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4
에이미가 다시 소리쳤다.
“스피릿 존에서 나와! 그러다가 평생 마법을 못 쓰게 된다고! 정말 미치고 싶어?”
시로네는 듣지 못했다.
‘스피릿 존일 뿐이야, 안티매직도.’
에텔라 선생님의 교육을 상기하며 끝없이 걸음을 내디딜 뿐이었다.
제이크가 비로소 미간을 구겼다.
“쳇! 꽤 버티는데?”
역시 교사가 주목하는 유망주인가?
“그래 봤자 신입생이야!”
뒤틀린 열등감과 질투심으로 제이크는 가장 강력한 안티매직을 시전했다.
“안 돼!”
에이미가 손을 내밀며 소리치는 그때, 블랙 매지셔의 회원들이 인상을 구겼다.
“뭐, 뭐야? 이것도 버틴다고?”
비록 시로네의 걸음은 멈췄으나 스피릿 존은 오히려 단단해지고 있었다.
‘더, 더 많은 프레임이 필요해.’
사방식의 방어형을 전개하자 정신적 뼈대가 생기면서 크기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블랙 매지셔의 일원들이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으, 으으으으!”
안티매직은 정신적 시소 상태.
물론 공격자가 월등히 유리한 마법이지만 버틸 수 있다면 효과는 역전된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일원들은 겁에 질렸다.
마치 바위에 깔린 듯 정신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 순간 시로네의 눈이 번쩍 빛났다.
‘더 많은 프레임을…….’
정신적 구조물이 서로 완벽하게 얽히면서 입방면체의 스피릿 존이 완성되었다.
“으아아! 살, 살려 줘! 머리! 머리가 아파!”
블랙 매지셔 전원이 동시에 머리를 움켜쥐더니 코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반쯤 의식을 잃은 그들은 여전히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몸을 부들거렸다.
“흐으으! 살려, 살려 주세요…….”
무생물에 근접할 정도로 정신을 연마한 상태가 아니라면 안티매직은 오히려 자신을 파괴하는 독.
학교에서 안티매직을 금지시킨 이유였다.
“세상에…….”
에이미는 충격을 받았다.
5명이 동시에 시전한 안티매직을 혼자서 깔아뭉개 버린 것이다.
‘작은 생물을 밟고 있는 느낌이야.’
사방식의 방어형을 전개한 상태에서 시로네가 받은 느낌은 그러했다.
꿈틀거리는 감각이 느껴지지만 절대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시간이 지나자 미약한 저항감마저 사라졌다. 그들이 안티매직을 해제한 것이다.
에이미는 시로네에게 다가가며 자신의 스피릿 존으로 그의 스피릿 존을 살폈다.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우와.”
에이미가 놀랄 정도였으니 제이크가 받은 충격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유일하게 의식을 잃지 않은 그는 시로네가 걸어오자 엉덩이로 물러섰다.
“히익! 오, 오지 마!”
서로의 스피릿 존이 맞닿는 순간 절대로 닿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제이크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공감각으로 느껴지는 정보는 명확했다.
시로네의 스피릿 존은 사방식의 방어형.
88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직경 7미터의 입방면체가 공간을 짓누르고 있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1)
블랙 매지셔.
제이크를 주축으로 6명의 문제아들이 만든 비밀 연구회로, 제이크를 제외하면 번번이 진급에 떨어지는, 꿈도 열정도 없는 학생들 모임이었다.
한때는 그들도 빛나는 인재로 주목받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의 패배가 영원한 패배는 아니듯이 다시 도전할 용기만 있다면 언젠가는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도 있을 테지만, 그들은 스스로 경쟁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어찌 보면 그들이야말로 마법학교의 냉혹한 경쟁 속의 유일한 낙오자인 셈이었다.
“아니야.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제이크는 패배를 부정했다.
에이미한테라면 몰라도 마법조차 배우지 못한 신입생에게 블랙 매지셔 전원이 당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재수가 없었던 거야. 그냥 안티매직에 특별히 강한 놈일 뿐이잖아.’
그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도 깨닫지 못할 만큼 제이크는 흥분한 상태였다.
그의 스피릿 존이 공격형의 별 형태로 퍼져 나오자 시로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수백 명의 궁수가 자신에게 활을 겨누고 있는 듯 위기감이 느껴졌다.
‘어떡하지? 난 아직 마법을 배우지 못했는데.’
스피릿 존의 대결이라면 모를까 마법 전투에서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크크, 이제야 사태 파악이 되냐?”
제이크가 손바닥 간격을 좁히자 공기가 원반의 형태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통나무도 절단하는 윈드 커터였다.
“나를 건드린 대가가 얼마나 큰지 똑똑히…… 컥!”
제이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측면에서 다가온 에이미가 주먹을 내질렀다.
스피릿 존으로 접근을 감지했음에도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에이미의 눈이 붉게 타올랐다.
“너…….”
이어서 바닥에 쓰러진 제이크의 턱을 후려치자 그의 몸이 벌러덩 뒤집어졌다.
“크악!”
물리 공격에 취약한 마법사에게 스키마의 힘이 담긴 공격이 들어왔으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제이크의 배에 올라탄 에이미는 두 주먹으로 미친 듯이 얼굴을 후려쳤다.
한 방의 위력이 돌로 내리치는 듯했다.
“윽! 윽!”
제이크의 신음 소리마저 점차 잦아들 무렵, 놀란 시로네가 에이미를 말렸다.
“선배님! 그만하세요! 이러다 죽어요!”
“놔! 이 자식이 날 우습게 봤겠다!”
“죽는다고요!”
사력을 다해 에이미를 끌어당겼으나 스키마의 인체 밸런스는 엄청났다.
“이이이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시로네가 온 힘을 다해 땅을 밀자 비로소 제이크에게서 떨어졌다.
뒤로 넘어져 시로네에게 몸을 의탁한 채, 에이미는 한동안 반응이 없었다.
포개어진 두 육체의 심장 소리가 공명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로네는 에이미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여전히 많은 것이 미지수지만 적어도 그녀만을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닐 터였다.
“선배님, 저 때문에…….”
“아! 시원~하다!”
에이미가 튕기듯 몸을 일으키자 복부 밑에 충격을 받은 시로네가 몸을 웅크렸다.
“아야야.”
“남자가 허약하기는. 그래 가지고 싸움이나 제대로 하겠어? 빨리 일어나.”
급소를 맞은지라 억울한 표정으로 돌아보는데 에이미가 손을 내밀었다.
“강하더라, 너.”
세리엘이 있었다면 놀랐을 것이다. 그녀가 누군가를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미소를 지으며 에이미의 손을 잡고 일어선 시로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지만 살풍경이었다.
블랙 매지셔의 회원은 전원 기절했고 구타를 당한 제이크는 몸을 떨고 있었다.
“이제 어떡하죠?”
그들의 몰골을 바라본 에이미가 말했다.
“이쯤에서 덮자. 우리 선에서 끝냈으니, 저 녀석들도 다시 덤비지는 않겠지.”
블랙 매지셔가 어긴 교칙의 개수만 따져도 최소 정학 이상의 처분을 받을 터였다.
“하지만 세리엘 선배님이 선생님에게 보고했을 텐데요? 저도 그러라고 했고요.”
“뭐?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 그러다가 우리 사정까지 다 들통나면 어쩌려고?”
“어쩔 수 없잖아요. 선배님도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세리엘 선배님에게 부탁한 거 아니에요?”
딴에는 그랬다.
“좋아. 약속 장소가 바뀌었으니 바로 오지는 못할 거야. 우리가 먼저 가서 둘러대면 되겠지.”
시로네는 에이미의 결정이 의외였다.
고급반 1등으로 모범생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다혈질이었다.
“정말 괜찮아요, 이대로 끝내도? 비밀을 떠나서, 이건 너무 큰일이잖아요.”
교내 폭력 사건.
무엇보다 안티매직을 썼다는 점에서 고강도 징계를 받을 만한 사안이었다.
“일 키워서 좋을 게 뭐 있겠어? 네가 몰라서 그렇지 학교랑 얽히면 골치 아파.”
에이미는 쓰러진 자들을 돌아보았다.
“솔직히……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냥 비슷한 인간끼리 치고받고 했다고 치지, 뭐.”
사실이 그랬다. 아마 다른 학생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상당한 쇼크를 받았을 터였다.
에이미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물론 나는 저 녀석들처럼 어설픈 수준이 아니었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만 내려가자.”
그때 웃음소리가 들렸다.
“크크. 크크크.”
제이크가 나무에 기대 일어서고 있었다.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해? 천만에.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덤벼. 날 죽여 보라고.”
손으로 허리를 짚은 에이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 진짜 구질구질하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면 그냥 뻗어 있을 것이지, 나한테 맞는 게 그렇게 좋니, 변태야?”
“푸하하하!”
제이크는 폭소로 받아쳤다.
싸움에는 졌을지 몰라도 현실에서 그는 재벌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돈. 이들이 악착같이 공부하는 것도 돈 때문이 아니던가.
“너희들은 이제 끝났어. 솔직히 말해 봐. 진짜로는 날 죽이지도 못하지? 자신 있으면 죽여 보든가. 아니, 그래야 할걸.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들은 절대 졸업하지 못할 거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멸시킬 거라고!”
제이크의 집요함에 시로네는 혀를 내둘렀으나 에이미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너를 죽여? 내가 너를 왜 죽여? 너 같은 놈 때문에 망치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창창하잖아. 하지만 이건 알아 둬. 죽이지는 못해도 두들겨 팰 수는 있다는 걸.”
에이미가 다가오자 제이크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적어도 몸은 공포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겁먹을 줄 알아?”
“누가 뭐래니? 일어났으니 맞아야지. 난 널 때리고 싶을 뿐이거든.”
제이크의 얼굴이 구겨지는 순간 하늘 저편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렸다.
시로네가 하늘을 올려다본 반면 에이미는 보지 않고서도 깨달았다.
공간 이동 특유의 소음이었다.
창공에서 별빛이 반짝인다고 생각하는 순간 섬광이 휘어져 시로네 쪽으로 내려왔다.
“에이미!”
세리엘이 소리쳤고, 그녀의 뒤에는 2명의 교사가 대동하고 있었다.
에이미는 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교사의 얼굴을 확인했으나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빙결의 시이나와 화염의 사드였다.
‘하필이면.’
에텔라와 함께 마법학교에서 가장 젊은 교사인 그들이라면 피해 갈 방법은 없었다.
세리엘이 울먹이며 달려왔다.
“에이미,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응, 괜찮아. 내가 쉽게 당할 리가 없잖아.”
세리엘은 섬세한 성격답게 에이미의 앞머리가 살짝 짧아진 것을 눈치챘다.
“머리는 왜 그래? 정말 괜찮은 거야?”
“아이, 참!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나저나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벌써 7시야?”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알아? 선생님 아니었으면 도착하지도 못했어.”
해가 저물자 사드가 화염 마법을 시전했다. 커다란 불의 구체가 작은 태양처럼 떠올라 주위를 밝혔다.
‘이게 파이어 선 마법이구나.’
특정 공간에 불꽃을 유지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시로네가 감탄하고 있는 그때 사드가 울상을 지으며 에이미의 어깨를 잡았다.
“에이미! 이게 무슨 일이냐? 너처럼 뛰어난 애가 어째서 이런 어리석은 짓을…….”
사드는 여자에게만 약했다. 특히 에이미라면 성적 1등에 외모까지 1등이니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사드의 태도에 혐오감을 느낀 시이나는 반대급부로 시로네에게 향했다.
“시로네, 무슨 일인지 설명해 줄래?”
“어, 저기, 그게…….”
시로네가 머뭇거리는 그때, 제이크가 나섰다.
“제가 말씀드리지요.”
사건의 주동자가 자백을 하겠다고 나서자 교사들이 황당하게 돌아보았다.
하지만 제이크에게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저 두 사람, 분명 숨기는 게 있어.’
징계는 두렵지 않았다.
아르디우스 가문의 이름으로 매년 들어오는 지원금을 학교에서 포기할 리 없으니까.
그보다는 땅에 쓰러졌을 때 엿들었던 시로네와 에이미의 대화가 관건이었다.
‘걸리면 안 되는 사정이 있다. 뭔지는 몰라도 그것 때문에 교사를 피하고 있는 거야.’
단지 일이 커지는 것이 싫어서라고 하기에는 꺼림칙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