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49
에이미는 고개를 흔들면서 시로네를 끌어안았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를 품 안에서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죽지 않아. 내가 살려 줄게! 반드시 내가 너를 살려 줄게!”
시로네는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다.
에이미가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도망쳐…… 에이미.”
시로네의 방을 살피던 레이나가 거실로 뛰쳐나와 소리쳤다.
“에이미! 이쪽이야! 찾았어!”
에이미는 시로네를 소파에 눕히고 방으로 달려갔다.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최후의 최후까지 왔으니 이제부터는 이판사판이었다.
시로네의 방에 있는 테이블에 한 권의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아르민이 기다리고 있었고, 레이나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다.
에이미가 노트를 가리키며 다가왔다.
“이게 그거예요?”
“응. 의식의 흐름이 기록되어 있는 노트인 것 같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어떡하지, 에이미?”
에이미는 테이블로 다가가 노트를 살폈다.
마지막 페이지의 최상단에 ‘에이미’라고 적혀 있었다.
안쓰러운 표정을 짓던 그녀는 시로네의 생각을 알기 위해 페이지를 넘겨 보았다.
그곳에도 에이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것도 노트 전체에 가득.
다시 한 장을 넘겼다.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페이지를 넘겨도 에이미라는 이름이 시작된 지점을 찾을 수 없었다.
에이미는 다시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시로네를 살려야 한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강선에 목이 조인 시로네를 무사히 탈출시킬 수 있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지진처럼 오두막이 흔들렸다.
에이미는 테이블을 붙잡고 균형을 되찾았다.
심층 2단계가 요동칠 정도라면 현실의 시로네의 생명이 거의 끝나 간다는 뜻이다. 최소한 아리우스를 따라잡지 못하면 전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터였다.
“에이미! 지금 내려가야 돼! 시로네를 데려올게!”
레이나가 방을 빠져나갔지만 에이미는 움직이지 못했다.
설령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시로네가 살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안 돼!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하지만 현실은 정신세계와 다르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레이나도 아르민도 바보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선 다른 사람이 살아날 방도라도 찾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테이블의 펜을 움켜쥔 에이미의 손이 벌벌 떨렸다. 흐르는 1초 1초가 저주스러울 지경이었다.
심연의 비밀 (3)
문밖을 살피고 있던 아르민이 그녀를 재촉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무언가를 할 생각이면 지금 해야 합니다.”
에이미는 어금니를 깨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1단계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시로네라면…… 시로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에이미는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고 펜을 움직였다.
시로네.
이게 최선이었다.
살릴 방법을 찾을 수 없다면 최소한 의식의 흐름이라도 바꾸어 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거실에서 레이나가 소리쳤다.
“에이미!”
에이미는 펜을 내려 두고 아르민과 거실로 달려갔다.
생물과 금속의 성질이 뒤섞인 갑옷을 입은 자가 시로네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지온!”
에이미의 눈에 불이 타올랐다.
이곳을 탈출할 유일한 방법인 아리우스는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지금 그녀가 가장 패고 싶은 사람은 지온이었으니까.
레이나가 간발의 차로 시로네를 끌어당기고, 지온의 칼날이 소파를 쪼갰다.
에이미가 솟구치는 분노만큼이나 파이어볼을 강화시켜 던졌다. 평소보다 두 배나 커다란 불꽃이 지온에게 날아가 지척에서 폭발했다.
폭발력에 날아간 지온이 벽에 등을 처박았다. 하지만 충돌 직전 촉수가 벽을 붙잡으면서 피해를 최소화했다.
레이나가 시로네를 데리고 멀어지자 아르민과 에이미가 동시에 앞을 가로막았다.
“양동작전이군요.”
아르민의 스피릿 존은 최대로 확장했을 때 오두막 전체를 섭렵하고도 남는다.
암살자의 이퀄라이징이라면 간파할 수 없겠지만 지온의 인기척을 놓칠 만큼 서투르지 않았다.
‘1단계에 숨어 있었군. 결국 아리우스는 이미 내려갔다는 건가?’
아르민 일행이 현실의 시로네를 살리기 위해 2단계에 머물러야 했듯이, 아리우스에게도 아타락시아를 추출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지온을 보내 시간을 끌게 한 것이다.
“어떻게든 가져야겠다는 건가?”
아르민이 시로네 쪽으로 물러서자 곧바로 이해한 레이나가 앞으로 나섰다.
플리커 마법과 위력이 약한 마법만으로는 금강무장에게 충격을 가할 수 없었다.
“에이미, 알고 있지?”
“네.”
두 사람은 식품 저장고에서 벌였던 일전을 상기하고 서로 멀어졌다.
지온이 사각을 다루는 법에 능숙하지 않다는 단점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흥! 두 번은 당하지 않아.”
지온은 촉수를 양쪽으로 날려 타깃의 분산을 사전에 차단했다. 그리고 벽에 박힌 촉수의 장력을 이용해 레이나에게 날아들었다.
레이나는 바닥을 구르는 찰나의 순간에 활을 쏘았다.
화살이 갑옷에 격중하자 지온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에이미가 타깃형의 스피릿 존을 휘돌리며 파이어 스트라이크를 연사했다.
불꽃의 창이 스칠 때마다 아르망의 유기질이 바삭하게 타들어 갔다.
“건방진 계집!”
공중에서 묘기처럼 회전한 지온이 벽을 박차고 날아들었다.
벽에 박힌 8개의 촉수가 일제히 힘을 전하자 질풍과도 같은 속도가 나왔다.
에이미는 잔상만 확인한 채로 몸을 뒤틀었다.
쿵 하고 바닥에 추락한 지온이 무릎을 구심점으로 회전하면서 칼날을 휘둘렀다.
은빛 섬광이 지나가자 에이미의 목 칼라가 잘려 나가면서 쇄골과 가슴 상단부가 드러났다.
우유처럼 투명한 살결에 붉은 혈흔이 시나브로 떠올랐다. 조금만 깊게 베였으면 대동맥이 잘릴 위치였다.
“너 이 자식…….”
“하하! 꼬락서니가 영락없는 술집 창부로군!”
에이미의 상처에서 새어 나오는 피가 모아진 가슴골을 따라 흘러내렸다.
백색과 적색의 대비가 지온의 광기를 충동질했다.
혀로 입술을 핥은 그가 돌격할 자세를 취하는 순간, 시로네가 지온을 노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크으으으으!”
지온과 에이미가 대치하는 중간 지점에 어둠이 모여들더니 날렵하고 매끈한 몸체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에고이스트-살의화.
턱이 송곳처럼 뾰족했고, 칼날처럼 예리한 머리카락이 올백으로 큰 포물선을 그리며 허리께까지 내려왔다.
원숭이처럼 긴 두 팔은 완연한 검의 형태였고 역관절로 꺾인 무릎은 엄청난 운동에너지를 저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발바닥조차 스케이트 날처럼 반월의 형태였다.
“쉬오오오오오오!”
이빨이 시릴 정도로 예리한 귀곡성에 지온은 질린 표정을 지으며 물러섰다.
살의화가 역관절을 압축시켰다가 튕기자 잔상조차 없이 모습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정면으로 돌진한 게 아니다.
하지만 동선을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지온의 눈동자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경고. 동체動體 인식 불가. 신경계 마비. 자동 방어 태세 변환.
생각의 속도로 경고 음성이 전달되면서 지온의 망토가 주인을 감쌌다. 동시에 사방으로 촉수가 뻗어지면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에고이스트의 살의화는 그것마저도 피해 양손을 교차하며 지온을 강타했다.
칼날의 그림자가 음속의 속도로 지나가자 망토의 표면이 급속도로 경화되더니 선명한 X 자 형태의 상흔을 남겼다.
펑! 하고 뒤늦게 소닉붐이 터졌다.
“크으으으!”
충격파에 날아간 지온이 바닥을 구르자 망토가 펼쳐졌다.
건틀렛의 칼날로 바닥을 내리찍으며 구르기를 멈춘 지온은 오롯이 서 있는 에고이스트를 올려다보았다.
-동체 감지. 신경계 이완. 자동 방어 태세 해제.
아르망이 즉각 전투태세를 갖추었으나 지온은 이미 싸울 의지를 잃은 상태였다.
40억이란 거금을 내놓고 목숨까지 걸어야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어쨌거나 아리우스가 부탁한 시간은 채웠다.
사용자의 감정을 읽은 아르망은 이동 특화 시스템을 가동했고 지온은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여 시로네 일행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에이미와 레이나는 추격을 포기하고 시로네를 살폈다.
아리우스의 품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투명하여 사물이 투과될 정도였다.
“시로네! 어떻게 된 거야?”
아르민이 대신 설명했다.
“최후의 힘으로 에고이스트를 발현시켰어요. 더 이상 이동은 무리입니다.”
“아, 아르민 씨, 도망치세요.”
“아뇨. 어차피 아리우스를 잡지 못하면 우리도 나갈 수 없습니다. 내려가는 길을 가르쳐 주세요. 아타락시아를 도굴당하면 큰 재앙이 닥칠 겁니다.”
아르민은 시로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화신의 테두리가 밝게 빛나면서 바닥이 마치 초콜릿처럼 녹아 아래로 흘러내렸다.
“시로네가, 죽는 건가요?”
“아뇨. 내려가고 있는 겁니다. 1단계의 입구는 시로네이기도 하니까요.”
에이미는 사람의 형태로 함몰되는 바닥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벌써 5미터 이상 내려간 시로네를 향해 소리쳤다.
“시로네! 반드시 구해 줄게! 내가 반드시 구해 줄 거야!”
지하의 어둠이 액체처럼 시로네의 표면을 잠식해 나갔다.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에이미는 시로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2단계 전체가 구멍으로 빨려 들었다.
***
시로네의 정신 1단계. 모태 심리.
심연의 끝이었다.
풍경과 함께 아래로 떨어진 에이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하지만 어둡지는 않은 수평면이었다.
어딘가에서 두국, 두국,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물속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이 소리는……?”
아르민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시로네가 자궁에 있을 때 들었던 소리입니다. 이곳은 모태 심리라고 해서, 발생부터 탄생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즉 본능이 만들어지는 장소죠.”
“결국 아타락시아는 마지막 단계에 있었군요.”
레이나의 말에 아르민도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막연하게 가능성만을 염두에 두고 달려온 여정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본능의 영역에 대천사의 능력이 각인되어 있을 줄이야.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설마 빙의인가?’
그렇다고 해도 너무 위험하다.
빙의는 다이브보다 강한 정신 탐색 능력을 얻을 수 있지만 에고이스트의 반발도 엄청날 터였다. 정상적인 상태의 시로네에게 빙의를 시도했다가는 제아무리 대천사라고 해도 소멸할 위험성이 컸다.
‘하긴, 단정 지을 수는 없지. 대천사라면…….’
아르민이 생각하는 확률은 50 대 50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떤 존재라도 타인의 정신세계에 들어가서 화신을 압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대천사였기에 변수의 여지는 남는다.
인간의 능력을 까마득히 초월한 존재.
천국에 갔을 당시에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렸다.
“일단은 가죠. 아리우스의 작업이 꽤나 진행되어 있을 겁니다.”
레이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죠?”
“그냥 걸으면 됩니다. 이곳은 공간이 아니에요. 마법사들은 스폿이라고 하죠. 방향이 없기 때문에 어디로 가도 상관이 없습니다. 사족을 더하면, 마법사의 스피릿 존도 정신을 1단계에 모으는 것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에이미는 새로운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1단계는 상위의 개념을 압축시키는 저장고였다.
공간이 아니기에 체적은 무한대.
무한이란 흔히 상상하는 거대한 무언가가 아닌 그저 하나의 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민의 말에 따라 그들은 무작정 나아갔다. 어떻게 걸어도 변화가 없기 때문에 마치 제자리를 걷는 기분이었다.
50미터 앞에 물체가 보이자 거리감이 발생하면서 1단계의 풍경이 변했다.
상쾌한 새소리가 들리는 푸른 정원이었고, 순백의 조각상들이 무작위로 세워져 있었다.
에이미가 천국에서 본 것은 이상한 기계장치들로 채워진 대세계전이 전부였기에 눈치채지 못했으나 아르민은 한눈에 천사의 조형물임을 알아보았다.
‘이카엘의 흔적인가.’
아르민 일행은 분수대 너머에 세워진 신전으로 들어갔다. 대리석 바닥의 한기가 상쾌한 기분을 들게 했다.
높이 8미터에 달하는 천사의 조각상이 보이고 그 앞에서 아리우스와 지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리우스는 복면의 남자가 누구였는지 깨달았다.
얼굴은 처음 보지만 스케일 마법사 중에 시간을 다루고 맹인이라면 선택할 것도 없이 한 사람뿐이었다.
“흐음, 이건 의외로군요. 당신 같은 실력자를 알아보지 못해서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기분은 좀 그러네요. 솔직히 상상도 못 했거든요. 그쪽에서 먼저 ‘협정’을 어길 줄은.”
아르민은 못 들은 척 조각상부터 살폈다.
대천사가 두 손에 가슴을 모으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날개가 몸을 감싸고 있고 머리 위에는 광륜이 지지대조차 없이 떠 있었다.
‘이게 아타락시아의 사물화인가…….’
아리우스에게 고개를 돌린 아르민이 근엄하게 말했다.
“협정 서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1명의 마법사로서 도굴꾼을 처단하러 왔을 뿐 조직과는 관련이 없다.”
아리우스는 능청스럽게 귀를 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