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42
시로네의 친구들을 위험에 빠트리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진해서 들어온다면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아주 여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시로네를 찾아야겠죠. 하지만 공교롭게도 저는 전투 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거죠. 일단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정보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레이나가 경청할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네, 돕고 싶어요. 그러니 말씀해 주세요. 어째서 지온이 암살자와 아리우스까지 매수해서 시로네를 죽이려고 하는 거죠? 특히나 아리우스는 오르캄프의 사람인 걸로 아는데요.”
“그 얘기를 하자면 우선 아리우스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군요. 그자의 별칭은 도굴꾼, 블랙 라인에서는 꽤나 유명한 마도7걸에 속한 자입니다.”
블랙 라인이라는 말에 에이미는 미간을 찡그렸다.
레드 라인에도 범죄자는 있지만 어차피 그들 또한 악명과 업적으로 등급을 올리는 자들이었다.
예를 들어 아케인이 그랬다.
반면에 블랙 라인은 명예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쾌락만을 탐하며 그 쾌락을 위해서는 사회가 붕괴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여태까지 그런 자가 오르캄프 옆에 있었단 말이에요?”
“실력은 확실하니까요. 언로커이자 스케일 마법사로, 주로 사람의 정신에 침투하여 생각을 훔치는 걸 주업으로 삼죠. 그가 시로네의 표층 심리에 도어를 설치한 것입니다. 아마도 시로네가 모르는 사이에 최소 한 번 이상 다이브를 했을 거예요.”
에이미는 테이블을 두들겨 보았다. 딱딱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이 여관의 모든 게 시로네의 의식이란 말인가요?”
“네. 사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로네의 정신 작용이 만들어 내는 풍경입니다.”
레이나가 물었다.
“대체 어떤 원리죠?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구체적인 세계로 나타날 수 있는 건가요?”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습득한 정신은 모두 사물화가 됩니다. 사랑, 분노, 미적지근함, 모두 사물이죠. 언어라고 해석해도 무방합니다만, 이곳은 무의식과 연관이 있는 세계이니 사물화가 맞는 표현일 겁니다.”
아리우스는 여관의 풍경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정신세계인데도 사물의 배치가 현실과 흡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11단계의 모든 사물이 6단계 렘의 영역을 거쳐서 올라오기 때문이죠. 만약 무의식이 그대로 여기까지 투영되었다면 완전히 뒤죽박죽인 세계일 겁니다.”
에이미가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흐음. 그러니까 사람의 정신이 렘이라는 필터를 거쳐서 사물로 변환된 다음 여기까지 올라온다는 건가요?”
“바로 그겁니다. 렘이라는 것은 수면 중의 정신 상태이기 때문에 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꿈은 의식과 무의식을 나누는 경계선입니다. 그래서 꿈속에서는 두 가지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죠. 6단계에서 위로 갈수록 의식이 강해지고 내려갈수록 무의식이 강해집니다.”
아리우스는 천장을 가리켰다.
“이곳은 11단계 표층 심리로 껍질 층을 제외하고는 최고층입니다. 따라서 굉장히 사물화된 세계에요. 현실적이고, 복합적이면서, 광범위하죠.”
악사의 구슬픈 곡조가 잔잔하게 깔렸다.
여전히 변주가 엉망이었지만 이 또한 꿈이라는 필터를 거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으스스함은 사라졌다.
레이나가 말했다.
“아리우스가 도굴꾼이라고 했죠. 그 사람이 시로네의 정신 에서 무엇을 훔치려는 거죠?”
에이미가 대답했다.
“아타락시아군요.”
6. 거대한 비밀 (2)
아르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시로네가 카즈라 왕성에 초대를 받은 이유는 그가 대천사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역시 그랬군요. 나쁜 놈들! 단순히 친아들을 찾으려는 게 아니었어.”
레이나는 천국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두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선은 잠자코 있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도 늦지 않을 터였다.
에이미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잠시만. 그런데 어째서 시로네를 죽이려고 한 거죠? 시로네가 죽으면 아타락시아도 사라지는 거 아닌가요?”
아르민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예리한 지적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솔직히 말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마도 시로네를 죽이려는 건 아리우스의 생각일 겁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마음을 먹지는 않았을 겁니다. 단순히 시로네의 정신에 침투하여 아타락시아를 복제할 생각이었겠죠. 하지만 실패한 거죠.”
“어째서죠? 복제가 어려운 건가요?”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제 생각에 아타락시아는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에요. 의식의 어느 지점에 강제로 장착하면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주인은 아주 깊숙한 곳에 각인을 시킨 것 같아요.”
“깊숙한 곳이라면?”
아르민이 검지를 세웠다.
“제1단계. 본능을 관장하는 모태 의식에 있을 겁니다. 본능의 영역에 심어 버리면 아무리 기괴한 개념이라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니까요.”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르민이 말을 이었다.
“본능이란 본인에게는 안전한 공간이지만 타인에게는 끔찍한 곳이죠. 하지만 아리우스의 실력이라면 잠깐 정도는 모태 의식까지 잠수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게다가 시도는 해 본 것 같은데요. 도어가 설치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그런데도 도굴에 실패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죠. 아마도 인간이 풀 수 없는 암호 체계로 보호받고 있든가, 시로네조차 내부를 볼 수 없는 캡슐의 형태로 각인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기에 시로네를 죽이려고 결심한 것이죠. 모태 의식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방어본능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일단 무의식의 보안장치가 발동되면 천하의 다이버라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익사해 버릴 겁니다.”
“이제야 알겠어요. 그래서 시로네의 목을…….”
“바로 그겁니다. 인간의 무의식은 육체의 깊숙한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죠. 따라서 목이 잘리면 무의식의 방어기재가 붕괴됩니다. 아리우스는 그 기회를 노린 거죠.”
에이미는 입술을 물고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저기, 뭔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리우스가 무의식을 붕괴시킨 다음에 1단계에 도달한다고 해도 거기서 무엇을 할 수 있죠?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면 복제를 한다고 해도 써먹을 수가 없잖아요? 시로네처럼 본능에 새길 수 있는 방법도 없고요.”
아르민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절대로 세상 밖으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다.
‘가급적 이것만은 밝히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이들의 도움이 없이는 시로네를 구할 수 없다. 임무 수행력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는 이 세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들을 내용은 어떤 국가를 막론하고 최고 보안등급이 걸린 기밀입니다. 물론 기밀치고 기밀인 것은 없다지만, 어쨌거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장담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르민의 마지막 말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정신은…… 사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에이미는 눈을 깜박였다. 우선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았고 잔뜩 기대했던 것에 비해 싱겁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점차 아르민의 말이 머릿속에 녹아들면서 얼마나 황당한 소리인지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정신이 사물이 된다는 건가요?”
아르민은 대답을 미루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혹시 라는 단어를 들어 보셨습니까?”
레이나가 먼저 고개를 저었고 이어서 에이미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르민은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드리모는 다차원 정신세계입니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를 소모하여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에너지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에너지는 단지 뇌를 가동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고 생각은 또 다른 개념이라고 여깁니다. 에너지가 만들어 낸 생산품이라는 거죠. 그리고 그 생산품은 반드시 어딘가로 배출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꿈이라는 공간이죠.”
“질량보존의 법칙과 비슷한 개념이군요.”
“맞습니다. 드리모는 꿈에서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모든 생각이 모여드는 상상 복합 단지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여기서 굉장한 가설이 나오죠. 생각이 드리모로 빠져나간다면, 반대로 드리모에 있는 생각을 현실로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에이미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물었다.
“실제로 드리모에 간 사람이 있나요?”
“왜 없을까요? 아니, 수없이 많습니다. 꿈을 통해 들어간 다음 등가교환의 룰을 교묘히 이용해서 밀수하는 거죠. 다만 강력한 욕망이 담겨 있지 않은 개념은 밀수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어쨌거나 아리우스는 그런 방식으로 생각을 도굴합니다.”
“잠깐만요. 그 말은 드리모에서 건너온 물건들이 이미 존재한다는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그건 대체…….”
에이미는 무언가를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 물건이라는 게…….”
아리우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오브제라고 부릅니다.”
에이미는 아르민이 으름장을 놓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생각이 에너지에 불과하다는 기존의 가설을 깨는 증거였다.
“말 그대로, 오브제는 인간의 정신이 물질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브제의 능력은 지극히 사적인 욕망에 기초하고 있죠. 물론 생각 속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죠. 다만 문제는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을 경우입니다.”
레이나가 말했다.
“오브제는 저도 알고 있어요. 지인 마법사의 말로는 우주의 법칙에 위배되는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지금 들어 보니 그들 또한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했던 것 같네요.”
아르민이 동의했다.
“그럴 겁니다. 고위 계층, 심지어 왕족이라도 드리모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니까요. 아마도 왕을 제외하면 전담 부서 외에는 극비일 겁니다. 오브제는 마치 인과율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물질의 한 종류라는 가설을 인정하면 우주의 법칙까지 무시하는 것은 아니죠. 다만 현실과 드리모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게 많습니다.”
레이나가 말했다.
“처럼 말이군요.”
“호오, 알고 계셨습니까?”
레이나는 홍조를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렇게 부른다는 것만 알아요. 왕족들 모임에 연주자로 갔었는데 워낙에 귀가 좋아서 들리는 게 많거든요. 죄송해요. 그냥 아는 게 나와서…….”
아르민은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흥미롭게 듣고 있던 에이미는 마지막 사건에서 몸서리를 쳤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요?”
“실제 사건은 맞습니다. 다만 가주의 정신병적 소행인지 차원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현상인지는 의견이 분분하죠.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고 결국 그 자리에 오브제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가문의 누군가가 드리모에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드리모로 가는 조건은 밝힐 수 없지만 우연의 일치로 들어갈 확률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요.”
에이미는 그 조건이란 게 궁금했지만 거기까지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어쨌거나 드리모와 현실의 관계는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각국에서는 드리모에 접근하는 행위를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이브 마법 자체는 그리 나쁜 게 아닙니다. 정신 질환자의 치료에 사용하죠. 정식 다이버 자격증이 필요하고요. 하지만 아리우스는 그걸 악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이버가 아닌 도굴꾼으로 불리는 거죠. 드리모 접근은 어떤 국가를 막론하고 금기시되는 일입니다. 아리우스가 더블S급 범죄자로 전 세계의 추적을 받는 이유입니다.”
레이나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거네요.”
아르민도 쉽지 않다는 건 인정했다.
“사실 범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로 뛰어난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이브라는 건 엄청난 지적 능력이 필요한 작업이거든요.”
에이미는 여태까지 들은 내용으로 개요를 짰다.
“제가 정리해 볼게요. 아리우스는 아타락시아를 노리고 있어요. 시로네의 무의식을 붕괴시키기 위해 살인을 계획했고 현재 1단계로 향하고 있죠. 거기서 아타락시아를 훔쳐서 드리모로 갈 거예요. 그런 다음 밀수를 통해 현실로 가져오는 거죠. 그렇게 된다면……?”
에이미는 상상만으로 소름이 돋았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아르민이 케이라를 스톱 마법으로 묶으면서까지 이곳에 온 이유였다.
“맞습니다. 아타락시아가 오브제가 됩니다. 대천사의 능력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이건 정말로 심각한 일입니다.”
“…….”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직면한 두 여성은 잠시 동안 말을 잃고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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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역장에 갇힌다는 것은 바보가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생각의 가속도, 감정의 가속도, 인지의 가속도는 그대로지만 전개되는 속도만이 느려진 상태일 뿐이다.
그렇기에 시로네는 여전히 충동적이고, 그 충동은 느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더욱 강렬한 충동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제노거의 강선도 강력한 에너지를 느린 시간에 담아 시로네의 목을 파고들고 있었다.
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느리게 퍼지고, 그보다 더욱 느리게…… 시로네의 목에 새겨진 실금이 핏물로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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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창밖이 한순간 금빛으로 물들었다.
우르릉! 쾅! 콰콰쾅!
천지가 떠나갈 정도의 천둥소리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에이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현실에서도 듣기 어려운 과격한 자연현상이었다.
천둥에 겁을 먹을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파천황의 폭성을 듣자 인간 본연의 두려움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정말 엄청나네요. 바로 앞에서 천둥이 치는 것 같아요.”
아르민이 바깥을 살피며 말했다.
“무의식에서 받아들이는 죽음의 공포가 표층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굉장히 양호한 거예요. 보통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이미 아수라장이 되고도 남았을 겁니다. 시로네 정도니까 버티는 것이죠.”
에이미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에 핀잔을 받은 자신과 다르게 아르민은 시로네를 인정하고 있었다.
이런 대단한 마법사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렇기에 이 자리에 시로네가 없다는 게 슬펐다.
‘하긴, 이 모든 게 시로네니까…….’
아르민은 감상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했다.
“지금도 강선은 시로네의 목을 조이고 있습니다.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고 아래부터 붕괴되기 시작하겠죠. 그 여파는 현재 11단계의 상태를 보면 알 겁니다. 결국 아리우스가 심해로 잠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죠.”
에이미는 빠르게 현실감을 되찾았다.
“방법이 없나요? 시로네를 살릴 수 있는 방법요.”
아리우스와 지온을 막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대로 시간 역장이 풀리게 되면 시로네는 곧바로 죽게 된다.
“현재로서는 한 가지 방법뿐입니다. 우리도 렘 영역을 지나서 심층까지 파고들어 가는 것이지요. 현실에서 무언가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어요. 하지만 정신의 밑바닥에 무언가를 심어 두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시로네의 의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곧바로 시로네의 것이 된다. 따라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응할 방법을 미리 무의식에 심어 놓자는 얘기였다.
“아타락시아처럼, 마법을 심는 건가요?”
아르민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무리입니다. 사실 저 또한 시로네가 어떤 방식으로 그 마법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천사만의 무언가가 있었겠죠. 하지만 우리는 무리예요. 다만 간단한 행동 지침 같은 것은 충분히 깊이 들어간다면 새길 수도 있을 겁니다.”
6. 거대한 비밀 (3)
레이나가 말했다.
“행동 지침이라. 그 정도로 가능할까요?”
시로네는 이미 강선에 목이 조인 상태다. 어떤 행동을 촉발시킬 생각을 심는다고 해서 그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일단은 해 보는 수밖에 없겠죠. 사실 그렇게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물론 목이 잘리는 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동맥만이라도 절단되면 치명상이니까요. 아마 그때쯤이면 무의식이 엄청난 속도로 붕괴될 겁니다.”
에이미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럼 어떡하죠?”
아르민이 제시한 해법은 단순했다.
“시로네를 찾아야죠.”
“네? 하지만 여긴 시로네의 정신이잖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의 모든 것들은 시로네의 핵심을 투영해서 만들어 낸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그림자가 아닌 핵심을 찾을 거예요. 화신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에이미는 소용돌이 뱀의 계곡에서 가드락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거대한 뱀의 그림자였던 소용돌이 뱀은 실제로는 매끈하고 작은 도롱뇽에 불과했다. 천국의 사람들은 그것을 화신이라고 불렀다.
“그 화신이라는 것이 11단계 표층에 있을까요?”
아르민은 고개를 저었다.
“없을 겁니다. 그러니 불러내야겠죠.”
레이나가 물었다.
“어떻게 부르나요?”
아르민의 대답을 듣기 전에 에이미가 알아차렸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결국 이곳의 모두가 시로네잖아요.”
아르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두 사람도 이 세계의 속성을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는 듯했다.
“맞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키워드라고 부르는 거죠. 바깥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물어보면 되는 거죠. 시로네를 키워드로 주입하면 화신이 11단계까지 올라올 것입니다. 그럼 이제 출발하죠.”
아르민은 두 여자를 데리고 카운터로 걸어갔다. 그리고 여전히 뜨개질을 하고 있는 중년 여성에게 물었다.
“혹시 시로네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아르민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거짓말처럼 악사의 연주가 그쳤다. 사람들의 중얼거림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고서야 얼마나 잡음에 노출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완벽하게 고요해진 상태였다.
에이미는 서늘한 기분에 주위를 돌아보았다.
여태까지 우울함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눈을 또렷하게 뜨고 아르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운터의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정지한 듯 눈조차 깜빡이지 않던 그녀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을 왜 찾으려는 거지?”
아르민은 흐음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이라. 시로네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을 보니 신중한 그의 의식다웠다.
어쨌거나 이제부터 말을 잘해야 한다. 노골적이어서도 안 되고, 적개심을 갖는 발언도 금물이었다.
“긴히 전할 얘기가 있습니다.”
여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뜨개질을 이어갔다.
“몰라. 그런 사람 누군지.”
“그렇군요.”
아리우스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숨을 후 하고 불었다.
역시 훈련이 잘되어 있다. 아무리 정신계 특화인 마법사라도 목이 잘리는 상황에서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바깥에서는 천둥이 치고 난리가 났는데도 의식의 편린들이 여전히 경계심을 유지한다는 건 평상시에 그가 얼마나 정신을 잘 가다듬어 왔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