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36
“어설프게 했다면 너는 날 도와주지 않을 테니까.”
우오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시로네는 가면에 속지 않았다. 그것 또한 우오린이 깨닫게 해 준 것이었다.
“너는 지온과 달라. 여황의 후계자니까. 카즈라의 정세는 황제를 꿈꾸는 너에게 있어 일부분에 지나지 않겠지.”
“그런가요? 뭐, 너도나도 제 권력에 빌붙고 싶어하기는 하죠. 시로네 오빠도 마찬가지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에게도 아타락시아는 다른 의미일 텐데?”
우오린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흥미가 깃들었다.
“뭐가 다른데요?”
“카샨 제국의 황제는 발키리의 수장. 그리고 아타락시아는 발키리에서도 최고로 치는 대천사의 능력이니까. 그렇다면 너에게도 충분히 이용할 가치가 있겠지.”
우오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시로네의 아타락시아가 오늘처럼 인상 깊지 않았다면 그를 도와줄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맞아요. 오빠의 능력을 보고 조금은 생각을 달리했어요. 아타락시아는 제가 황제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죠.”
“그러니 도와줘. 네가 원한다면 마법학교를 졸업하고 네 편이 되어 줄게. 그러니 내 가족과 친구들은 건드리지 말아 줘.”
우오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은 순진하기도 하고.”
“뭐?”
“1년에 얼마나 많은 대마법사들이 저에게 이력서를 제출할 거라고 생각해요? 고작 아타락시아 하나로 매달릴 거라고 생각했다면 착각이에요. 오빠의 재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학생일 뿐이잖아요?”
4. 테라제의 제안 (2)
“그래서 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
우오린이 미안한 표정으로 볼을 긁었다.
“저도 도와주고 싶긴 한데, 수많은 왕국에 제 경쟁자인 테라제의 딸들이 있어요. 특히나 저는 나이가 어린 편이라 아직 두각을 드러내고 싶지 않거든요. 카즈라도 그다지 좋은 기반이 아니고요. 미리부터 설쳐서 언니들의 표적이 될 필요 없잖아요?”
시로네는 절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14살. 눈앞에 앉아 있는 소녀의 나이였다.
‘정말 대단하구나, 우오린.’
또한 며칠 전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도 새삼 깨달았다.
왕성의 실체를 파악한 지금도 오싹한데 그 전에는 무슨 깡으로 이런 여자를 상대해 보려고 했던 것일까?
“좋아. 협상의 여지가 없다면 그만 나가겠어. 나는 에이미를 찾아야 하니까.”
시로네는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자신의 착각이라면 모든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겠지만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위험이 크더라도 행동해야 할 때를 놓치는 어리석은 자는 왕성에 없기 때문이다.
“행운을 빌게요.”
우오린의 작별 인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주저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보여서는 안 된다. 진심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이 방을 나가야 한다.
‘아타락시아가 필요가 없다. 과연 그럴까?’
어쩌면 우오린에게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말의 이득이 있다면 아무리 사소해도 남에게 주기는 싫은 법이다.
시로네는 작은 희망을 목숨 줄처럼 부여잡고 걸었다.
문고리를 붙잡고 돌리는 동안에도 우오린에게서는 반응이 없었다.
문이 열리자 눈이 질끈 감겼다.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났다.
“하지만 만약…….”
시로네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최대한 양보해서…… 그러니까 오빠의 미래를 가불하는 셈 친다면 말이에요.”
시로네는 천천히 몸을 돌려 우오린을 돌아보았다.
“테라제의 딸인 저와 협상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얻을 수 있겠죠.”
“협상할 수 있는 기회?”
아타락시아를 저당 잡혀도 얻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정도인가? 그것도 자신의 미래까지 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네. 협상이죠. 그냥은 도와 드릴 수는 없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굳이 저를 위험한 상태로 빠트리고 싶지 않거든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딱히 어려운 조건은 아닐 테지만, 어쨌거나 이 조건에 응한다면 오빠의 편이 되어 드릴게요.”
시로네는 말해 보라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오늘 밤, 저랑 밤을 보내요.”
“뭐, 뭐?”
치열한 심리전 끝에 도달한 지점에서 내세운 조건치고는 황당했다. 자신이 그녀와 밤을 보낼 일이 무에 있단 말인가?
시로네의 생각을 읽은 듯 우오린이 말을 덧붙였다.
“걱정 마세요.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니까. 그냥 오늘 밤 저하고 같이 있자는 뜻이에요. 뭐…… 혹시라도 다른 생각이 들면 시도해 봐도 상관없지만요.”
시로네의 인상이 구겨졌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는 배다른 여동생이잖아.”
“그거야 친자 확인 검사가 끝나 봐야 아는 거죠. 그리고 사실 중요하지도 않아요. 동성 결혼이야 왕국 하나가 혼수로 넘어오는 왕족에게는 흔한 일이니까.”
시로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려운 시험문제를 연속해서 풀다가 마지막에 난센스 퀴즈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대체 왜지? 그 조건이 나를 돕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우오린은 내키지 않는 듯 흐음 하고 숨을 내쉬더니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테라제 가문은 대대로 여성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죠.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남자는 그저 쓰임에 따라 소모되는 도구에 불과해요. 그렇기에 테라제의 딸은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은 남자를 곁에 두지 않아요. 오빠가 에이미라는 사람에게 가겠다면, 저 또한 오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에요.”
시로네는 납득했다. 테라제 가문의 여성이라면 그런 철칙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오린은 착각하고 있었다. 에이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친구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지만 나는 에이미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지 않아.”
우오린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지온 오빠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나 봐요.”
시로네의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물론 그녀가 거절한다면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이래 봬도 오빠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라 거부하는 여성을 강압적으로 대하지는 않거든요.”
우오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에 붙어버린 불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오린이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말했다.
“자, 그러면 이렇게 하죠. 저는 오빠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이 순간부터 에이미는 물론 모두의 안전을 보장하겠어요. 지금이라도 사람을 시켜서 지시만 내리면 되니까요. 단, 오늘 밤 저와 함께 있어 주기만 한다면.”
에이미가 어떤 협박을 당했기에 지온을 따라갔는지는 모르지만 우오린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 게다가 가족과 레이나의 안전도 보장된다.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지온은…… 에이미를 어디로 데려갔지?”
“아직은 밝힐 수 없어요, 오빠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아주 간단한 일이에요. 오빠는 그저 저를 믿으면 돼요. 그 여자보다 제가 우선이라는 걸 확인시켜 줘요.”
손끝부터 시작된 떨림이 전신으로 퍼졌다. 모든 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다지도 오감에 얽매인 존재였던가? 대체 자신이 무엇을 믿고 그녀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우오린이 지온을 돕는 게 아니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만의 하나 우오린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에이미는 엄청난 위험에 빠져있는 셈이다.
“왜 망설이는 거죠? 저는 테라제 우오린이에요.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을뿐더러 이 제안은 오빠가 원하던 게 아닌가요?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지 않았다는 것만 증명한다면 저는 오빠를 중용할 거예요. 오빠의 실력을 키우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고 나중에 황제가 되면 오빠 또한 세계 최고의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요.”
시로네에게는 가히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꿈을 현실로 바꿀 능력이 있었다.
대마법사조차도 우오린의 밑으로 들어가고 싶어 이력서를 쓰는 판국이다. 그런 거대한 기회가 눈앞에 놓여 있는 상황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시로네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에이미에게 가겠어. 내가 제안을 받아들일 일은 없을 거야.”
우오린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테라제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굉장한 기회를 차 버리겠다는 건가요? 아니, 무엇보다 오빠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가족을 지킬 수 있어요. 그런데도 고작 여자 때문에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에요?”
“맞아.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이야.”
우오린은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시로네의 얼굴에서는 체념도 후회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우오린, 인간에게는 그게 전부야. 자신이 보고 느낀 것만이 진짜 세상이지. 설령 네가 정말로 에이미를 구해 준다고 해도, 내가 확인할 수 없다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일 뿐이야. 나는 에이미에게 닥친 눈에 보이는 위험을,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 속에 방치시킬 수는 없어. 그렇기에 나는 에이미에게 가야 돼.”
우오린의 눈동자에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참으로 어렵게 사는군요. 그냥 선택해 버리면 쉬운 것을.”
시로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게 바로 지성의 족쇄다. 알아 버린 이상, 행하지 않을 도리는 없는 것이다.
“너무나 큰 기회였다는 건 나도 알아. 황제의 후계자인 네가 나를 도와주기 위해 어디까지 양보했는지도. 결코 너를 의심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가야 해.”
우오린은 시로네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허리를 끌어안으며 얼굴을 파묻었다.
“오빠는 참 바보 같네요.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개인적으로는 오빠가 참 좋았어요. 오빠의 미래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랄게요.”
그러고는 두어 걸음을 물러서서 시로네가 알고 싶었던 정보를 털어놓았다.
“갤러리로 가 보세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곳은 거기뿐이에요. 오빠가 여자들을 유혹할 때마다 찾는 곳이기도 하고요.”
다시금 마음속에 불길이 타올랐다. 시로네가 떠날 채비를 끝내자 우오린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잠시만. 이걸 가져가세요.”
시로네는 우오린이 던진 작은 물체를 받았다.
손바닥을 펴서 보니 붉은 빛을 내는 구슬이었다. 색감으로는 루비인 듯했지만 보석 특유의 차가운 질감이 없었다.
“이건……?”
“엘 크라우치의 도자기 인형 값이에요. 1억은 족히 넘을 거예요.”
“아니. 나는 정말로 너에게 선물을…….”
“물론 오빠의 진심은 알아요. 하지만 이성과 감정은 별개인 법이니까요. 협상이 결렬된 이상 저도 오빠에게 빚을 질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렇게 말하자 시로네도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인간적으로는 호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이제 남남이었다. 은원 관계는 깨끗이 청산하는 게 서로의 미래를 위해 좋았다.
“그래. 나중에 졸업하면 유용하게 쓸게.”
시로네는 구슬을 주머니에 넣고 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우오린을 돌아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녀에게 정말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부모님의 체면을 세워 주었고 마법학교에 다니겠다는 주장도 지지해 주었다.
갤러리에서는 오브제를 소개해 주었고 콜로세움에서는 왕성의 실체를 깨닫는 조언도 해 주었다.
지금은 도자기 인형의 대가로 도피 자금도 생겼다. 왕성의 추적을 받는 상황에서 1억 골드는 굉장한 도움이 될 터였다.
“고마워.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금 생각해 보니 네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거야.”
“후후, 지옥에도 마실 물은 있는 법이죠.”
우오린은 카즈라의 속담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는 말이지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일말의 희망이 고통을 강화시킨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하! 그거 말 되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은 시로네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지온의 방을 나갔다.
“후우.”
문이 닫히자 우오린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하지 않던 뒷짐을 지고 방을 서성거렸다.
“아리안 시로네라…….”
걸음을 멈춘 그녀는 빠르게 문을 돌아보았다.
서늘한 미소를 지은 그녀의 눈빛은 마치 생애 최고의 장난감을 앞에 둔 어린아이처럼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진짜 보통내기가 아니잖아?”
우오린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고는 씩씩하게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다리를 꼬고 테이블에 턱을 받친 그녀는 시로네가 나간 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조금 전 우오린이 시로네에게 한 얘기 중에 진실은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시로네를 중용할 생각도, 에이미의 안전을 보장할 생각도 없었다.
지온이 자존감이 강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목표로 점찍은 여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치워버리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시로네가 오늘 밤 자신과 함께 남았다면 그의 인생은 완전히 파멸했을 터였다.
“인간에게 남을 믿는 감각은 없지. 그렇지 않니, 클레오?”
야옹.
우오린의 고양이가 대답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어차피 달라질 건 없었다.
인간이 인간을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지 그 생각이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아주 쉬운 진리를 외면하고 살아간다.
진리를 인정하는 자와 외면하는 자.
그 작은 차이에서 세상의 모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우오린은 의자 등받이 너머로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고양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4. 테라제의 제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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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
레이나는 전속력으로 별관을 향해 달렸다.
테라제 일파가 시로네의 부모님에게 손을 썼다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한편으로는 자책감도 들었다.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아니, 이게 최선이야. 할 수 있는 모든 보안을 강화했는데…….’
그렇다면 상대도 뒷감당을 생각하지 않고 저질렀다는 뜻이 된다. 어쩌면 수행원 모두가 전멸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문스러운 점은 어째서 이 시점인가였다.
첫날에 암살자를 보낸 건 절묘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쪽에서도 만반의 대비를 갖춘 상태였다. 꼬리가 밟히면 전세가 역전되는 상황에서 굳이 하이 리스크 로 리턴의 전략을 펼칠 이유가 없었다.
별채로 들어간 레이나는 빈센트가 머무는 숙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모퉁이에서 오젠트 가문의 수행원과 맞부딪혔다.
“헉! 레이나 씨!”
레이나는 수행원을 밀치고 방으로 뛰었다.
“비켜요!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빈센트와 올리나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딱히 소란이 일어났던 분위기는 아니었다.
빈센트는 나무토막으로 조각을 하던 중이었고 옆에서는 올리나가 담요를 덮고 코코아를 마시고 있었다.
“레이나 님,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안색이 안 좋은데요.”
“아, 저기…….”
빈센트의 물음에 레이나는 말문이 막혔다.
두 사람은 무사하다. 그렇다면 에이미는 왜 지온을 따라간 것일까?
뒤늦게 방으로 돌아온 수행원이 빨개진 얼굴로 물었다.
“아가씨, 대체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여기에는 왜?”
레이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아, 그게…… 잘 지내고 있는가 싶어서 순찰 겸 왔어요.”
수행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저는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습니다. 마침 보고하러 가던 참이었어요. 여기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올리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요? 시로네는요?”
역시나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촉은 예민했다. 레이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황급히 말을 지어냈다.
“아직도 연회장에 있어요. 에이미와 즐겁게 보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에이미라는 말에 올리나는 안심하는 듯했다. 시로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분명 그녀도 이곳에 달려왔을 테니까.
“그래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잘 지내고 있어요.”
“호호! 네. 그럼 편히 쉬세요. 저도 금방 돌아올게요.”
애써 눈웃음을 지어준 레이나는 방을 나서자마자 곧장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로네의 부모님은 무사했다. 하지만 에이미가 그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협박을 당했다는 얘기인데. 어째서 에이미일까?
레이나는 덜컥 걸음을 멈추고 소리 내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