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70
단테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에이미를 가리켰다.
“바로 너. 에이미 네가 알페아스 마법학교에서 최고야.”
에이미는 기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단테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전투 마법사의 철학 (4)
“홍안. 그러니까 자기상 기억은 최단시간에 오류를 수정하지. 이건 정말 엄청난 능력이야. 재능만 놓고 보자면 알페아스 마법학교가 아니라 대륙에서 최고일 거라고. 그건 너희 가문에서 배출한 수많은 천재들이 증명하고 있잖아.”
에이미는 반박할 수 없었다.
카르미스 가문의 가식들, 아니 본가의 오빠들만 해도 이미 젊은 나이에 자신의 분야에서 대륙에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그래서 뭐? 여태까지 한 번도 가문에 기대려고 생각한 적 없어! 내가 이 자리까지 온 게 결국 재능 때문이라는 거야? 난 언제나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해 왔다고.”
“그래. 그게 바로 어리광이라는 거야.”
에이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차라리 가문에 기대. 네가 가지고 있는 것, 너의 가문이 가지고 있는 것. 모든 걸 동원해서 부딪쳐야 돼. 남들은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으면서, 고작 혼자의 힘으로 해 보겠다는 이유만으로 내팽개친다고? 그게 바로 어리광이라는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은…….”
“스케이트장에서 만난 애들 기억해? 조크레라고 했던가? 아인스 마법학교는 솔직히 명문은 아니지. 그 아이들의 재능은 너보다도 훨씬 떨어질 거야. 그럼에도 자기들끼리 살길을 모색해서 마법사가 되는 거야. 재수가 없어서 탈락한 거라고? 아니, 에이미. 너는 왕국 5대 명문에서 경쟁하고 있는 거야. 너보다 억울한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어. 마법사가 되고 싶다면, 그것도 최고의 마법사가 되고 싶다면, 어떤 상황이 닥치든 싸워서 이겨 내야 하는 거야.”
에이미는 고개를 숙였다.
분노는 어느새 사라진 후였다.
아니,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단테의 말이 옳았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은 왕국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알페아스 마법학교, 그것도 정점에 위치한 졸업반이었다.
핑계 따위는 댈 수 없는 자리.
오직 최고만을 바라보는 인재들이 충돌하는 전장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봐야 배부른 자의 헛소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스타트 지점에 다시 섰다.
두 번째는 더 빠를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머릿속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제는 자기 자신을 이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에이미에게 있어 최초의 시련이었다.
‘에이미…….’
시로네는 에이미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단테의 직설적인 화법은 에이미에게 큰 충격일 터였다. 하지만 끼어들 수 없었다.
에이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은 아니었다.
단테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테이블에 정적이 감돌았다.
사방에서 떠들어 대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도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단테는 식은 커피를 마시며 에이미를 살폈다.
딱히 그녀에게 특별한 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졸업 시험에서 가장 눈에 거슬렸던 것도 에이미였다.
“어째서 네가 탈락했는지 말해 줄까?”
에이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시로네도 단테를 쳐다보았다.
정보처리가 전공인 단테의 분석이라면 상황을 떠나 들을 만한 가치가 있을 터였다.
“물론 네가 마법을 운용하는 걸 눈으로 확인한 것은 졸업 시험뿐이야. 그것도 5분이 채 안 되지. 하지만 짧은 시간에도 유독 이해가 안 가는 게 있더라고.”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는 거야?”
“아니. 그보다 본질에 더 근접한 문제야. 본론부터 말하면, 너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특히나 전투 마법사를 지향한다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빠져 있다고.”
자신에게 약점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에이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단테는 커피 잔을 들고 고개를 돌렸다. 잠시 말을 고르던 그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너에게는…… 스타일이 없어.”
“스타일?”
예상치도 못한 말에 에이미가 되물었다. 하지만 시로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스타일이 없다.
여태까지 에이미와 함께하면서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던 위화감을 함축하는 말이었다.
불과 5분의 전투만 보고 에이미의 단점을 확실히 간파했다는 것은 왕국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단테의 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로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좋게 말하자면 만능이지.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너는 너무 대단해서 탈이야.”
시로네의 말에 에이미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단테의 직언에 충격을 받은 뒤였기에 민망함이 더했다.
“지금 놀리는 거야?”
단테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시로네의 말에 일리가 있어. 내가 봤을 때 너는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성향이 있어. 왜냐하면 그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게 어째서 문제가 된다는 거야?”
“아주 큰 문제가 되지. 너의 장기는 스나이퍼 모드야.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자신의 장기가 특화될 수 있는 환경으로 상황을 유도하지. 거기에서 스타일이 발생해. 시로네가 완력으로 짓누르는 전략을 좋아하는 건 이모탈 펑션이 있기 때문이야. 내가 카운터를 좋아하는 건 상대를 분석하기를 즐기기 때문이지. 하지만 너는 달라. 스나이퍼 모드가 여의치 않으면 곧바로 제2의 해결책을 찾는다고.”
에이미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정말로 심각한 게 뭔지 알아? 결국에는 네가 그걸 해낸다는 거야. 제2의 해결책을 찾아 버린다고. 너무 재기발랄해. 하지만 그런 방식이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까?”
에이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멍청이다. 바보다.
어째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
“보통은 학생 수준에서 벽에 부딪칠 거야. 하지만 너의 재능은 졸업반까지 통해 버렸지. 그러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벽에 부딪치고 말았던 거야.”
단테는 손바닥을 펴고 주먹을 맞부딪쳤다.
“바로 참가자 모두가 너를 노리는 상황이 닥친 거지. 졸업반 수업보다 급격히 치솟은 난이도 앞에서 처음으로 재능만으로 해 볼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한 거야. 나나 시로네는 일찍부터 겪었던 난관이 너에게는 너무 늦게 나타난 거지. 페르미는 이미 알고 있었을 거야, 너의 치명적인 약점을. 그게 바로 네가 제물로 선택된 이유야.”
단테는 졸업 시험을 떠올리며 예시를 들었다.
“전세가 급변하는 걸 느낀 순간 너는 사누엘을 포기하고 페르미를 노렸지. 스키마라면 근접 전투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테니까. 하지만 거기서 사달이 난 거야. 너는 위화감을 느낀 순간 무조건 거리를 벌렸어야 해. 어떻게든 스나이퍼 모드를 특화시킬 수 있는 상황으로 이끌어 갔어야 했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시로네가 말을 받았다.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단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전에서 모든 상황을 통제하기란 불가능해. 전투 시에 판단에 필요한 시간은 1초도 길어. 선택지가 나뉘면 딜레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스타일이 중요하지. 자신의 스타일을 믿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거는 거야.”
에이미는 카즈라에서 제노거의 거미줄에 묶였던 상황을 떠올렸다.
당시에도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오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이그나이트로 거미줄을 녹이고 빠져나올 수 있었을 터였다.
“아마 너는 졸업반에서 모든 걸 분석했을 거야. 참가자 전원의 전투력, 판단력, 습관, 행동 등. 그들의 모든 걸 분석하고 자신이 유리하다, 이런 판단을 내렸던 거지?”
에이미는 순순히 인정했다.
“맞아. 정확해.”
“하지만 스타일은 생각하지 못했지. 그건 전투력만큼이나 중요한 거야. 상성이 안 맞으면 피하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된다고. 만약 지금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당시의 시로네와 싸운다면, 아마도 90퍼센트의 확률로 내가 이길 거야.”
시로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단테가 맞붙는다면 십중팔구는 밀리는 전투가 될 터였다.
“전투라는 건 단순히 실력만으로 우위를 가늠할 수 없는 문제야. 극단적으로 말해서 시로네의 아타락시아도 완성 전에 파괴하면 그만이야. 그런데 어째서 나는 성공시키지 못했을까? 시로네 또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끊임없이 상황을 유도했기 때문이지. 스타일과 스타일의 충돌. 그게 마법사의 전투라고.”
에이미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온통 마법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단테가 말했다.
“뭐, 잘난 척했지만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나도 탈락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처럼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조기에 탈락하지는 않을 거야. 어쨌든 이게 내가 졸업 시험에서 너를 보고 분석한 결과야.”
에이미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표정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흥분의 감정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고마워, 솔직하게 얘기해 줘서.”
내년이면 경쟁자가 될 상대에게 장단점을 분석해 주었다는 것은 어떤 이유를 붙여도 고마운 일이었다.
단테는 숙연한 분위기가 민망했는지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이트 중에 괜한 얘기를 꺼낸 것 같군. 아무튼 나는 그만 가 볼게. 너희도 재밌게 놀다 가라. 나중에 학교에서 보자.”
시로네가 문밖까지 배웅했다.
단테는 카페 바깥에서 창문을 통해 에이미를 살폈다.
시무룩한 그녀의 표정을 확인한 그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분위기 좋았던 것 같은데, 내가 끼어들어서 망쳐 버렸네.”
왕립 마법학교에서 심심찮게 연애를 했던 단테는 시로네와 에이미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감지하고 있었다.
에이미가 둘만의 여행에 따라왔다는 것은 그녀도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만약 스케이트장에서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시로네와 에이미의 내일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오늘의 조언으로 인해 에이미의 생각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남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시로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에이미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은 단테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괜찮아. 네가 아니었으면 에이미의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을 거야. 정말 큰 도움이 됐어. 물론 해법은 에이미 스스로 연구해 나가야겠지만.”
단테는 쓴웃음을 지었다.
속세의 때라고는 조금도 묻지 않은 것 같은 시로네였다.
하긴, 어떤 의미로는 에이미도 시로네와 같은 과에 속하니 제대로 만났다고 볼 수 있었다.
단테는 언제나 인스턴트식 연애만 해 왔다. 성격에 맞으니 거기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감정을 맞춰 가는 것도 재밌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딱히 에이미를 위해서 건넨 조언은 아냐. 어차피 내년에도 페르미 일행은 있을 거니까. 대항마는 많이 만들어 둘수록 좋지. 아무튼 다음에 보자. 재밌게 놀다 가라.”
단테는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왔을 때처럼 가볍게 떠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시로네는 여행자의 여유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너에게도 좋은 여행이 되길.’
한겨울의 밤 (1)
겨울이라 해가 일찍 떨어졌다.
오래된 성터는 6시면 관광 구역이 파장하기에 단테는 그만 여행을 접고 숙소로 향했다.
‘그냥 들어가기 뭐한데, 맥주나 마실까?’
열여덟 살이면 바깥에서 술을 살 수 있다.
독한 술은 별로지만 여행지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걸 좋아하는 단테였다.
상점 구역은 관광지에서 빠져나온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아 길을 거니는데 3층 술집의 입구 앞에서 젊은 여자가 가두시위를 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복장이 단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손목 아래까지 소매가 내려오는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흰 띠로 허리를 바짝 조였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겉옷은 각이 바짝 잡혀 있었고 치마는 붉은색이었다.
단테는 제의에 관련된 인물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큰 배낭을 메고 있는 것을 보면 오래 여행을 했거나 먼 곳에서 왔다는 뜻이다.
20대 중반 정도 될까?
햇빛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순백의 피부에 곱상한 외모. 정수리 쪽에서 높게 동여맨 흑발의 머리가 허리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한겨울의 밤 (2)
당장이라도 얼어 죽을 것 같은 차림새는 취객들의 즐거운 눈요깃거리였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신경 쓰지 않고 사람들에게 전언을 설파하고 있었다.
“세계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모두 빨리 성터를 떠나세요.”
‘종말?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단테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가 오래된 유적지라면 어디에나 있다, 사이비 종교에 정신이 팔려서 인생마저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음 여왕이라는 인물 자체가 축제를 위해 가공된 전설이었으니 위험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관광객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심각하게 경청하는 사람은 1명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차피 종말이라면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 아닌가? 여기를 떠나면 어디로 가라고? 설마 집에서 기다리는 지긋지긋한 마누라 품에서 죽으라는 건 아니겠지? 푸하하하!”
“듣고 보니 그렇군. 그건 절대로 안 되지. 아가씨, 관심이 필요하면 실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춤이나 추는 게 어때?”
여자는 이러한 태무시에 익숙한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똑바로 그들을 바라보며 맞받아쳤다.
“거짓이 아닙니다. 시간의 선율을 관장하는 아케아니스 여신에게 받은 신탁입니다.”
“아케아니스? 그런 종교는 들어 본 적도 없다고.”
“제 말을 믿으셔야 해요! 조만간 이곳에 종말의 태동이 일어날 겁니다. 모두가 죽는다고요!”
“그래그래, 알았어. 믿어 줄 테니까 일단 들어가자고. 술이나 마시면서 얘기하지.”
거구의 장한이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자 그녀가 두 손으로 밀어내며 소리쳤다.
“불경한 손을 가져다 대지 마세요!”
“어허! 이 아가씨가 정말. 그러지 말고 들어오라니까. 내가 뭐 나쁜 사람인가?”
여자는 배낭 밑에 가로로 메고 있는 원통으로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내어 남자의 목에 들이밀었다.
얼핏 봤을 때는 화살통인 줄 알았으나 막상 내용물을 보니 50센티미터 길이의 가느다란 철심이었다.
끝은 송곳처럼 날카로웠고 반대편의 고리 안에는 딸랑거리는 작은 종이 매달려 있었다.
정말로 찌를 듯한 기세를 느낀 거한이 황급히 여자에게서 손을 떼며 물러섰다.
“어이쿠, 성질머리 하고는.”
일이 커지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관광객들도 흥미를 느끼고 모여들었다.
단테는 뒤편에 서 있는 남자들이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는 소리를 들었다.
“미친 여자였군. 생긴 건 멀쩡한데 말이야. 어때, 오늘 우리가 데리고 놀아 볼까?”
“아서라. 저런 여자 상대하다가 피 보는 수가 있어.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아?”
“그래도 아깝잖아. 보기 드문 미녀인데 말이야.”
단테는 여자를 유심히 살폈다.
“아케아니스라…….”
심령 쪽에 관심이 많은 단테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긴, 세상에는 수만 개의 종교가 있으니 그들이 믿는 신의 이름을 모두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자는 앵무새처럼 같은 이야기만을 하고 있었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서 오래된 성터를 떠나세요!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을 것입니다. 제 말은 사실입니다!”
“떠난다고 해결이 될까?”
사람들의 시선에 단테에게 집중되었다.
처음으로 여자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이었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단테가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정말 종말이 닥친다면, 뭔가 해결 방법이 있어야 할 거 아냐? 도망친다고 끝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여자는 단테가 자신보다 어린 소년이라는 걸 확인하고 실망한 기색으로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는 아케아니스 신단의 마도사, 토테미스트 리리아입니다. 오늘 밤 이곳에서 제령이 시도될 것입니다. 만의 하나 실패할 경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속히 이곳을 떠나 주세요.”
단테는 무시당한 감정보다도 그녀가 마도사라는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마도사는 제령회에서 일하는 자들로, 그들이 구사하는 봉마진은 마법사의 마법진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그렇기에 정보 마법을 전공한 단테도 겉핥기로나마 제령에 대해 공부를 했던 것이다.
마법사가 등가교환으로 현상을 실체화시킨다면, 마도사는 의지의 힘으로 이치의 한 측면을 강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