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62
천사에게 어머니라는 개념은 없다. 하지만 굳이 누군가를 어머니로 내세워야 한다면 오로지 이카엘뿐이었다. 탄생 때부터 자신들을 돌봐 준 대천사 중의 대천사.
유리엘은 슬쩍 고개를 돌려 카리엘을 살폈다. 천진난만한 그의 미소를 보자 아주 오래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카리엘의 성격도 이렇지 않았다. 능글맞고 변태적인 건 여전하지만 목적에 집착하여 무언가를 탄생시키지 않았다. 재밌고 기발한 물건을 탄생시켜서 이카엘에게 주면 그녀는 즐겁게 웃으며 카리엘을 쓰다듬어 주고는 했다.
“카리엘, 나라면 파괴할 수 있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정말로 그걸 원하는 거냐?”
“하하! 이번엔 쉽지 않을 거라니까. 아니, 솔직히 말하면 파괴해야만 해. 나는 하루라도 빨리 땅의 나라를 멸하고 싶어. 미로의 시공을 파괴하면 오늘이 그날이 되겠지.”
“어째서 그리 조급하지? 라는 아직 아무런 전언도 하지 않고 있어. 이미르도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카리엘은 제불의 바깥쪽을 ‘굽어’보았다. 제1천 샤마인에서 일어난 폭동이 제2천 라키아까지 번져서 신민과 타락천사들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시로네는 천국을 변화시켰어. 그리고 이것은 시작일 뿐이야.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미로의 시공을 뚫고 땅의 인간들을 없애 버려야 해.”
카리엘의 걱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수많은 땅의 나라를 멸한 대천사가 고작 신민의 폭동으로 조급해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인간을 멸하면, 이카엘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나?”
카리엘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무슨 뜻이야?”
“이카엘의 죄는 이미 말소됐어. 사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대가로 거핀도 사라졌지. 이 정도면 최소한 우리 둘만이라도 그녀를 용서해야 되는 거 아닌가?”
카리엘의 성광체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확장되었다.
직경 40미터가 넘어가는 광륜이 펼쳐지자 대세계전의 메카 시스템이 비상 경고 음을 냈다. 마치 카리엘의 현재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죄가 말소돼?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이 더러운 기억은 뭐지? 난 거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아! 그저 이카엘이 역겨울 뿐이야! 다시는 그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마!”
“정말로 그녀와 싸울 건가? 카리엘, 다시 묻지. 나는, 정말로 그녀와 싸울 거냐고 묻고 있는 거다.”
카리엘이 슬픔과 분노가 공존하는 인상을 지었다.
“인간의 아이를 낳았잖아!”
헤일로가 파동처럼 물결파를 보냈다. 메카 시스템이 온오프를 반복하자 대세계전이 깜박거렸다.
찰나의 균열 (2)
카리엘은 대천사답지 않은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 듯 눈동자가 살의로 번뜩였다.
“대천사의 수장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인간으로 따지면 개랑 교미한 것과 뭐가 달라! 그런데 날더러 용서하라고? 너는 그럴 수 있어?”
유리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어떤 의미로 카리엘은 자신의 쌍둥이나 마찬가지였다. 최초의 대천사 이카엘의 원천 지식을 받아 태어난 쌍둥이.
하지만 각기 부여받은 원천 개념만큼이나 성격은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리엘은…… 이카엘을 정말로 사랑했다.
카리엘은 광륜을 성광체로 되돌렸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상한 듯 차갑게 돌아섰다.
“도와줄 생각이 없다면 돌아가라. 나는 반드시 미로의 시공을 뚫을 거다. 신의 의지를 거스른 오만 방자한 인간들을 모조리 멸하고 말겠어!”
‘……소심하기는.’
유리엘은 그의 뒷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대천사의 상징인 빛의 날개는 찬란하게 펼쳐져 있지만, 어떤 의미로 그는 인간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마치 이카엘처럼.
‘죄송합니다, 이카엘.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니, 카리엘에게는 아직 당신이 필요합니다.’
유리엘이 카리엘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알았다. 내가 말을 실수했군. 네가 하려는 일에 동참하마. 그래, 이 천폭인지 뭔지를 박살 내면 되는 건가?”
카리엘이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돌아섰다. 하지만 이내 밝은 표정을 되찾고 설명을 이었다.
“그래. 하지만 정말 쉽지 않을 거야. 아무리 너라도 최고의 힘을 가해야 부술까 말까 하겠지.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보다도 훨씬 단단한 물질을 탄생시켰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유리엘은 카리엘을 지나 천폭으로 다가갔다.
지근거리에 도착하자 검은 장벽밖에 보이지 않았다. 분자구조를 들여다보니 열과 압력을 통해서 나온 물질이 아니었다. 아마도 폭발. 이건 확실히 쉽지 않을 것이다.
“기억하고 있을 텐데, 카리엘. 아주 오래전부터 말이야.”
유리엘이 성광체를 헤일로로 바꾸었다.
직경 4미터의 광륜에 정보가 집적되자 그의 옆에 빛으로 이루어진 곤봉이 탄생했다. 총 4미터 길이였는데, 장대의 길이는 1미터에 불과했고 양 끝에 달린 삼각뿔 모양의 곤이 남은 길이를 채웠다. 극락곤이라는 천도 무구였다.
“네가 만든 것 중에, 내가 파괴하지 못한 건 없어.”
유리엘이 기마 자세를 취하며 힘을 가하자 극락곤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수레바퀴와 흡사한 잔상을 일으켰다. 회전속도가 마하를 넘자 공기가 마치 쇠처럼 갈리는 소리를 냈다.
극락곤 파괴사법-천보륜.
(천도은하륜을 천보륜으로 수정했습니다^^;)
“우오오오오!”
대천사 유리엘은 파괴의 천사. 탄생의 천사인 카리엘과 대칭되는 원천 개념을 가지고 있다.
태초에 무언가의 증폭으로 세상이 태어났다. 이어서 탄생과 파괴가 맞물리면서 만물이 창조되었다.
카리엘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유리엘은 그것을 파괴한다. 증폭의 대천사 이카엘에게서 태어난 두 형제의 숙명이었다.
“간다아아아아!”
유리엘이 상체를 뒤틀고 팔을 넘기자 직경 10미터까지 커진 천보륜이 팔뚝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몸을 튕기며 주먹을 휘두르자 강력한 빛의 수레바퀴가 날아가 천폭을 강타했다.
쿠우우우우우웅!
거대한 울림이 대세계전을 메웠다.
하지만 천폭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튕겨 나간 극락곤만이 대세계전의 끝까지 날아갔다가 되돌아올 뿐이었다.
“하아! 타하! 우오오오!”
유리엘은 회전을 멈추지 않는 천보륜을 계속해서 천폭에 충돌시켰다.
그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카리엘은 일격이 가해질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다.
‘쯧쯧, 무식하기는…….’
십여 차례 공격을 해 보던 유리엘은 되돌아온 극락곤을 다시 던지지 않았다. 아무리 때려도 부서질 기미가 없었다.
“흐음, 이번 건 확실히 제법이군.”
카리엘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달랬다.
“너무 무리할 필요 없어. 이 정도라도 미로의 시공에 가해지는 충격은 엄청날 테니까. 겁에 질린 그 여자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해 아쉽군.”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였으나 유리엘의 오기만 북돋게 했을 뿐이었다.
유리엘은 날개를 전방으로 휘둘러 멀리 물러섰다. 그리고 잠시 거리를 측량하더니 말했다.
“피해 있어라. 이번에는 다를 테니까.”
카리엘은 얼마든지 해 보라는 듯 양손을 으쓱 들어 올리고는 천폭의 옆으로 날아갔다.
“후우우우.”
유리엘은 돌진을 앞둔 중장보병 같은 자세를 취하고 숨을 크게 불어 내쉬었다.
해일로가 직경 20미터까지 확장되면서 파괴의 정보가 집적되기 시작했다. 광륜 주위에 황금빛 스파크가 일어나자 대세계전이 미약하게 떨려 왔다.
카리엘도 이번만큼은 농담을 던질 엄두가 안 나는지 걱정스러운 눈길로 자신의 실험실을 살폈다.
“우오오오오오오오!”
유리엘이 천폭으로 돌진했다.
직경 25미터에 달하는 천보륜이 곁을 따라붙으며 회전속도를 높였다. 대세계전의 대기가 수레바퀴의 중심으로 빨려 들면서 강풍이 몰아쳤다.
유리엘은 천폭의 10미터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상체를 휘돌렸다.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천보륜이 천폭에 충돌했다. 원반의 잔상이 한순간 사라지면서 극락곤이 또렷한 형태로 표면에 파묻혔다.
하지만 회전의 관성은 온전히 극락곤에 담겨 있었다. 거대한 천폭이 거칠게 흔들리더니 시커먼 벽면에 하얀 균열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강력한 폭성을 터뜨리며 천폭이 박살 났다.
이번에도 내기에 지고 말았지만 카리엘의 얼굴은 희열에 차올랐다. 애써 만든 것을 유리엘이 부수는 건 원천 개념의 숙명이었다. 다만 카리엘은 그 숙명을 건설적인 부분에 접목시켰을 뿐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부서졌다는 것.
또한 그의 계산으로는 미로의 시공을 파괴하기에 충분한 위력이었다.
***
미로의 시공.
미로는 끝을 지정할 수 없는 무의미한 공간에 신전을 세웠다. 그것은 거대한 허무를 모아 하나의 의미를 쥐어짜 내는 행위였다.
신전이 있으므로 그녀는 존재하고, 그 존재성을 바탕으로 천국과 인류의 사이에 거대한 장벽을 쳤다.
거대한 신전에 미로는 외롭게 존재했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긴 그녀의 생체 시계는 오래전에 멈춰 있었다.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공간에서 그녀는 끝없이 차원의 벽을 유지해야 하는 숙명을 물려받았다.
‘무엇을 꾸미는가, 카리엘?’
미로의 시공을 우회하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 왔지만 근래 들어 접근 방식이 노골적이었다. 코너에 몰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천국에서 공격하면 미로는 막는다. 여태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강력한 충격이 미로의 시공을 강타했다. 전자기파가 발생하면서 시공의 장벽을 경화시켰다. 미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어서 2차, 3차의 충격이 밀려들었다.
미로의 시공이 흔들리자 미로의 정신에도 똑같은 강도로 충격파가 밀려들었다.
‘시공간을 직접 타격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인가?’
인류가 발전했다고 해도 현재까지는 천국의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들이라면 마법이 아닌 메카 시스템으로 차원의 장벽을 격파할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황급히 무릎을 꿇은 미로는 복잡한 수인을 맺었다. 그리고 검지와 엄지를 붙인 왼손과, 중지와 약지를 엄지로 누른 오른손을 십자가 형태로 교차했다.
스케일 마법으로 차원을 강화하자 시공의 벽이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이 위력은…… 유리엘인가?’
미로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식은땀이 흐르고 십자가로 교차한 팔이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충격이 사라졌다.
거칠게 숨을 몰아쉰 그녀는 바닥에 엎드렸다. 차원의 벽을 강화했음에도 이 상태로는 버티지 못할 듯했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꺅!”
천보륜이 천폭을 강타하면서 사상 초유의 충격파가 미로의 시공에 밀려들었다.
미로는 직접 타격을 당한 것처럼 충격이 오자마자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바닥을 미끄러지는 와중에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눈동자가 혼란에 떨렸다.
이번 타격으로 미로의 시공에 금이 가 버리고 말았다.
‘이대로는 뚫린다. 아니, 이미 뚫렸어.’
미로는 최후의 수단을 펼치기로 했다.
가부좌를 틀고 손바닥 위에 주먹을 띄운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판단할 시간이 없다. 10초만 더 차원에 공백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방비할 틈도 없이 천국의 군대가 쳐들어올 터였다.
‘삼매경에 들어간다.’
일단 삼매경에 들어가면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심불란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시공의 유일한 주인으로서 항시 깨어 있어야 하는 그녀지만 이제는 깊은 잠에 빠져야 할 시간이었다.
집중을 집중한다. 그 집중에서 다시 집중한다. 그런 과정을 끝없이 거치자 자아가 희미해지면서 급기야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오직 심연으로 내려가는 관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막대한 정신 에너지였다. 차원의 벽이 무한정 두꺼워지면서 균열이 사라졌다. 이번만큼은 유리엘이라도 절대 부술 수 없을 터였다.
신전의 흔들림이 가라앉았으나 미로는 돌처럼 굳어 버린 상태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무한의 집중에 빠진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깨우러 오지 않는 이상 영원히 그 상태로 머물게 될 터였다.
***
“어떻게 됐지?”
중앙 제어 시스템의 꼭대기에서 카리엘과 유리엘은 이번 실험의 결과를 분석 중이었다. 카리엘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로의 시공에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천국에서 무언가를 해 볼 틈도 없이 빠르게 복구되었다. 미로의 대응이 얼마나 기민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대단한 건 미로의 시공이 복구되면서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점이다. 화면으로 전해지는 내구력 수치는 대천사인 카리엘조차 전율이라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줄 정도였다.
“지금도 계속 강해지고 있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이게 정말 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치인가?”
유리엘은 복잡한 결과를 단순하게 끌어내렸다.
“실패한 건가?”
카리엘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소기의 성과는 있었어. 대략 땅의 나라 기준으로 3초 정도. 3초만 더 늦었어도 완전히 부쉈을 텐데 말이야.”
“그렇군.”
유리엘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안도하고 있는 듯도 했다.
“천폭의 기술 자체는 성공이라고 봐도 될 거야. 다만 미로를 너무 얕봤어. 확실히 땅의 인간을 대표하는 네피림답군. 대체 어떻게 강화한 걸까? 이제는 어지간한 천폭으로는 이빨도 안 들어가겠어.”
“인간이란 이상하지. 한없이 나약해 보이지만 한없이 강해지기도 하니까. 거핀이 그랬지. 미로도 만만치 않은 인간이야. 그렇기에 라가 접근을 막았는지도 모르지.”
“흥, 그래 봤자 인간일 뿐이야.”
카리엘은 인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명확하지 않다. 혼돈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라는 영생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수명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차원의 벽을 파괴하는 전략은 실패했어. 앞으로는 공략이 더 어려워질 텐데.”
카리엘은 걱정하지 않았다.
“방법이야 또 찾으면 그만이야. 그보다는 미로의 시공에 금이 갔었다는 게 중요하지. 앞으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거야. 이건 좋은 실험이 되겠어.”
카리엘은 모니터를 가리켰다. 천폭 실험의 과정이 3차원 이미지로 구현되어 있었다.
커다란 구체의 특정 지점에 참조선이 그어지더니 내구력 수치가 숫자로 나타났다. 천보륜의 충격이 가해지자 금이 가는 게 보였다.
이 정도의 균열로는 천국의 군대는 물론 어떤 생물체도 통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물의 범주였다.
천국의 외곽에는 인간의 기준으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온갖 이상한 존재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균열의 틈을 비집고 땅의 나라로 들어간 무언가가 잡혔다.
“대체 뭐지, 저건……?”
카리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의 지식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땅의 나라로 간 무언가가 ‘알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
마법학교의 졸업식이 끝나자 시로네는 오젠트 가문이 보낸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어느덧 입학한 지도 1년이 지나 있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찰나의 균열 (3)
시로네는 침대에 누워 망중한을 즐겼다.
다음 학기면 졸업반에 들어가기에 수행평가는 넘겨도 된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기본기를 닦을 시간도 이번 방학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기에 이루키와 네이드도 노는 것을 마다하고 곧장 가문으로 돌아간 것이다.
“일단은 쉬어야지.”
시로네는 자신이 내뱉어 놓고도 황당한지 웃었다. 하지만 정말로 당장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했다.
“생각해 보니 나 엄청나게 열심히 했구나.”
1년을 돌이켜 보면 어떻게 그 과정을 지나왔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클래스 세븐에서 꼴등을 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클래스 포의 상위권에 올라와 있지 않은가?
“그런 만큼 고생도 했지.”
마법학교 학생들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특히나 시로네에게는 사건 사고가 많았다.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통해 그는 강해졌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졸업반에 들어가도 쉽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시로네는 침대에서 일어나 에게 다가갔다. 지지대도 없이 오롯하게 서 있는 모습만 봐도 흡족했다.
정격조종이 있으니 가지고 다니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 저 검을 사용할 일은 없을 터였다.
아르망의 검집을 벗기자 칼날을 따라 청명한 고주파가 함께 빠져나왔다. 장검보다는 짧지만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예리하고 무게중심이 잘 잡혀 있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설마 죽은 건가?’
밤마다 정신파를 보낼 때는 언제고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는 잠잠했다. 예상보다 반응이 너무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계약이 해지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친구들에게 보여 준 다음부터는 금강무장을 발동한 적이 없었다. 딱히 필요한 상황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어색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무언가를 공유한다면 온전히 사물로만 취급하기가 어렵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금강무장을 발동하면 우습게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물론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차차 적응을 해 나가야 할 문제였다.
‘해 볼까? 어차피 내 검인데 뭐…….’
S급 오브제를 받아 놓고 사용조차 못 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누구랑 싸우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르망과 활약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가슴이 벅찼다.
시로네는 뿌듯한 마음으로 검을 지켜보다가 시동어를 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