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71
두 가지는 비슷하지만 달랐다.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라면 마법사는 물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하지만 마도사는 물의 의지를 강화하여 불의 의지를 억누른다.
근원의 균형을 지배하는 것.
마도사들은 이를 율법이라고 부른다.
마법의 변화처럼 첨예한 맛은 떨어지지만 보다 광범위하고 넓은 범위의 현상을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럼에도 양지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율법이라는 능력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도사, 정확히 백색의 마도사는 세상의 악을 멸하기 위해 싸우는 자들이다.
하지만 선과 악이라는 것은 인간이 태어난 이후에 만들어진 인위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마도사들은 악을 봉인할 수 있을까?
이러한 증명의 모호함으로 인해 세간 사람들은 율법을 마법의 아류, 즉 대체 마법으로 폄하하는 게 현실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어서 이곳을 떠나세요. 여러분의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리리아가 간절한 목소리로 호소했으나 사람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단테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서는 사람이 없자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
“내가 도와줄까?”
리리아는 단테를 돌아보지도 않고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요즘 애들이란.’
제령을 하러 돌아다니면서 이런 식으로 치근대는 소년을 한두 번 만난 게 아니었다.
제령사라는 것 자체가 젊은 아이들에게는 꽤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직업인 모양이었다.
소년의 외모를 보아하니 얼굴도 잘생겼고 스타일도 좋다. 상당히 놀아 본 아이인지 귀에 피어싱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꼬마야.’
리리아는 차가운 눈으로 단테를 노려보았다.
“너 같은 어린애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너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 부모님에게 큰 죄를 짓기 싫으면.”
단테가 대꾸를 하려는데 구경꾼 중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어? 저 아이…… 단테 아냐? 왕국 최고의 마법사 유망주, 에어하인 단테.”
중년의 남성은 마법 재료를 납품하는 상단에서 근무하는 덕분에 단테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마법사가 아니라도 마법 관련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술지를 구독하고 있었다.
한 해에 새롭게 개발되는 마도 무구는 수백 종에 이르고, 학생들의 니즈를 분석해야 흥행하는 제품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응? 저 소년이 마법사야? 그렇게 안 보이는데?”
“아니, 아직 학생이야. 하지만 듣기로는 프로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실력이라고 하더군.”
마법사라는 건 일반인에게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더군다나 어떤 분야든 왕국 최고라는 칭호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기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리리아는 그제야 표정을 고치고 단테를 살폈다.
그녀 또한 마도사로서 마법사회에 대해 일반인보다는 훨씬 깊이 알고 있기에 무시의 감정이 싹 사라졌다.
“왕국 최고의 학생이라고?”
단테는 입맛을 다시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뭐…… 지금은 2인자 정도 되려나?”
마법 상단에 근무하는 남자도 시로네라는 소년이 단테를 꺾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챔피언에 대한 향수는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그것도 어린 시절부터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는 단테였기에 대중의 인기는 쉬이 식지 않았다.
리리아는 단테가 1인자든 2인자든 상관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전문 지식을 갖춘 마법사였고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는 게 중요했다.
단테가 3층 선술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긴 장소가 좀 그런데. 들어가서 술이라도 한잔할까?”
리리아는 의심의 눈초리로 단테를 바라보았다.
설령 그가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치근거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작업을 걸 생각이라면 다른 사람 찾아봐.”
“무슨 소리야? 작업이라니?”
“그럼 왜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지?”
“내 전공이 마법진이거든. 그쪽도 봉마진을 다루겠지? 흥미가 생겨서. 내 전공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마법진이라고?”
소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자신의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왕국 최고의 유망주라면 최소한 학생 수준에서는 가장 마법진을 잘 다룬다는 뜻이 아닌가.
“좋아. 일단 들어가자. 하지만 술은 마시지 않을 거야.”
“좋을 대로. 나도 맥주 한 잔이면 되니까.”
리리아는 그제야 수북하게 눈이 쌓여 있는 머리를 털고 단테의 뒤를 따라 술집으로 들어갔다.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에게 빼앗겼군.”
오래된 성터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기도 했지만 외로운 싱글들이 인연을 찾는 장소이기도 했다.
리리아에게 작업을 걸려고 했던 숱한 청년들이 부러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
저녁 8시.
오래된 성터는 시리도록 고요했다.
얼음으로 만든 동상에 달빛이 번지르르하게 흘러내렸다.
멀리 상점가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마저 이곳에서는 경건하게 들렸다.
밤의 적막을 깨고, 두 인영이 무너진 벽을 날렵하게 뛰어넘어 인적 없는 성터에 들어왔다.
단테의 표정은 심각했다.
선술집에서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오래된 성터는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미래를 본다고? 과연 가능한 일인가?’
리리아의 말에 의하면 아케아니스 신단의 수장은 포리테르라는 70세의 여성이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미래에 벌어질 일을 마치 데자뷔처럼 떠올리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는 정신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녀 스스로도 과대망상증을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문득 떠오른 미래의 장면이 우연으로라도 맞아떨어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포리테르는 열여덟 살의 어느 날, 생각했던 장면 그대로 마을이 산적 떼에 의해 불타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
어떤 방법으로 미래에 벌어질 일이 미리 떠오르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가 없지만, 그녀는 예지능력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미래를 걷는 자가 과거의 일을 회상하듯, 불현듯 옛 기억과도 같은 심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오래된 성터에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했단 말이지?”
리리아는 신뢰를 담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앙도 그냥 재앙이 아니야. 이 세계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날 거라고 하셨어.”
“세계의 종말이라. 그렇게 대단한 놈이 상대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
“아니. 그렇기에 포리테르 교주님이 대단한 거지. 미래는 바뀔 수 있어. 어떤 재앙인지는 모르지만 발현되기 전에 처리하면 되는 거야. 알에서 태어나기 전에 알을 제거하는 거지.”
“그렇군. 방법은 생각해 둔 거야?”
“강령소혼술을 이용할 거야. 지금 이곳에는 놈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어. 그것을 실체화시킨 다음에 곧바로 봉마진에 가둘 거야.”
“하지만 쉽게 될까? 예상보다 강하다면?”
리리아는 허리 뒤에 차고 있는 통에 손을 넣어 침을 꺼내들더니 손목을 흔들어 종소리를 냈다.
“그래서 토테미스트인 내가 파견 된 거야. 이 토템에는 박달나무 심지가 박혀 있어. 이것으로 율법의 힘을 강화시킨다면 꼼짝없이 붙잡히겠지.”
리리아는 토템을 땅에 박았다. 그런 다음 자리를 옮겨 또 다른 토템을 꺼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신탁이라 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야. 세상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악이 창궐해 있어.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제령사들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고 있다고.”
리리아는 20개의 토템을 사용해 지름 20미터짜리 거대한 원을 그리고는 중앙으로 걸어갔다.
단테가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어떻게 하는 거야?”
“응? 뭐가?”
“물리적인 구속력을 부여하는 마법진이라면 나도 설계할 수 있지. 하지만 봉마진은 그런 게 아니잖아? 오직 악에만 반응한다고. 무언가가 봉마진에 들어갔을 때,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어떻게 구별하지? 악의 정의가 뭐야?”
한겨울의 밤 (3)
리리아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돼. 악은 선을 배척하는 모든 것이야.”
“그래? 그렇다면 그 선이라는 것은 뭔데?”
“악을 배척하는 모든 것이지.”
“…….”
단테의 침묵을 이해한다는 듯 리리아가 설명했다.
“그런 질문 많이 받아. 하지만 한 가지 방식으로만 분석하려고 들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거야. 논리라는 것도 결국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에 지나지 않아. 더 넓게 보면 논리 이전의 것을 받아들이게 되지.”
리리아는 양쪽 검지를 치켜들고 엑스 자로 교차했다.
“선과 악이 서로를 지칭하는 것으로 각자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거야. 선이 없었다면 악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어? 반대로 악이 있기에 선의 개념도 명확해지는 거지.”
“흐음, 상충되는 두 가지의 개념이 서로의 실체를 지탱한다는 거로군.”
“바로 그거야. 마도사들은 이것을 율법의 수라고 불러.”
“율법의 수?”
“모든 수에는 의미가 담겨 있어.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을 거야. 아니면 무한했거나. 그것을 표현하는 수가 0이야. 그러다가 선, 악, 단테, 리리아처럼 고유의 이름이 붙으면서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지. 그게 바로 1이야. 그렇기에 봉마진에는 반드시 술자의 이름이 들어가야 해.”
“흐음, 고유의 이름이라. 그렇다면 2라는 것은?”
“네가 선악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 이유는 선과 악을 각각의 1로 보았기 때문이지. 하지만 선악을 합쳐 2라는 개념을 만들면 그것이 바로 율법이 되는 거야.”
리리아는 손가락 3개를 펼치고 말을 이었다.
“리리아는 1이고 율법은 2야. 따라서 3은 율법 속에서 완벽한 자신을 찾는 수야. 신단에서는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불러. 물론 완벽한 삼위일체에 도달하는 건 힘든 일이지만.”
리리아의 양 손가락이 맞물려 삼각형을 그렸다.
“3이라는 숫자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게 시작되지. 이게 바로 율법의 수. 아케아니스 신단의 진의이자 제령사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화두야.”
율법의 수를 이용하면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를 나타낼 수 있다.
마치 단테가 0과 1로 세상을 구조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마도사들의 통찰이었다.
리리아가 말을 이었다.
“봉마진은 마법진과 달라. 끝없는 수양을 통해 정신을 가다듬지 않은 자들은 절대로 악을 가둘 수 없어. 그렇기에 영적인 힘인 거야. 물론 그런 이유로 학계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생각을 정리한 단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어.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뭐지?”
“강령소혼술로 재앙이 실체화되었을 경우에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일단 실체화가 되면 현실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너도 마법진을 설치해 두었다가 혹시라도 내가 위험해지면 나를 지켜 줘. 굳이 나를 살려야 할 필요는 없지만 봉인이 되기 전에 술법이 끊어지면 치명적이야. 준비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지?”
“흐음, 별로. 지금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리리아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단테가 피식 웃었다.
“대형 마법진은 좋아하지 않아서. 인스턴트 마법진을 주로 사용하거든.”
리리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스턴트 마법진은 위력은 떨어져도 우발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었다.
실제로 제령사들 또한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급조한 봉마진으로 퇴마를 하기도 했다.
“알았어. 그럼 시작할게.”
무릎을 꿇은 리리아가 기도할 준비를 하자 단테는 한 걸음 물러서서 앞으로 벌어질 사태에 대비했다.
“허공에 맴도는 기운이여, 성스러운 힘의 사슬로 너의 손을 묶노라. 자리에 맴돌라. 뒤를 돌지어다. 실체가 헌신하노니 천 개의 가면이 모두 벗겨지리라.”
리리아의 기도는 끝없이 이어졌다.
실체의 의지를 강화시켜 비실체를 압박한다. 의지를 입을 통해 말하면서 강도를 높이는 것은 언령과 흡사했다.
마도사의 서명을 끝으로 강령소혼술이 펼쳐졌다.
“리리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실체를 드러내라.”
단테는 스피릿 존을 확장시키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로부터 1분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리리아가 여전히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에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잠시 후 대지가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진동의 폭은 크지 않았지만 반경이 어마어마했다. 멀리 얼음 여왕의 성에 쌓인 눈이 먼지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쳇! 나올 테면 나와 봐라.’
단테는 방어 마법진으로 주위를 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동은 점차 거세졌다. 하지만 여전히 실체는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흐으으……!”
리리아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나왔다.
한 방울의 정신까지 쥐어 짜낼 정도로 사력을 다하면서 무언가를 현실로 밀어내고 있었다.
갑자기 풍광이 푸른색으로 번쩍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밤하늘에 거대한 전기 그물망이 펼쳐졌다.
단테는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인간이 만든 네트워크가 아닌, 전하들 간의 불특정한 연결로 이루어진 형태였다.
“허억!”
리리아가 상체를 튕기면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단테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재앙의 실체가 저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싸워야 하나?
아니, 대체 저런 것과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뭐야? 말을 해 줘야 움직이지.”
리리아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착각했어. 저건 악령이 아니야. 순수한 정신체라고.”
“정신체? 알아듣게 설명을 해 봐.”
“어느 쪽에도 편향되어 있지 않은 중립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단 말이야. 이 상태로는 봉인하지 못해. 하지만 이곳의 율법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아.”
단테는 전자기망의 네트워크를 타고 신호들이 교환되는 형태를 살폈다.
패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하늘이 번쩍번쩍 청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젠장, 대체 이건 뭐야?’
똑같은 패턴이 하나도 없었다.
율법이 학습하고 있는 정보의 엔트로피가 극단적으로 낮다는 증거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갓 태어난 아이의 뇌도 이렇게 활동적이지는 않다. 유전자 단계에서 이미 본성에 관한 학습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니야. 다른 곳에서 왔어.”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정신체에게는 이곳에서 수집되는 정보가 인간으로 따지자면 국가 기밀에 해당할 정도로 고급스러울 터였다.
리리아는 엔트로피에 대해서는 몰랐다. 하지만 어느 정도 단테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정신체가 이 세계의 것이라면 이렇게 순수한 중립의 상태로 탄생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지금 봉인해야 돼! 내버려 두면 빠르게 이 세계의 악을 흡수할 거야! 봉마진을 시도할게!”
리리아가 다시 무릎을 꿇는 순간 하늘에서 마치 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소리가 고유의 주파수를 찾으면서 인간이 낼 수 없는 기괴한 음파를 일으켰다.
“나는…… 누구인가?”
단테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자아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음에 벌어질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