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6
대자보가 붙은 탓도 있지만, 수다쟁이 세리엘이 떠벌린 무용담이 여심을 흔든 게 주효했다.
에이미를 구하기 위해 적진에 침투한 시로네.
블랙 매지셔가 안티매직으로 압박했지만 사랑의 힘으로 이겨 내고 그들을 물리쳤다.
악당 두목 제이크는 시로네의 눈빛에 압도당해 눈물 콧물을 흘리며 빌었다는 후문.
달빛이 쏟아지는 산중에서 시로네와 에이미가 입을 맞추었다는 게 이야기의 골자였다.
“세리엘! 너 죽을래? 대체 무슨 소문을 어떻게 퍼뜨리고 다닌 거야!”
“깔깔깔! 왜? 대충 맞는 얘기잖아.”
“대충도 안 맞는 얘기지! 내가 언제 시로네랑 뽀뽀했어?”
“어머, 내숭은. 사귀는 사이라면서 뽀뽀 정도는 했을 거 아냐?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려면 그 정도는 들어가 줘야 하지 않겠어?”
“무슨 연극 쓰니? 몰입도가 왜 중요한데?”
“잘된 일이잖아. 덕분에 귀찮게 굴던 남학생들이 얼씬도 하지 않으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3)
그 부분은 에이미도 만족스러웠다.
사귀는 정도가 아니라 입술 도장까지 찍었다고 소문을 냈으니 충격이 컸을 터였다.
“그래서 오늘은 어떡할 거야? 시로네는 언제 만나러 가는데? 응? 응?”
“당분간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어.”
에이미의 말투에 서운함이 담겼다.
설령 가짜라고 해도 염문설이 전교에 퍼졌으니 의식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건만, 시로네는 태연하게 학교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다.
‘은근 자존심 상하네.’
딱히 다른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으나 부아가 치미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에이, 몰라! 나도 신경 안 쓸 거야. 할 일이 태산인데 어디다 정신을 팔아?”
“역시 서운한 거지? 시로네도 정말 너무해. 나라면 수업이고 뭐고 항상 붙어 다닐 텐데.”
그 말에서 에이미는 깨달았다.
‘어떤 의미로는 그 녀석의 판단이 맞아.’
이런 식으로 신경을 쓰다가는 위장 연애로 사태를 잠재운 의미가 없었다.
“어머! 에이미, 저기 제이크 아냐?”
얼굴에 덕지덕지 밴드를 붙이고 백팩을 짊어진 제이크가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징계위원회는 블랙 매지셔에 피해자와 합의를 완수한다는 조건하에 2년 정학을 처분했다.
합의 여부에 따라 복학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얼굴빛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이다, 에이미.”
“아직도 안 떠났냐? 구질구질하기는.”
“크크크,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사과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그사이 개과천선이라도 했니? 아서라. 사람 성격이 어디 쉽게 변하겠어?”
“뭐, 그렇지. 하지만 나 같은 놈도 믿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이제는 나쁜 짓도 못 해.”
블랙 매지셔의 퇴학을 막기 위해 시이나가 고군분투한 사실은 유명했다.
에이미는 콧김을 내뿜었다.
“앞으로 어떡할 거야? 2년 정학이면 네가 알던 사람들은 거의 졸업반에 있겠네. 다시 시작할 수 있겠어?”
“그건 몰라. 일단 합의부터 해야지. 아마 용서해 주지 않을 것 같지만, 각오하고 있어. 모든 걸 되돌려 놓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겠어?”
에이미는 말을 아꼈다.
실제로 그가 복학할 확률은 상당히 적다고 봤으나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가 봐야겠다. 언제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할 거야. 시이나 선생님에게 배운 게 좀 있거든. 그리고…… 미안했다. 조만간 정식으로 합의하러 올 테지만, 나 같은 놈은 잊어 주라.”
“흥, 합의는 무슨.”
제이크는 씁쓸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야, 제이크.”
멀어져 가는 그를 돌려세운 에이미가 말했다.
“2년 금방이야. 포기하지 마.”
“하하! 힘든 일 생기면 연락해. 돈이라면 얼마든지 빌려줄 테니까.”
마지막까지도 돈 자랑을 하는 재수탱이지만, 한편으로는 제이크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눈앞에서 질질 짜기라도 했으면 주먹이 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에이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2년이라. 그래, 정말 아무것도 아니겠지.”
제이크는 최소 2년 유급이다. 하지만 큰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실력이 없으면 평생 제자리에서 썩는 게 마법의 세계였다.
에이미는 세리엘을 돌아보았다.
“세리엘, 나 결정했어.”
“응? 시로네 만나러 가게?”
“졸업반으로 진급 신청할 거야.”
“뭐? 이렇게 빨리?”
클래스 포의 학생은 누구나 졸업반 진급 자격이 주어진다.
다만 진급 시험에 떨어지면 그해에는 다시 지원할 수 없기에 학기 초부터 신경전이 치열했다.
진급 시험에 붙는다고 해도 졸업은 또 다른 문제였다.
말하자면, 졸업반이란 천재들이 모인 마법학교에서도 정점에 위치한 곳이었다.
사회로 진출한 마법사들은 졸업반 시절을 사회보다 더 치열했던 전쟁터로 회상한다.
학창 시절의 우정은 더 이상 의미를 상실하고, 오직 30명의 예비 마법사가 생존경쟁을 치르는 냉혹한 세계였다.
일각에서는 무한 경쟁 체제를 비판하지만 마법사는 전투, 비전투 요원을 막론하고 언제든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직업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한다는 게 마법학교의 공론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는 게 어때? 아직 정원도 텅텅 비었고, 졸업반 수준이나 경향을 분석한 다음에 지원해도 늦지 않잖아.”
“아니. 머뭇거리고 싶지 않아. 지금은 앞만 보며 달리고 싶어.”
에이미의 고집은 세리엘도 알았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천재성이 졸업반에서 어디까지 통할 것인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래, 응원할게.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야.”
“고마워. 먼저 올라가서 분위기 좀 살펴보고 있을게. 너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헤헤, 사실 나는 조금 불안해서 정보부터 수집할 생각이야. 우리 열심히 하자.”
“좋아. 나도 도와줄게.”
에이미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보았다.
비록 아직 손은 닿지 않지만, 우리들의 꿈 또한 저 높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 것이기에.
‘반드시 최고의 마법사가 될 거야.’
눈엣가시(1)
고급반 통합 수업 시간에 선후배가 교류를 나누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시로네는 여전히 혼자였다.
입학과 동시에 두각을 드러내고 블랙 매지셔라는 강적을 분쇄했으며 선망의 대상인 에이미의 연인이 되었다.
짧은 시간에 남긴 족적이 상당한 반면 아직 고급반의 최하위인 클래스 세븐에 속해 있으니 동급생들마저 복잡한 심정으로 시로네를 대하고 있었다.
세리엘이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어? 저기 있다! 에이미, 네 남자 친구. 시로네! 여기야!”
유일한 지인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오자 시로네가 인파를 헤치고 갔다.
에이미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호호호! 얘는. 우리들이 남도 아니고, 어차피 나이도 같은데 편하게 말 놔.”
세리엘의 뚜쟁이 기질이 발동한 반면 에이미는 부루퉁한 반응이었다.
여전히 무심한 시로네의 태도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움도 있었다.
‘내가 왜 이 녀석을 신경 쓰는 거지?’
생각해 보면 모든 남자가 자신을 좋아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다.
‘늘 그랬어.’
어릴 때부터 블랙 매지셔 사건까지.
시로네와 무언가를 할 때면 이상하게도 생각과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하하! 그래도 그럴 수는 없죠. 엄연히 선배님이신데요.”
시로네의 태연한 모습에 에이미는 다시 울컥했으나 차마 속내를 밝힐 수는 없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냥 편하게 불러. 안다면 아는 사이인데 선배 소리 듣는 것도 우습고.”
세리엘은 새삼 사랑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자존심 빼면 시체인 에이미가 시로네에게 한수 접어주다니,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로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럼 수업 들으러 가 볼게요.”
그리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해 버리자 에이미는 화가 나서 눈물이 날 듯했다.
“됐어! 싫으면 하지 말든가!”
에이미까지 차갑게 돌아서서 멀어지자 세리엘이 황급히 뒤를 쫓았다.
“혹시 시로네랑 싸웠어?”
“몰라! 이제 신경 안 써! 아주 자기만 잘난 줄 알아!”
한편 시로네는 미안한 감정을 마음에 담은 채 클레스 세븐으로 돌아왔다.
‘나도 친해지고 싶다고.’
아마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고급반 중에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막상 감정대로 하자니 의도치 않은 장애물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시로네가 자리에 앉자 사방에서 동급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났다, 잘났어. 그렇게 자랑하고 싶나?”
“수업 시간에도 연애질이야? 실력은 쥐뿔도 없는 게 얼굴 믿고 들어왔나 봐.”
클래스 세븐의 평균 연령은 15세로, 시로네에 비해 어린 사람이 많았다.
이 나이대에는 한 살 터울이 큰 차이를 보이는 만큼 미성숙한 질투심이 여과 없이 표출되었다.
게다가 군중심리에도 취약해서, 이제는 여학생들까지 시로네를 험담하고 있었다.
“완전 날라리 아냐? 공부는 안 하고 연애만 하니까 아직 마법 하나 구사하지 못하지.”
시로네가 에이미를 멀리하는 이유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녀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갈 테니까.
‘버티자.’
시로네는 테무란의 조언을 상기했다.
끝까지 참을 수 있다면 결국 끝은 온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빨리 상위 클래스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에텔라가 말했다.
“오늘부터 이론 수업을 줄이고 실습을 중점적으로 할 거예요. 사방식 주특기를 1시간 동안 연습하고, 남은 시간에는 패턴 변화를 연습하도록 하세요.”
통합 수업은 본래 실습 위주이기에 학기 초와 달리 기존의 취지를 되찾은 셈이었다.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방식을 수련하는 와중에도 시로네의 자리는 없었다.
스피릿 존을 펼치기라도 하면 공감각으로 느낀 동급생들이 자리를 피해 버리기 일쑤였다.
‘내 스피릿 존에 적의는 없어. 그런데도 피한다는 건……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들만의 룰인 모양이었다.
훈련장의 외곽에 자리를 잡은 시로네는 그제야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했다.
사실 클래스 세븐에서 가장 큰 스피릿 존을 보유하고 있기에 한적한 곳이 편하기도 했다.
1시간 동안 자신의 주특기인 방어형을 연습한 시로네는 패턴 변환으로 넘어갔다.
‘된다.’
방어형만큼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공격형은 제법이었고 타깃형은 꽤나 어려웠다.
‘문제는 이탈형이야.’
스피릿 존을 몸 바깥으로 옮기는 것은 난이도를 떠나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물론 클래스 세븐의 누구도 이탈형은 못하지만, 진급이 목표인 시로네는 포기할 수 없었다.
‘정말 어렵네. 어떻게 해야 이탈이 되는 거지?’
에텔라의 말에 의하면 이탈형은 사방식 중에서 가장 독특한 정신태였다.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벗겨져라. 벗겨져라.’
스피릿 존을 오른쪽으로 이탈시켜 보았으나 형태가 일그러지는 게 전부였다.
‘중심을 옮기는 게 관건인데.’
잠시 훈련을 멈춘 시로네는 턱을 괴고 실패의 원인을 복기해 보았다.
‘스피릿 존의 형태가 변한다는 것은 생각의 형태가 변한다는 뜻이지. 한마디로, 하나의 사고를 고정한 상태에서 사고를 흘려보내야 해.’
모순처럼 느껴졌다.
기본적인 개념부터 이해가 되지 않으니 상위 클래스조차 이탈형을 구사할 수 있는 학생이 손에 꼽을 정도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빌드를 하나씩 올려 보자.’
우선 스피릿 존의 형태를 완전히 고정시킨 다음 천천히 중심을 옮겨 보았다.
‘어어…….’
윙 하고 정신이 증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죽기 직전의 기분이 이럴까? 의식이 아득해지고 꿈을 꾸는 듯 감각이 멀어졌다.
‘안 돼!’
시로네가 황급히 눈을 뜨자 스피릿 존이 마치 공기 방울처럼 사라졌다.
“후우, 기절할 뻔했네.”
스피릿 존의 이탈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본인의 의식을 붙잡지 못한 것이다.
‘차라리 중심 이동을 먼저 하고 형태를 바꿀까? 아니, 첫 번째 방법이 맞아. 형태가 붕괴되면 스피릿 존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시로네는 이탈형이 무엇인지 알 듯했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야.’
오히려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아주 인위적이고 기술적인 개념이었다.
시로네가 고전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에텔라가 친히 걸음을 옮겼다.
“시로네, 좀 어떠니?”
“이탈형이 어렵네요. 중심 이동이 쉽지 않아요.”
“아마 그럴 거야. 수렴형인 너한테는 상극인 셈이니까. 사방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탈형만큼은 부자연스러운 현상이거든. 다른 패턴은 어때?”
에텔라도 이탈형까지는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주목하는 건 시로네의 자연계적인 통찰이지 인위적인 계산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음, 나머지는…… 딱히 문제없는 것 같아요.”
시로네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만족스러울 만큼 사방식의 패턴 변환이 능숙해지고 있었다.
눈엣가시(2)
눈엣가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