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41
지온이 참지 못하고 건틀렛의 칼날을 휘두르며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쳇! 됐어! 내가 처리하겠어!”
“접근하지 마십시오!”
지온이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천성부터 오만한 그는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생각보다는 호통을 들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왜 그래?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저건 시간 계열 언로커의 특기인 시간 역장입니다. 쉽게 말해 슬로 마법을 이탈형으로 변환한 것이죠.”
“이탈형? 뭔 소린지 알아듣게 말을 해.”
아리우스는 지온이 한심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전투가 벌어질 것을 감안하면 복면과 대치 중일 때 요점을 알려 줘야 했다.
지온의 전투력은 기대하지 않지만 아르망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도움이 될 테니까.
“역장에 들어가면 왕자님도 저 꼴이 됩니다.”
지온은 시간 속에 얼어붙은 시로네와 제노거를 살폈다.
적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저런 상태가 된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가까이만 가지 마세요. 닿는 순간 누구라도 같은 꼴이 되니까요.”
“그럼 저 자식이 먼저 손을 쓰면 어떡하려고?”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이탈형 스피릿 존에 술자가 들어가면 이탈형이 풀립니다. 즉, 시간이 되돌아온다는 것이죠. 저 복면도 이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리우스는 복면에게서 경계를 거두지 않고 살며시 역장을 살폈다.
예상보다 반경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 계열의 스페셜리스트인 게 분명하니 시간 왜곡은 엄청날 터였다.
‘어라?’
아리우스는 이상함을 느끼고 시간 역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시간 역장에 갇힌 제노거와 시로네였다.
‘움직이고 있어……?’
제노거의 팔이 움직이고 있다.
물론 극도로 섬세한 감각을 가진 그조차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만큼은 확실히 전해졌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플리커로 추격전을 벌였을 때 깨달은 상대의 실력이라면 극단적인 시간 왜곡이 가해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1시간 정도만 지나도 가시적인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을 듯했다.
‘1단계 모태 의식까지 잠수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아리우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육체에서 뇌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기에 무의식의 압박이 있겠지만 어쨌거나 시로네는 죽음에 근접한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1단계에 도달할 즈음이면 시로네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질 것이니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었다.
“왕자님, 도어를 열겠습니다.”
“뭐? 지금?”
“아직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힘을 좀 빌려야겠습니다. 제가 들어가면 곧바로 따라와 주십시오.”
아리우스는 역장 밖에 도어 마법을 발동했다. 스피릿 존이 실체화되면서 2미터 높이의 타원형 구체가 탄생했다.
아리우스가 뛰어들자 지온은 난감한 듯 어금니를 짓깨물었다.
하지만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어차피 여기에서 저 복면을 상대하는 것도 싫은 일이었다.
“제길! 귀찮게!”
지온이 촉수를 되돌리며 도어의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복면은 그제야 웅크린 자세를 풀고 일어섰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어를 향해 뛰어갔다.
“잠깐만요!”
도어의 앞에서 정지한 복면이 에이미를 돌아보았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천국으로 가는 문하고 비슷한 거 맞죠? 저도 갔다 온 적이 있어요. 시로네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복면은 처음으로 목소리를 공개했다.
“그런 상태로 어떻게 들어갈 생각이죠?”
“그, 그러니까…… 이것 좀 풀어 주면…….”
“이그나이트.”
“네?”
에이미가 놀란 눈으로 복면을 바라보았다.
“이그나이트 몰라요? 화염 마법사 아닙니까? 점착성이 높은 거미줄은 불에 약합니다. 화염 마법으로 태웠으면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요.”
“아…….”
에이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생각하지 못했는지 스스로 돌이켜봐도 알 수가 없었다.
다급한 상황이어서?
물론 그것도 맞는 얘기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무의식에서 끄집어 올리지 못한 것이다.
스피릿 존의 화염은 마법사를 태우지 않지만 거미줄을 태울 때 발생하는 불은 마법사를 태운다.
그 손익계산이 발상을 억제했다. 시로네가 죽어 가고 있었는데도.
‘어째서 나는…….’
에이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대응하기 힘들어요. 당신은 경험이 너무 적습니다. 저를 따라가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싫어요! 같이 가겠어요!”
에이미는 바짝 독기가 오른 눈으로 소리쳤다. 이대로 복면을 보낸다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았다.
‘무서운 게 아니야! 불 따위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로네라면…… 생각해 냈을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에 하려던 말이 이그나이트가 아니었을까? 죽을 상황인데도 자신을 살리려고 그런 말을…….
‘시로네! 내가 반드시 구해 줄게!’
파이어 미스트를 시전하자 거미줄에 불길이 치솟았다. 복면의 말대로 정말 잘 타들어 갔다. 에이미는 얼굴이 망가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갑자기 열기가 사라졌다.
눈을 떠 보니 복면의 남자가 거미줄을 허공에 붙잡아 던진 채로 서 있었다. 마치 마술에 쓰이는 실처럼 거미줄이 빠르게 연소되어 사라졌다.
“어, 어째서……?”
복면은 한숨을 내쉬며 에이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리석군요. 설령 당신이 빠져나왔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시로네의 죽음이 앞당겨질 뿐이었어요.”
에이미는 곧바로 일어났다.
이 남자는 정말로 강하다. 그리고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가게 해 주세요. 아니, 이제는 혼자서라도 가겠어요.”
“에이미! 나도, 나도 갈 거야! 풀어 줘!”
높은 곳에 달라붙은 레이나가 발목을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에이미가 이그나이트를 손가락 사이에 시전하며 물었다.
“괜찮겠어요? 뜨거울 텐데.”
“지금 내 속이 더 타거든! 빨리 해! 터널이 닫힐지도 모르잖아.”
에이미는 피식 웃으며 엄지와 검지 사이의 불길을 키웠다.
약간의 열만 닿아도 순식간에 불이 붙겠지만 중력의 영향으로 추락하면 큰 화상은 입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법을 시전하기도 전에 거미줄이 세로로 쭉 갈라지더니 레이나가 떨어져 내렸다.
에이미는 황당한 듯 복면을 쳐다보았다. 간단한 윈드 커터로 정확히 거미줄만 잘라 내 버린 이자는 대체 누구일까? 최소한 자신의 인맥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실력자였다.
레이나가 날렵하게 착지해서 에이미에게 다가왔다.
그녀도 의아한 듯 복면을 바라보았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정체를 알 수 없으니 경계심을 거두지는 않았다.
복면은 도어의 상태를 살폈다. 공간의 테두리에서 에너지장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수명이 다해 간다는 증거였다.
5. 온갖 변수 (6)
“이렇게 됐으니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다리라고 권하고 싶군요. 들어가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시로네는 저에게 맡기세요.”
복면은 빠르게 말을 내뱉고 도어로 뛰어들었다.
에이미는 시로네의 상태를 살폈다.
목에 거미줄이 조여드는 실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게다가 초점은 자신이 묶여 있던 곳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니 이대로 놔두면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에이미와 레이나는 서로를 돌아보며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도어의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5초 뒤 도어가 사라졌다.
제노거와 시로네는 생과 사의 분기점에서 얼어붙은 채 천천히 해동되고 있었다. 시로네의 입술 사이에서 아주 천천히 그-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마도 이그나이트를 외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6. 거대한 비밀 (1)
시로네의 의식. 11단계 표층 심리.
콰르르르릉!
천둥이 쳤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씨였다. 먹구름이 온통 하늘을 가리고 있어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에이미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거리를 둘러보았다. 도시는 분명 처음 보는 곳이었지만 왠지 낯이 익었다.
벽돌이 깔린 길을 따라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섰고 가게마다 고래기름으로 태우는 횃불이 걸려 있었다. 그마저도 거친 바람에 시달려 힘이 약했다.
흔하게 보이던 거지들은 모두 대피했고 기성복을 입은 남자들만이 옷깃을 여미고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우비 천막을 씌운 마차가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성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마도 낮인 듯했다.
에이미와 레이나는 한기에 떨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비에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었고 머리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여긴 도대체…….”
“역시 들어오셨군요.”
두 여자는 본능적으로 몸을 가리고 돌아섰다. 옷은 입고 있지만 몸매가 드러난 상태라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골목의 어둠 속에서 복면의 남자가 걸어왔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이미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시로네하고는 무슨 사이예요?”
남자는 대답 대신에 복면을 벗었다.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어떻게 앞을 보나 의아했는데 얇은 붕대가 눈을 가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이었다.
“저는 제너레이드 아르민이라고 합니다. 시로네하고는 조금 인연이 있는 사이지요.”
에이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로네와 인연이 있다?
물론 시로네도 남들이 모르는 인맥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실력자와 알고 지냈다면 말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걸 어떻게 믿죠? 시로네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아르민은 무시하고 어딘가를 살피더니 두 여성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비부터 피하죠. 저를 따라오세요.”
폭우 속에 몇 분간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라 두 사람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여자끼리라고 해도 이런 민망한 꼴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르민이 두 사람을 데리고 간 곳은 식당과 여관을 겸업하는 가게였다.
에이미는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간판의 이름을 확인했다. 토르미아 언어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라서 뜻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던 40대의 여성이 형식적인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바깥에서 건물을 봤을 때는 너무 폭이 좁지 않나 싶었지만 막상 들어오니 안쪽으로 깊숙하게 뻗어 있는 구조였다.
홀은 7평 정도였고 술을 마실 수 있는 3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구석에 사냥꾼들이 앉아 뜨거운 술로 몸을 풀고 있었다.
홀을 지나서 모퉁이를 돌면 깊숙이 들어가는 복도가 나오는데, 바닥을 뜯어서 화덕을 놓았다. 배수로가 설치되어 있는지 이곳까지는 빗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주위에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사각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고 여행자 차림의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아르민은 우선 빈자리를 여자들에게 권하고 테이블을 돌아서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화덕 근처에서 몸을 녹이던 고깔모자를 쓴 악사가 4현 악기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여행자들이 자주 들르는 여관에는 악사를 고용하여 일정 인원이 모이면 음악을 연주하게끔 계약이 되어 있다.
또한 인원이 충당되지 않았을 시에도 개인적으로 돈을 주면 연주를 해 주기도 한다.
악사는 구슬픈 음조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사가 죽을 곳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노래였는데 곡조는 잔잔했지만 가사는 꽤나 슬펐다.
레이나는 악사의 연주가 수준급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하지만 화성학의 기본을 벗어난 변주였다. 마치 여러 곡을 하나로 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여행자들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그들은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몸매가 드러난 두 여성을 두고도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 게 증거였다.
에이미는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신이 몸매를 드러내면 반드시 남자들이 봐 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상한 상황이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들은 밥을 먹는 게 아니었다. 포크가 음식과 입 사이를 무의미하게 왕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먹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는 우울한 표정으로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읽을 수 없는 간판. 멜로디가 튀는 이상한 노래. 밥을 먹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우울한 표정.
에이미는 문득 소름이 돋았다. 비로소 이곳이 자신이 알던 어떤 세계와도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여긴, 대체 어디죠?”
아르민은 그 질문에 도달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곳은 시로네의 의식입니다. 여러분이 오기 전에 살펴봤는데, 아마도 인간의 정신 12단계 중에 11단계, 즉 표층 심리인 것 같습니다.”
인간 정신이 12단계로 구분된다는 것은 갈리앙트에 갔을 때 아린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곳에 들어왔다는 게 문제였다.
레이나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되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가, 시로네의 의식이라는 건가요?”
아르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부연을 대신했다.
이런 이상한 세계를 설명하려면 설득보다는 그저 믿도록 만드는 게 효과적이었다.
에이미는 아르민의 의도를 간파하고 호기심을 억제했다.
일단 믿자. 여기가 어디든 시로네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가 더 중요했다.
“아리우스를 쫓아야 해요. 게다가 조금 있으면 현실에서 시로네의 목이 잘린다고요.”
아르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현실의 시간과 의식의 시간은 꽤나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곧바로 저를 쫓아왔겠죠?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30분 이상 기다렸습니다.”
에이미는 감각적으로 계산해보았다.
약간의 시간 차가 있기는 했지만 아르민과 거의 동시에 이곳에 들어온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30분이나 차이가 났다면 현실에 비해 굉장히 시간이 느리다고 봐야 했다.
‘아니, 그보다는 의식의 속도가 빠른 것이라고 해야겠지.’
아르민이 말을 이었다.
“시로네는 당분간 괜찮을 겁니다. 가능하다면 더욱 시간을 늦추고 싶었지만 시간 역장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
현재 아르민은 카즈라 왕성에서 1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케이라를 스톱 마법의 시간 역장으로 묶어둔 상태라 여분의 시간선이 그리 많지 않았다.
보통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슬로 마법이라면 훨씬 극단적으로 시간을 늦출 수 있었겠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슬로는 액티브 마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하나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전지 슬롯을 슬로로 채워버리면 같은 스케일 마법사인 아리우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더군다나 시분할 상태로 겨룰 만큼 녹록한 상대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패시브 스킬인 시간 역장을 사용했다.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점유하는 시간 역장은 발동 이후에도 공간에 효력이 지속되기에 상대의 반응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지 슬롯을 하나 남겨두는 셈이다.
아리우스가 대치 상태에서 섣불리 수작을 부리지 못한 것도 이러한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시로네는 즉사를 피했지만 아르민의 시간선은 꼬리만 남은 상태였다. 역장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해도 효력이 떨어진다면 없느니만 못했다.
‘유일하게 남은 건 플리커. 이걸로 해볼 수밖에 없나.’
아르민이 두 여자를 기다린 것도 막상 들어온 11단계의 의식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