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38
에이미는 눈살을 찌푸렸으나, 찰나의 시간이 지나자 흉물스러운 광경은 점차 인간의 눈에 흡족한 자태로 구체화되어 갔다.
손잡이였던 부분이 안면부를 보호하는 투구로 변했고, 정수리를 넘어간 칼날은 등 뒤를 타고 내려오면서 근육의 핵심적인 줄기에 밀착하여 기초 뼈대를 이루었다.
그 뼈대에서 다시 금속질이 펼쳐지면서 갑옷의 형태를 이루었다.
손목까지 내려온 금속이 건틀렛으로 장착되고, 다리를 지나 발바닥으로 내려온 금속은 코가 뾰족한 금속 장화로 변했다.
갑옷이 신체의 주요 장기를 보호하자 이번에는 붉은 섬유질이 관절 부위를 감싸면서 빈틈없이 몸을 조였다.
마지막으로 목 보호대에서 엄청난 양의 섬유질이 새어 나오더니 망토로 변해 펄럭거렸다.
에이미의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마치 변신을 한 것처럼 보였다.
십자가 투구에 얼굴이 가려진 지온이 팔을 내리고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것을 신호로 극히 가느다란 침이 지온의 뒷덜미를 찌르고 들어와 척수와 연결되었다.
통증은 없었으나 척추를 타고 전기가 흘렀다.
-사용자 대뇌 카피. 공유. 언어적 인지능력 활성화.
아르망의 목소리가 지온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더니 곧바로 생체신호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근력 강화. 골밀도 증가. 내골격 증강. 신경계 전달 속도 극대화. 금속질 증식 완료. 무기 생성 및 변형 가능. 살인 특화. 근접 전투 유리.
칭! 칭!
지온의 양쪽 건틀렛에서 30센티미터 길이의 칼날이 튀어나왔다.
에이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십자가의 홈 사이로 보이는 눈빛을 제외하고는 지온의 모든 부위가 마검에 감추어진 상태였다. 외관상 짐작하기로는 섬유질이 신체의 대부분을 뒤덮은 상태에서 갑옷이 덧씌워진 듯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금속의 무게를 재 보자면 어림짐작으로도 본래의 마검보다 훨씬 큰 중량이었다. 특히나 갑옷이면 갑옷이지 저 섬유질은 뭐란 말인가?
관절 부위를 질긴 근육이 보호하면 내구력은 물론 활동성도 극대화된다. 그래서인지 지온은 무거운 갑옷을 걸쳤음에도 전보다 훨씬 기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지온은 당황하는 에이미의 표정을 보고 흐뭇했다.
‘흥, 그럼 그렇지. 제까짓 게 언제 이런 걸 봤겠어?’
은 금속 생물체라는 모순적인 특성을 지닌 S급 오브제다.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검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정격조종, 두 번째는 사용자와 결합하여 전투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금강무장이었다.
정격조종 모드에서는 금속의 특징이, 금강무장 모드에서는 생물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
특히나 금강무장은 사용자와 뇌를 공유하기 때문에 지성적인 임무까지 수행할 수 있었다.
“내가 테라제의 이름이나 팔아먹는 덜떨어진 왕자로 보였나?”
지온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철컥! 바닥에 닿는 강철 장화의 마찰 음이 스산하게 울려 퍼지자 에이미는 자신도 모르게 문에 등을 기댔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야? 테라제의 이름 앞에서는 모든 게 하찮을 뿐이다. 너의 가문도, 너의 재능도, 나는 조금도 부럽지 않아. 왜냐하면 나는…….”
지온이 에이미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위대한 왕족이기 때문이다.”
섬유질로 이루어진 장갑이 꿈틀하더니 손바닥 중앙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에이미에게 쇄도했다.
에이미는 급한 상황 속에서도 날아드는 촉수의 끝이 날카롭게 경화되어 가는 것을 확인하고 황급히 몸을 날렸다.
쾅! 촉수가 문에 박혔다. 동시에 지온의 손바닥과 연결되어 있는 촉수가 뚝 하고 꼬리를 자르듯 떨어져 나왔다.
에이미는 질린 표정으로 문을 살폈다. 촉수가 표면에 스며들 때마다 나무의 잔뿌리 같은 것들이 퍼지면서 문을 완전히 밀봉해 버렸다.
에이미는 낭패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촉수의 섬유질이 얼마나 질긴지는 몰라도 어지간한 힘으로는 부술 수 없을 듯했다.
“손에 들고 있는 불은 언제 쓸 거지?”
지온이 천천히 다가왔다. 금강무장 이전의 지온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었다. 마치 아르망의 흉흉한 기운이 그대로 덮어씌워진 듯했다.
“하긴, 정말로 그딴 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지온은 건틀렛에서 튀어나온 칼날을 수직으로 세웠다. 매끈한 칼날의 표면에 지온을 노려보고 있는 에이미의 얼굴이 비쳤다.
5. 온갖 변수 (1)
지온의 갤러리로 뛰어가면서도 시로네는 이상한 상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 머릿속을 채웠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선은 에이미가 지온을 따라나선 동기였다. 어떤 일이든 섣불리 움직일 성격이 아니지만 갈리앙트에서 지스의 안위를 걱정해 사지로 떠났던 그녀이기도 했다.
5. 온갖 변수 (2)
‘맞아, 그때도 그랬지. 내가 마르샤 누나를 만나고 늦게 오는 바람에…….’
그러자 문득 에이미가 자신에게 서운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나 누나와 춤을 췄던 것이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던 것일까?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팔코아에게 갔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아니야. 너무 확대해석하고 있어. 레이나 누나와 춤을 추는 건 이미 계획에 있었던 일이잖아. 에이미가 그럴 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이 들면서도 사실은 확신할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지온과 춤을 추는 에이미를 보았을 때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어떤 불쾌한 파문이 일었기 때문이다.
에이미라고 딱히 다를 게 없지 않을까?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면 아주 사소한 동기만으로도 지온을 따라 나갔을 수도 있다.
에이미는 그렇게 여린 아이니까.
시로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는데도 오히려 전보다 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응?”
시로네는 황급히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하에 내려온 이후부터 묘하게 뒷덜미가 으스스했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에는 인기척은커녕 쥐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기분 탓인가.”
시로네는 목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크크크, 안 되지, 안 돼.’
시로네가 떠난 자리의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남자가 입가를 찢었다. 시로네 암살의 특명을 받은 스파투르 제노거였다.
그는 오로지 열 손가락의 힘으로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다.
거미 의태화의 능력은 일족에게 중력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손끝에 돋아난 융털과 피부에서 새어 나오는 접착성 강한 기름질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체중을 지탱하고 있었다.
물론 암살 훈련으로 갈고닦은 체술이 뒷받침되기에 상반신의 힘만으로 하체를 떠받치는 것이었다.
또한 손가락 피부에서 새어 나오는 기름질은 유출을 중단하면 20초 만에 휘발되기에 그가 존재했다는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완벽에 가까운 암살자.
제노거는 긴 혀를 턱 밑까지 내렸다가 도로 삼켰다.
‘상당히 감이 좋은 먹잇감이군. 이를테면…… 모기처럼.’
하지만 그것은 제노거가 아주 미세한 살기를 시로네에게 계속 쏘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먹잇감의 반응을 살피고 대응책을 고려하는 건 암살자의 기본.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죽일 수 있다. 다만 100퍼센트의 성공률을 위해 간을 보고 있을 뿐이다.
‘음, 그러하다.’
어쌔신은 무력보다는 상황을 이용하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평생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극단적으로 많은 직업군이기도 하다. 모든 일에 대해 직접 판단과 평가를 내려야 하기에 혼잣말이 습관적으로 배어 있었다.
제노거는 어쌔신이라는 직업이 마음에 들었다. 임기응변으로 치고 빠지는 히트맨보다 훨씬 고차원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육체는 인간계에 섞이지 못할 만큼 기괴해졌지만 그것이야말로 암살 일족 스파투르가 추구하는 기능미의 극치였다.
‘조금 더…… 몰아세워 볼까?’
제노거는 열 손가락으로 벽면을 타고 움직이며 먹잇감을 따라잡았다. 그런 다음 엉덩이에서 거미줄을 뽑아내 시로네의 등 뒤로 내려왔다.
가느다란 실이 천장에 달라붙으면서 제노거의 몸을 전진시켰다.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실은 흔들리겠지만 거미일족에게 완벽한 제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로네의 뒤통수가 눈앞에 있었다. 숨을 내쉬면 머리카락이 흔들릴 정도의 거리였다. 하얀 목덜미가 생선 살처럼, 깨물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제노거는 입가를 쭉 찢으며 시로네의 목에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어디 한번, 감도 좀 느껴 볼까?’
제노거의 손가락이 솜털이 닿기 직전까지 다가갔다. 거의 닿았다고 봐도 무방한 거리였다.
시로네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지하 통로의 풍경뿐이었다. 횃불의 일렁이는 패턴까지도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뭐지?”
아무래도 이상했다. 오늘따라 예민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꾸만 무언가가 신경을 건드리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해 둬서 나쁠 건 없지.’
시로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척하다가 갑자기 스피릿 존을 확장시켰다.
“…….”
온갖 정보들이 공감각을 통해 전해져 왔다.
사방에 수많은 작은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근처에 식량 창고가 있기 때문에 아마도 쥐나 바퀴벌레일 것이다.
“으으…….”
시로네는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렸다.
어쨌거나 공감각을 통해서 느껴지는 건 미물뿐이었다. 며칠 동안 암살의 위협에 시달렸더니 신경계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닌가 싶었다.
“후우, 빨리 가자.”
시로네가 멀어지자 천장에 달라붙은 제노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걸려들었군. 사망 축하.’
마법사의 스피릿 존은 근접 암살자에게 가장 까다로운 능력 중의 하나다. 정신을 확장하여 공감각으로 사물을 인지하는 그들에게 접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쌔신은 말한다.
맹점이 없는 감각은 없다고.
스피릿 존은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정보를 통합적으로 인지한다. 그것은 시각, 청각, 촉각처럼 적확한 느낌이 아닌 일종의 육감에 가까운 성질이었다.
그렇다면 특정 사물이나 생물에 동화되어 버리면 어떨까? 정보를 통합적으로 받아들이는 육감으로써는 두 개체의 다름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그 육감의 맹점.
자연계의 생물이 진화를 통해 은폐 기술을 섭렵했듯이 암살자도 유구한 세월 동안 스피릿 존과 싸우면서 독특한 기술을 개발해 냈다.
그것이 바로 물체 동화 능력 이퀄라이징이었다.
‘음, 그러하다.’
시로네는 스피릿 존을 통해 제노거의 존재를 느꼈지만 육감만으로는 석벽과 제노거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었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제노거가 노리는 바였다.
마법사에게 스피릿 존의 의존성은 일반인이 시력에 의존하는 것만큼 크다. 심지어는 스피릿 존으로 느낄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버릴 정도였다.
여태까지 시로네를 자극했던 것은 그런 이유였다.
스피릿 존으로 주위를 확인한 시로네의 경계심은 전보다 훨씬 낮아져 있었다.
그렇기에 죽는다.
제노거가 죽이는 게 아니다. 상황이 죽이는 것이다.
치고 빠지는 데 특화된 히트맨은 50퍼센트의 확률에 목숨을 건다지만 어쌔신은 99퍼센트의 확률이라도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이 움직이는 경우는 목표물이 스스로 죽음의 늪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고위 권력자들이 다수의 군대보다 1명의 어쌔신을 더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일단 그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현재 자신의 상황이 죽음의 한복판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고의 어쌔신이 최고의 검사는 아니다. 이퀄라이징이란 정말로 어려운 기술이라 달인의 경지에 오르려면 그것에만 평생을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강하다.
검사가 1부터 100까지 균등한 능력으로 싸운다면 어쌔신은 100 중 1에 무적이 되어 상대방을 제압하는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시로네에게 잘못은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이 믿는 것을 믿었을 뿐이다. 그리고 제노거는 그 맹점을 이용해 타깃을 완벽한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다.
현재의 제노거는 무적 상태였다.
‘크크, 그럼 슬슬 가 보실까?’
천장을 타고 시로네에게 다가간 제노거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바닥에 착지했다. 그런 다음 입술을 오므린 다음 손가락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잡아 빼는 시늉을 했다.
철사처럼 단단한 실이 뽑혀 나왔다.
이거면 충분하다.
‘그러하다.’
제노거가 선택한 방법은 사망 올가미.
강선을 올가미의 형태로 묶어서 시로네에게 던진 다음 잡아당기면 얼굴이 포도송이를 따듯이 똑 하고 떨어져 나가게 된다.
‘앞으로 7초.’
제노거는 나풀거리는 실을 허공에서 휘저어 순식간에 올가미 매듭을 지었다.
그런 다음 공기의 흐름을 타고 날리자 하늘하늘 전진하면서 시로네의 정수리 위에 연처럼 떠다녔다.
소리도, 기척도, 심지어 냄새마저 없는 완벽한 살인.
‘앞으로 4초. 3초. 2초.’
시로네의 얼굴을 통과한 올가미가 목 언저리까지 내려왔다.
‘지금이다!’
제노거는 입가를 기괴하게 찢으며 실을 잡아당겼다.
날카로운 거미줄 올가미가 순식간에 테두리를 좁히면서 좁쌀보다 작은 크기로 뭉쳤다.
“…….”
시로네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제노거를 돌아보았다.
“뭐, 뭐야? 당신 누구야?”
“…….”
제노거는 사고 능력을 상실한 사람처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올가미를 조이는 순간 시로네가 갑자기 몸을 아래로 내리더니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
‘뭐지? 어디서부터 계산이 잘못된 거지?’
시로네는 죽어야 한다. 그럴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잘못은 없다. 예상치도 못한 변수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시로네는 침을 꿀꺽 삼키고 제노거를 노려보았다.
스피릿 존으로 주위를 확인한 이후부터 안심하고 걸어가던 찰나 갑자기 머릿속에서 ‘위험해!’라는 소리가 크게 터졌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보기에도 흉흉한 외모의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노거가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피했지?”
시로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미간을 구겼다.
‘어떻게 피했냐고? 그야 당연히…….’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응을 보니 상대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때 주머니에서 빠직 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시로네는 제노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주머니를 뒤졌다. 꺼내 보니 우오린이 1억은 훨씬 넘을 거라고 말한 보석이 두 조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제노거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곤충의 눈으로 확대해서 본 시로네의 보석은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그것이었다.
“?”
시로네가 저것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완벽한 설계에서 목숨을 건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젠장…… 하필이면.’
기록에 의하면 480년 전 서부 대륙에 예거 가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본가의 사람들이 하루에 1명씩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무리 경비를 강화해도 아침이 되면 여지없이 1명의 시체가 발견되는 상황이었다.
가주는 범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하루하루 늘어 가는 희생자의 숫자를 막아 낼 방도는 없었다.
그렇게 가문의 식구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자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저택을 폐쇄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날 밤에도 또다시 1명의 시종이 죽었다.
가주는 암살자가 내부에 있음을 직감하고 식구들을 심문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287명이었던 본가의 식구가 63명으로 줄었다.
가문은 이미 망한 것과 다름없었다.
모두의 정신은 피폐해졌고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말조차 걸지 않았다.
가주는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았다.
누가 죽든 그저 기다릴 것이다. 범인의 정체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설령 가족이 죽더라도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