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64
“정확히는 알페아스 마법학교지.”
가올드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시도 때도 없이 기억이 날아가는 폐인이 되었어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현실처럼 뇌리에 생생한 기억은 지금도 가올드의 정신과 육체를 가학적으로 채찍질하고 있었다.
가올드는 상체를 젖히고 다리를 꼬았다. 매너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강난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생각을 해 보겠소. 일단 돌아가시오.”
예상치도 못한 답변에 오르돈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생각을 해 보겠다니? 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가 자네에게 부탁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나? 이건 국가 간의 협조야. 이미 아돌프 전하께서도 승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
가올드의 안면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일그러졌다. 마치 가올드의 얼굴에 악마의 영혼이 깃든 듯, 극단적인 두 가지의 표정이 동시에 드러났다.
“왕의 이름을 대면 내가 꼬랑지를 내릴 것 같았나? 아돌프? 그딴 자식이 뭔데? 어떤 놈이든 내 허락 없이는 못 가.”
공기가 뜨거워지면서 접대실의 기물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오르돈을 죽이려는 감정과 그것을 억누르려는 감정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정신파가 사물을 움직이고 있다.
이는 인간의 한계치를 까마득히 넘어선 극기였다. 이번만큼은 강난도 나서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오르돈은 환각을 보았다.
접대실이 사라지고 가올드와 자신만이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가운데 사방이 온통 지옥 불로 뒤덮여 있었다. 유황 냄새가 느껴지고 불의 장벽 너머에서는 아귀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대체 이 남자는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세상에서 독하다는 인간들을 수없이 만나 봤지만 자신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 자는 처음이었다.
‘토르미아의 마법협회장은 광인이라고 하더니…….’
강난이 수많은 귀족들을 두들겨 패고도 여전히 협회에서 쫓겨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협회의 수장이란 인간부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또라이였던 것이다.
“꺼져. 죽여 버리기 전에.”
자국의 왕을 그딴 자식이라고 부른 인간이다. 가올드의 말에 한 치의 거짓이 없음을 깨달은 오르돈은 환각이 사라지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접대실을 빠져나갔다. 바지를 타고 내려온 소변이 바닥을 따라 이어졌다.
이미 일어난 사건은 되돌릴 수 없기에 접대실은 무거운 정적에 휩싸였다.
가올드의 살기가 가라앉자 강난이 오르돈의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어요? 좋은 말로 돌려보내도 될 것을.”
“재수 없는 자식이야. 너도 통쾌했잖아.”
“뭐…… 부정은 못 하겠네요.”
가올드는 품에서 시가를 꺼내 물었다. 손가락을 튀기자 불꽃이 피어오르면서 불이 붙었다.
마법 제어장치가 가동되는 협회에서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자는 가올드가 유일했다.
“미로의 시공을 조사하겠다고? 차라리 목을 내밀고 뒤통수를 부숴 달라고 말하지그래?”
“하지만 정말 어떻게 된 걸까요? 미로의 시공에 문제가 생겼다면 가장 먼저 이상 현상이 나타나야 하는 것은 토르미아예요.”
“아마도 그럴 거야. 아직 실체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혓바닥 괴물들이 출몰한 곳이 쿠베린이라고 그랬지? 고대의 콜로세움이 있었던 곳이야.”
“그게 어떤 의미죠?”
“생물이 아니야. 일종의…… 개념 같은 거라고 해야겠지. 그 개념이 이곳으로 넘어와서 인간의 사념이 집중된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정도의 가설이 되지 않을까?”
강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올드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발키리의 어떤 수뇌부도 가올드만큼 미로와 천국에 대해 알지는 못했다.
“어째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요?”
“생물은 넘어오지 못했어. 가장 유력한 가정은 미로의 시공에 일정 수준 이상의 균열이 갔다는 거야. 미로라면 그 정도는 복구할 수 있겠지. 하지만 오래는 못 버틸 거야.”
가올드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입에 물린 시가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접대실을 가득 채웠다.
“강난, 네가 다녀와야겠다.”
강난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두 손을 무릎에 올렸다.
“하명하십시오.”
“조만간 이곳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거야. 전부 조사해. 고대의 사념이 모일 만한 곳부터 집중적으로 찾아. 유적지라든가 콜로세움, 성터 같은 곳.”
가올드의 지령을 수첩에 적은 강난은 자리를 박차고 문으로 향했다. 단독 임무라면 마차를 운용할 필요가 없으니 왕국 어디에서 사건이 터지든 늦지는 않을 터였다.
“아, 그리고 돌아다니는 김에 크레아스도 갔다 와.”
문을 열고 나가려던 강난이 돌아섰다.
“마법학교가 있는 곳 말이죠? 알페아스 씨에게 전할 말이라도?”
가올드는 소파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미로의 시공에 문제가 생겼다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평생을 바친 계획을 실행해야 할 때였다.
“시로네……라는 아이를 한번 만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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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외출 (1)
카르미스 가문에 도착한 시로네는 옷매무새를 살피고 정문의 아치로 걸어갔다.
백색의 철창 사이로 카르미스 특유의 자유분방한 정원이 뻗어 있었다.
매서운 눈초리로 주위를 경계하는 경비도 그대로였다.
아니나 다를까, 시로네가 다가가자 여지없이 오른손이 허리에 차고 있는 검집의 손잡이로 움직였다.
“정지.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반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경어를 쓴다는 것이었다.
귀족 저택의 경비들은 기본적으로 4시간마다 교대하고 달마다 근무하는 위치도 다르니 당시의 경비들이 여기에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시로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범인과는 다른 범상치 않은 기도를 느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마법학교에 다니면서 시로네의 외모도 산골짜기 소년의 티를 어느 정도 벗었다.
특히나 실전에서 얻은 경험치와 수행을 통해 고양시킨 높은 경지의 정신력은 마법에 문외한인 경비들조차 느낄 수 있을 만큼 아우라를 발하고 있었다.
“에이미 친구예요. 에이미는 안에 있나요?”
경비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서로를 돌아보며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시로네는 반년 전에 금남의 영역이었던 에이미의 방에 들어간 적이 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에이미의 남자 친구랍시고 출입을 허가한 경우는 일어나지 않았으니 당시의 사건을 모르는 경비들이 믿을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오늘 예약된 손님은 없습니다. 용무가 있으시다면 따로 절차를 밟아 진행해 주십시오.”
예상했던 대로의 대답이었다.
시로네는 입맛을 다시며 몸을 돌렸다.
운이 좋다면 바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고 찾아왔지만 일이 꼬였으니 서신을 써서 저택에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괜찮네. 들여보내게.”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정문 안에서 들렸다.
시로네가 다시 돌아서자 카르미스 가문의 집사장 아델이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서 있었다.
경비들의 허리가 꼿꼿하게 일어섰다.
저택에서 함께 생활하는 그들에게는 인자한 얼굴의 아델이 지옥의 사자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지팡이를 짚으면서 정문을 넘어선 아델은 시로네의 앞에 멈춰서 지그시 눈을 들여다보았다.
반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 시로네는 미리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처음으로 경험했던 눈의 기술 프레싱.
카르미스 가문의 집사장이라면 최선을 다한 실력도 아니었을 테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델은 어떤 기술도 걸어오지 않았다. 직각으로 허리를 숙이며 공손히 인사를 올릴 뿐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시로네 도련님.”
시로네는 긴장이 풀린 채로 멍하니 있다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마주 고개를 숙였다.
“네, 잘 지내셨죠?”
“허허, 늙은이의 일상이야 달라질 것이 없지요. 에이미 아가씨를 만나러 오신 모양이군요.”
“네, 기별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해요. 혹시 집에 있나요?”
아델은 난처한 듯 눈썹을 긁적였다.
“상황은 알고 계실 테지요. 사실 그래서인지 근래 에이미 아가씨께서 몸이 조금 편찮으십니다. 엊그제는 세리엘 아가씨가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가기도 했지요.”
“아, 그랬군요.”
세리엘이라면 에이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런 그녀까지 돌려보낼 정도라면 에이미도 진심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시로네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가 왔다고 말이라도 전해 주세요. 그래도 싫다고 하면 그냥 돌아갈게요.”
아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에이미가 졸업 시험에서 떨어진 이후 저택의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짜증을 겉으로 드러내는 성격도 아니니, 나서서 달래 주지는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시로네라면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소년은 남자의 자격으로 에이미의 집에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니까.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시로네를 정중히 모시라는 지시를 경비에게 내린 아델은 정원에 대기한 마차에 올랐다.
‘대략 반년 만이로군.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지?’
마차가 출발하자 아델의 표정이 그제야 심각해졌다.
에이미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에게 프레싱을 거는 것은 집사장만이 누릴 수 있는 소일거리이자 작은 재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프레싱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시로네의 정신이 전보다 훨씬 예리하게 가다듬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예리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섬뜩함.’
프레싱을 걸어 보려고 눈을 마주치는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전체적인 기질은 딱히 변하지 않은 듯했다.
총명하고, 밝고, 인자한 성품은 반년 전에 봤던 시로네의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눈빛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미묘하게 날카로웠다.
‘또 다른 무언가가 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한 괴물이…….’
최고의 가문인 카르미스 가문의 집사장 정도가 되기에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일단 위해를 가하면 반드시 튀어나와 자신을 씹어 삼킬 것이다.
눈이 마주친 찰나의 시간 동안 아델은 그런 상황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만큼 난폭하고 극단적인 괴물이었다.
‘들여보내도 괜찮을까? 물론 통제할 수 없는 심마를 품고 친구를 찾아왔을 리는 없겠지만…….’
아델은 여기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가주인 샤코라가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터무니없는 소년이군.’
짧게나마 오금이 저릴 정도의 느낌을 받았던 게 얼마나 오래전의 일이던가?
그런 괴물을 시로네는 내면 깊숙한 곳에 봉인시켰다.
‘반년 사이에 더욱 강해졌군. 정말 대단한 재능이다.’
카르미스 가문은 천재의 핏줄로 통한다. 특히나 에이미의 재능은 식구들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시로네가 성장하는 폭은 상상을 초월했다.
에이미가 인간 중에서 가장 빠른 스프린터라면 시로네는 보폭 자체가 차원이 다른 거인이었다.
‘무엇이 그를 움직이는 것일까?’
마차가 멈추는 것과 동시에 아델의 생각도 멈췄다.
해답이 없는 의문을 마음에 품은 채, 그는 저택의 문을 열었다.
졸업 시험이 끝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사뭇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한평생 카르미스 식구들의 다채로운 분위기를 사랑하며 살아온 아델에게는 적응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가주님.”
신문을 읽고 있던 샤코라가 시선을 돌렸다.
“시로네 군이 에이미 아가씨를 찾아왔습니다. 헌데 아가씨께서 아무도 만나지 않을 거라고 집사실에 통보를 한 상태인지라…….”
“흐음, 시로네가?”
샤코라는 에이미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딸이 졸업 시험을 엉망진창으로 치렀으니 얼마나 면이 서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로네라면 의중을 살펴볼 여지가 있었다.
비록 세리엘은 거절당했지만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감정은 엄연히 다른 법이니까.
주방에서 듣고 있던 이시스가 나와 말했다.
“일단 에이미에게 물어보기는 할게요.”
이시스는 계단을 올라 2층 에이미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도란도란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방을 나온 그녀가 난간으로 다가와 고개를 저었다.
그것으로 에이미의 뜻을 전달받은 아델이 재고의 여지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시로네 군을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들어오라고 하게.”
샤코라의 말에 이시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보, 에이미는…….”
“괜찮아. 학교에서 시로네를 봤을 때도 찾아오라고 했었지 않나. 이대로 돌려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지. 내가 만나고 싶어서 그래. 들여보내게.”
“알겠습니다.”
최소한 시로네를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델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저택을 나섰다.
그로부터 10분 뒤에 시로네가 저택에 도착했다.
샤코라가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고, 시간에 맞춰 이시스가 열대 과일을 쟁반에 담아 내왔다.
시로네는 샤코라에게 걸어가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그래, 잘 왔다. 이리 앉으렴.”
소파에 앉은 시로네는 대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들어오면서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에이미에 대한 이야기는 먼저 꺼내지 않았다.
아델과 마찬가지로 샤코라 또한 시로네의 미묘하게 예리해진 기질을 한눈에 간파했다.
졸업 시험 당시에는 딸에 대한 걱정으로 깊이 살필 경황이 없었지만, 막상 딸이 탈락하고 나자 부모로서 시로네의 성과에 관심이 생겼다.
‘왕국 최고의 유망주라…….’
물론 졸업반은 배제한 평가다.
하지만 졸업반을 포함시키더라도 시로네의 평가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에이미에게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녀가 입학하고부터 마법사회에서 벌어지는 기사들을 스크랩할 정도로 열성적인 아버지가 샤코라였다. 그런 그가 귀가 닳도록 들었던 학생이 바로 단테다.
시로네가 왕국 1등의 단테를 꺾었을 때는 천하의 그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확인해 보니 요행이나 운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일가를 이룬 수도승의 눈동자 속에는 속세를 초월하는 열망이 불타고 있었다.
아델은 괴물이라 칭했지만 샤코라는 생각이 달랐다.
그것 또한 시로네였다.
‘어디 가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잠재되어 있던 성향이 후천적으로 발현된 것인가? 하지만 어떻게?’
카즈라 왕국에서 험한 일을 겪은 일화는 이미 접수했다. 그렇다고 해도 열여덟 살 소년이 끌어안기에는 너무나 초월적인 심마였다.
오랫동안 대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샤코라는 팔불출 아버지로 돌아와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많이 아프지는 않단다.”
“네, 알고 있어요.”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육체적 고통보다도 더 심각한 상태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샤코라가 어렵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잘 모르겠구나. 딱히 힘들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조금 허탈한 모양이다. 너라면 이해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