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7
입술을 만지며 생각하던 에텔라가 물었다.
“그러면 이미지 존에서 한번 시연해 볼래?”
“네? 지금요?”
“왜? 컨디션이 안 좋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에텔라는 의아한 듯 눈을 깜박거렸다.
수업 첫날부터 이미지 존을 사용하고 싶다고 했던 의욕적인 모습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혹시 아이들이 견제하는 것 때문에? 생각보다 예민한 성격이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법이다.
너무 강하면 외골수가 되지만 목적을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성향이기도 했다.
물론 시로네도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건 아니었다.
다만 에텔라가 모르는 게 있다면, 견제 수준이 아닌 악의적인 방해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다음에 해도 상관없어. 클래스 세븐에서 사방식 변환이 가능한 학생은 너뿐이라서 한번 보려고 한 거거든.”
“아뇨. 해 볼게요. 평가해 주세요.”
동급생들의 비난을 이유로 에텔라 선생님의 지도를 받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시로네가 이미지 존에 들어가자 예상했던 대로 수많은 소리가 날아들었다.
“어라? 쟤 또 할 생각인가 보네?”
“애인한테 잘 보이고 싶은 거겠지. 하긴, 저 녀석 잘하는 게 저것밖에 없잖아.”
동급생들의 질투가 드러나는 반면 상급자들은 연습을 멈추고 눈을 돌렸다.
‘얼마나 늘었을까?’
사방식의 방어형을 성공한 이후 한 달이 지났으니 시로네의 성과가 궁금했다.
“선생님, 시작할게요.”
“그래. 우선 하나씩 해 보자.”
시로네가 방어형을 펼치자 144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입방면체가 단단하게 조여들었다.
상급자 쪽에서 감탄사가 들렸다.
“방어형만 보면 상위 클래스네. 저 정도면 장갑裝甲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그럴수록 클래스 세븐의 동급생들은 공공의 적을 대하듯 눈에 힘이 들어갔다.
다만 투덜대지 못하는 건, 이견을 낼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시로네가 공격형으로 패턴을 바꾸자 수많은 가시들이 험악하게 튀어나왔다.
‘능숙하다. 확실히 재능이 있어.’
이미 고급반의 상위 클래스는 시로네를 잠재적 경쟁자로 보고 있었다.
공격형에서 스피릿 존이 더 줄어들면서 십자가 형태의 타깃형으로 변환되었다.
에텔라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기본기가 좋은 학생이다. 이 정도면 클래스 식스로 조기 진급해도 되겠어.’
시로네는 이탈형을 시도했다.
아직 성공하지 못한 패턴이라 부담이 컸으나 조언을 받으려면 실패 또한 필요했다.
여태까지의 난관이 또다시 들이닥쳤다.
‘역시 안되나.’
스피릿 존의 형태가 변해 버리는가 하면 이탈을 할 때마다 소멸하기 일쑤였다.
그러자 여태까지 긴장하고 있던 클래스 세븐의 학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크크, 쟤 지금 뭐 하는 거냐? 저게 무슨 사방식이야? 애들 장난이지.”
“천재라더니 남들하고 다를 것도 없네. 이래서 함부로 과장하면 안 된다니까.”
시로네는 기분이 상했다.
클래스 세븐에서 이탈형이 가능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저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잣대를 타인에게 들이대는 것일까?
평정심이 흔들리자 스피릿 존이 흔들렸고, 동급생들은 시로네에게 실패의 아픔을 맛보게 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험담을 이어 나갔다.
시연을 지켜보던 에이미가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왜 저래? 뭐 하는 거야?”
사방식의 수준이 높아진 것에 흡족해하던 찰나에 갑자기 스피릿 존이 흔들린 것이다.
세리엘이 말했다.
“그러게. 이탈형은 원래 어려운 건데. 동급생들의 반응에 너무 신경 쓰는 것 같아.”
“설마. 확신이 없을 때나 남의 비판에 흔들리는 거지. 저 녀석이 이 정도로 충격을 받겠어? 잘하는 애들은 이미 뭘 할 수 있고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그건 그렇지만…….”
에이미의 말대로 시로네의 분노는 동급생보다는 더 본질적인 곳에 있었다.
‘어째서 사람들은…….’
남이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경쟁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는 시로네에게 지금의 상황은 인간에 대한 생각을 다시 갖게 했다.
‘왜 나를 싫어하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열심히 배우고 더 잘하고 싶을 뿐이야. 마법사가 되고 싶은 게 뭐가 나쁘다는 거야?’
분노가 분노를 원료로 커지고, 스피릿 존이 터질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이, 잡생각이 너무 많아!”
그 순간 클래스 파이브 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시로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우물쭈물하지 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하라고. 넌 마법사가 되기 위해 온 거잖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과 함께 마음속의 분노가 순식간에 잊혔다.
1초 전의 자신이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객관성을 되찾은 것이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마법사가 되기 위한 목표는 어디 가고 뜬구름 잡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까?
하지만 더 이상의 잡념은 없었다.
‘해 보자.’
직경 40미터의 스피릿 존이 중심을 벗어나자 크기가 기하급수로 줄기 시작했다.
이탈이 먼저인가, 소멸이 먼저인가.
동급생과 선배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고급반 학생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버텨. 기절하면 안 돼.’
시로네는 마지막까지 의식을 붙잡았다.
스피릿 존의 크기가 직경 2미터까지 줄어들자 마침내 구체의 표면이 몸에서 떨어졌다.
비록 약간의 거리였지만, 클래스 세븐의 학생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됐, 됐다. 이탈형…….”
반쯤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에서 시로네는 스피릿 존을 빠르게 휘돌렸다.
“으으으으!”
매 순간 새로운 정보들이 엄청난 속도로 밀려들자 머리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완전히 의식이 멀어질 즈음, 시로네는 거의 본능적으로 눈을 치켜떴다.
스피릿 존이 훅, 자취를 감추었다.
“하아, 하아.”
그저 서 있었을 뿐인데도 심장이 마치 전력 질주를 한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저 녀석…… 진짜로 성공했어.”
방어형을 해낸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성과에 상급반이 더 술렁거렸다.
클래스 세븐은 물론 심지어 클래스 식스에서도 이탈형을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우와! 해냈어, 에이미! 시로네가 진짜로 해냈다고!”
세리엘이 팔을 잡고 호들갑을 떨자 에이미도 순수한 의미로 미소를 지었다.
‘축하해.’
아마도 자신과 맞먹는 재능, 혹은 그 이상.
하지만 그녀는 시로네의 재능을 시기하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반성을 했다.
‘늦은 시기에 각성한 만큼 하루도 빠짐없이 정신을 단련했겠지.’
반면에 자신은 어떠했던가.
시로네와 비교도 안 되는 지원 속에서도 뒷골목을 전전하며 감상에 빠졌었다.
‘나는 왜…….’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을까?
비록 그 시간들이 의미가 없지는 않았더라도, 처음부터 알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편, 시로네는 조금 전에 들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선배들과 마주칠 기회가 별로 없다 보니 음성만으로 찾기는 어려웠다.
‘누구였을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시로네가 박수갈채를 받고 있는 동안 에텔라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동급생은 물론 상급생들까지 시로네의 성장에 자극을 받고 있는 상황.
그녀는 조금 더 학급의 분위기를 고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흐음, 생각보다 일찍 왔네.”
***
근래 시로네는 고민이 생겼다. 바로 마법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학교 커리큘럼상 클래스 세븐 단계에서 마법을 터득할 필요는 없지만, 현실을 따졌을 때 대부분의 동급생들은 하나 이상의 마법을 시전할 줄 알았다.
태어날 때부터 교육을 받은 귀족과 달리 시로네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한 기간은 오젠트 가문에서의 1년 6개월이 전부였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지식의 척추가 예상보다도 막강한 효율을 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에게 있어 역사란 단순한 학문이 아닌, 모든 지식을 공간과 시간의 순서대로 정리할 수 있는 아주 탁월한 도서관의 역할을 했다.
시로네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었다.
한 가지 학문에 몰두하면 간단한 마법은 구사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태어날 때부터 공부한 자들의 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시기야.’
그렇게 해서 시로네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당분간 마법은 포기한다.’
대신 지식의 척추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다양한 지식을 동시에 습득할 생각이었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시공간에 물리적 좌표를 만든 거나 마찬가지야. 어떤 학문을 배워도 논리적으로 배열이 되고, 그렇기에 쉽게 망각하지 않아. 즉, 남들이 두 번을 반복할 것을 한 번에 넘길 수 있다면…….’
경쟁자와의 시간 격차는 점차 줄어든다.
도서관에서 각 분야의 책들을 모조리 빌린 시로네는 아예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동급생들은 그런 시로네를 비웃었다.
“오늘도 저러고 있네. 저렇게 중구난방으로 책만 읽는다고 똑똑해지는 줄 아나?”
“그러게. 당장 수업도 따라가기 벅찬데.”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로네는 자신의 방식에 확신을 가졌다.
‘헷갈리지 않아.’
음악에 수학적 파동이, 요리에 화학과 생리학이 있듯 모든 지식은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성이 확장되고 강화될수록 세상을 이해하는 시야는 넓어질 테고, 지식의 척추는 그 중심을 단단히 지탱하는 거대한 축이었다.
‘당장의 성과는 미미할지 모른다. 하지만 해낼 수 있다면, 그때는 학문이 아닌 세상을 이해할 수 있어.’
무아지경으로 책 한 권을 끝내고 정신을 차리자 자정이 훨씬 지나 있었다.
‘벌써 이렇게 됐나?’
현재 열람실에 남아 있는 사람은 자신과 클래스 식스의 소녀뿐이었다.
사람이 없어도 정숙감은 여전했기에 시로네는 가방을 챙기며 묵례했다.
‘열심히 하세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인사에 소녀도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서관을 나올 때는 새벽 2시였다.
“으, 피곤해.”
지금 들어가도 수면 시간은 4시간 정도일 테지만 시로네는 그것조차 아까웠다.
‘왜 인간은 자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자 문득 ‘위대한 학자들의 대담’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토르크콜린이라는 생리학자가 말하길, 인간은 6시간 이상의 수면을 취하는 게 좋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말미에 이런 농담을 던졌다.
-물론 나는 학창 시절에 4시간밖에 못 잤지만.
책의 저자가 받아쳤다.
-그렇다면 주장이 틀린 거 아닙니까? 당신은 4시간만 자고도 뛰어난 학자가 되었으니까요.
토르크콜린은 이렇게 답했다.
-10대는 인간이 아니오. 초인이지. 잠 따위 자거나 말거나, 무언가를 하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습니다.
수면 시간마저 아까운 시로네에게 토르크콜린의 말은 큰 격려가 되었다.
‘그래, 열심히 하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 결과는 알아서 따라올 거야.’
졸업반 건물에 불이 켜져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실험을 하는지 창문이 번쩍거리는 것을 보며 시로네는 생각했다.
‘저 안에서 어떤 역사가 새로 쓰이고 있는 걸까?’
그의 시선은 이미 졸업반을 향해 있었다.
***
에텔라는 점심시간을 틈타 시이나를 찾았다.
스물여섯 살 동갑내기로 4년이나 함께 근무했지만 여전히 존대를 하는 두 사람이었다.
“시이나 선생님,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네. 그런데 클래스 세븐 수업이 잡혀서 길게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마법 토론을 하다 보면 1시간을 훌쩍 넘기는 게 다반사였기에 양해를 구했으나 에텔라는 오히려 잘됐다는 투였다.
“아, 그렇군요. 다름이 아니라 클래스 세븐에 있는 시로네 일로 상의할 게 있는데요.”
시로네라면 시이나도 궁금하던 차였다.
이론 수업이 미진한 반면 실습 성과는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는 풍문을 듣고 있었다.
“요즘 어떤가요? 실습 점수를 보니 꽤나 높던데요.”
“확실히 그렇죠. 저번에는 사방식의 이탈형까지 성공시켰으니까요.”
“그렇군요.”
시이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재능 있는 학생을 가르치는 건 교사의 입장에서는 거의 욕망에 가깝고, 특히나 그 학생의 진면목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래서 시이나 선생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요.”
“제안요?”
에텔라가 의견을 제시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그런 만큼 파격적인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에 시이나는 눈을 깜박이며 말을 기다렸다.
눈엣가시(3)
클래스 세븐의 칠판에 화학 이론이 빼곡하게 적혔다.
오늘따라 수업이 빨라진 감이 있었기에 학생들도 바쁘게 눈과 손을 움직였다.
예감이 들어맞았는지 시이나는 10분 정도 수업을 일찍 끝내고 교단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