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53
“시로네! 안 돼!”
샤이닝 임팩트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광자 압축력에 에이미는 끔찍한 전율을 느꼈다. 시로네의 정신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환청이 들렸다.
인간의 정신은 유동적이지만 급격한 충격에는 매우 취약하다. 시로네의 의지와 관계없이 한계를 넘어 버리면 다시는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육식 종들이 나무를 타는 뱀처럼 내려와 시로네의 살점을 향해 턱을 벌렸다. 그와 동시에 포톤 캐논의 빛이 사라졌다.
펑 소리를 내며 태어난 것은 사람의 머리 크기의 검은 구체였다. 질량이 극한으로 압축되자 빛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빨려 든 것이었다.
포톤 캐논의 대칭형, 암구暗球였다.
키에에에엑!
암구가 만드는 소규모 중력장의 반경은 직경 1미터. 그 중력장에 갇힌 육식 종들의 줄기가 부러지면서 빨대로 물방울을 빨아들이듯이 순식간에 암구로 사라졌다.
이어서 시로네의 사지를 붙잡고 있는 넝쿨들이 뿌드득 소리를 내며 휘어지기 시작했다.
넝쿨은 버텨 보려고 용을 쓰는 몸짓을 보이다가 우지끈 부러지며 암구로 빨려 들었다. 그러자 넝쿨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식물군이 벽에서 뜯겨 나와 소용돌이처럼 맴돌았다.
으드득! 으드득!
섬유질이 부서지고 터지고 압축되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결국 암구의 어둠으로 처박혔다.
보순은 자신의 장기인 ‘한 줌의 씨앗’이 통째로 파훼되는 광경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빛을 가둘 수 있는 힘은 중력밖에 없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중력이 집중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스케일 마법…….’
시로네는 언로커지만 스케일 마법사는 아니다. 하지만 중력을 극단적으로 강화하자 스케일 마법사와 똑같은 공간에 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어쩌면 모든 언로커는 스케일 마법사일지도 모른다고, 보순은 생각했다.
암구가 소멸했을 때에는 그랜드 홀의 북쪽에 터전을 마련한 수림이 깡그리 사라진 뒤였다. 천장 구석에 이끼들만이 초라하게 자리했고 생존한 몇 송이의 꽃들이 산성 점액을 질질 흘리다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보순은 굳은 목을 움직여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시로네는 피눈물을 흘리는 중에도 웃고 있었다.
“어때, 내 스케일 마법이? 참 쉽지?”
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의 입에서 핏물이 한 바가지나 쏟아져 나왔다. 에이미가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시로네는 실성한 듯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괜찮아. 어쨌든 아직 생각은 할 수 있잖아. 싸울 수 있으면 되는 거야. 지금도 내 속은 불타고 있으니까.
보순은 구겨진 자존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끝을 떨었다. 아무리 언로커라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중력 특화의 마법이기에 발사는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방어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법이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엑카시가 싸늘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투 마법으로 두각을 드러내려면 크게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세상이 깜짝 놀랄 기발한 마법을 발명하거나, 정말로 전투를 잘하거나.
엑카시는 후자에 속하는 인물로, 몸은 왜소하지만 전투 센스만큼은 왕국에서 알아주는 테크니션이었다.
화신의 주인 (5)
시로네는 피로 번들번들한 입술을 닦을 생각도 없이 엑카시를 돌아보았다.
“넌 뭐야? 하바리 주제에 나서겠다는 거냐?”
“보순 선생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입을 닥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도 죽어야겠군. 보순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놈 중의 하나니까.”
전투 마법사답게 엑카시는 도발에 휘둘리지 않았다. 로브 안에서 한 뼘 길이의 곤봉을 쥐고 눈앞으로 내민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력의 창, 프리즈.”
손바닥을 펼치자 곤봉이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회전했다. 원심력을 받은 것처럼 양쪽에서 심지가 빠져나오더니 키보다 긴 창으로 변했다.
엑카시는 그 창을 양손으로 붙잡고 휘돌렸다. 차가운 바람이 시로네에게까지 전해졌다.
현란하게 창술을 펼친 그가 마무리 자세를 취하며 창을 겨누자 칼날이 멈춘 자리에 쩍 소리를 내며 얼음 파편이 떨어졌다.
엑카시의 전공은 빙결. 그중에서도 마법 창술을 집중적으로 연마한 전형적인 전투 마법사였다.
특히나 마도 무구 프리즈는 빙결 마법사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고가의 병기였다. 기본적으로 마력 증폭 128퍼센트라는 고효율의 옵션이 부가되어 있는 데다가 빙결 마법에 한해 146퍼센트의 증폭력을 추가로 얻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마력의 빙결 지점, 즉 창의 칼날에는 특수 마력 증폭력이라고 하여 무려 280퍼센트 증폭 옵션이 부과되어 있는 사기적인 무기였다.
따라서 엑카시가 프리즈의 칼날에 빙결 마법을 걸게 되면 무려 554퍼센트의 마력 증폭도를 낼 수 있었다.
‘인간이 만든 것치고는 상당한 물건이군.’
시로네는 프리즈의 칼날 주위에서 계속해서 떨어지는 얼음을 예의 주시했다.
대기를 얼릴 수 있는 능력은 빙결 마법의 권위자인 시이나 정도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마도 무구의 힘을 빌렸다 해도 엑카시의 전투력을 폄하할 수는 없었다.
“눈보라 칼날.”
차가운 말투로 읊조린 엑카시가 순간 이동으로 거리를 좁혔다.
프리즈가 빠르게 공간을 가르자 칼날이 지나는 선을 따라 공기가 얼어붙었다. 쩍 소리를 내며 밧줄처럼 긴 얼음선이 탄생했다가 잘게 부수어 떨어졌다.
“아마추어에게 사용하는 건 수치스럽지만…….”
엑카시는 최단 거리로 창을 찔렀다.
시로네가 광폭을 시전하자 프리즈의 칼날이 광폭을 관통하면서 충격파가 터졌다.
시로네와 엑카시는 동시에 물러났다. 그리고 똑같이 상체를 튕기며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한 번의 실수가 목숨을 빼앗는 초근접전이 펼쳐졌다.
시로네는 접근하는 엑카시를 보고 포톤 캐논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지면이 흔들릴 정도의 위력이었으나 이미 엑카시는 하늘로 떠오른 뒤였다.
허공에 누워 있는 그가 프리즈의 손잡이 끝을 한 손으로 잡고 회전과 동시에 휘둘렀다.
창의 궤적을 따라 고리 형태의 얼음 튜브가 생겼다. 어느 한 점에 빨갛게 피가 묻어 있었다.
허리를 숙인 시로네의 등짝이 얇게 베이면서, 얼어붙은 혈액이 살을 찢고 튀어나왔다.
“크으으으!”
시로네는 바닥을 박차고 엑카시의 공격 반경을 벗어났다.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프리즈의 무서움은 사소한 상처라도 치명상으로 바꾸는 데에 있다. 등에 불이 붙은 듯 통증이 심해지면서 의식마저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엑카시는 창을 뒤로 세우고 먹잇감의 상태를 주시했다.
“무브먼트가 제법이구나. 하지만 아직 미숙해. 내 최강 전설의 거름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라.”
시로네가 불타는 눈으로 대꾸를 하려는 순간 발치 쪽에서 무언가가 데굴데굴 굴러 왔다.
프레시 트뤼풀이었다.
부모님의 식사에 나왔던 디저트. 초콜릿의 달콤함에 치사량의 독을 숨겼던 그 디저트였다.
시로네는 영혼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초콜릿을 발로 굴린 보순이 비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어때, 지금이라도 맛보는 게? 아주 맛있거든.”
“……생각이 바뀌었다.”
시로네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전부 다 죽어라.”
시로네의 몸에서 수십 줄기의 레이저가 쏘아졌다.
타기팅조차 필요가 없었고, 막무가내로 벽을 긁고 지나간 자리마다 불꽃이 터졌다. 그랜드 홀이 뒤흔들렸다.
귀족들은 혼비백산했다.
죽어 봐야 보순 일파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시로네가 묻지 마 테러를 시작하자 비로소 이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젠장! 뭣들 하고 있어! 빨리 저 자식을 죽여!”
개인 경호원들이 시로네에게 달려들었다. 수십 명의 검사들이 칼을 뽑아 들고 돌진하자 보순의 부하들도 각자의 전공으로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시로네는 구부정하게 서 있는 상태에서 광폭을 시전했다.
무한의 단위에서 심박동心博動이 일어나자 장막의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 순수한 에너지의 형태가 공간을 차지했다.
시로네가 서 있는 바닥이 마치 과자처럼 퍼석 부서지며 깊숙한 반구형으로 함몰되었다. 빛의 장막이 밀어낸 바람만으로도 사람들이 벽까지 밀려났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자들도 보통 이상은 충분히 하는 자들이었다. 1차 기습은 실패했지만 곧바로 전열을 수습하고 다시 시로네에게 돌진했다.
그 선봉에 있는 엑카시가 프리즈를 앞세웠다.
창날에 찢어지는 바람이 눈보라처럼 얼어붙어 등 뒤로 퍼졌다. 시로네가 포톤 캐논으로 응수했으나 크게 반경을 우회하여 순식간에 시로네의 사각을 제압했다.
‘이걸로 끝이다.’
프리즈를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엑카시의 눈앞에 붉은 섬광이 번뜩였다.
“크윽!”
상체를 젖힌 엑카시의 코를 스치며 가느다란 레이저가 지나갔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등을 찍은 그는 황당한 눈으로 프리즈를 바라보았다. 칼날이 잘려 나갔고 절단면이 시뻘건 용암으로 변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젠장, 세상에 이런 마법이 어디 있어!’
금속을 자르는 빛이라니.
대체 얼마만큼의 고출력을 다루어야 가능한 경지인가?
질량을 강화한 포톤 캐논은 어처구니없이 묵직하고, 에너지를 강화한 레이저는 섬뜩하리만치 예리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경비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상황 판단을 잘못했다는 것을.
처음부터 시로네는 이 자리의 모두를 적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최고 귀족들이 모인 이곳에서 아군의 전투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게릴라전의 전형적인 판도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경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대장님, 아무래도 마력 제어장치를 가동하는 게…….”
“그걸 뭘 물어보고 있어, 자식아! 당장 튀어 가서 가동해!”
시로네는 경비가 달려 나가는 것을 보고서도 무심하게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싸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의식의 절반은 이미 저승 세계에 가 있었다. 자신의 다리가 움직이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사지가 찢어진 상태라 망상을 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죽일 거야, 다…….’
오로지 살의와 분노였다.
이 자리의 모두를 죽일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상관없을 듯했다. 창자가 끊어지는 울분을 달랠 수만 있다면 다음 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커헉!”
그랜드 홀의 중앙에 멈춘 시로네가 등을 구부리며 피를 토해 냈다.
금강태의 내구력으로도 한계에 도달했다. 정신이 붕괴되는 과정은 어떤 기분보다 더러웠다.
이모탈 펑션은 이론상 무한의 정신력을 끌어오지만 인간의 육체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여기가 끝이었다.
시로네의 움직임이 멈추자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이 정지했다. 적막한 가운데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끝, 끝난 건가?”
시로네와 싸우던 사람들은 마치 귀신과 한방에 갇힌 것처럼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 밑이 퀭하고 얼굴은 땀으로 번질거렸다.
“죽여! 뭐 하고 있어! 빨리 죽이란 말이야!”
정신을 차린 검사들이 황급히 자세를 고쳐 잡고 시로네에게 돌진했다. 수십 개의 검이 비틀거리는 시로네의 모든 부위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시로네는 가만히 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끝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읊조렸다.
“해일로.”
펑 하고 빛이 폭발하면서 광륜이 탄생했다.
마치 천사의 것처럼 머리 위에 태어난 헤일로는 생성 과정마저 무시한 채 완벽한 원을 그렸다. 충격을 받은 검사들이 검을 떨어뜨리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귀족들은 헤일로의 형태에 충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사고가 마비되었다.
오늘 낮에 콜로세움을 날려 버린 위력을 보았기에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깨달았다.
여기서 아타락시아가 시전되면 왕성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진정한 끝이었다.
아타락시아의 집적 속도는 콜로세움에서 시연했던 속도보다 10배 이상 빨랐다. 순식간에 개념을 완성시킨 초마력 증폭진이 오색찬란한 빛을 뿜으며 종말을 기다렸다.
귀족들은 아무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력은 젬병이어도 머리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자들. 현실 판단이 안 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빨리 도망쳐도 시로네가 포톤 캐논을 쏘는 것보다 빠를 수는 없다. 1명이라도 문을 나선다면 그 순간이 카즈라의 끝이었다.
“시로네…….”
에이미는 입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비틀거리는 시로네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온몸의 핏줄이 터져서 피가 흘러내리고, 시커맸던 동공마저 피가 고인 웅덩이처럼 빨갰다.
삶의 종착지에 도착한 시로네는 실제로 울고 있었다. 아이처럼 울상을 지은 두 뺨을 타고 뜨거운 피눈물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가 잠긴 목으로 꾸역꾸역 말했다.
“너희가…… 먼저 나 괴롭혔잖아.”
에이미는 차마 보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너희가, 나 죽이려고 했잖아.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엄마, 아빠를, 내 친구들을 죽이려고 했잖아!”
시로네의 절규에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였지만, 실상은 모두 어떡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특히나 보순의 머리는 누구보다 빨리 돌아갔다.
시로네를 너무 우습게 봤다. 아니,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사실 그대로 평가한 것뿐이다. 단지 화가 났다는 이유로 수준이 향상된다면 세상 모두가 대마법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제는 주둔병이 도착한다고 해도 늦는다. 어디서부터 실수한 거지? 정말 우리가 패한 건가? 아니야. 고작 1명에게 왕국이 멸망당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럴 리가 없다. 아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보순은 신중한 태도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시로네가 붉은 눈으로 노려보자 곧바로 멈춰 섰다.
시로네는 현재 미쳐 있고 공멸의 폭탄을 쥐고 있다. 협상만이 살길이었다.
“좋아, 알았네. 알았다고. 우리 대화로 하지. 우선 괴롭힌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네.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할 테야. 그러니까 일단 광륜을 없애고…….”
“꿇어.”
시로네가 칼칼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부 꿇어. 아무도 움직이지 마. 끝장을 내기 전에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이 있으니까.”
보순은 눈을 깜박이더니 망설이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왕국의 운명이 걸린 이상 감정에 치우칠 상황이 아니었다.
“자, 되었네. 이제 만족하는가?”
시로네는 보순의 뒤편에 있는 귀족들을 노려보았다.
보순이 고개를 돌려 눈짓을 하자 하나둘씩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에이미와 레이나마저 무릎을 꿇었다.
시로네는 공멸의 전략으로 주도권을 차지했다. 그런 그에게 아군이 있다는 상황을 만들어 주게 되면 반드시 약점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나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르캄프와 엘리자는 반대로 생각했다.
시로네가 테라제 일파를 무너뜨렸다. 그는 자랑스러운 왕국의 아들이 되어 앞으로 카즈라를 이끌어 가게 될 것이다.
엘리자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우리 아들, 네가 왕국을 구했구나. 장하다. 이리 오렴. 엄마가 얼마나 너를 자랑스럽게…….”
포톤 캐논이 엘리자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근위기사가 짐승처럼 튀어나와 그녀를 껴안고 쓰러졌다. 묵직한 질량이 벽에 처박히자 깔끔한 반구형의 홈이 파였다. 사람이 맞았으면 머리가 날아갔을 터였다.
“시, 시로네…….”
겁에 질린 엘리자는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었다. 지금도 그녀의 망막에는 포톤 캐논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화신의 주인 (6)
“한 번만 더 내 말을 무시하면 그땐 전부 날려 버릴 거야.”
보순은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함을 깨달았다. 친부모에게 마법을 날릴 정도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봐야 했다.
오르캄프가 엘리자의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귀족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망신이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카즈라의 멸망은 막아야 했다.
‘젠장. 어떻게 일으켜 세운 나라인데.’
오르캄프를 마지막으로 모두가 무릎을 꿇게 되자 자연스레 대표가 된 보순이 시로네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제 말해 보게. 무슨 소리가 듣고 싶은가?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하겠네.”
“우리 부모님에게 암살을 지시한 사람. 누구야?”
귀족들이 서로를 흘끗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1명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돌아보지 않고서도 그들이 누굴 보고 있는지 알고 있는 보순이 손을 들었다.
“내가 지시했네. 복수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하게. 다만…… 나로 끝내 주는 게 어떤가?”
“헛소리 집어치워. 내가 너희를 용서할 것 같아?”
“용서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는 게 어떤가? 어쨌든 누구도 죽지 않았어. 자네가 우리를 죽인다고 한들, 테라제 여황 폐하를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곳에는 자네가 사랑하는 가족도 머물고 있지 않은가?”
보순은 즉각 시로네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폭탄을 안고 있으면서도 부모님 암살의 배후를 밝히려고 한다는 건 여전히 그들이 인질로서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보순은 접근할 생각이 없다는 듯 양손을 들고 일어섰다.
“자네의 뜻에 따르겠네. 나를 포함해 이번 암살 기도에 연루된 모든 사람이 법적 책임을 질 것이야. 자네는 가족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게. 공인 4급의 마법사, 아이마르 보순이 이 자리에서 보증하지. 그러니 대화로 해결하는 게 어떤가?”
시로네의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이 자리의 모두를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지만 왕성을 날려 버리면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까지 세상에서 사라진다.
“돌진! 돌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