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60
시로네는 신문에서 보던 인사들이 태연하게 지나다닌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법학교 시험이 아니라 정치판을 보는 듯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졸업 시험.”
이루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매년 이렇지. 아주 극성이라니까. 제발 우리 아빠는 안 왔으면 좋겠는데.”
“시로네, 저기 저 사람. 에이미 아버지 아니야?”
카르미스 샤코라와 그의 아내 이시스가 팔짱을 끼고 콜로세움 앞에 서 있었다.
3분의 1 (3)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제1계급 귀족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학부형들이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청했다.
시로네는 친구들을 데리고 샤코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른 귀족들이 없는 틈을 타서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그래, 시로네로구나. 잘 지냈니?”
“네, 덕분에요.”
이시스가 울상을 지으며 다가왔다.
“시로네, 우리 에이미는 어때? 응?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걸 시로네가 어찌 알겠소? 괜히 애먼 아이 잡지 말고 차분하게 있어요.”
샤코라의 구박에 이시스의 아랫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하하! 괜찮아요. 어제 만났는데 컨디션은 좋은 거 같아요.”
“흐음, 다행이구나.”
샤코라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스쳤다. 딸 사랑은 아빠라고, 아닌 척은 해도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듯했다. 제1계급의 귀족도 자식 앞에서는 그저 부모인 모양이었다.
시로네의 뒤에 서 있던 이루키와 네이드도 인사를 올렸다. 특히나 메르코다인이라는 성을 들었을 때는 샤코라도 관심을 드러냈다.
“그래, 네가 이루키로구나. 아버님은 잘 지내시고?”
“네. 뭐…… 여전히 존재하고는 있죠.”
이런 자리에서 내뱉기에는 건방진 말이었으나 샤코라는 그저 웃고 말았다.
솔직히 이루키는 점잖은 편이었다. 괴팍함의 극치를 달리는 아버지에 비하면.
“시로네, 친구들 데리고 언제 집으로 찾아오려무나.”
“네. 꼭 그럴게요.”
인사를 끝낸 샤코라와 이시스는 학부형들이 입장하는 출입문으로 향했다. 시로네도 학생 전용 문을 통해 콜로세움으로 들어갔다.
후배들과 동급생들이 고까운 눈길을 보냈지만 딱히 외롭지는 않았다. 신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마법에만 미친 아이들이 하나둘씩 시로네를 중심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관전평을 하려면 수준이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단테를 필두로 클로저와 사비나가 걸어왔다. 반대편에는 카니스와 아린이 보였고, 보일과 판도라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선배의 연줄을 확실히 이용할 줄 아는 마크가 마리아를 데리고 상석으로 당당하게 쳐들어왔다.
마크와 마리아를 제외하면 차기 졸업반이 확실한 최종 10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마도 저들 중 누군가를 떨어뜨리고 자신이 졸업반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기에, 동급생들은 그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인상을 구겼다.
단테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어때, 애인을 전장에 떠나보낸 기분은?”
시로네는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단테도 경기장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참가자 간의 수준 차이는 좀 있는 것 같아. 객관적인 능력치만 놓고 보자면 충분히 상위 10위 안에 들겠지. 하지만 그런 만큼 시험 과목이 무엇이냐에 따라 변수가 크게 작용할 거야. 우발적 상황이라는 건 전력의 비대칭에서 주로 생기니까.”
정보 처리를 전공으로 하는 단테였기에 시로네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사비나가 네이드에게 손을 들었다.
“안녕?”
“어, 안녕.”
특별히 따로 인사를 나눌 만큼 친분이 깊지 않았기에 네이드는 의례적으로 답했다.
사비나는 다른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듯 한참이나 서 있다가 네이드가 관심조차 없자 시무룩하게 단테의 옆자리에 앉았다. 판도라의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렸다.
“선배님들, 시작합니다.”
졸업 시험에 참가하는 30명의 학생들이 콜로세움 중앙에 일렬로 섰다. 모두 이천번 팔찌를 차고 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팔찌가 차지 않아도 관람에 문제가 없었다. 졸업 시험을 치르는 장소는 국가 규정상 최고 등급의 이천번으로 설계하도록 되어 있다. 콜로세움 전체가 거대한 이미지 존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린은 두 손을 모으고 에이미의 합격을 기도했다. 카니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 게 도움이 되냐? 기도로 합격할 거 같으면 아무나 마법사가 되지. 게다가 너는 신도 안 믿잖아?”
“치! 그래도 긴장된단 말이야. 카니스는 에이미가 합격하기를 바라지 않아?”
“누가 합격하든 무슨 상관이야? 내 시험도 아닌데.”
아린은 서운한 마음을 담아 카니스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의 초경은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 턱을 괴고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던 카니스의 눈에 에이미가 들어왔다. 임전 태세로 불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열심히 해 봐라, 호박아.’
알페아스와 올리비아를 중심으로 교사진이 착석했고, 좌측에는 학부형이, 우측에는 스카우트와 특파원이 자리했다.
알페아스의 개회사가 끝나고 올리비아가 시험 평가 항목을 설명했다.
시험은 1차와 2차로 나뉘는데 6개의 항목 중에 2개를 룰렛으로 고르게 된다. 어떤 것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학생들은 모든 항목을 골고루 수련할 수밖에 없다.
비전투 마법사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세운 규정이었고, 재수생들에게 조금 더 가중치를 주기 위한 마법협회의 배려였다.
학생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것을 선서하는 것으로 사전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30명의 참가자들이 콜로세움의 벽을 따라 둥그렇게 서자 진행을 맡은 사드가 단상에서 소리쳤다.
“지금부터 알페아스 마법학교 졸업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콜로세움의 하늘에 거대한 원형 홀로그램이 등장했다. 6개의 항목이 정확한 비율로 등분되어 있었고 중앙의 지침계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수열식을 행했다.
지침계가 멈추는 순간 이천번이 발동된다. 판단과 동시에 움직여야 할 것이다.
마침내 지침계가 1차 시험의 항목을 가리켰다.
“우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콜로세움을 가득 채웠다.
***
밤이 찾아왔다.
사람들의 콜로세움의 출구로 우르르 빠져나왔다. 모두 상기된 얼굴이었다. 시로네 일행 또한 밖으로 나올 때까지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콜로세움의 출구에서 네이드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어떡할래, 시로네? 나랑 이루키는 배고파서 뭐 좀 먹어야 할 거 같은데.”
“응. 먼저 들어가. 나는 에이미랑 같이 갈게.”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친구들을 떠나보낸 시로네는 하얀 입김을 불며 차가운 속은 녹였다. 콜로세움 쪽에서 빛이 들어오자 돌아보았다. 전광판에 합격자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1등부터 10등까지. 총 10명의 학생이 마법사가 되어 세상 밖으로 떠나게 되었다.
1위 올트 아미라
2위 루드비히 아코넬
3위 코니 케일
4위 탄토 셀레나.
5위 에킨스 사누엘
6위 아레사 데포
7위 포트리스 세리엘
8위 라라 코릴
9위 안드레스 라울
10위 돌린 릭스톤
에이미의 이름은 없었다.
그녀는 1차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세 번째로 탈락했다.
첫 번째 평가 항목은 전투력 측정이었다. 전투 마법사에게 유리한 만큼 학생들이 에이미를 집중 견제했다. 아니, 일방적인 린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리엘이 손을 써볼 틈도 없이 정신력 게이지가 0을 찍었다.
전문가의 분석을 깨는 결과였지만, 이런 것도 졸업 시험의 변수였다. 에이미 또한 예상하고 있었을 테고 그런 만큼 준비도 철저히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찝찝했다.
담합을 하는 것은 전투 중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의 힘이 커지면 약한 자들은 뭉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한 자들이 담합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일까?
처음에는 난전이었다. 전투 마법을 지망하는 사람이 에이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인원이 30명이나 되었으니 화력은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페르미 일행이 행동을 개시하면서 전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그들은 오로지 에이미만을 타격했다. 그것도 모든 학생들의 공격을 회피하면서.
그렇게 1분 정도가 지속되면 처음에 몰랐던 학생들도 깨닫기 마련이다, 페르미 일행의 편에 붙으면 상황이 쉬워진다는 것을.
결국에는 세리엘을 제외한 모두가 에이미를 공격했고, 그런 상황에서는 천하의 에이미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페르미 일행의 전투력이 다른 참가자들의 전투력을 전부 합친 것보다 우위에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전술이었다.
과연 이것을 자연스러운 담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말로 이상한 점은, 페르미 일행의 어느 누구도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누엘과 격돌할 때는 일부러 져 주는 느낌까지 받았다.
‘사누엘.’
대다수의 학생들이 느꼈지만 1차 시험에서 페르미 일행이 사누엘을 밀어주는 형세가 몇 번 있었다. 다만 그 느낌이 극히 미묘해서 판단을 내리기가 애매할 뿐이었다.
졸업 시험의 처절함?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모든 의혹의 중심에는 6년 동안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페르미가 있다는 게 찝찝했다.
‘착각일지도 몰라. 전장에서 그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아니, 설령 착각이 아니라고 해도 달라질 것이 있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전투력 측정에서 전투력이 센 쪽이 승리했을 뿐이다. 그것이 설령 인위적인 담합의 결과물이라고 하더라도, 항목을 평가하는 다른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개인적으로 대가를 받았다면 모르는 일이지만.’
페르미와 사누엘의 사이에 모종의 협약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시로네는 황급히 생각을 지웠다. 만약 아니라면 사누엘에게 크나큰 결례를 하는 셈이다. 게다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 교사진이 이미 조사에 착수했을 터였다.
‘그래, 아무리 생각을 해 봤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지금은 에이미가 걱정될 뿐이었다.
조기에 탈락했으니 이미 정신력은 회복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대기실에서 시험을 지켜봐야 했던 그녀의 심정을 생각하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학부모 전용 출구에서 에이미의 부모님이 나왔다. 시로네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른 채 그들에게 다가갔다.
“시로네…….”
이시스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시로네를 맞이했다. 홍안의 샤코라는 물론이고 이시스도 유명한 무용수였으니 전투 상황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시로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에이미가 탈락하다니. 이건 마치…….”
“당신, 말을 조심하시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에이미의 속이 어떻겠소?”
샤코라는 아내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의혹을 살 만한 부분은 있었다. 하지만 정상 범주를 넘어설 만큼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페르미 일행이 전원 탈락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전장의 흐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다. 또한 2차 시험이 비전투 항목이었기에 페르미 일행의 탈락이 부자연스럽다고 주장할 수도 없었다.
시로네는 시험 탈락자들이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중간 그룹에서 빠져나오는 에이미를 볼 때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에이미는 시로네를 한번 보고는 부모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눈웃음을 지으며 혀를 쏙 내밀었다.
“헤헤, 아빠, 엄마. 미안. 보기 좋게 떨어져 버렸어.”
“시험이니 어쩔 수 없지. 너는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상심은 무슨. 아아, 내가 판단을 잘못했던 거 같아. 내년을 기약해야지 뭐.”
시로네는 에이미의 밝은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기분이 정상일 리가 없다. 가족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합격자들이 빠져나왔다. 세리엘은 펑펑 눈물을 쏟으며 에이미에게 다가왔다.
“에이미, 에이미…….”
에이미는 진심으로 친구의 합격이 기뻤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 세리엘은 마법학교를 졸업하고 마법사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축하해, 세리엘. 내 몫까지 열심히 해 줘. 나도 금방 따라갈게.”
세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에이미가 아니고 자신인가? 누가 보더라도 합격자는 에이미가 되어야 했다.
조금 더 빨리 눈치챘어야 했다. 페르미 일행이 린치를 가했을 때 신속하게 에이미의 편에 섰다면 전투의 흐름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에이미…… 나는…….”
에이미가 세리엘의 어깨를 붙잡았다.
“세리엘, 정신 차려. 너는 시험에 합격한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너는 너의 졸업 시험을 치렀고, 나는 나의 졸업 시험을 치렀어. 그리고 너는 합격한 거라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세리엘은 애써 눈물을 삼켰다.
울어서는 안 된다. 에이미가 울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이 울겠는가?
3분의 1 (4)
“미안해. 하지만 너무 분해. 합격한 내가 너에게 이런 말 하는 게 나쁘다는 걸 알지만…….”
“괜찮아. 나라도 똑같은 기분이었을 거야. 시험이 이번만 있는 건 아니잖아. 나야말로 미안하지. 그리고 파티에는 못 갈 거 같아.”
졸업 시험이 끝나고 합격자들이 모여 졸업 파티를 여는 게 학교의 전통이었다. 누구나 참석할 수 있지만 탈락자들이 온 적은 한 번도 없다. 굳이 모습을 드러내서 합격자의 기분을 무겁게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그딴 파티가 무슨 소용이야. 나도 안 갈 거야!”
에이미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세리엘을 바라보았다. 비록 자신은 조기에 탈락했지만 심란한 흐름 속에서도 끝까지 싸워서 꿈을 이룬 친구가 대견스러웠다.
“약속해 줘, 세리엘. 파티에 가겠다고. 네가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면 나도 내년에 합격하더라도 기쁠 수 없을 거야. 평생에 한 번뿐인 즐거움을 뺏고 싶지 않아. 나를 위해서 당당하게 웃어 줘.”
세리엘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1년을 싸워야 하는 에이미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약간의 자괴감 따위는 친구를 위해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었다.
“알았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게. 정말 죽을 때까지 놀면서 합격을 만끽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꼭 합격해야 돼.”
“좋아, 바로 그거야. 고마워, 세리엘.”
어둑한 저편에서 교사가 소리쳤다.
“합격자들은 지금 모두 모이세요! 설명회가 있을 겁니다! 빨리! 시간이 없습니다!”
합격이 현실로 느껴지는 것은 내일 아침의 해가 뜨고 나서일 것이다. 게다가 밤늦은 시간에는 졸업 파티로 정신이 없을 테니 지금만큼 설명회를 해치울 적시가 없었다.
“어서 가 봐. 졸업식 때 보자.”
“알았어. 너도 들어가서 푹 쉬어.”
세리엘은 떠나기 전에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에이미가 의식적으로 시로네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그녀를 챙길 수 있는 사람도 시로네였다.
시로네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안심한 세리엘은 에이미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올리고 합격자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갔다.
에이미는 멀어지는 친구의 뒷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더니 크게 숨을 내뱉었다.
“어휴, 피곤해. 이제 엄마랑 아빠도 빨리 가.”
“괜찮겠니? 그러지 말고 외출이라도 할래? 엄마가 학교에 말해 줄 테니까.”
“어휴, 됐어. 나만 탈락한 것도 아니고 왜 이리 호들갑이야? 어차피 곧 방학이니까 집에서 보면 되잖아.”
샤코라가 딸의 마음을 헤아리고 말했다.
“그럼 우리는 돌아가마. 졸업식 날에 마차를 보낼 테니 오늘은 푹 쉬어라.”
“알았어. 아빠도 조심히 들어가요.”
이시스가 먼저 돌아섰다. 여태까지 참고 있던 눈물을 더는 억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뒤를 따르던 샤코라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시로네.”
“네. 걱정 말고 들어가세요.”
샤코라는 눈빛으로 고맙다는 뜻을 전하고 멀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의 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시로네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에이미와 단둘이 남게 된 시로네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무언가를 물어본다면 답해 줄 것이다. 하지만 침묵한다면 그 침묵을 지켜줄 생각이었다.
“아아! 진짜 미치겠네! 또 떨어져 버렸잖아!”
“젠장! 재수도 없지! 대체 졸업 시험만 몇 번을 보는 거야!”
불량한 걸음걸이의 실루엣이 콜로세움에서 빠져나왔다. 시로네는 목소리만 듣고도 페르미 일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이미를 발견한 페르미가 방향을 틀어 다가왔다. 이번까지 합해 일곱 번이나 시험에 탈락했는데도 실망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탈락자끼리 다시 만나니까 되게 어색하네. 너무 상심하지 마, 꼬마 아가씨. 사는 게 그런 거지 뭐. 나도 마찬가지고. 어때? 오늘 우리랑 같이…….”
시로네가 옆으로 움직여 페르미의 앞을 가로막았다. 차가운 눈빛이 전해지자 페르미가 머리를 긁적이며 너스레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