 컸다.
그런 의미에서 대천사 이카엘의 능력은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물건이었다.
‘미친 척하고 1단계까지 잠수해 볼까? 아니, 혼자서는 불가능해. 특히나 마법사의 무의식은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니까. 그렇다고 오르캄프에게 붙을 수도 없고.’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던 아리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복도를 돌아보며 가느다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죠?”
지온의 측근인 이름 모를 관리가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절로 냉소가 지어졌다. 관리는 마법사도 아니고 암살자도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먼저 기척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다.
“아리우스 님을 만나고 싶어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지온이라는 것은 아리우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관리는 주인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았다.
오르캄프의 측근인 아리우스와 테라제 일파의 핵심인 지온이 몰래 만나서 거래를 하는 사이였다는 것이 알려져서 좋을 일은 없을 테니까.
“듣던 중 반가운 제안이로군요. 안내하시죠.”
관리가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자 아리우스는 노인의 아킬레스건을 주시했다.
소리조차 내지 않고 총총 걷고 있다.
마치 고양이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로브에 감추어진 종아리근육은 엄청나게 발달해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그가 대단한 고수라는 뜻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주인의 수발에 평생을 바친 자의 장인 정신이랄까?
‘후후, 참 재밌는 곳이야. 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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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그 자식이 나를 완전히 물먹였어!”
지온이 던진 유리병이 갤러리의 문에 처박혔다. 유리가 산산조각 깨지고 바닥에서 자고 있던 고양이가 몸을 날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오린은 테이블에 앉아 찻잔을 입술에 가져다대고 넘겼다.
“왜? 나는 좋았는데. 화려했잖아.”
지온은 여동생을 노려보았다.
의뭉스러운 성격은 평소에는 귀엽지만 상황이 이럴 때는 얄미워 죽을 지경이었다.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시로네를 그냥 둬서는 안 돼.”
우오린이 무릎 위로 올라온 고양이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위협적이긴 하더라. 만약 관람석 쪽으로 마법을 시전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의 상황이 떠오른 지온은 얼굴을 붉혔다.
우오린의 말대로 어마무시한 위력이었다. 아무리 경호원이 최고 수준이라도 사상자는 나왔을 것이다.
“바로 그거야! 선전포고를 한 거라고! 내가 검을 들이민 것에 대한 복수였겠지!”
“그건 너무 나간 거 같은데? 그냥 화가 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
“어차피 똑같아! 천한 것이 내 제안을 무시했다고! 가만두지 않겠어!”
그때 누군가가 갤러리의 문을 노크했다.
아리우스임을 직감한 지온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여동생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들어와.”
아리우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지온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지만 오늘따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바닥에 깔린 유리 파편을 훌쩍 뛰어넘은 그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오랜만입니다, 제1왕자님. 아, 영애님도 계셨군요.”
지온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제1왕자라는 칭호도 허울에 불과할 뿐이었다.
“일단 앉아. 할 얘기가 있다.”
아리우스가 양해를 구하는 몸짓을 취하고 의자에 앉자 우오린이 차를 따라 주었다.
두 손으로 찻잔을 받은 그가 지온을 돌아보며 물었다.
“무슨 일로 부르신 거죠? 저번에 구해다 드린 오브제가 질리셨습니까?”
우오린이 손가락을 흔들며 정정했다.
“에이, 구해다 준 게 아니죠. 엄연히 돈을 받고 판 거죠.”
“하하! 따지자면 그렇게 되지요. 하지만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계시잖습니까? 오브제는 말이지요.”
지온은 시시껄렁한 잡담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오브제가 문제가 아니야.”
“호오, 그렇다면?”
“뻔히 알면서 말 돌리지 마! 이제는 확실해졌어. 아버지가 시로네를 왕성으로 부른 이유. 아크락시아를 도굴하기 위해서지?”
“아크락시아가 아니고 아타락시아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도굴이라니요. 기왕이면 추출이라고 해 주시죠.”
지온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리우스의 능청스러운 대화에 휘말리다가는 하루가 지나도 본론에 도달할 수 없을 터였다.
“그래서…… 그 계획은 어디까지 진행됐지?”
“흐음, 그건 아무리 제1왕자님이라도 곤란하군요. 일단 저도 전하에게 귀속된 몸이라 기밀을 발설할 수는 없습니다.”
지온은 북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르망이 빨려 들듯 날아와 손에 달라붙자 곧바로 휘둘러 아리우스의 목을 겨누었다.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거든?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아리우스는 칼이 들어오고 나서야 여유가 생겼다는 듯 차를 홀짝였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많은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지온은 버르장머리없는 꼬맹이에 불과하다. 반면에 아르망은 성가신 무기였다. 자신이 구해다 주기는 했지만 덜떨어진 왕족이 지니고 있기에는 실로 아까운 물건이었다.
“얼마나 진행됐느냐고 물으신다면 한…… 49퍼센트 정도일까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모든 일은 시작이 반이고,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으니 49퍼센트가 적당하다.
말뜻을 깨달은 우오린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으나 지온은 상당히 진척됐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놀란 표정으로 다그쳤다.
“절대로 막아. 아니, 아타락시아를 아예 제거해 버려. 도굴꾼이라면 가능하겠지?”
아리우스는 콧김을 내쉬었다.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어떻게 세상으로 넘어온 대천사의 능력인데 고작 왕 따위가 대수라고 제거한단 말인가?
아타락시아는 설령 자신이 도굴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분석되어야 할 인류의 보고였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전하에게 고용된 몸으로서…….”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겠다.”
아리우스는 입을 다물었다.
여태까지 지온과 거래하면서 막대한 거금을 벌었다. 물론 돈보다는 도굴 자체를 즐기는 성향이지만 어차피 오르캄프하고는 결별이었다. 마지막으로 크게 해 먹고 나른다면 퇴직금 정도는 챙길 수 있지 않을까?
“흐음.”
생각에 잠긴 아리우스는 비로소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다.
서늘한 뱀의 눈이 드러나자 지온은 칼을 겨누고 있는 상태에서도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아리우스의 가느다란 눈에 가려진 동공이 향해 있는 곳은 지온이 아닌 우오린이었다.
‘아름답군.’
열네 살 소녀에게 느낄 만한 감정은 아니지만 그녀는 실로 멋졌다. 신비로운 외모에 테라제라는 후광까지 더해지니 참으로 탐스러운 과일이었다.
여태까지 수많은 자들의 정신을 분석했지만 우오린만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다이버로 활동했을 때는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재미에 탐닉한 적도 있었다.
참으로 탁하고, 추하며, 괴기스럽기까지 한 욕망들.
하지만 800회 이상 다이브를 시전하다 보면 어떤 인간의 정신도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오린은 그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는 재목이었다.
만약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이브를 할 수 있다면 그 대상은 아타락시아가 아닌 우오린일 터였다.
“일단 정확한 진척 사항을 말씀드리죠. 현재 시로네의 아타락시아는 추출이 불가능합니다. 캡슐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원하신다면, 아타락시아를 통째로 들어내서 왕자님에게 드릴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준다고? 아타락시아를?”
“네. 대천사의 능력을 왕자님이 소유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순간 그의 얼굴은 오르캄프를 빼다 박아 있었다.
아니, 아타락시아의 위력을 확인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같은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우오린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닌지, 말에 담긴 오류를 즉각 알아챘다.
“조금 전에는 추출이 불가능하다고 했잖아요?”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그렇죠. 아타락시아는 시로네의 의식 중에서도 심해에 머물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마디로 너무 깊다는 거죠. 심리의 깊은 곳으로 잠수할수록 자아의 저항은 막강해집니다. 심해의 레벨이라면 들어가는 즉시 파묻혀 버리겠죠.”
지온이 아르망을 거두고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도굴을 한다는 거야?”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아리우스는 오르캄프에게 했던 제안을 똑같이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뜸을 들였다.
상황을 돌이킬 수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이 제안을 꺼내는 순간 오르캄프하고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된다. 또한 자신도 일이 끝나자마자 카즈라를 떠야 했다.
“말해! 어떻게 하면 아타락시아를 가질 수 있지?”
지온이 다그치자 아리우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로네의 뇌를 적출하는 것입니다.”
지온은 물론이고 우오린까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뇌를…… 적출한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시로네의 무의식을 붕괴시키는 거죠. 의식은 뇌에서 주관하지만 무의식은 육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뇌와 육체를 분리시키면 의식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더라도 자아의 저항이 현저하게 약해집니다. 물론 두개골까지 열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목 위쪽만 있으면 되는 거죠.”
아리우스는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지온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로 시로네를 죽이면 된다는 거군.”
“글쎄요. 귀납적 사고는 좋아하지 않아서. 목이 잘린다고 꼭 죽는 건 아니잖습니까? 저는 시로네를 죽이자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무의식에 침투할 방법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지온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설마 지금의 발언이 제1왕자 후보를 암살하는 일과는 무관하답시고 꺼낸 얘기는 아닐 것이다.
“목이 잘린다고 죽는 건 아니라고? 완전히 미쳤군.”
아리우스는 칭찬을 들은 것처럼 웃었다.
“도굴꾼으로 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미쳐 있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더군요.”
지온은 정신 나간 말에는 상대를 거부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시로네의 목을 가져오면 아타락시아를 추출할 수 있나?”
“가능하냐고 물어보시면 가능합니다. 다만 시간이 너무 지나면 안 됩니다. 목이 잘리는 것과 동시에 들어가야 하죠. ‘혹시라도’ 사망에 이르면 정신 또한 사라져 버리니까요.”
“그렇게 빨리? 목이 잘리면 생명이 유지되는 건 고작 10초 남짓일 텐데.”
“무의식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릅니다. 도어는 설치해 두었으니 시로네의 목을 베자마자 들어가는 거죠. 거기에서 1단계까지 잠수할 겁니다. 그런 다음 진짜 아타락시아를 도굴하는 거죠. 그러면 그것은 왕자님 것이 되는 겁니다.”
지온은 볼을 부풀리고 후우! 하고 숨을 내쉬더니 갤러리를 돌아다녔다.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암살이라니.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닐까?
아니, 이게 맞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르캄프 쪽에 붙는 중립파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다. 친자 확인 결과가 나오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면 오늘이야말로 적기였다.
아리우스는 지온의 눈에 떠오른 살기를 읽고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오르캄프보다는 왕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미 대답을 들은 것처럼 아리우스가 물었다.
“그럼, 얼마에 사시겠습니까?”
지온 또한 반박하지 않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 협상 테이블이 차려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던 그가 적당한 입찰가를 제시했다.
“27억 골드.”
아리우스는 살짝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흐음, 아르망의 거래 가격이 30억 골드였지요?”
“그래서 뭐? 설마 그 자식의 마법이 내 마검보다 가치가 높다는 거야?”
지온이 상정한 27억은 그렇게 해서 나온 금액이었다.
3. 심야의 무도회 (3)
“글쎄요. 저야 뭐 판매자일 뿐이니까요. 직접 시연을 보셨으니, 원래 제시는 바이어가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온은 입술을 짓깨물었다.
아무리 부정해도 현실은 명확했다. 아타락시아는 아르망보다 훨씬 높은 가치였다. 아니, 가치를 떠나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가지고 싶었다.
“40억. 내 거의 모든 재산이야. 이거면 충분하겠지?”
“음, 40억이라.”
40억이라면 현재 시세로 마법학교를 네 군데 정도 지을 수 있는 거금이다. 하지만 아리우스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얼마를 주어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30억에 넘겼지만 큐리아 경매에 넘겼다면 최소 S등급 이상으로, 백지수표를 제시받을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그럼에도 경매에 넘기지 못한 이유는 장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오브제가 장물이지만, 직접 훔친 것을 경매에 내놨다가는 추적자들에게 꼬리가 밟힐 여지가 있었다.
어차피 아리우스에게 돈이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가장 안전한 지온에게 팔아 치우는 게 남는 장사였다.
아리우스가 40억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를 보이자 지온은 안달이 났다.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에 욕망은 더욱 커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금을 탈탈 털어 봤자 현재 액수에서 7억 정도가 추가될 뿐이다.
우오린이라면 47억의 10배는 가지고 있겠지만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를 돈으로 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어차피 아리우스도 물질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닌 만큼 지온은 마지막 카드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거기에 더해, 테라제의 라인에 서게 해 주겠다.”
예상대로 아리우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카샨의 황제인 테라제는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삼황계 중의 한 사람. 그녀의 비호를 받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도망자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온에게는 인사 청탁의 권한이 없었다. 테라제의 라인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은 우오린뿐이었다.
지온이 곁눈질로 여동생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우오린,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부탁이지만 마지막 부탁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타락시아만 있다면 혼자의 힘으로 얼마든지 승승장구할 수 있다.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그럼 시로네 오빠는 죽는 거네?”
“아마도 그렇겠지. 목이 잘린다고 꼭 죽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여동생이 시로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지온은 아리우스가 했던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둘러대기에는 제법 좋은 말장난이었다.
“흐음.”
우오린은 손가락을 입술에 얹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카즈라의 정치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근래 들어 지온이 고군분투하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의 무능함이 가엽기도 했다.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으니 선심을 써도 좋으리라.
“그래, 알았어. 내가 엄마한테 말해 줄게.”
지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해 줄 수 있는 일에 초조함을 느끼는 게 아이러니했지만 어쨌거나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 거래 성립이야. 40억, 거기에 테라제 라인. 오늘 밤 시로네의 목을 베어라. 그리고 아타락시아를 나에게 가지고 와.”
아리우스가 눈을 깜박거리더니 손을 들었다.
“잠시만. 지금 저더러 그 작업을 하란 말인가요?”
“무슨 소리야? 도굴꾼이 안 하면 누가 해?”
“아니 그게, 왕자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이거 전문직이에요. 저는 도굴의 전문가지 전투는 전공이 아니라고요. 특히나 피를 보는 건 더더욱 싫고요.”
지온은 황당하게 쳐다보았다.
아무리 세상에 비전투 마법사가 많아도 위험한 상황을 타개할 전투력 정도는 갖추고 있다.
조금 전만 해도 뇌를 적출해야 한다고 날뛰던 인간이 피를 보기 싫다고 하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