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72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개성이랄 것도 없는, 단순하면서도 맹목적인 충격파가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제기랄!”
단테는 리리아가 있는 곳에 방어 마법진을 설치했다.
정신체의 충격파가 엄청난 밀도로 지상에 처박히더니 고리 형태로 퍼져 나가며 강풍을 발생시켰다.
강력한 바람에 휩쓸려 단테가 날아갔다.
“단테!”
놀란 리리아가 단테에게 달려갔다.
정신체가 도망치듯 밤하늘로 사라졌으나 뒤를 쫓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단테! 단테! 정신 차려 봐!”
리리아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단테를 끌어들인 사람은 자신이었다. 또한 그는 봉마진이 끝날 때까지 자신을 지켜 달라는 약속을 정확히 수행했다.
애초부터 적의 실체를 착각하는 바람에 단테가 위험에 빠진 것이다.
만약 잘못된다면 모든 게 자신의 탓이었다.
“아우, 머리야. 깜짝 놀랐네.”
그 순간 단테가 상체를 일으키며 머리를 매만졌다.
리리아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단테, 괜찮아?”
“후우, 이래서 인스턴트 마법진이 좋은 거지.”
단테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금화 크기의 방어 마법진이 푸른빛을 내며 새겨져 있었다.
위기의 순간 최단시간에 방어 마법진을 구조하여 충격파를 갈라놓았던 것이다.
리리아는 비로소 상황을 이해했다.
하지만 1초의 여유도 없는 찰나의 순간에 그게 가능한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그녀는 서 있던 자세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하아, 다행이다. 미안해. 네가 죽은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이 정도로 죽을 거면 백번은 더 죽었지. 그나저나 저건 도대체 뭐야? 정신체가 어떻게 충격파를 낼 수 있지?”
리리아는 안정을 되찾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도 율법일 거야. 자아가 생기면서 갑자기 튀어나온 방어 본능이었던 것 같아.”
“율법이라고? 어떻게 율법을 구사하면 저런 괴물 같은 파괴력이 나오지? 거의 마법 수준의 위력이었다고.”
율법을 구사하는 마도사들은 공격하고자 하는 개념을 압박하기 위해 반대의 개념을 강화한다.
따라서 마법이 인위적으로 현상을 뒤튼다면, 율법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현상을 뒤튼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등가교환에 얽매이지 않지만 물리적인 위력은 마법보다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아마도 인간의 범주를 초월하는 율법일 거야. ‘율법의 수’로 따졌을 때 인간이 율법을 2로 받아들인다면, 놈에게는 1이야. 원래부터 율법이었으니까. 영겁에 가까운 세월 동안 단지 정신체로 머물러 있었을 거야. 그런 존재가 실체화되었으니 율법의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지.”
“그래서 정보 엔트로피가 현저히 낮았던 거였군. 이곳의 존재라면 여태까지 나타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어쨌든 엔트로피가 낮은 만큼 변화는 빠르게 일어날 거야.”
정보 엔트로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도, 시간이 없다는 측면에서는 리리아의 생각도 같았다.
“바로 그게 문제야. 최대한 빨리 잡아야 해. 실체화가 되었으니 분명 세상을 멸망시킬 무언가로 변할 거야.”
“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잖아? 저게 반드시 악으로 변한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리리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포리테르 님이 세상의 모든 재앙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일단 미래를 보게 되면 그건 절대로 틀리지 않아. 종말을 불러올 존재라고 하셨어. 단언컨대, 저 정신체는 결국 악이 될 거야.”
“흐음, 그렇군. 하긴…… 이곳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도 그 포리테르란 사람이 아니면 몰랐을 테니. 좋아,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리리아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단테를 바라보았다.
본격적으로 제령에 착수하기 전에 반드시 바로잡고 가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너…… 정말로 강하구나. 솔직히 학생이라고 해서 큰 도움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뭐야, 갑자기? 그런 말 안 해도 도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작전이나 말해.”
“아니, 진심이야. 나는 제령회 소속으로 수많은 퇴마 작업을 치러 왔어. 조금 전의 충격파가 얼마나 강한 위력이었는지는 충분히 알아. 네가 아니었다면 상황을 여기까지 지켜 내지 못했을 거야. 선을 추종하는 아케아니스 신단을 대표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할게.”
리리아는 정중하게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단테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대단하다, 고맙다, 이런 표현은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알았으니까 됐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미 실체화가 되었으니 강령소혼인가 그것도 소용이 없을 거 아냐?”
“이제 막 태어난 정신체에게 이곳은 요람 같은 곳이야. 쉽게 떠나지는 못해. 물론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지만.”
“흐음, 차라리 밖에 나가서 도움을 구하는 건? 아까는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재앙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잖아?”
리리아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늦었어. 도시에 갔다 온 뒤에는 모든 게 끝나 있을 거야. 만약 정신체가 지적인 사유를 하는 단계에 접어든다면 나로서도 붙잡아 둘 수가 없어.”
한겨울의 밤 (4)
“그렇다면? 따로 생각해 둔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리리아는 토템을 뽑아서 내밀었다.
“정신체가 머무는 동안 이 지역을 율법으로 고립시킬 거야. 금마진을 설치해야 하니까 나를 좀 도와줘. 입체 마방진은 계산할 줄 알지?”
단테는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나름 전공이니까.”
마법진을 전공한 그였으니 리리아의 작업을 보조하는 일이라면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단테는 여전히 의문스러웠다.
과연 이것으로 충분할까?
설령 정신체를 오래된 성터에 고립시킨다고 해도 이후에 봉마진에 가두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었다.
“금마진이라는 거, 내일 아침까지 끝낼 수 있을까?”
“숙련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너랑 내가 절반씩 맡는다면 아마도 가능할 거야. 그런데 왜?”
단테는 여전히 불이 밝혀져 있는 상점가를 돌아보았다.
아마도 저곳에서는 수많은 커플들이 부나방처럼 빛을 따라 거리를 헤매고 있을 터였다.
“이쪽도 전력 보강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
단테와 헤어진 이후 시로네와 에이미는 전보다 말수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삭막해진 것은 아니었다.
에이미는 단테의 조언을 받아들여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인지 고민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시로네 또한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분노의 화신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었던 터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까는 정말로 위험했어.’
아르망이 통제를 벗어나 사람을 겨누었다.
시로네의 정신 수양이 미흡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전보다 분노의 크기가 강해졌다고 보는 게 옳았다.
물론 살아가면서 성격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방향이 아니었다.
‘더 많은 수양이 필요해. 방학 중에 에텔라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조언을 구해 봐야겠다.’
일단 그렇게 결론을 내린 시로네는 샤코라가 일러 준 스노우 크리스털이라는 숙소를 찾았다.
“여기야, 내가 말했던 숙소가.”
에이미는 아무것도 평가하지 않고 그저 바깥에서 안쪽의 분위기를 살필 뿐이었다.
시로네는 건물 외관을 훑어보았다.
샤코라의 말대로 분위기가 괜찮았다. 장식도 고급스러웠고 끝없이 설원이 펼쳐져 있는 전망도 마음에 들었다.
에이미도 숙소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초행길인 시로네가 굳이 특별한 여관을 찾아 헤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왜 여기를 고집하는 건데?”
“응. 내가 알아봤는데 분위기가 아주 좋대. 편하게 쉴 수 있을 거야.”
“그래…….”
시로네가 그렇다면야 에이미도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실용적인 성격이지만 이번 여행은 위로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니 나름대로 준비를 한 것이리라.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오늘 같은 날이면 함께 어울려 밤을 보내도 괜찮을 테지만 현재 그녀의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했다.
“어서 오세요. 스노우 크리스털입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 시로네는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에 놀랐다.
수많은 조명등이 대낮처럼 홀을 비추고 있었다.
직각으로 꺾인 통로를 지나면 넓은 테라스가 있고 관광객들이 화덕의 횃불에 모여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음유시인의 음악이 들려왔다.
주위의 모두를 얼어붙게 만드는 얼음 여왕의 처절한 심정이 가사에 담겨 있었다.
“두 분이신가요?”
카운터를 지키는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 2명이에요.”
시로네가 직원과 방을 계약하는 동안 에이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들과 단체로 여행하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남녀 둘이서 이런 곳에 들어오는 건 기분이 이상했다.
“방은 2개로 주세요.”
직원은 잠시 시로네와 에이미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열쇠를 테이블에 놓았다.
“네, 311호와 312호를 쓰시죠. 계단을 타고 3층으로 가서 복도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됩니다. 숙박비는 선불입니다.”
금액을 지불한 시로네가 에이미를 돌아보자 그녀도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계단으로 향했다.
3층 복도를 걸으면서 시로네가 말했다.
“일단 방에 짐부터 풀고. 출출하면 나가서 뭐 좀 먹을까?”
“아니. 오늘은 그냥 쉬고 싶어. 추운 곳을 오래 돌아다녔더니 몸이 좀 무거워서. 괜찮지?”
정말로 몸이 힘들다면 얼마든지 쉬어도 좋지만, 시로네는 왠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자신의 예상보다 화가 나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비록 단테의 조언을 머리로 이해했다고는 해도 감정은 별개의 문제였다.
졸업 시험의 결과에 대해서 언쟁을 벌이다가 단테가 자신에게 의중을 물었을 때, 에이미의 편을 들어주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미, 아까는…….”
시로네의 생각을 읽은 에이미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오해하지 마. 그런 거 아니니까. 나 뒤끝 없는 거 알잖아.”
그러자 시로네의 마음은 더욱 무지근해졌다.
뒤끝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뒤끝이 있다는 얘기 아닐까?
어쨌거나 에이미의 마음이 이미 엉망진창이라면 어떤 말로도 기분이 풀리지는 않을 터였다.
이럴 경우 필요한 건 대화가 아닌 시간이었다.
“그래, 그러면 내일 보자.”
“응. 너도 편히 쉬어.”
에이미가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거기까지 지켜본 시로네도 열쇠를 문고리 중앙에 꽂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전면 유리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었다.
저 멀리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점처럼 작은 횃불이 피어오르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얼음낚시를 하고 있었다.
에이미와 함께 이 광경을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후우.”
“후우.”
시로네와 에이미는 동시에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문으로 몸을 돌렸다.
“이, 이게 뭐야?”
문은 2개인데 방은 하나였다.
그리고 침대도 하나였다.
두 사람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시로네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포화 상태였다.
무엇보다 자신이 바득바득 우겨서 고른 숙소였으니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생각해 내야 했다.
‘어, 어떡하지? 방을 바꿔 달라고 할까? 하지만 여기는 모든 방이 이럴 텐데. 그냥 환불 받고 나갈까? 그러면 에이미가 불쾌해하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반대인가? 환불을 해야…….’
시로네가 하얗게 뜬 얼굴로 어찌할 줄을 모르자 에이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안 어울리는 행동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결정권은 여자에게 있었다.
에이미는 옷장으로 가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할 수 없지 뭐. 일단 짐부터 풀자.”
“어? 어, 그래!”
시로네는 여전히 경황이 없었다.
가방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짐을 풀고 있는데 에이미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누가 알려 준 거야?”
“응? 뭐라고?”
“이런 곳인 줄 알고 들어왔을 리는 절대로 없고, 다른 사람이 여기를 소개시켜 준 거 아냐?”
시로네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솔직히 고백했다.
“사실은 너희 아버지가…….”
에이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끙 하는 소리를 냈다.
스파이가 가족 중에 있었으니 시로네에게 따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분위기가 정말 좋다고 하더라고. 너도 좋아할 거라고…….”
확실히 야경이 아름답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둘이 있기에는 위험한 곳이었다.
옷가지를 대충 정리한 에이미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려가서 저녁이나 먹자.”
방을 나선 시로네와 에이미가 카운터로 내려오자 직원이 장난스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방은 마음에 드십니까?”
에이미는 질문을 무시하고 말했다.
“간단히 요기를 할 건데, 식당은 어디 있어요?”
시로네와 에이미가 허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온 건 11시 무렵이었다.
최대한 밖에서 시간을 보낸 셈이지만 결국 종착지는 이곳이라는 건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세면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모든 과정들이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어제 오후부터 마차를 타고 달려온 탓에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으나 정신은 갈수록 또렷해졌다.
누구도 하나밖에 없는 침대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누가 침대에서 잘 것인지도 상의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침대는 금기어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하얀 눈과 검은 밤하늘이 만나는 설원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야경의 신비에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옆방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가 그들의 정신을 현실로 끌어와 내동댕이쳤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시로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에이미가 시선을 피하며 필사적으로 태연함을 가장했다.